[2차]어바등-재희무현

[재희무현] 스무 살 첫 눈 (1)

화재사건을 겪지 않은 행복한 세상의 재희x이런저런 사정으로 졸업 못한 무현

-둘 다 대학생입니다

-가벼운 거 보고 싶어서 씀

“이거 드시고 하세요, 형.”

“앗, 고마워요.”

노트북에 들어갈 기세로 고개를 빼고 있던 남자가 화려한 붉은 머리의 남자가 건넨 캔커피를 받아들며 웃었다. 오랫동안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눈이 침침해졌는지 미간을 구기고 손가락으로 눈 사이를 꾹꾹 누른 남자가 제 옆에 앉는 붉은 머리를 보고 멋쩍게 웃었다.

“괜히 미안하네요. 재희 씨도 또래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밌을텐데.”

“아녜요. 이거 좀 하고 지원금 받는게 더 이득인데요 뭘.”

“재희 씨는 참 착한 것 같아요. 저 같은 아저씨는 불편할텐데.”

“하하….”

재희가 웃으며 눈을 돌렸다. 방심했다간 손 안에 들려있는 캔이 우그러질 것 같았다. 재희가 준 커피로 목을 축인 남자는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려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를 곁눈질로 보던 재희가 속으로 소리질렀다.

박무현 이 바보 멍청이~!!!!!

재희가 무현을 알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된 어느날이었다. 사회복지과로 유명한 대학이라더니, 장애인에 대한 지원혜택이나 복지가 꽤 괜찮아서 선택한 대학이었다. 장애학생을 돕는 대신 봉사시간을 주는 시스템도 있었는데, 따로 시간내서 해야하는 봉사보다 훨씬 쉽다보니 지원자가 늘 넘친다고 했다.

재희를 비롯한 신입생,편입생 장애학생들은 지원제도 설명회를 들으러 따로 모였다. 선배들은 [손에손]은 동아리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학교의 지지를 받으며 만들어진 곳이라 실적이 없어도 동아리방을 뺏기는 일이 없다며 열심히 설명했다. 물론 실적은 학교에서 퍼다 먹여주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 밖에도 갈색머리의 모범생 같아 보이는 여자선배가 장애, 비장애인 구분 없이 들어올 수 있고, 어쩌고 하며 설명하는데 재희는 조금 따분해졌다. 재희가 비록 의족을 써야 하는 처지긴 하지만 누군가한테 도움받아야 할 수준은 아니었고 쥐꼬리만한 지원금 받겠다고 몰려드는 비장애학생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설명회가 끝나면 그냥 나가야겠다 생각할 때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뒷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구석에 앉아 있던 지도교수까지 쳐다보는 눈길에 막 들어오던 지각생이 머쓱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단정하게 덮은 머리에 허여멀건한 얼굴. 민망함에 발개진 뺨에 이쪽저쪽으로 구르는 눈동자.

재희는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못했다. 그런 일은 소설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던 재희는 갑자기 온 몸을 두드려대는 심장박동 소리를 눈치채고 가슴에 손을 올렸다. 아, 진짜 있구나 그런 일.

재희는 결국 [손에손] 동아리에 가입했다. 첫눈에 반한 사람이 웃으며 가입신청서를 내미는 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재희가 가입 신청서에 이름을 적고 종이를 돌려주자 남자가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더 말을 붙여보고 싶었지만 남자는 지도교수의 부름에 달려갔다. 자리에서 머뭇거리던 재희는 갈색머리 여선배가 ‘끝났으니 돌아가도 좋아요.’ 하는 말에 대꾸하지 못하고 교실을 떠났다.

그 주 금요일에 환영회가 열렸다. 빌린 강의실에서 술 대신 물과 차, 음료와 함께하는 회식이었다. 처음엔 학생들을 골고루 앉혀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학번끼리, 신입생끼리, 또는 수화가 가능한 학생끼리 모여 앉았다. 재희는 자리가 바뀌는 틈을 타서 고학번 구석에 앉은 남자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재희의 인사에 수줍은 미소를 보인 남자가 재희의 빈 잔에 차를 따라줬다.

“선배님이시죠? 그 때 가입신청서 나눠주셨잖아요.”

“네 맞아요. 저를 기억하세요? 아, 지각해서 그런가.”

남자가 민망하게 웃었다. 재희도 웃으며 답했다.

“네에. 근데 그럴 수도 있죠 뭐. 저는 김 재희라고 하는데 선배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박 무현이라고 해요. 높임말 심하게 안 해도 돼요. 어차피 같은 학생인데.”

“넵. 무현 선배는 비장애학생으로 오신 건가요?”

“아뇨, 저도 장애학생이에요.”

재희의 눈이 순식간에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보청기도 없고, 의수도 아니고, 의족인가? 봄이라 긴 바지 속에 가려져 있어 안 보인 걸지도 몰랐다. 재희의 눈에 의아함이 번지자 무현이 하하 웃더니 제 눈을 가리켰다.

“여기 의안이에요.”

“아.”

무현이 가리킨 눈을 자세히 보자 안구 특유의 촉촉함 대신 빛이 가볍게 반사되는 플라스틱 유리체가 보였다. 검은 인공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재희가 반대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무현이 눈을 깜빡였다.

“어릴 때 교통사고가 났거든요. 두 눈 다 실명을 했다가, 한 눈은 수술로 살렸는데 한 눈은 아예 안 보여서 인공 안구를 넣었어요.”

“아하….”

재희는 자신도 말해야하는 순간인가 고민하다가 어차피 언젠가 밝혀질 거, 바지를 걷어 무현에게 보여줬다. 검은색의 의족을 본 무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희의 손에서 바지자락을 빼내 다시 덮었다.

“그래도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멀쩡히 보고 멀쩡히 걸어다닐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휠체어만 타서는 어디 가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재희는 자신의 얘기는 가볍게 털어놨으면서 재희에게는 사연을 묻지 않는 무현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 날 무현과 연락처도 교환한 재희는 적극적으로 무현에게 플러팅을 했다. 몇 번의 연락 끝에 무현의 공강 시간을 알아낸 재희는 시간만 되면 무현과 함께 식사했다. 가끔 [손에손] 부원 몇 명이 끼기도 했고, 무현의 친구와 함께 한 적도 있고, 우연히 만난 재희의 과 친구들과 먹은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늘 무현과 밥을 먹었다.

치과대학 수업을 듣느라 바쁜 무현은 시험기간 주간에는 재희와 약속을 거절했다. 과제가 너무 많은 주간에도 거절했다. 재희는 그럴때면 과 친구들의 술모임에 나가서 대충 떠들다가 집에 돌아갔다.

“방학 동안 할 일이 있어요.”

종강기념 동아리 회식에서 동아리 회장인 갈색머리 여선배가 일어서더니 공지를 알렸다. 요약하자면, 학교에서 동아리에 시킨 일이 있는데 다 하면 실적으로 인정해주고 지원금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뭐 많이 참여해주면 좋긴 한데, 학교에선 한 개만 보고해도 일단 OK라고 했거든요. 사회복지과로 유명한 대학이라 이 보고서를 참조해서 어디 발표하려나봐요.”

“어떤 건데요?”

치킨을 뜯고 있던 남학생이 물었다.

“장애인이 학교에서 겪는 불편과 차별, 개선 방안이에요.”

“아으.”

“우….”

부원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과제와 시험이 막 끝나 해방감에 젖어 있던 그들에게 또 자료조사와 보고서라니.

“보고서 하나당 지원금이 20만원 나온대요. 동아리 부금은 충분하니까 참여한 학생한테 다 줄게요. 하고 싶은 사람?”

회장이 학생들을 둘러봤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회장은 곤란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도 없으면 자기가 해야할텐데, 이번 방학에 짜놓은 일정이 많았다. 그 때 구석에서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럼 제가 할게요. 정확한 양식이랑 내용 보내줄래요?”

“헉, 선배님. 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이따 바로 보낼게요!”

무현이 자원하자 회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무현의 옆에서 치킨을 뜯던 재희가 한숨을 푹 쉬는 무현을 쳐다봤다.

“형도 하기 싫은데 하는 거에요?”

“아무도 안 한다잖아요. 난 학기 중에 뭐 한게 없으니까 방학에라도 도와주지 뭐.”

“겸사겸사 20만원도 받고요?”

“들켰나요?”

재희의 농담에 무현이 씩 웃었다. 재희도 참여하겠다 했더니 무현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재희를 걱정했다.

“대학생 되고 첫 방학인데, 어디 여행 같은건 안 가요?”

“여행을 3달 내내 갈 것도 아닌데요 뭐. 아님 제가 같이 하는 게 싫으신가요?”

“아뇨 싫을리가요.”

그렇게 대답한 무현의 표정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재희는 뭔가 찜찜함을 남기며 회식이 끝나고 헤어졌다.

“박무현 바보~!~!~!~”

그간 얼마나 열심히 치댔던가. 공대와 치대는 가깝지도 않다. 오로지 무현을 보기 위해 치대 학식을 먹었다. 그런데 무현은 지금까지 착해서 자기랑 놀아줬다고 생각했다니. 게다가 아저씨는 뭐람?! 나랑 나이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침대에 누워 발버둥치며 씩씩대던 재희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현의 나이를 모른다는 것을 떠올렸다. 동아리 선배니까 학번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재희도 딱히 묻지 않고 무현도 먼저 말해주지 않아서 몰랐다. 재희는 바로 폰을 들었다.

{선배}

{무현선배}

{네?}

{선배 내일 뭐하세요?}

{과외 할 거에요.}

{아, 맞다. 어디였죠? ㅇㅇ구?}

{그럼 끝나고 저랑 밥 먹어요. 저 거기 갈 일 있거든요.}

{밥? 그래요 그럼. 먹고 싶은거 있어요?}

순조롭게 밥 약속을 잡은 재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주 멋지게 차려입어서 반드시 꼬실 작정이었다.

평소보다도 과하게 힘을 준 재희는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검은백팩을 매고 폰을 들여다 보던 무현은 지척에서 재희가 워! 하는 소리에 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아이, 놀랐잖….”

웃으며 고개를 든 무현은 재희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휙 올렸다. 어깨선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반만 묶고 드러난 귀엔 은색과 검은색 피어싱을 했다. 체인이 느슨하게 걸렸다가 떨어지는 피어싱은 재희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귓볼 알래서 흔들렸다. 그 밑으로 입은 약간 큰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핏이 딱 맞는 청바지는 무난한 옷이었지만 재희가 입으니 당장 화보 촬영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동그래진 무현의 눈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던 재희는 그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무현은 눈을 두세번 깜빡이고는 미소지었다.

“이야, 오늘 되게 멋있네요? 이따 데이트라도 하나 봐요.”

“….”

너야 너. 너라고! 재희는 이를 악물며 웃었다. 무현이 맛있는 곳이라고 데려간 식당은 국밥집이었다. 식당입구에 도착하고서야 무현은 재희의 옷을 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멋지게 입었는데 이런 곳 데려와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 국밥 좋아해요. 급하게 양식집이라도 갈까 하는 무현의 등을 떠밀어 들어온 식당은 정말 괜찮았다. 재희가 이렇게 맛있는 국밥 처음이라며 추켜세워주자 무현이 가늘게 웃었다.

밥값을 혼자 계산해버린 무현에게 재희가 커피라도 사겠다며 카페로 끌고 갔다. 무현은 다른 약속 있는거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재희는 선배랑 만나기 전에 끝난 약속이라고 둘러댔다.

즐겁게 떠들다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노을이 지는 바깥을 본 무현이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재희는 저녁까지 같이 먹자고 붙잡고 싶었지만 너무 질척거리는 것처럼 보일까봐 포기했다. 대신 헤어지기 전에 무현에게 물었다.

“선배 혹시 몇살인지 물어봐도 돼요?”

“아, 제가 말 안했나요?”

재희의 질문에 무현이 망설였다. 의안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했으면서 뭘 나이 가지고 고민하지, 의아해하는 재희에게 무현이 부끄럽다는 듯 소근거렸다.

“스물 여덟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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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열정적인 뱁새

    재희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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