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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9

자캐 커뮤 로그 / 독백

1.

눈을 감아야만 선명하게 보이는 과거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L은 눈을 감아야만 하는 밤이 두려웠다. 특히 달빛이 흐린 오늘 같은 날이면 더더욱. 빛이 미약할수록 L의 눈가에서 맴도는 후회들은 더더욱 선명해지곤 했다.

 

2.

부끄럽지만 그즈음의 L이 가장 많이 가졌던 감정은, 아무래도 우월감일 것이다. 그는 항상 즐거웠다. 많은 것들이 제 아래 있었으니까. 그는 여러 가지 것들을 발아래에 밟고 서 있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무식한 자들, 자기보다 못한 또래들. 이들은 모두 우습다. 왜 우습냐 하면, 모두들 하찮은 자기 능력에 비해 확고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대개 자기 생각을 고집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우위로 결국엔 L의 생각이 옳다는 게 밝혀진다. 그러면 대부분 그제서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고마워, L.’ 그 말을 들은 L은, 표정에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만 까딱인다. 남들의 눈엔 어떻게 해석될지 모르겠으나, 사실 이 고갯짓에 담긴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이 일련의 과정은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그에겐 어떤 법칙과도 같았다.

오만하던 L의 발밑에 깔린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밑에 짓눌린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부모였다. 그런 부모의 위치에 L은 불만을 품지 않았고, 오히려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L의 부모는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멍청했기 때문에 사령술에 목을 매달았고, 멍청했기 때문에 L의 진심 어린 조언을 무시했다. L은 자신의 행동에 한 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사령술은 위험했고,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규제되었기 때문에, 이를 목격한 사람은 즉시 가까운 기관을 통해 고발해야만 한다. 그래서 L은 그의 부모를 고발했다. 그뿐이었다. 그는 ‘법은 지켜야 한다’는 사회의 당연한 규칙을 따라 행동한 것이다. 그 규칙은 L이 아직 자신의 가정이 정상적이고 평범하다고 믿었을 무렵, 그의 어머니가 가르쳐준 규칙이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었다. 오히려 L은 자신에게 네가 맞았다는 인정을 받아내기 전 죗값을 받으러 간 부모에게 아쉬움을 느꼈다. A에서 L이 거두어내는 우수한 성적은 그 하나하나가 L이 옳았다는 증명이었다. 사령술 같은 끔찍한 마법에 손을 대지 않아도 L은 우수했으며, 멍청한 부모와 달리 그는 그 자체로 뛰어났다.

더 많은 타인의 위에 오르면 오를수록, L은 맨 밑에 있는 부모에게서 점점 더 멀리 분리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3.

부모를 다시 만난다면? 생각만 해도 불쾌한 질문이었다. 머리에 담기만 해도 속이 거북해지는 느낌 때문에 항상 미루어 왔기 때문에, 졸업 후 떠난 여행 끝 무렵, L은 P로 향하는 마차에서 겨우 그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L은 비웃을 것이다. 한쪽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리고, 웃을 것이다. 그들에게 긴 시간조차 허락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몇 초에 불과한 시간 동안. 그 뒤로는…. 아마 모르겠지만 뒤돌아 다시 빠져나오지 않을까. 그 정도로 생각을 갈무리한 뒤, L은 다시 마차의 창문 너머 풍경에 시선을 던졌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몸속 가득했던 당당함이 어느새 사라져, 집의 대문(의 형태를 한 무언가)을 열 힘조차 없었다. 아까까지의 자신감 대신 가슴을 가득 메운 감정의 답을 찾느라 L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불편함? 걱정? 그가 아는 어떤 단어들을 대더라도 이 감정을 설명하기엔 부적절했다. L은 모욕적인 단어들이 원색으로 써진 채 무너져가는 담장 너머로 집을 조용히 관찰했다. 무성한 잡초 너머로, ‘방’이 보였다. 물론, 다른 집에 비하면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흉가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것 같은 거주 공간의 형태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방 안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L은 숨을 멈췄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자신을 봤을까? 그건 확신할 수 없었다. 남자의 눈은 초록색이었지만 빛이 너무나도 바래 거의 회색처럼 보였다. 흐리멍텅한 눈에 순간 자신이 담겼을 때, L은 주변에 있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노인과 시선이 겹쳤을 때, L이 느낀 고통은 그가 아는 어떤 마법보다도 가장 강력했다. 그의 부모가 그가 없는 사이에 드디어 강력한 사령술을 익힌 것일까? 아니, 아닐 것이다. 조용한 밤공기를 타고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L은 가슴을 가득 메운 감정의 정체를 드디어 깨달았다. 그것은 죄책감이었다. 하, 하고 L은 드디어 짧게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웃음의 방향은 부모가 아닌 자신이었다. 이제야? 이제야 갑자기 죄책감을 느낀다고? 너무 늦어버렸는데? L의 기억 속 부모는, 사령술에 목을 맨 교만하면서도 멍청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틀렸음을 온몸을 다해 증명하고 싶었다. 제발 그만둬 달라는 어린 자신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한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방금 마주했던 그의 부모는 교만하기는커녕 초라했다. 그들은 가진 것을 죄다 잃었음에도, 오로지 아들 하나만 되찾길 바라고 있었다. 비록 그 아들이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음에도 말이다. L은 처음으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해야만 했다. 사령술에 목매단 부모보다 더 멍청했던 것은, 바로 L 자신이었다.

갑자기 헛구역질이 났지만, 토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4.

눈을 감으면 보이는 과거의 기억은 정말 단순했다.

L의 부모가 유일하게 정상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망이던 L의 방. 그리움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그 방 한가운데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잠깐 그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L의 목을 졸라오는 죄책감과 후회. 그것을 알기에, 눈을 감고 과거의 기억과 대면한 L은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은 회피하고 만다. 물론 그런 비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책감은 그의 목을 졸랐다.

L은 안다. 그는 언젠가 이 눈을 마주해야만 한다. 과거의 환상에서도, 현실에서도.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속죄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이것이 L이 아는 스스로의 가장 추악한 부분이다.

쌀쌀한 새벽공기 탓인지, L은 쉽게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얕은 기침을 내뱉었다. 여전히 가슴은 답답하게만 느껴졌고, 달빛이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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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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