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고독한 미식가

바닥이 축축하지 않은 블루베리 파이와 직접 내린 커피

유적 by 량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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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목요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금요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윈은 아침 느지막히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펠리컨 마을 사람들이 비밀의 숲이라고 부르는 그 공터는 햇빛이 부족하거나 습하지는 않았지만 음울한 나무 그늘이 짙었다. 집 뒤편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잎을 몇 개 떨어뜨렸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만큼 예민했더라면 이런 시골 마을의 외딴 오두막에서는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윈은 잠깐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다채로운 감각과 바람이 피곤해 눈을 한참 동안 감고 있었다.

그가 펠리컨 마을로 이주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이주는 워낙 요란한 구석 없이 넘어갔기에 마을 사람들은 일주일쯤 지나서야 피에르의 식료품점에 발을 들인 그윈을 발견하고서야 그의 존재를 인식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펠리컨 마을의 주민들은 그윈에 대해 온갖 추측을 늘어놓다가,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가 거절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존재를 희미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윈은 그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교류하는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삶이 오히려 좋았다. 그는 타인에게 자신을 설명하고 타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것을 꺼렸다. 둔탁한 슬픔은 언제나 그를 감싸고 있었고 그윈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것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곤 했다. 그윈은 그 자신의 외로운 삶이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뭔가를 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인 편을 좋아했다. 이런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그윈은 집안을 정돈하고, 그러는 사이에 늦은 아침의 햇살을 바라보기도 했다. 습관적으로 커피를 내려놓기는 했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직접 내린 따뜻한 커피 냄새가 오두막 안을 메웠고, 그 냄새가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그윈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배가 고팠다.

시간은 점심이 채 되지 않았으므로 펠리컨 마을의 살롱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을 테다. 거스의 스파게티나 피자는 소박한 맛이 났지만 제법 먹을 만한 음식이었고, 종종 요리하고 싶지 않을 때 음식을 포장해 오곤 하는 그윈은 그 맛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레시피와 별로 비밀스럽지 못한 냄새를 생각하면 입이 짧은 그라도 그럭저럭 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어쨌든 살롱이 열기엔 이른 시간이다. 거스에게 특별히 부탁하면 요리를 해 줄 수야 있겠으나, 그윈에게는 그럴 주변머리도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기에 그는 살롱에 갈 생각은 접어 두기로 했다.

그렇다면 대신 먹을 것이 필요했다. 아침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속에 부담이 가지 않는 음식이면서, 적당히 끼니를 때웠다 싶을 만큼은 든든한 것이. 그윈은 자신이 입이 짧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어느 때는 커피만으로도 입이 질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을 때가 있었다. 예민한 동시에 어느 면에서는 한없이 둔감한 그는 그런 방식으로 살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대라고 하면 먹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는 대답을 주는 식으로.

그리고 그윈은 의자에 기댄 채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어떤 고민에 빠졌다. 문 앞에 바짝 서 있는 인기척에게 무슨 볼일이냐고 묻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인기척은 곧 사라졌다. 그윈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기척은 한참, 심지어는 몇 시간 단위로까지 그 앞에 서 있곤 했다. 문을 열어주었을 때는 새까만 머리의 남자가 우뚝 서서, 그윈이 며칠을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큼 양이 많고 매번 종류가 달라지는 음식을 건네주곤 했다. 그리고는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거나 마을 행사의 파트너를 해 달라는 다양한 제안 하나 없이 휙 돌아서 가는 것이다. 그윈도 그를 붙잡는 것이 번거로워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방문이 매번 의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기척이 완전히 멀어진 것을 느끼자 그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소리 없는 느린 걸음으로 문 앞까지 다가가, 문을 열자 발치에 부딪히는 것이 있었다. 음식이 들어있는 듯한 작은 상자였는데, 보이는 것보다 묵직했다.

그윈은 어떤 호의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런 방식의 호의에도 썩 익숙하지 못했다. 그는 한참 동안 발 앞의 상자를 바라보다가, 허리를 숙여 집어 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사람이 없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윈이 그 상자를 연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다 깜빡 잠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자의 내용물을 고려하면 알맞은 처사였는데, 갓 구운 파이라는 것은 상온에서 조금 식혀 주어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파이의 낭만은 생각보다 잔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파이 바닥이 축축하다거나 하지 않고 완벽하게 구워진 것을 보아, 그윈은 그것이 꽤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든 정성스러운 파이임을 직감했다.

파이는 썩 크지 않았다. 마치 1인분을 상정하고 만든 것 같았다. 또는 손이 큰 사람이 억지로 작게 만들려고 노력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한 사람만을 위한 파이. 미지근한 말이었지만 그윈의 마음에는 들었다.

그윈은 파이를 앞에 두고 잠시 그리운 것을 바라보듯 서 있다가 접시를 가져와 옮겨 담았다. 다 식은 커피를 다시 데우고, 잔에 따라 가져와 파이 앞에 앉을 때까지 그는 묘하게 꿈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먹는다는 행위는 얼마나 추잡하고 고결한가. 그런 생각을 했다.

포크와 나이프까지 가져와 작은 파이가 올라간 접시의 양옆에 놓고, 그윈은 그날의 첫 식사 전 기도를 올렸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속삭임 뒤에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리고, 그윈은 그제야 파이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달콤하고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보라색의 콩포트가 파이 안쪽에서 쏟아졌다. 진한 시럽과 파이지 부스러기가 섞여 색이 번져들었다.

그윈은 포크로 파이를 조금 떠내 입에 넣었다. 적당히 졸여진 블루베리가 입안에서 터지고, 전분을 넣어 만든 끈끈한 콩포트의 시럽이 입안에 미묘하게 남았다. 그의 입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블루베리의 껍질이었는데,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적절할지 고민하느라 뜸을 들이던 그윈은 적당히 보라색 맛이라는 결론 정도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커피로 입안을 적시자 쓴맛은 더욱 쓰게 느껴졌고, 희미하게 남은 단맛은 더욱 달게 느껴졌다. 알이 굵은 블루베리가 가득 들어있는 파이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그윈은 신기하게도 질리지 않는 맛에 작게 웃음 지었다. 그는 정성에 감동해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드문 일이었다.

접시를 비우기까지는 한참 걸리겠지만, 그윈은 감사의 쪽지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드물게도, 비밀의 숲 위쪽의 농가에 사는 검은 머리의 남자를 저녁 식사에 초대할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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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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