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타입

커미션 10

2차 드림 느와르 AU 오마카세

이 바닥에선 먹고 살려면 앞에 누가 있던 눈빛 하나만으로도 상대방을 움츠리게 만드는 패기가 있어야 한다고들 했다. 그러나 M에겐 누군가를 겁주는 재능이 없었다. 쉽게 말해 덩칫값을 못 한다고 볼 수 있겠다. 189cm의 거구는 이 바닥에서 정말 유리한 신체 조건이었으나, M의 앳된 얼굴과 발그레한 볼은 이런 축복을 가볍게 상쇄시켜 버렸다. 하지만 R과 M이 먹고 살려면 누군가를 겁줘야만 했고, 재능이 없다면 이제부턴 노력의 영역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R의 해결법은 간단했다. M에게 야구 방망이, 아니, 이건 너무 고상한 표현이고, 어디서 굴러다니던 빠따를 손에 쥐여준 것이다. 그냥 헤실헤실 웃는 애송이 M은 이 바닥에서 꽤 구른 아저씨들에게 어떠한 공포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헤실헤실 웃으면서 빠따로 무언가를 내려치는 M은 꽤 위협적이었다.

 

“몸도 좀 쳐 볼까요, 누나.”

“알아서 해.”

“넵.”

 

방망이가 공중에서 엉성한 모양새의 원을 그리며 내는 휘잉, 소리가 마치 낮은 음의 휘파람 같았다. 상쾌하기까지 했던 음 뒤에, 곧 불쾌한 소리가 뒤따라왔다. 뻑, 우구득, 우웁. M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중년의 남자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안 그래도 나온 배가 온몸을 꽁꽁 묶은 밧줄 덕에 더 툭 튀어나와 보이는 남자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어 더 꼴이 보기 흉했다.

M의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지는 사이, R은 양상추가 너저분하게 삐져나온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으며 생각했다. 우리 M은 빠따 휘두르는 것보단 공을 더 잘 던졌고, 이 햄버거는 마감 직전의 알바가 만들어서인지 맛이 없다고.

진짜 콩깍지가 아니라, M은 진짜 공 하나는 기막히게 잘 던졌다. 으극. 고아원에 있을 때, 다른 또래 남자애들이 M이랑은 캐치볼을 안 하려 했다. M이 던진 공 받으면 팔이 다 아프대서. 악. 야구를 잘 모르는 R 눈에도 M의 재능이 보여서, R은 M이라도 이 밑바닥에서 건져주려 이래저래 애를 썼다. R은 정말로 언젠간 M이 프로 선수로 높은 연봉 받으면서 야구장에 서게 될 거라 생각했다. 원장이 어떻게든 모은 후원금을 죄다 먹고 튀기 전까진. 으으윽. R은 그때의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밑바닥에서 순진함은 사기보다 더한 죄였다. 다만 억울한 것은, 끄아악. …아니, 옛날 일 좀 떠올리려 했는데 더럽게 시끄럽네. R은 미간을 좁혔다.

분노가 가리키는 방향이 자신이라고 착각했는지, M은 여전히 볼이 빨개진 채로 급하게 R의 안색을 살폈다. R은 햄버거의 기름이 묻은 검지로 남자를 가리킨 뒤, 다시 자기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R의 말이라면 귀신같이 알아먹는 M은 센스 좋게도 방망이질 속도를 높였다. 퍽, 퍽. 이제 더 이상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누나, 기절한 것 같아요. 깨울까요?”

“아냐, 이만하면 됐겠지.”

 

축 늘어진 남자의 몸뚱아리를 방망이 끝으로 툭툭 쳐 보는 M에게 R은 그만하라는 손짓을 했다. ‘나쁜 새끼 대신 흠씬 두들겨 패주기’. 이번 의뢰에서 M이 맡은 임무는 여기까지로 충분했다. R은 이 장소에 오자마자 생각해 둔 핑계를 머리에서 끄집어냈다.

 

“M아.”

“넵.”

“저기 창고 좀 뒤지고 올래? 의뢰비 말고 한몫 더 챙겨야지.”

“맡겨 주세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믿으라는 듯이 손바닥으로 가슴을 탁탁 친 뒤, M은 창고로 들어갔다. 살짝 열린 문틈만으로도 안에 꽤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게 파악될 정도의 공간이었다. M이 물건과의 씨름을 시작한 것을 확인하고, R은 다시 고개를 남자에게로 돌렸다.

이제 둘만의 시간이었다.

 

-

 

“아저씨, 기절한 척하는 거 다 알아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대신 핏발이 가득 선 눈이 R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R이 살아오면서 밥 먹듯이 먹어온 살의를 전달하는 듯했다. 가끔 M이랑도 나눠 먹고. 그렇지만 아까까진 M한테 고분고분한 눈빛을 보내던 남자가 자신을 만만히 보았는지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게 맘에 들지 않아 R은 낡은 신발로 남자의 얼굴을 한번 가볍게 밟았다. 끄으윽. 다시 시작된 남자의 신음을 들으며, R은 제 핸드백 안에 다 먹은 햄버거 포장지를 넣고 교환하듯이 무언가를 꺼냈다. 햄버거 소스보다 더 검은 액체가 들어간 주사기였다. 남자의 눈에서 살의는 어느새 없어지고, 공포만이 남아 있었다.

사실 의뢰는 ‘나쁜 새끼 흠씬 두들겨 패주기’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나쁜 새끼 흠씬 두들겨 패주고 죽여주기’까지가 전체 의뢰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두들겨 패주기’가 M의 몫이었다면, ‘죽여주기’는 R의 몫이었다. 사실 이러한 역할 분배에 M과의 합의는 없었다. 그저 R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R은 제 순진함 때문에 받는 벌은 억울하지 않았다. 하지만, M까지 이 벌에 휩쓸린 것은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순진함 때문에 제 미래가 달라졌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M은 R을 따라 고아원에서 나오고, 길에서 살길 택하고, 손에 무기까지 쥐게 되었다. 이런 M에게 R은 차마 살인까지 저지르라고 할 순 없었다. 둘 중 하나가 지옥 밑바닥에 가야 한다면 자신이 마땅했다. 이걸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지, 애정에서 비롯된 감정이라 해야 할지, 여가 시간마다 많은 생각에 잠기는 R조차도 아직 마땅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남자는 몸부림을 치려 했지만, M의 성실한 밑작업 덕분에 몸을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R은 익숙하게 남자의 몸에 올라타 최소한의 몸부림도 하지 못하도록 짓누르며 적당한 혈관을 찾고,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소리라도 내던 남자는 이제 그 시끄러운 성대 근육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몸에 닿은 또 다른 몸에서 급격하게 생명이 꺼지는 불쾌한 기분을 소름 돋을 정도로 싫어서, R은 급하게 남자의 몸에서 내려왔다.

문득 토기가 참기 힘들 정도로 몰려와 R은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의뢰인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남자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쓰레기였다. 여자들을 착취하면서 돈을 벌었고, 아내였던 의뢰인을 이혼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팼다고 했던가. R은 그런 남자를 죽인 것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죽였다’는 행위 자체엔 고통을 느꼈다. R은 이런 일이 재미있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올바르지 못하며, 가볍게 저지를 수 없는 혐오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똑똑하게 알고 있었고, 이는 매번 R이 가진 우울이란 감정의 원인이 되어 주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R은 이 일을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누나!”

“응.”

“누나, 저 대박인 거 찾았어요.”

 

M은 손에 쥔 무언가를 자랑스럽게 흔들며 돌아왔다. 뭘 찾았길래 그리 뿌듯했는지, 여전히 볼은 들뜬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R은 토기를 갈무리하며, 재빨리 손에 아직도 들고 있던 주사기를 가방 안에 다시 넣었다. 포장지와 주사기가 맞닿아 바스락 소리가 났지만, 너무 작아 M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M은 R의 눈앞에 자신이 들고 온 것을 자랑하듯이 들이밀었다. 꽤 오래전부터 방치된 것 같은 비디오테이프였다. 손 글씨로 적힌 제목을 보니, 꽤 유명한 거장의 영화인 것 같았다.

 

“누나가 좋아하는 옛날 흑백영화 찾았어요.”

“진짜네.”

“나중에 같이 봐요.”

“그래, 그러자.”

 

사실 R은 그 영화를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몇 번은 봤다. 왜냐하면, M은 모르겠지만 그건 영화 매니아라면 꼭 봤을 법한 명작 중의 명작 영화니까. 그래도 R은, M을 위해서라면 그 영화를 처음 보는 척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쉬운 축에 속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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