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백호]사랑을 담으세요

강백호를 위해 사랑을 담는 양호열. 문장 ”첫사랑을 끝내러 왔어“ 사용. #호열백호_한주전력 #끝사랑_230812

호백 뽀뽀해 by 여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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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양호열은 꿈을 꿨다.

여기에 사랑을 담으세요.

그의 앞에는 귀여운 토끼 모양의 지우개가 놓여 있었다. 분홍색에 귀퉁이가 조금 부서진 지우개는 한 여학생이 백호에게 빌려주었던 것이었다.

백호는 그 여학생에게 고백했다 차였고, 호열은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차인 기분을 느꼈다.

꿈을 꾼 날은 호열이 백호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꿈은 가끔씩 찾아왔다. 사랑을 담으라는 그릇은 매번 바뀌었다.

손수건이나 반창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 벚꽃잎 같은 작고 사랑스러운 것들. 모두 백호가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된 것들이었다.

‘이런 거로 뭐 어쩌라고. 여기에 사랑을 담으면 백호가 나를 사랑하게 되나?’

호열은 단 한 번도 그릇에 사랑을 담지 않았다. 코웃음만 한 번 치고 꿈에서 깨기를 기다렸다.

그렇지 않나? 비에 맞았다고 손수건을 빌려주거나 다친 상처에 붙이라고 반창고를 건네거나. 부딪혀서 떨어뜨린 책을 주울 때 손가락이 닿는다던가 머리카락에 벚꽃잎이 붙었다고 알려주는 일 따위. 호열도 한 번씩은 다 해 본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백호가 호열에게 사랑을 느꼈을까? 그럴 리가.

백호는 작고 귀여운 여자애를 좋아했다. 호열은 조용히 자라난 마음을 꽁꽁 감췄다.

“호열아…. 어제는 내가 역시…. 굉장했지…?”

하지만 감춘다고 해서 자라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환호성이 들리지 않았냐?”

그날은 꿈에 농구공이 나왔다. 호열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드디어 무언가에 전념하게 된 백호는 말도 안 되게 멋졌다. 호열의 심장은 백호가 뛰어오를 때마다 세차게 뛰었고, 백호가 멋지게 덩크에 성공하고 짓는 미소를 보면 황홀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사랑을 담으세요.

이대로 가면 이 거센 마음을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아 호열은 결단을 내렸다. 그릇에 사랑을 담자. 조금씩 덜어내면 언젠가는 바닥나겠지.

호열은 꿈에서 농구공을 튕겨 보았다.

마침 백호의 여름방학 합숙이 시작됐다. 호열은 백호에게 던지는 2만 번의 패스에 사랑을 조금씩 담았다.

이제껏 자라기만 하던 사랑을 덜어내고 있으니 곧 끝날 거다. 호열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거잖아.

“이야, 호열이 너 어째 점점 패스 실력이 느는 것 같다?”

“하하, 그런가.”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돌려보던 백호가 불현듯 감탄했다. 호열은 그냥 웃어넘겼다. 사랑을 담아 던져서 그런가 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백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브라운관 속 호열을 유심히 살폈다. 어쩐지 부끄러워진 호열이 말리니 그제야 다시 제 자세를 관찰했다.

몰래 가슴을 쓸어내린 호열이 영상에 담긴 자신을 쏘아보았다. 사랑만 담고 괜히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패스를 2만 번쯤 던지면 사랑을 모조리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시 꿈을 꿨을 때, 그 앞에 나타난 건 휠체어였다.

여기에 사랑을 담으세요.

실은 2만 번의 패스를 모두 호열이 던진 건 아니었다. 대남과 구식, 용팔도 함께 백호를 도왔다. 그런데 백호가 호열이 던지는 패스가 가장 좋다고 한 뒤로는 호열이 전담하다시피 했다.

혹시 그게 사랑을 담았기 때문이라면, 이번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다 덜어내지 못한 사랑이다. 다시 자라날 것이라면 백호를 돕는 데 쓰는 게 좋지 않을까?

꿈에서 깬 호열은 병원을 향해 달렸다. 아무도 몰래 병실로 들어가 잠든 백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작게 속삭였다.

“백호야, 나 첫사랑 끝내러 왔다. 이 사랑을 널 위해 쓸 거야. 네가 다 나아서 다시 농구를 하는 날까지 모조리 쏟아부을게. 그러고도 남아 있으면 계속, 계속 너를 위해 쓰다가 언젠가 필요 없어지는 날 정말로 끝낼게.”

호열은 꿈에서 휠체어를 보았다. 그것에 사랑을 담았고, 백호의 재활을 도왔다. 재활은 성공적이었다.

꿈은 계속 찾아왔다. 그는 농구화와 농구 경기 규칙서, 기말고사 시험지, 대학 등록금 납부 고지서, 미국행 비행기 티켓에 사랑을 담아 백호에게 건넸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사랑이 바닥나거나 백호에게 필요 없어질 때를 기다렸다.


호열이 마지막으로 꿈을 꾼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꿈에서는 김치에 사랑을 담았다. 백호는 전화로 역시 호열이 네가 담근 김치가 최고라며 한참이나 떠들었었다.

‘다음에는 뭘 보내지?’

그는 이제 꿈을 꾸지 않고도 어떤 것에든 사랑을 담아 백호에게 건넬 수 있었다. 이 사실이 기껍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언젠가 백호가 자신의 사랑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온다면…….

“Hey, 양 사장님. 바쁘신가?”

익숙한 목소리가 호열을 상념에서 깨웠다. 수리하던 차 밑에서 황급히 빠져나오자 미국에 있어야 할 백호가 보였다. 그것도 정장을 차려입고 커다란 꽃다발을 든 채로.

호열은 어리둥절하기에 앞서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었다.

“백호야! 언제 들어왔어? 미리 말하면 데리러 갔을 텐데.”

“뭐어… 너 깜짝 놀래켜주려구.”

백호는 호열을 따라 벙긋벙긋 웃다가 우물쭈물했다. 그러다 불쑥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아기자기하고 부드러운 꽃을 모아 만들어진 다발에 작은 쪽지가 꽂혀 있었다.

사랑을 담아, 호열에게.

호열은 미처 몰랐다. 사랑은 마구 퍼담는다고 해서 바닥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을 담아 던지다 보면 결국 받는 사람이 알아챈다는 것을.

사랑은 그저 그릇에만 담기는 게 아니었다.

농구공을 패스할 때 스친 눈빛에, 휠체어를 미는 조심스러운 손길에, 함께 농구 규칙을 달달 외우는 시간 속에.

넘치도록 담긴 사랑을 백호는 보았고, 이번에는 그가 사랑을 담아 호열에게 건넸다.

끝나지 않을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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