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백호]출국 2주 전

망했다. 다 망해버렸다. #호열백호_한주전력 #동거_240225

호백 뽀뽀해 by 여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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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동거', 대사 "그래서, 우리는 같이 살기로 했다." 사용.

*무자각인데 키스해버린 호백 썰 기반.

 

 

 

 

“강백호 미국 가면 양호열 이제 어쩌냐.”

“갑자기?”

 

대남의 뜬금없는 말에 호열이 으하핫 웃었다. 자신과 백호가 유난히 붙어 다니는 걸 보고 친구들은 종종 핀잔을 주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종류라 생각하며 적당히 웃어넘기려는데 용팔이 진지하게 받아쳤다.

 

“야, 장난으로 받지 말고. 너 진짜 괜찮겠냐?”

“안 괜찮을 건 뭐야. 미국이 멀긴 하지만 아예 가는 것도 아니고, 백호에게 좋은 일인데.”

“백호 대학 가니까 근처에 자취방 구한 녀석이 괜찮을 거라고? 양심 좀 챙겨라.”

 

아이고. 이 녀석들이 오늘 날 잡았나. 오랜만에 다섯이서 만나 술 한잔 걸치다가 백호가 화장실에 간 틈을 노려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한다. 술 마셔서 기분도 좋겠다, 저 말들이 전부 걱정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알겠다. 호열은 친구들의 빈 잔에 술이나 따라주며 말을 아꼈다.

 

“백호한텐 그런 말 하지 마라. 괜히 머뭇거릴라.”

 

그 말에 세 친구들은 얼굴을 구기며 잔을 비웠다.

강백호 출국 3주 전의 일이었다.

 


 

백호가 농구로 대학을 가게 되자마자 호열은 대학 근처로 자취방을 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와 산다고 뭐라 할 사람 없고, 백호가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도 됐으며, 백호랑 함께 있으면 즐거우니까.

이렇게 늘어놓으니 단순하진 않지만 당시 호열은 금방 결정하고 곧장 실행에 옮겼다. 다시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

 

“빨래 다 말랐어?”

“어엉. 좀 많네. 내 껀 기숙사에서 빨아도 된다니까.”

“딴놈들이랑 섞이는 거 싫다고 했잖아.”

 

특례 입학생이라 봐주는 건지, 아니면 곧 미국으로 유학갈 유망한 농구 선수라 그런지. 백호는 곧잘 기숙사에서 나와 호열의 자취방에서 자고 가곤 했지만 딱히 불이익을 주진 않는 모양이었다. 저번 주 주말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처럼 외출도 제법 자유로웠고.

많은 이가 백호의 미국행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뜻처럼 느껴져서 호열은 기꺼웠다.

두 사람은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바닥에 쌓고 나란히 앉아 개기 시작했다. 벌써 해가 지는지 창문 밖 하늘이 점점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좁디좁은 자취방이라 티브이 둘 곳도 없고 라디오를 트는 것도 깜빡해서 사위가 고요했다. 오늘따라 밖에서 애들 노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잘 마른 빨래 개는 소리만이 방을 채웠다.

 

“…….”

“…….”

“자고 가도 되냐?”

“아직 기숙사 문 닫을 시간 아닌데?”

“그래도.”

 

백호가 입을 삐죽였다. 혹시 자기 말이 빨리 가라는 종용처럼 느껴졌을까 봐 호열은 얼른 대꾸했다.

 

“마음대로 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네.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상하게 들렸으면 어쩌지. 호열은 괜히 입술만 깨물었다.

요즘 들어 백호랑 있으면 이상하게 입이 잘 안 열리는 순간이 생긴다. 마가 뜬다고 해야 하나. 조금 불편한데 불쾌한 느낌은 아니고, 자꾸 신경이 백호에게로 쏠려서 괜히 긴장하게 되는 순간들.

백호랑 있는데 왜 이른 기분을 느끼는 거야? 떠나는 게 아쉬워서 그런가? 백호도 이런 기분을 느끼면 어쩌지? 호열은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여권 발급 신청한 게 저번 주였던가? 받았어?”

“어. 생각보다 빨리 나오더라.”

“여권도 나왔으면 이제 갈 준비는 다 끝난 거네. 서류는 학교에서 다 준비해줬다고 했으니까.”

“뭐…… 그렇지.”

 

백호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빨래 더미에서 제 속옷을 찾아 개던 호열이 흘끗 표정을 살폈다. 수건을 착착 접는 손과 다르게 조금 멍한 얼굴이다.

 

“왜 그러냐, 천재야. 아주 신이 날 줄 알았는데?”

“그르게 말이다. 이몸이 드디어 미국을 정복하러 가는 날이 다가오는데! 뭔가 좀 그릏단 말이지…….”

“뭐가 그래?”

“…나도 몰라.”

 

백호가 툴툴대며 호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훅 다가오는 체온에 호열은 잠시 굳었다가 백호가 빨래 몇 개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겨우 긴장을 풀었다. 백호가 곧 가 버릴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작은 움직임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호열은 내색하지 않고 백호를 달랬다.

 

“조교가 뭐 필요한지 목록 뽑아줬다고 했지? 이따가 같이 한번 보자. 뭐 빼먹은 게 있어서 그럴지도 몰라. 너 감 좋으니까-”

 

다 갠 빨래를 옆에 내려놓으려는데 마침 똑같이 빨래를 내려놓던 백호의 손과 툭 부딪혔다. 이게 뭐 별거라고. 그냥 빨래 내려놓고 떨어지면 되는데 호열은 또 굳어버렸다. 백호도 마찬가지였다.

요 며칠 집안을 맴돌던 부자연스러운 공기가 두 사람을 둘러싸는 것 같았다. 그들은 떨어질 생각도 안 하고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대화가 끊기자 정적이 흘렀고, 자기 숨소리가 들릴까 봐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숨은 왜 가빠지는 거지?

그걸 의식하자마자 호열의 팔이 움찔 떨렸고 백호가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뜨겁고 커다랗고 조금 축축한 손이 긴장으로 차가워진 손을 감쌌다. 빨래를 떨어뜨린 호열이 둥그레진 눈으로 올려다보면 백호도 똑같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창문으로 들이치는 노을 때문인지 백호의 뺨이 불그스름했다. 따뜻한 빛이 눈동자에 어리고 속눈썹 끝이 희게 빛났다.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점점…

어, 이거 좀 가까운…….

의문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입술이 맞물렸다. 닿은 건 손과 입술뿐인데 백호의 뜨거운 체온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입을 벌리고 숨결을 나누면 간지러운 전율이 등을 타고 흐른다.

호열은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이 감정을 느끼기 전부터 자신이 이 순간을 바라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설픈 첫키스는 둘 다 숨이 모자라고 나서야 끝이 났다. 지척에서 헐떡이는 새빨간 얼굴은 자신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

 

“우, 우리 이래도 되는 거냐…?”

 

친구인데, 같은 남자인데. 키스를 해버렸다. 서서히 상황이 이해되는지 백호의 표정에 서서히 놀라움이 번진다. 호열이랑 키스를 하다니! 그런데 왜 좋지?! 그 안에서 설렘과 흥분, 그리고 기쁨을 발견한 호열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아, 진짜…….”

 

호열이라고 해서 설레고 기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사랑스러운 감정 위로 묵직한 위기감이 떨어진다. 이건 큰일이었다. 같은 남자인 친구에게 이런 마음을 품었다니. 그걸 키스하고 나서야 알았다니.

경험적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것엔 불이익이 따른다. 앞으로 농구 선수가 될 백호에게 좋은 일이 아닐 게 분명했다.

 

“아이씨, 다 망했어.”

 

근데 그걸 알면 뭐 해. 이미 좋아한다는 걸 먼저 알아버렸는데. 망했다. 다 망해버렸다. 이미 키스까지 한 이상 못 무른다. 무르고 싶지 않다.

이 마음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막막했다. 호열은 눈가가 시큰해 이를 악물었지만 눈물은 기어코 뺨을 타고 흘렀다.

 

“어, 이, 야, 얌마! 너-!”

“읏!”

 

백호가 호열의 멱살을 잡았다. 우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리려던 호열이 백호 눈가에 매달린 눈물방울을 발견했다. 앗 하는 사이 백호가 와악 소리쳤다.

 

“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망했다니!!”

“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우리 큰일 났다고, 백호야.”

“몰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싫었으면 싫었다고만 해! 없던 일로 치면 되잖아!”

“없던 일?”

 

저렇게 말하면 호열도 조금 열이 받는다. 없던 일로 치자니? 첫사랑과의 첫키스를 어떻게?

 

“누가 싫대?!”

“망했다며!”

“싫다고는 안 했다!!”

“안 싫었으면 좋은 일이지! 또 해!!”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던 처음과 달리 두 번째 키스는 말 그대로 입술 박치기로 시작됐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의 키스라고 하다 보니 기분 좋아진 호열이 대화로 풀려고 하면 백호가 또 와악! 소리 지르며 다시 키스하고…… 오늘 한 키스를 전부 첫키스로 쳐도 되는지 호열은 잠시 고민했다.

입술 부비고 소리치고 울고불고 하다 보니 체력이 좋은 두 사람이라도 나중에는 지치고 말았다. 혀는 안 쓰고 입술만 붙인 채 헐떡거리는 숨을 느끼다가(원래 입김 같은 거 닿으면 기분 나쁘고 그러지 않나? 왜 좋지. 정말 망했어.) 조심스럽게 떨어졌다. 백호도 진이 빠졌는지 더는 소리치지 않았다. 퉁퉁 부은 눈이 붕어 같아서 푸스스 웃으니 백호도 호열을 보며 웃는다. 아마 자기 눈도 붕어눈일 것이다.

호열은 백호의 눈가에 남은 물기를 닦아주며 말했다.

 

“나 이거 안 싫었어, 백호야. 근데 우리 망한 건 맞아.”

“우, 우째서…? 좋았다매.”

“우리 둘 다 남자잖냐. 남자끼리 좋아하거나 사귈 수 있다는 얘기 들어 본 적도 없고…….”

 

그러니까 시작하지 말고 여기서 끝내자. 그래도 친구로 지내보자. 아픈 말이지만 해야 하기에 그렇게 말하려는데, 백호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호열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도 남자끼리 좋아하거나 사귈 수 있다는 거, 들은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마는… 그래도 할 수 있지 않겠냐? 천재인데!”

“아니, 네가 천재인 건 맞지만 이게 천재라고 해결될 일은…….”

“걱정 마라 양호열! 천재는 언제나 큰일을 벌이는 법! 괜찮을 거라고!”

 

우하하하! 호언장담하며 웃지만 백호의 얼굴이 막 밝은 건 아니었다. 백호는 경험적으로 모난 돌이 얼마나 정에 얻어맞는지 알고 있다. 천재에겐 언제나 시련이 주어지는 법이라고 스스로 다독여도 정에 맞으면 당연히 아팠다.

그때마다 호열이 곁에 있어 주었다. 호열은 언제나 백호를 때리는 정에 맞섰고, 가끔은 대신 맞아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호열이 함께라면 얼마나 커다란 정이 자신을 때리러 와도 맞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열이 너랑 함께라면 이 천재는 온갖 응애도 이겨낼 거란 말씀!”

“음해겠지 바보야…….”

“바보라니! …우 어, 또 우냐…?”

 

호열은 자신을 살피며 난처해하는 백호를 잡아당겨 꼭 끌어안았다.

나랑 함께라면 이겨낼 거라고? 호열은 한때 자신의 무대는 싸움판이고, 이 무대 위에 언제고 백호와 함께 설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백호는 농구 코트 위로 올라가 버렸고 그건 좋은 일이었지만 농구 선수가 아닌 호열에겐 다시는 백호와 나란히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신 너와 함께 싸울 일은 없겠다 싶었는데, 이제 나는 백호와 함께 사랑을 위해 싸우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지칠 일이 없겠다.

역시 진짜 망했어. 절친이자 첫사랑에게 인생을 저당 잡힌 꼴이잖아.

호열은 백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킥킥 웃었다.

 

“큰일이다, 진짜.”

“누우웃… 이 천재가 어뜨케든 해 볼 테니까…!”

“백호야.”

“어엉?”

“좋아해.”

 

어느덧 노을은 다 지고 캄캄한 어둠이 차오른 집안. 어둠 속에서도 호열은 기쁨으로 차오른 백호의 미소에 눈이 부셨고, 백호가 준 답변에 지지 않을 사랑을 약속했다.

 


 

“그래서, 우리 같이 살기로 했다.”

 

강백호 출국 2주 전. 두 사람은 고민 끝이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다.

긴 고민은 아니었다. 남자끼리 사귀는 게 낯선 일이긴 하지만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녀석들이니 가장 먼저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 조금 긴장하던 중. 1주일 만에 다시 모인 백호군단의 세 멤버, 김대남, 노구식, 이용팔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희 이제야 사귀는 거라고?!?”

“그럼 지금까지 사귀지 않았던 거란 말이냐?!!”

“친구인 채로 그러고 지냈다는 게 놀랍다!!!”

“뭐, 뭐야 그 반응은!”

“후누웃?!”

 

알고 지낸 시간이 있는데 대놓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아도 떨떠름해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생각도 못 한 방향의 반응이라 호열과 백호는 되려 놀랐다. 그런 그들을 보며 구식이 테이블을 탕! 내려쳤다.

 

“누가 대학 간 친구랑 놀려고 자취방을 구하는데?! 얘기 들어 보면 아예 같이 사는 것 같더만!”

“옳소! 옳소! 당연히 우리 비위 생각해서 비밀연애 하는 줄 알았지!”

“어쩐지 양호열 백호 유학 간다는데 과하게 멀쩡한 척하더라니!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거였어!”

 

세 사람이 그간 쌓인 염병의 역사(특이사항 : 안 사귈 때였음)를 줄줄이 읊어주자 호열과 백호는 벌건 토마토가 되어 버렸다. 대남, 구식, 용팔은 낄낄 웃으며 속 시원해 했다.

 

“백호 미국 가는데 곧 말하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정말 말하긴 했네. 이제부터 사귄다는 소리일 줄은 몰랐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구식아. 저 자식들 사귀자마자 동거하는 거라고!”

“핫, 그러고 보니!”

 

용팔의 지적에 대남과 구식이 이마를 쳤다. 놀릴 생각 만만인 얼굴들이다. 호열은 민망함에 얼굴을 쓸어내렸고 백호는 벌게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이,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우린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호오~ 사귀자마자 동거한다는 게 정말 순수한 마음이었다고요, 백호 군?”

“아, 2주밖에 안 남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어야지!”

“붙어있으면서 진도도 쭉쭉 나가고?”

“……후느아아악!”

“이 자식 부정을 안 하네?!”

“순수한 마음 다 어디 간 거냐고!”

“에이, 순수한 마음으로 뽀뽀 잔뜩 하려는 걸 수도 있지!”

 

신나게 놀리던 세 사람은 백호가 고개를 푹 숙이는 사이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뽀뽀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여기까지만 하자. 좋아. 그러자.

그리고 여기, 그들의 심리를 이미 파악한 사람이 있었다.

 

“왜 아직 뽀뽀만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상기된 얼굴로 은은한 미소를 지은 호열의 말에 백호군단은 폭발했다.

 

“크아아아악!”

“거, 거기까지! 거기까지만 해라, 진짜!”

“먼저 백호 놀린 너희 잘못이야.”

“와중에 지는 놀림 안 당한 척하네! 완전 빨개져 놓고!”

 

호열은 못 들은 척하며 백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길 놀리던 친구들이 괴로워하자 금세 기운 차리고 낄낄 웃던 백호가 신이 나서 마주 잡았다. 건수 잡고 놀리다 괜히 친구들의 염장질을 코앞에서 보게 된 대남, 구식, 용팔은 직감했다.

이제 강백호 출국하기 전까지 이 염장질을 계속 보게 되겠구나.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영원히…….

그건 정말 좋은 일이었지만, 모태솔로 삼인방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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