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페커미션 52. 질투
드림 - 사언진청(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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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언진청] 질투
비 온 뒤의 햇볕은 잔인한 구석이 있어, 감히 땅속을 벗어난 지렁이가 치열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사언은 돌길 한가운데 서서 웃음도 울음도 없이 가만히 지렁이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경련할 힘으로 앞을 향해 기어간다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눈이 없는 존재는 돌아가지 못하고 그저 자리에서 누구도 듣지 못하는 괴성을 지를 뿐이다. 아니, 어쩌면 흙의 냄새를 맡고도 돌아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예감한 개미 떼가 주위를 두르기 시작할 무렵 지렁이의 움직임이 점차 잦아들었다. 사언은 개미 떼가 지렁이를 찢어발기기 전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잘 닦인 돌길은 퍽 오랜만이어서, 일주일 전에 걸었다 해도 새삼 적응이 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돌길이 있다는 것은 곧 사람이 자주 지나가는 길이라는 것. 사언이 굳이 걸을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길이었다. 군사님의 복수를 위해 결집한 추종자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걸을 일 없었을 길. 악마 소환사라는 누명을 쓰고 죽은 자를 위해 흑마법을 내세우는 자들이 있다는 기막힌 소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도 사언은 저를 스스로 침대에 처박았을 테다.
최대한 짧은 동선을 택해 잘 썩지 않는 딱딱한 빵과 염장한 음식만 대충 사던 번화가를 사언은 처음으로 느긋하게 걸었다. 지방이기는 했지만 번성한 도시에 자리를 잡았기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빵 가게 주인이 아닌 이상 없다고 해도 좋았다. 그래서 사언은 도시가 좋았다. 아예 인간을 만나지 않을 작정을 하지 않는 이상은 시골로 가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시골이라는 곳은 아버지 대에 이사를 가도 손주까지는 외지인이다. 눈에 띄기 그보다 좋을 수는 없으니 오히려 숨는다면 도시가 좋았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가벼운 옷차림이어서 긴 옷 위에 겉옷을 겹쳐 입은 사언은 꽤 눈에 띄었지만 사언은 개의치 않았다. 이곳은 도시였고 사람들은 계절감 없는 옷차림이라고 생각할 뿐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으니까. 사언은 단지,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초여름의 도시에서 자신 혼자 붕 떠 있다는 느낌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반쯤은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이상했다. 사언의 신체는 겨울에 머물러 있는데 어째서 세상은 초여름이란 말인가. 어딘지 모르게 세상과 단절된 느낌에 사언은 어깨를 움츠렸다. 아무렴 어떤가, 사언의 시간 감각으로 지금은 아직 겨울이었고 그는 추웠다.
소식을 접하기에는 술집이 좋을 터. 오후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곳이면 아무 곳이라도 좋았으므로, 그는 잘 차려입은 사람이라면 가지 않을법한 술집으로 들어가 바 자리에 앉았다. 바텐더는 사언의 추레한 행색을 보곤 손님으로 받아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으나 그의 청결상태를 확인한 다음 순순히 싸구려 럼주를 건네주었다. 남은 의심도 사언이 멀쩡하게 말을 걸자 완전히 지워진 듯, 바텐더는 묻는 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몸에서 열이 났다. 하지만 사언의 심장은 반대로 점점 차가워졌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사언은 군사님께서 이 사실을 안다면 결코 즐거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흑마법이라니, 그의 누명을 이쪽에서 진실이라 증명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추한 삶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군사님이라면-
온몸의 관절이 비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술을 너무 마신 모양이었다. 사언이 알콜중독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단지 과음했을 때 고문당했던 몸 구석구석이 비명을 지르기 때문일 뿐이었다. 사언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말없이 값을 치르고 술집을 나와 방향도 목적지도 없이 여기저기를 걸었다. 꽤나 자극적인 소식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추종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썩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다시 세상에 나가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군사님은 이미 세상에 없었고 그는 너무 지쳐있었다.
다 쓸모없는 짓이지. 그 생각이 사언의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게 했다. 별 이유도 소득도 없는 외출에 돈만 아까웠다. 아니, 아주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상점에서 전시해둔, 군사님의 눈 색을 빼닮은 보석을 구할 수 있었으니 아주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까.
도시 변두리, 살 만한 자들은 걸음하지 않는 외곽지에 있는 제 집으로 돌아가며 사언은 생각했다. 군사님께 이 목걸이를 보여드리는 거다. 군사님의 눈과 아주 닮은 색이지요, 플로라이트라는 돌인데 천재의 돌이라고 불리길래 사왔어요. 그러고는 군사님에게 드리지 않고 뻔뻔하게 제 목에 걸면 군사님은 어떻게 대답할까. 적어도 플로라이트인 건 알고 계실 텐데, 군사님을 만나면…….
아, 군사님은, 죽었지.
사언은 몸을 굽혀 길바닥에 대고 한참을 토했다. 머리가 울리고 가슴을 무언가가 후벼파는 기분이 들었다. 돌길이 끊어지는, 인적이 드물어지는 곳이라 그나마 다행일까. 비틀거리며 근처 나무에 손을 짚어 몸을 지탱하던 사언은 문득, 낮에 본 지렁이를 떠올렸다. 장렬하게 죽어가던, 그를 노리는 개미를 아랑곳 않고, 조금만 기어가면 닿을 수 있는 흙에 닿지 않고 그대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던, 지금은 온갖 곤충들에게 산산이 찢겨 없어졌을 그 지렁이. 사언은 그 지렁이에게 질투했다. 부럽고 화가 나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질투심이 들끓었다. 그리고 지렁이따윌 질투하는 저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다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어둡고 스산한 골목에 잠겨 돌아가는 제 모습이 마치 흙 속으로 들어가는 지렁이 같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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