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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페커미션 29. 매듭, 풀리지 않는

드림 - 고죠x사와지마(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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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죠사와] 매듭, 풀리지 않는

그 여자는 결핵에 걸려서 죽었어. 과거 서양에서는 자살한 것을 에둘러 표현할 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일본에서는 어떻게 말하면 될까? 과로사? 사고사? 돌연사? 백혈병? 췌장암? …이번에 들은 표현으로는 사고사가 당첨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에둘러 말할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자살은 제법 흔한 사인이 되었고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게 날카롭지 않다. 괜히 빙빙 돌려 말하거나 쉬쉬할 필요까진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고죠 사토루는 에두른 부고를 느지막이 받은 것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이 기분을 무어라고 불러야 하나? 박탈감? 소외감? 반발심? 적어도 그 여자와 관련된 것에는 들 리가 없는 불가사의하면서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분이었다.

박탈감? 그는 애초에 그 여자를 소유한 적 없었다. 가질 생각도 없었지만 그 여자는 끝까지, 어쨌든, 그랬다. 소외감? 그야말로 살면서 한 번도 든 적 없는 기분이다. 반발심? 그런 것까지 가질 상황인가 지금 상황이?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고죠 사토루는 계속 기분이 더러웠다.

어쨌든 그 여자는 내 것이 되어야 했다고.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한 고죠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 것? 고죠 사토루는 어디까지나 흥미본위로 그 여자와 관계하고 있었으며 그가 손을 뻗을 때 어떻게 내칠 것인지를 고민했지 제가 가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고죠는 잠자리 좀 같이 했다고 상대를 제 것이라고 인식하는 촌스러운 남자는 아니었고.

그랬었는데. 어째서 지금, 하필 이 순간에 그 여자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천천히 살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하찮을 만큼 작은 고통이 조금씩 제 몸집을 부풀린다. 사이를 비집고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고죠는 알고 있다. 지금은 그저 제 인식이 초를 쪼개어 느리게 흐르는 것일 뿐, 자신은 순식간에 치명상을 입었으며 곧 죽을 거란 걸.

고죠 사토루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본 적 없기에 마지막 주마등으로 무엇을 볼지도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살해당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죽는다면 늙어죽는 수밖에 없었고 그건 고죠에게 너무 시시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그 여자가 생각나는 것이 더욱 더 어처구니없었다.

근데 왜 죽어버린 거야?

사와자마 가에서 그 여자의 죽음을 사고사라고 에둘러 말할 수 있었던 것에는 유서가 없던 점도 한 몫을 했다. 늦은 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졸음운전을 하던 트럭에 치여 사망. 보기에도 그럴싸한 사고사였던 데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사고사가 맞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염병 떨고 앉아 있네.’라고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은 그 말 뒤에 따라올 입씨름이 귀찮아서였을 뿐이었다. 물론 그런 말은 안 했지만 코웃음은 나왔고 상대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가기는 했다. 그러나 정말로,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는 개소리였다. 그 사와자미 히토미가 늦은 밤에 그 정도로 만취한다고? 취했다고 한들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넜다고? 그 여자가?

고죠 사토루는 확신했다. 사와자마 히토미는 자살했다고. 그리고 그 사실을 사와자마 가에서도 알고 있다고.

피가 일직선으로 허공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장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고통이 머리를 뒤흔들었지만 고죠는 여전히 생각을 이어나갔다. 사와자마 히토미의 자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였다. 도무지 제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살할 위인도 아니었다. 자살하게 된다면 집안에 폐를 끼치니까, 저 혼자만 참으면 다 끝날 일이니까. 설령 그 인내가 기어코 끊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아주 가까이에, 확실한 해결방법이 영원히 쓰러지지 않을 나무처럼 서 있었다. 물론 그 여자의 손을 잡아줄 것이었냐면 아니었지만 어쨌든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은가. 도움을 요청받은 때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면, 그래서 마음이 내켰다면 왕자님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충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왜 끝까지 자신에게 매달리지 않은 것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할 건 다 했다. 몸의 관계라면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여러 번 관계했고 내키면 데이트 비슷한 것도 짧게 해줬다. 심지어 직접 구원자가 되어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제 제안에 모두 따라오면서도 자신의 손만은 잡지 않았다.

내장이 갈라지고 비집어지며 뼈가 끊어지기 시작한다. 입에서 흐르는 피는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여자는 이렇게 고통스럽게 가지는 않았겠지- 고죠 사토루는 상상했다. 트럭이 달려오고 여자는 피하지 않는다.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소용없는 거리. 트럭과 부딪히며 여자의 몸은 허공으로 제법 높이 떠올랐다가 아스팔트에 부딪혀 몇 번 구른 뒤 멈추었을 것이다. 즉사했다고 했으니 고통을 받아보았자 몇 초.

그럼에도 고죠 사토루는 그 몇 초가 굉장히 신경 쓰였다. 그는 궁금했다. 무슨 생각으로 과음을 하고, 무슨 생각으로 횡단보도를 걸었으며, 얼마나 고통을 느끼고 갔을지. 그리고 그게 왜 신경이 쓰이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의문에 고죠 사토루는 차라리 고통에 집중하고 싶었다. 잘 되지는 않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한 즈음에야 고죠 사토루는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하던 사실을 알아챘다. 자신의 즐거운 장난은, 그 여자의 허용 하에 이루어졌던 셈이라는 걸.

자신이 어떻게 거절할 지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그 여자가 그만큼 저를 사랑한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두 눈으로 한 점의 거짓 없이 사랑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도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죠 사토루는 깨달았다. 이전에 만난 숱한 여자들 중에서 사와지마 히토미 만큼의 눈빛을 발한 사람은 없었다는 걸.

그럼에도 사와지마 히토미는 홀로 죽었다.

그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넌 왜 죽은 거야?

마지막으로 내뱉는 숨결 사이로 의문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사와지마 히토미는 고죠 사토루의 유일한 의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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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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