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떠나감

청게

윤정한은 언제나 당장이라도 떠날 사람처럼 굴었다.

어쩌면 그런 면모가 더욱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만있어도 쉬이 호감을 살 외모에,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와 때때로 짓궂은 구석이 그가 퍽 가깝게 느껴지도록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낯설고 불안한 분위기가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대개 잡히지 않을 것들에 더 집착하곤 하니까. 요란하고 엉망으로 끝난 그의 짧은 연애를 또 한 번 목격하고서 나는 그러한 감상을 남겼다.

그랬더니 윤정한은 이렇게 말했다. 지수야, 나는 남겨지기 싫어서 떠나는 거야. 그러니까 사실 먼저 떠나는 쪽은 내가 아니야.

수많은 말들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그 중 내가 고른 건 이 질문이었다.

"그러면 너는 나도 떠날 거야?"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툭 던지듯 대답했다.

"그래야지."

남들에게는 가차 없이 잔인한 말이었겠지만, 나는 오히려 기쁘게 웃었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두 입술이 맞닿을 때까지. 나는 윤정한이 그런 애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미국에서 왔다는 낯선 전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모여드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그 중 윤정한은 유별나게 눈에 띄었다. 반쯤은 그 생글거리는 얼굴 때문이었지만, 반쯤은 흠 잡을 곳 없이 친절하면서도 결코 나를 내켜하지 않는 듯한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한평생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여 애매한 삶을 살아왔던 나로서는 기민하게 포착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몇 번이나 말해도 너 참 영어 잘한다고 적선하듯 말하던 여러 사람들 같은,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덜 노골적이라 순간 스스로가 과민반응을 하는 게 아닐까 염려하게 만드는 눈빛. 난데없이 한국에 와 적응하는 게 쉬우리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경계와 배척보다는 동경과 호기심이 주된 반응이라 조금 마음을 놓으려던 찰나였다. 그 순간 마주했던 윤정한의 눈빛은 내게 어떠한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위선과는 달랐다. 스스로를 좋게 포장하러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꾸며내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정함을 겹겹이 두른 채 내게 결코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궁금해졌다.

윤정한이 나에게만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그 애는 박애가 천성인 것처럼 굴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여린 진심은 건네주지 않으려 늘 홀로 애쓰고 있었다. 간절하게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있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기에 억지로 외면하려 드는, 어설프게 철든 아이처럼. 알면 알수록 종잡을 수 없는 애였다. 다른 사람은 세심히 살피지만 자기 자신에겐 그러지 않아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고, 거짓말과 장난을 달고 살면서도 끊임없이 눈치를 살피고, 의욕적으로 하고픈 것도 보고픈 것도 많은 듯하지만 금방 지쳐 가만히 널브러져 있고. 그런 복잡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윤정한을 이상한 애라고 웃으며 일컫곤 했지만, 정작 그 애의 가장 이상한 부분이 무엇인지는 살피지 못하는 듯했다.

물론 내가 윤정한을 살피는 만큼. 윤정한도 나를 살폈다. 그를 향한 호기심과 오기가 없었더라도 우리는 결국 친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와 나는 둘 다 특별히 모난 구석은 없기에 누군가와 부딪히는 일 자체가 드문 성격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서로 희한하리만치 잘 맞는다는 사실을 금세 체감했다. 한 학기가 지나고 학년이 바뀔 즈음, 윤정한의 소재가 궁금할 때면 으레 모두들 내게 와서 물을 정도로 우리는 자타공인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윤정한의 모든 걸 속속들이 알 정도는 못 되었다. 다만, '홍지수마저 모른다면 아무도 모른다' 정도까지는 도달했을 뿐.

그 즈음 나는 반년간의 궁금증 중 하나를 해소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왜 너는 누구에게도 미련을 가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구는지 물었을 때, 그는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상 그랬듯 대충 대답을 모면하지 않고, 웬일로 진심 어린 대답을 빚어냈던 것이다.

"너무 많이 좋아하면, 헤어질 때 힘들잖아."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좋아한다'에 어떻게 '너무 많이'가 있을 수 있어?"

"왜 안 돼?"

도리어 그가 되물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모순을 설명하려 애썼다.

"많이 좋아하면 많이 힘든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조금 좋아해도 그거대로 조금 힘든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 아예 좋아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너는 그럴 사람은 아닌걸."

"아, 그렇지."

윤정한은 긍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반박했다.

"근데 난 많이 힘들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적당히 좋아하고 싶어."

그리고는 나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수야, 우리 내년에는 다른 반 할까?"

"왜?"

"너는 미국으로 가 버릴 거잖아."

그 말은 꼭 '너를 적당히 좋아하고 싶어'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은 재차 '너를 꽤 좋아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두 눈이 휘도록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마도 윤정한에게는 그것이 떠나버린다는 확언의 대답으로 비추어졌으리라는 생각은 아주 나중에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선택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었고, 우리는 다시 한번 같은 반이 되었다. 윤정한도 나도 주위에 사람이 많은 편이었으나, 이미 우리 둘이 친하다는 소문은 전교에 퍼져 있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다른 친구들과 미묘한 격차가 생긴 듯했다. 여러 아이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단체 활동을 함께 하다가도, 밥을 먹고 단 둘이 짝이 되고 하굣길을 나란히 걷는 등의 일들에 있어서는 모두가 으레 윤정한은 홍지수와, 홍지수는 윤정한과 함께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남들 앞에서 윤정한과 유별난 친분을 드러낸 적은 없었는데. 애초부터 그런 게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지 당사자인 나도 모르겠고. 문득 의문이 생겨 물었다.

"정한아, 혹시 네가 소문내고 다녔어?"

"뭘?"

"우리 엄청 친하다고."

"진짜? 우리 친하대?"

그러면서 소리내어 웃는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때문에 나는 재차 물었다.

"왜 굳이 그런 소문을 낸 거야?"

불필요한 일이었다. 남들 눈에 우리는 이미 충분히 친한 사이로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윤정한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난 소문 같은 거 낸 적 없는데?"

그리고는 덧붙인다.

"그냥, 네가 나한테 관심 있는 게 티 났던 거 아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곳으로 돌아간 그의 시선이 내 눈치를 살피러 다시금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주저 없이 미소 지었다. 사실 그 애의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리 윤정한의 마음속으로 파고들고 싶어 했는지. 네가 말해주고서야 알았다. 그럼, 나도 네가 모르던 사실을 알려줄게.

"글쎄, 내가 듣기로는 너도 나한테 관심 있다던데."

그 말에 윤정한의 얼굴에 걸려 있던 웃음기가 스르르 밀려 나갔다. 그 애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서 나를 길게 바라보았고, 나는 그러는 내내 살며시 웃고 있었다. 윤정한이 고개를 기울여 내게 입 맞출 때까지도.

사귀자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어깨와 허리를 감싸 안고 때때로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우리가 대체 어떤 사이인지, 내가 너를 나의 애인으로 생각해도 되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금방 그런 건 물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윤정한은 언제나 많은 이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산뜻하기만 하던 그 애정이 조금 더 깊고 질척하게 달라붙는 건 오로지 나를 볼 때 뿐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대신 내가 묻고 싶어진 건 다른 것들이었다. 너는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전히 나를 '많이 힘들지는 않을 정도'만큼만 좋아하는지. 하지만 그렇게 묻는다 한들, 윤정한은 '조슈지 엄청 좋아하지~' 따위의 말로 장난처럼 넘기려 들 테니까. 나는 어떤 질문을 해야 윤정한이 여전히 숨기려 드는 그 마음속을 엿볼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 곁에 사람이 없는 법이 없는 윤정한은 몇 번의 연애를 거쳤다. 여자 친구를 사귀는 동안에도 나와 웃고 손 잡고 껴안고 입 맞추면서. 결국에는 죄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차이면서 끝났지만. 어쩌면 내가 먼저 사귀자고 이야기했다면, 윤정한은 다른 수많은 여자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두 번 생각지 않고 흔쾌히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그러지 않았다. 윤정한이 적절한 농도의 애정을 주다가 아프지 않게 보내준 사람들은 많고 많았지만, 가끔 불안함이 섞인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윤정한이 제 입으로 나를 떠나리라 다짐했을 때, 그것은 그 어떤 말보다도 달콤한 고백으로 들렸다. 나는 너를 너무 좋아해 버려서 네가 날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정한아, 나는 널 떠나지 않을 건데.

다시 한 번 학년이 바뀌었을 때, 윤정한의 바람은 뒤늦게 이루어져 우리는 서로 다른 반이 되었다. 그래봤자 나란히 붙어 있는 바로 옆 교실이라, 윤정한은 줄기차게 우리 반을 들락날락거렸다. 가끔은 자기네 반 애들보다 우리 반 아이들과 더 친숙해 보였고, 수능이 다가오며 수업 대신 자습을 행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아예 은근슬쩍 수업 시간에도 넘어와 있고는 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딱 한 번, 새 학년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밤에 했었다. 윤정한은 내가 내년부터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리라 믿고 있었고, 실제로도 본래의 계획은 그랬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윤정한은 절대로 나를 붙잡으려 들지 않을 테니까.

"정한아, 너는 미국 대학에는 관심 없지?"

"왜? 지수 나랑 같은 대학 다니고 싶어?"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곧이곧대로 애정을 표현할 때마다 기쁘게 안도하는 윤정한이 좋았다. 정작 윤정한은 발을 뺄 생각만 가득이었다 해도.

"그래도, 지금부터 준비하긴 힘들지 않을까?"

예상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과 적극적인 교류 활동이 있는 곳을 선택해 교환 학생으로 돌아와도 된다. 아니면 아예 한국 대학으로 진학해도 좋았다. 부모님과 의논은 필요하겠지만, 꾸준히 설득한다면 종래에는 수긍하실 것을 안다. 여러 대안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는데, 윤정한이 갑작스레 말했다.

"지수야, 난 올해가 마지막이어도 괜찮아."

"왜?"

나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정말로 괜찮아? 너는 더 이상 내가 떠나도 괜찮지 않잖아. 윤정한이 대답한다.

"언젠가 떠날 거면 이를수록 좋잖아."

"정한아, 너 진짜 바보야?"

윤정한은 대답 없이 웃기만 한다. 알고 있다. 윤정한은 애정을 주고받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관계가 끝나는 순간을 견디기 싫어하고, 그러니까 자기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떠안으려 벽을 세우고, 하지만 홍지수에게는 끝내 그러지 못해서 차라리 빨리 떠나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이 모순덩어리. 사람 속도 모르고 그러는 게 못돼서 나는 더 말하지 않고 눈살만 찌푸렸다.

우습게도 윤정한은 그 뒤로부터 더 서슴없이 달라붙었다. 끝이 정해져 있으니 후회 없이 지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었겠지. 처음엔 그게 또 괘씸해서, 나중에는 그냥 그러는 게 좋아서 나는 입시가 끝날 때까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수시 면접을 보느라 학교를 빠지고 합격 통지서를 받은 뒤 농땡이를 피울 때에도, '홍지수 미국 대학 붙었대'라는 소문이 도는 걸 알면서도 무시했다. 남들 문제 푸는 사이 태평하게 비즈나 꿰고 있는 나를 윤정한이 때때로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듯한 눈빛으로 흘끔이는 게 좋아서.

수능을 끝마치고 그날 밤늦게, 윤정한이 집 앞으로 찾아왔다. 어쩐지 그럴 것만 같아서 나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급히 종이 한 장을 챙겨 들고 오래 기다린 마주함을 위해 달려 나갔다.

"지수야."

나는 대뜸 들고나온 종이를 내밀어 그의 말을 막았다. 이미 진작에 받았던 수시 합격 통지서였다. 미국이 아닌, 한국의.

"정한아, 나는 너랑 있을 거야."

윤정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새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그의 손을 붙든다.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나는 널 떠나지 않을 거야."

"홍지수."

그래, 네가 무얼 걱정하는지 알아.

"그래도 만약 결국 모든 사람은 언젠가 어떻게든 떠나가게 된다면,"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너를 떠나가는 사람이 될게. 그러니까 괜찮아."

윤정한이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는다. 그 두 팔은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아는 체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어깨에 고개를 묻는다. 나는 가만히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남겨지기 싫어 위태로웠던 너를 붙들고 또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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