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른 작별 인사

...너희들도 졸업 축하해.


오늘도 허전하기만 한 체육관. 눈부시게 밝은 조명, 시리게 넓은 공간, 혈향은.. 이제 조금 줄어들었을까. 

한 자리, 한 자리 비어갈 때마다 점점 추워져서, 한 없이 겨울로만 흘러가는 것 같았는데.

이제 곧 봄이 온다는 게, 삿포로에 갈 수 있다는 게, 나 아직도 잘 실감이 안 나.

정말 모두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말야.

그럴 수 없으니까.

그래, 닿지 않을 인사를 남겨볼까.

이조차도 지금만 할 수 있는 인사일지도 모르니까. 

정말 모두가,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이제 이곳을 떠나게 될 테니까. 곁에 없는 이들을 이곳에, 사라질 과거에 남겨두고.

세- 군, 학교에서 다른 둘이랑 잘 지내고 있어?

제일 먼저 다같이 삿포로에 가자고 해줬으면서 말야. 늘 삿포로에 가면, 세- 군이 선생님들 대신 졸업식을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사라져버릴 줄 알았으면 그때, 정말 늦기 전에 다같이 사진 찍어둘 걸 그랬어. 있지, 늘 밝게 이끌어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교실에 있을 땐 진짜 괜찮은 것 같았다? 또 합숙 주최해준 것도 고마웠구. 이렇게 되긴 했지만 초반엔 무진장 즐거웠으니까 말이지- 온 거 전혀 후회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그동안 열심히 해줬으니까 앞으로는 푹 쉬어. 세- 군도 학생회실 들어가려고 하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들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교에서 머리 때린 거 미안했어.

유토, 다른 애들이랑 만난 것 같았는데 괜찮은 거지?

친구가 되고 싶다구 해놓고.. 결국 기회가 많이 없었네. 그때 같이 종이 비행기 접어줬던 거 재밌었는데- 사실 되게 안 어울리는 상황이었다는 거, 나 알고 있었단 말야. 그런데도 같이 어울려줘서 고마웠어. 이름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고마웠구 말야. 이름도 부르게 되었으니까,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어디로 갔을지는 모르지만… 너무 춥지 않은 곳에서 유토도 푹 쉬어. 답답한 데에만 있다가 가버렸잖아. 넓고 편한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하네부카, 밖에서는 잘 자고 있는 거지? 이제 불침번은 필요 없으니까-

처음 좀비가 나왔을 때부터 말야. 하네부카는 무지 침착하고 이성적인 것 같아서, 모두의 버팀목 같다고 생각했단 말야. 그래서 하네부카가 안 돌아오는 상황 같은 거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같이 못 왔다는 소식만 들어서 잘은 모르지만, 역시 하네부카도 모두를 위하다 그렇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무지 다정한 사람이었으니까. 있지, 나 밤마다 안 잘 때 자라고 챙겨주고 다독여줘서 고마웠어. 티도 별로 안 낸 거였는데- 꼭 오빠 생긴 것 같고, 따스해서 괜찮아질 것 같았단 말야. 그러니까 하네부카도, 호텔에 갔던 거니까. 나오지 말구 따뜻한 방에 들어가서 쉬어. 잠도 잘 자구.

나루, 인사가 늦어서 미안해. 그때 두고 오자고 해서.. 미안했어.

드디어 나루한테도 말하는 것 같아. 그때, 같이 데려오자고 고집 부리지도 못하고, 두고 와서 미안하다고.. 그런 말 한 마디 못 해주고 와서 미안해. 나 잘 실감이 안 나서.. 그래서 그랬어. 나, 나루랑 같이 영상 찍었던 것도, 나루가 전용 펭귄 해주겠다고 했던 것도 나 너무 고맙고 좋았단 말야. 고마운 게 너무 많았는데.. 그렇게 두고 와야만 해서 미안해. 그래도-.. 나루도 약속 못 지킨 거니까, 그러니까 나랑 계속 친구 해줘야 해? 그때, 직접 학생회실에 데려다주고 올 걸 하고 후회 많이 했는데. 나루 학생회실에 잘 들어갔어? 거기 소파에서.. 잘 쉬고 있는 거지? 죽었을 거라는 얘기도 들었었는데.. 거기가 어디라도 좋으니까 이제 집에 간 거라구 생각하고 푹 쉬어.. 집에 가고 싶었다구 했잖아.

하야, 찾는 애들은 잘 만나서 묻어줬어? 추운데 삽도 없으면서 말야.

그때 그렇게 말하고 나가버릴 줄 알았으면.. 사라진 곳 가보자고 할 때 그러지 말라고 해버리는 건데 말야. 그랬으면 안 나갔을까… 하야랑 노는 거 재밌었는데. 결국 노래 추천 한 번도 못 해줬네. 꼭 추천해주고 싶었는데 말야- 파란색은 반짝반짝한 여름의 색이니까, 밴드랑 잘 어울린단 말야. 있지, 아마 하야는 유토를 찾으러 간 거겠지. 난 안 나갔지만.. 하야는 진짜 갔으니까. 찾으면 꼭 얘기했던대로 잘 묻어주기야. 다른 나간 애들도 만나게 되면 부탁해도 되려나. 그리고, 추우니까 하야도 너무 밖에 돌아다니지 말구 안전한 곳에 있었으면 좋겠어. 잘 지내야해?

유리에, 말했던대로 좀비가 된 삶은.. 괜찮아?

원했던 만큼 자유롭고 즐거워? 결국 그렇게 되어버린 거면… 차라리 유리에가 바라던 느낌이었으면 좋겠네. 전에, 그러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말야. 간다고 해도 다시 무사히 돌아와줄 줄 알았는데… 또 잊어버렸으려나. 있지, 결국 약속 안 지키기고 좀비가 되어버렸으니까 말야. 전에 말했던대로 말도 잘 하고 이성이 있는 좀비가 되었어? 그럼 꼭 삿포로로 와줘야해. 거기서 다시 만나기로 했잖아. 그러지 못하면… 치즈라도 꼭 만나. 알겠지? 그동안 같이 놀던 거 무지 즐거웠으니까, 유리에도… 어디에 있든지 그 앞이 바랐던 만큼 즐겁길 바라. 유리에가 있는 곳도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네-

누레, 나가기 전에 말했던 거… 지켜줘서 고마워.

애들만 찾아주는 게 아니라 누레도 같이.. 제대로 돌아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야. 그래도… 애들 찾아준 건 고마워. 사실 그것말고도 말이지. 늘 고마웠어. 처음 펭귄 놀이 하던 때에 다른 애들 끌어들이면서 어울려준 것도, 전에 하늘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창문까지 올려준 것도. 그때 누레 덕분에 금반 괜찮아졌던지도 몰라. 늘 답답했는데, 속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거든. 나는 것 같은 느낌도 좋았구. 돌아오면 또 해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말야- 누레가 지금 있는 곳은 하늘 잘 보여? 추우면 안되니까 잘 안 보이는 편이 나으려나… 어쨌든, 어디든.. 누레도 푹 쉬었으면 좋겠어. 이제 챙겨야 하는 사람들도 없으니까, 편하게.

유헤이, 바라던대로 나루… 잘 만났어?

그냥 바람일 뿐이라고, 알겠다고 했으면서 말야- 알겠다고, 살 거라고.. 안경닦이 사러 삿포로에 갈 거라구 했으면서. 가야한다는 말 듣고서 나가버리면 안 갈거라는 뜻으로 밖에 안 보이거든. 시간 내에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으니까. 유헤이도 같이 인사는 해줄게. 야행성 친구 진짜 즐거웠으니까. 사실 밤마다 못 자던 거였는데 말야- 맨날 같이 떠들어줘서 하루도 안 무서웠어. 나한테는 조용해지면 심심할 거라고 해놓고 정작 유헤이가 조용하게 만든 건 괘씸하지만 말이지, 고마웠어. 그러니까 나루 잘 만나서, 수습해주던 인사하던 하고 싶은 거 하고 나면, 너무 늦지 않게 다시 돌아와. 살아갈 거라고 했잖아.

있지, 너희는 소식 못 듣고 갔잖아.

우리는 곧 삿포로에 간다?

내가 늘 하던 바보같은 말들처럼… 진짜 다같이 삿포로에 가게 됐어.

가면 반짝이는 눈밭에서 다같이 사진도 찍고, 다같이 눈놀이도 하고, 다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갈 거야.

그러니까,

진짜 바보같은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거 알지만.

너희도 꼭 언젠가 다시 만나.

다시 반짝반짝해진 안전한 세상에서 말야.

원래 삿포로까지 가는 것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잖아?

그러니까… 혹시 모르잖아.

아주 아주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졸업은 끝이 아니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전부, 졸업 축하해.

언제나 별님만큼 반짝였던 소중한 친구들에게,

조금 이른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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