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

캐해ㄱㄱ

Hotel California by gi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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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생략해서 급발진 부분도 있긴 한데 알잘딱 읽어주셈…ㅎㅎ

전위란 자신의 감정을 당사자가 아닌, 덜 위협적이거나 보다 안전하다 판단한 상대에게 표출하는 신경증적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마르스가 지팡이를 부러트린 순간, 나는 첫 번째로 내 분노가 비화(飛火)가 되었음을, 두 번째로 무언가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물러설 수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나는 살아남은 자의 자식인 동시에 살아남은 자이다. 또한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이웃이자, 친우이기도 하다.

 

그래, 나에겐⋯⋯ 그들의 복수를 대신할 책임이있다.

 

그러니 볼품없이 떨리는 손끝은 다른 손으로 가리고, 두려움은 방자함으로 가장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뻔뻔한 어조로 입을 열면 된다. 내가 늘 그래왔듯이.

 

“평소에는 한 번을 안 져줬으면서, 내가 조금 투정 부렸다고 손수 지팡이까지 부러트려 준 거야? 다정하기도 해라.”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속이 울렁거리다 못해 아려온다. 대체 왜? 나는 그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요구했을 뿐인데.

신 걸 먹으면 이 원인 모를 거슬림이 해소될까 싶어 돌려받은 레몬 사탕을 입에 넣고 몇 번이고 굴려보지만, 그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포장지는 레몬 사탕이 맞는데 왜 이러는 거지. 설마⋯ █████ 걸까.

⋯⋯

아니. 그럴 리 없다. 나는 그저 긴장했을 뿐이고, 긴장한 탓에 일시적으로 미각이 둔해진 것뿐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뭐어, 아무래도 좋아. 고통은 잠시지만 책임의 증명은 영원히 너와 함께할 테니까.”

 

심호흡하듯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지팡이 끝으로 마르스의 팔을 겨눴다.

 

“인센디오.”

 

그리 말함과 동시에 마르스의 팔이 화염에 휩싸였다. 

그날 맡았던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 그 냄새는 살이 타는 냄새였구나.

 

그 일을 떠올림과 동시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이명이 들려오고, 어디론가 밑도 끝도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니, 사실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떨려온다. 어쩌면 이것도 아니고, 스스로의 몸을 통제할 힘도, 의지도 잃은 채 무력하게 주저앉은 거일 수도 있다.

뭐,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원초적 공포에 온몸이 지배당했다는 거다.

 

“아, 아아⋯ 마르스⋯ 마르스⋯!!”

 

마르스는 지팡이가 없어 스스로 불을 끄지 못한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마무리도 내가 지어야 한다.

하지만⋯ 하지만⋯! 지팡이가 어디 있는지 못 찾겠다. 방금 떨어트렸으니 분명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아니,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찾는다 해도 내가 불을 끌 수 있을까? 지팡이를 제대로 쥘 수나 있을까? 불을 끈다 했다 괜히 더 다치게 하면 어떡하지?!

 

서서히 온몸이 저려오더니 경련으로 이어지고, 기어코 호흡마저 가빠진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새도 없이 시야가 흐려진다. 결국 암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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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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