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의 不請客

해를 가린 광신도, 백이무기 정치인 (ncp)

맢42 연성 by 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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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맢닉 아포광님과 갠역 중인 소재 쫌쫌따리 잇습니다. 해가광은 고대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 기준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전투 중심으로 진행될 것 같으니 소재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갠역 진행 중이라 갑자기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ㅡ'가 있으면 시점이 바뀌는 선입니다.)

간만에 주어진 여유시간에 한가로이 신전에 공물로 바쳐진 가축의 머리뼈를 기웃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하필 바쳐도 뼈라니...죽음을 관장하는 신은 참...여전히 시시한 공물에 혀를 끌끌 차며 협탁 위에 걸터앉은 찰나,제 앞으로 걸어오는 네 인기척 느끼고는 시선 천천히 네 쪽으로 돌린다.불청객의 방문이 영 기껍지는 않은 듯 잔뜩 인상 구긴 채로.

" ...이 시간에 누구냐. 인간의 기척은 아닌 것 같은데... "

죽음의 냄새. 익숙한 냄새가 네 공간에 일렁였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비린내겠지. 물비린내 같은 것이, 그 특유의 죽음의 냄새와 섞여 너의 신전에 퍼져갔다.

" 네놈이 그걸 물을 처지더냐? 가만 보니, 네놈은 신인 모양이구나. 무엇의 신인가. 그래, 죽음이더냐? "

" 하,여긴 공공연하게도 내 공간이다. 내 신전이라는 뜻이지...그런데 감히 겁도 없이 처지를 물어? 간이 배 밖으로 나온게 분명하군! "

어이없다는 듯 작게 코웃음 치다가...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이내 네 옆에 다다르자,네 옷깃 콱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긴 후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 난 다른 신을 싫어해,특히 그게 초면에 언질도 없이 내 휴식시간을 방해한 불청객이라면 더더욱 싫어하지. 그러니 군말말고 용건을 밝히거라. 내 인내심은 그리 좋지 못해···. "

" 어딜 감히 짐의 옥체에 손을 대느냐. "

네 손 제 옷깃에서 탁, 밀어 치우고는 너 노려보며 대답한다.

" 네놈은 죽음이군. 역시, 이딴 냄새는 알아보기가 쉬워. 네놈의 백성들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시들어갈지. "

네게 풋, 하고 웃음짓고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 ...네 놈은 세계의 순리를 모르느냐? 삶이란 것이 있다면 죽음이란 것이 마땅히 따라붙는 것이고, 자신의 삶을 다 산 인간에겐 영혼의 심판이 필요한 법이지. 그런 간단한 것도 모르면서 내 일을 그저 부패하는 것으로 치부하다니···. 역시, 넌 불청객이였구나. "

눈 치켜떠 너 가만 노려보다가...제게서 멀어지는 너 보고는 순식간에 네게 다가가 너 엎어친다.


" 혹 내게 볼일이라도 있을까 하여 이야기라도 들어줄까 하였는데...그런 자비는 네게 불필요했군. 그래서...한 판 붙자고? "

" ..쯧. 어이가 없군. 짐의 백성들은 네놈처럼 쉽게 바스러지지 않는다네. 네놈의 그 백성, 즉 망자들이란, 결국은 해골바가지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

하하, 네 말에 소매 들어 제 입 가리며 웃었다. 풍겨오는 기분나쁜 물비린내가 여전히 네 공간에 맴돌았다.
네가 저를 엎어치자, 허, 하고는 어이 없다는 듯 숨 턱 내뱉는다.

" ..짐을 이리 농락한 죄는 어떻게 갚을 것이냐? 오냐, 짐이 친히 네놈과 어울려주지. "

제 손 들어서는 네 멱살 잡아 옆쪽으로 끌어내렸다.

" 유난도 유분수지. 네 잘난 백성들도 전부 지리멸렬에 불과함을...우매하긴. 결국엔 똑같은 인간이다,그들이 장수한다고 해봤자 고작 100년을 살까말까 하는데...우리에게 100년은 찰나지 않느냐?네 말만 들으면 네놈들 쪽 인간은 불로장생인줄 알겠어. 그래? "

네 말이 우습다는 듯 낮게 비소 섞인 말 내뱉었다. 눈앞의 이가 조금이나마 기분나쁘게 듣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였지만...네가 겨우 인간들 욕에 길길이 날뛸리는 없으니 조용히 미간 찌푸릴 뿐이였다.

" ...하! 네가 신 하나 잘 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은 모양이니...어쩔수 없군. 끝까지 가보자 이건가? "

네 힘에 바닥으로 고꾸라쳐지자... 잠시 수륜 굴리더니 훌쩍 몸 일으킨다.

" 고작 이런 몸 장난 하자고 내게 시비건게 아닐텐테 말이다.... 더 분발해보거라. "

" 그래, 짐에게는 일백년 쯤이야 찰나니라. 또한, 짐의 백성들도 언젠가는 스러지겠지. 허나 네놈의 백성들은 이미 죽은 것들 아니더냐. 망자를 다스리는 네놈보다야 훨 낫지그래. "

네 도발은 웃음으로 넘겼다. 그럴 것이야, 저는 이무기니까. 천 년을 있었지만 신이 되지도 못한 자로써, 그 신들에게 받는 대우는 항상 똑같았기에.

" 네놈이 먼저 짐의 옥체에 손을 대었었지. 남 탓하는 건 네놈같은 신들의 특징이더냐? "

네 멱살을 잡았던 손 툭,툭 털며 일어나서는 말한다.

" ..푸하핫. 설마 이 정도가 끝이겠느냐. 짐은 네놈의 생각보다 더 다재다능하단 사실을 잊지 말게나. "

여타의 그 물비린내에 다른 짙은 기분나쁜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 하하,딱 보아하니 몇 천년밖에 살지 못한 햇병아리 신이 허세로는 이 근방에서 제일 가겠구나. 그리고 난 망자를 다스리는 신이 아니지.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짐짓 지하세계의 왕이라 단정지으면 곤란하지 않겠어? 나는 백성들에겐 두아트로 가는 길을 열고,검게 문드러진 죄인의 심장을 먹어치우는 심판자다. 그 말인 즉... 전쟁의 신 다음으로 실전에 능하다는 의미지. "

퍽 즐겁다는 듯 입꼬리에 비틀린 웃음이 만연했다. 눈꼬리 살짝 접어 호선 그리더니...몸집만한 낫 집어들고는 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 ..게다가 햇병아리 '신'도 아닌거 같은데...너,섞였구나. 이 쪽에도 그런 존재가 있지. 반쪽 주제에 꽤나 말은 번지르르하구나. 그리고...지금은 반쪽짜리답게 잔재주나 부릴 궁리여보이고. "

" 심판자라... 어쨌던간에 네놈은 죽음의 하수인이 아니더냐. 망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네놈도 이미 그 깊고 깊은 죽음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리라. 이런즉, 네놈을 죽음으로 보는 것이 틀릴 이유가 있겠느냐? 시답잖게, 어차피 하수인인즉. "

네 행동 뚫어져라 보다, 탁. 하며 네 행동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제 두루마기 가다듬었다. 그러다, 네 말에 한순간 말문 막힌 듯 허, 하는 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네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간다.

" ..감히 네 놈이 짐의 혈통을 의심하느냐? 그래,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 허나, 짐은 네놈처럼 태어나자마자 그리 오만하고 당돌한 신이었던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짐의 사람들을 챙기고, 이리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

사악. 공기가 낮게 깔렸다. 짙은 푸른빛의 안개가 제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까전의 기분 나쁜 냄새였다.


" 난 죽음과 가장 근접하지만, 그렇다고 그 수렁에 망자와 함께 빠져버린 것은 아니지. 어찌도 이리 편협할까···. 역시 반쪽은 다르군. "

네 말도 슬슬 질린다는 듯 눈 살짝 까뒤집어 어깨 으쓱거리다가...큰 낫 네 쪽으로 한 번 휘둘러 네 몸 베어내려 했다.

" 네 꼴을 보아하니 미물이 몇천 년을 묵어 신 언저리까지 꾸역꾸역 올라온 듯 보이는데…. 이쪽은 이 세계가 태어난 후 이 땅의 인간이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태어났느니라.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내게는 네 오만이 그저 우스운 어린애 장난질로 보인다는 뜻이지...하지만,버릇 없는 어린애는 제대로 교육해두지 않으면 계속 기어오르니...이 몸이 직접 나서야겠지. "

" 네놈이 어떤 삶을 살았던 간에, 네놈에게서 나오는 그 역한 죽음의 내는 숨길 수 없는 것이네. 네놈은 어차피 죽음에게 묶인 것. 짐은 적어도 네놈보다는 자유 의지가 있다네. 또한, 이리 먼저 움직이는 것도 네놈의 성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지 않으랴. "

네 낫이 공기를 가르자마자 휙, 몸을 굽혀 피해낸다. 검푸른 안개가 곧 네 신전의 바닥을 맴돌기 시작하여 물이 차오르듯 점점 공간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 ..짐은 이제 미물 따위가 아니지 않느냐. 네놈이 그리 짐의 과거 따위를 운운하며 말싸움 할 이유도 없고 말이지. 그저, 짐을 도발하여 네놈에게 유리한 수를 내게 하기 위해서 아니더냐? 그리 쉽게 간파당할 만한 수는 던져보지조차 말지 그랬나. "

네가 안개 속에서 숨을 쉴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지리라. 인간에게는 이미 치사량을 넘었다. 허나, 너는 제 처지와 달리 진짜 신이니까.


" ...주변 환경을 보아하니 네 놈이 이상한 술수를 썼군...하지만 이 몸은 죽어있지도 살아있지도 못하는 몸. 너와 같이 이 땅에 두 발로 서있지만 삶을 받지 못했다. 하여,내겐 호흡따위 무의미한 것이지. 호흡은 삶을 부여받은 자에게만 있는 특권이거든... "

검푸른 안개 속에 금빛 눈동자가 형형히 빛난다.가소롭다는 듯 느릿히 너 탐색하는 몸짓으로 천천히 걸음 옮기다가...네 말에 입꼬리 비죽 올려 웃어보나.

" 내가 너를 약올릴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 그런 비겁한 수 쓰지 않아도 쉬이 이길수 있거늘...어디, 잔재주는 더 없는게냐? "

" 그래, 그랬더냐. 꼬라지가 말이 아니군.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한 것은 참. 그들이 들었다면 아마 가엾다 했겠지. 허나 짐이 네놈 따위의 안위에 신경조차 쓸 것 같더냐? 네놈은 그저 그 오만방자한 것들과 같은 족속일 뿐 아니냐. "

안개에 가려 잘은 보이지 않겠지만 제 미간 찌푸리고는 네 말에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필시 호흡을 통해서는 먹히지 않을 테다. 남은 건, 피부. 그리고.. 직접 상처를 내는 법. 피부는 흡수가 느리다. 그리고, 저 자가 그것까지 차단할 수 있는지 어찌 알겠나?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라.

" ..그렇다면 짐의 과거를 일부러 꺼내올 이유가 무엇이 있겠느냐? 저급한 도발일 뿐이리라. "

제 수륜 데굴, 굴렸다. 제가 만든 것이기에, 그리고 저는 이미 익숙하기에 네 금빛 수륜 따라 네 윤곽선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다 일순, 네게 소리 없이 다가와서는 제 발톱 들어 네 어깨 내리치려 한다.


" 네게 연민을 다 받고…. 별일이구나. 괜찮다, 삶이 없다는 것은 즉 불멸이란 것이니. 그저 이리 전지전능한 몸뚱이를 하사받았음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느냐? "

눈 가늘게 떠 너 내려다보다가 소리 내 낮게 웃었다. 오만방자하다라…. 오호라, 저놈이 말하는 오만방자한 자들은 필시 그쪽의 신들일 테지? 옳다구나, 신들에게 자격지심이라도 있나 보구나. 그래서 날 보자마자 이리 달려든 건가...가만 서서 입맛 다셔대다가...다시 네 쪽으로 시선 고정한다.

" 도발이라니, 이 몸을 저속한 피라미 취급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허나...잔재주는 이제 더이상 없는 것이냐? 그렇다면 슬슬 끝내도 괜찮겠지. "

여유로운 태도로 기지개 쭉 피다가...이내 제 어깨를 긁고 지나가는 네 발톱에 흠칫 몸 움츠린다...상처에서 새카만 피 줄줄 쏟아져내리나...

" ...이런, 궁지에 몰리니 발톱을 드러내는군. "

" 짐은 네놈같은 족속들에게 연민따위 하지 않는다 말하였다. 귀가 있어도 제대로 듣지 못하니, 어찌 필요하겠느냐? 마이동풍이로군. "

네 태도가 거슬린다는 듯 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저는 열등감 따위 느끼지 않았다. 허나, 천 년이나, 이제는 묵을 만큼 묵은 영물을 신의 계열에 끼워주지 않는 저 치들에게 이골이 났을 뿐이다. 그래서 그것들 중 하나가 관장하던 - 그 소속의 - 강에 장난질을 쳐봤을 뿐이리라.

" 그럼 도발이 아니라면 무엇이더냐. 입이 뚫려 있다면 변명이라도 해보거라.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면 네놈의 그 입을 막아줄 테니. "

검은 피. 제 수륜 기가 차다는 듯 데굴, 굴렸다. 그러나 딱히 내색은 하지 않는다. 보다 인간의 모습이 짙은 반대쪽 손으로 두루마기 끌어올리고는 제 미간 짚었다.

" ..네놈이 호흡이 없다 하여 짐이 방법을 찾지 못할 줄 알았더냐. 네놈에게 피해를 입힐 방법은 많지. "


" 하,겨우 긁힌거 가지고 금새 우쭐해하기는...허나 칭찬해주마,감히 내 육체에 상처를 입힌 놈은 네가 몇백년 만이거든. "

제 몸에서 흐른 피가 기화 되어 사라졌다. 이윽고 점점 몸이 불투명해지더니...안개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 이 몸에겐 실체란 없다. 다만 편의상 이 땅에 현현하여 있는 것 뿐이지...그런 나를 네 말마따나 어떤 재주가 있어 피해를 입힐 것이냐. "

" ...하! 그 정도 가지고 몇백년까지 될 일이더냐? 네놈의 백성들은 그리도 유약하더냐? 네놈의 권위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더냐? 또는, 네놈에게 도전하는 자도 없더냐? 하하, 참으로 '평화로운' 세상일세. 그리 살다 보면 해이해지기 마련이 아니겠나. "

네가 그리 사라지면, 허. 하고는 어이없다는 듯 턱 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 놈들보다 까다롭구나. 적어도 그들은 이리 사라지지는 않는데. 제 손 들어 앞머리 쓸어넘겼다. 후, 하며 짧은 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신전을 가득 채운 검푸른 안개가 일렁였다.

" 그리 도망이나 가니 네놈이 겁쟁이라는 것 아니겠느냐. 직접 마주하려 하지도 않고. "

비늘 돋은 제 팔 내려다보았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으니. 신이 되기에는 한참 멀었지.

" 내 권위에 도전하는 자라, 글쎄. 수도 없이 많았지. 대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라 위협조차 되지 못했지만...이런, 겁쟁이라니...너무하군. 그저 네놈의 보잘것 없는 재주가 몇이나 될까 궁금하여 그렇지. 원래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자신의 잡재주를 더더욱 뽐내지 않나. 본인의 역량부족으로 일어난 힘의 차이를 불공평하다며 겁쟁이로 치부하는 꼴 하고는. "

영 못마땅하단 목소리로 일관하다가...네 성화에 못이겨 결국 형상을 드러냈다.

" 하...좋아,불평도 참...이쯤하면 네가 이길수 있을 것 같더냐. 공평한 것 같아? "

들고 있던 낫 휘리릭 돌려 손장난 치더니...이내 바로 잡고는 눈 치켜뜬다.

" 이래도 못 이길거 같다면 말하거라. 네 놈이 만든 그 연기라도 들이켜줄테니. "

" 수도 없이 많았더라면 네놈의 그 몸을 건드리는 놈도 있었을 것 아니냐. 몇백년 동안 네놈의 백성들도 네놈처럼 겁쟁이였나 보지. 안 그러더냐? 겁쟁이 군주에 겁쟁이 시종들이지, 뭐. "

네가 형상을 드러내자 피식 웃었다. 아아, 이리도 순진한 신이 있던가. 제 말대로 따라주니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제 수륜 데굴, 굴려서는 검푸른 안개 사이 가린 네 쪽에 눈의 초점 맞추었다. 거기 나타났구나. 한쪽 손은 살상력이 없다. 아무래도 신으로 변해가는 중이기 때문이라, 능력도 제대로 생기지조차 못한 제게 공격 수단은 이렇게 근접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리 제 안개가 통하지 않는 이에게는.

" ...오냐. 그래, 고맙다. "

그렇게 네가 말을 이으면, 기분나쁘다는 듯 제 이빨 꽉 물었다.

" 자꾸 네놈 따위가 짐을 능멸하는구나. "

" ...왜, 자존심 상하나? 아직도 밟힐 자존심이 있긴 했구나. "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한 너 보고는 우습다는 듯 폭소 터트린다. 눈꼬리에 찔끔 맺힌 눈물 살짝 닦아내나...

" 아하하, 좋아…. 날 웃겼으니, 네놈의 요술을…. 특별히 마셔주마. 이쯤 되어야 공정한 겨루기가 될 거 같아서. 난 죽지 않고, 네 놈은 죽을 수도 있지 않으냐. "

한 손으로 안개 그러모으더니...그대로 입으로 가져다대어 삼킨다. 눈꺼풀 가만 감은 채로 연기 흡수되는 것 느끼다가...눈 게슴츠레 뜨고는.

" ...자,평소보단 움직임이 둔할게다. 어서 덤비거라. "

" ...그따위로 짐을 봐주는 듯한 언행 하지 말란 말이다, 네놈. 하, 정말이지..어이가 없어서 원. 죽음의 하수인은 그따위란 말이냐. 하수인일 뿐인데도, 오만방자하구나. 네놈도, 결국 그놈들과 똑같은 신일 뿐이었나. "

검푸른 안개가 일렁이며 제 감정에 동요했다. 말투는 처음과 똑같았다. 너를 깔보는 듯한 그 말투. 하지만, 다시금 이빨 까드득, 하며 무는 소리는 진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했다.

" ..정말이지, 신이란 작자들은. 치가 떨려. 그 오만한 태도로 도대체 누굴 이끌 수 있단 말이더냐. "

제 발톱 잠시 가만 보고는, 그대로 네 쪽으로 휘두른다.

" 하수인이라니, 처음 듣는 소리구나. 난 죽음의 신이다, 그저...영혼을 가질 권리가 없을 뿐이지. 두아트의 왕에게 망자들의 혼을 거두어 보내는 일이 어째서 하수인이냐. 이래서 미물이였던 자는 어쩔 도리가 없구나...아무리 이국이라 하더라도,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전혀 몰라. 하아...이젠 너와의 대화도 이골이 나는구나. 이만 끝낼까. "

네 공격 가볍게 낫으로 막더니만, 그대로 네 몸 정중앙 베어낸다.

" ..작은 힘에도 동요하지 않는 용기 있는 자인줄 알았건만. 넌 그저 네 세계에 빠져있구나. 오만방자한 것. "

" ..짐을 그 더러운 입으로 능욕하지 말지어다. 고작 죽음밖에 되지 않는 네놈이, 어찌 감히!..역시, 이래서 처음부터 신이었던 놈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 제 잇속만 챙기느라, 실질적인 건 신경도 쓰지 않는구나. 겉치레만 번지르르할 뿐, 실상은 가치관을 상실한 채 텅 비어버린 껍데기가 아니더냐. "

제 공격 막히자 허, 하며 얼척 없다는 듯 한숨 내쉬었다. 그리고 바로 반격을 대비하긴 했는지 뒤로 물러나지만, 애초에 어느 정도 날붙이인 낫의 베임을 막기에는 어려웠겠다. 제 가슴팍에 주욱, 하고 핏빛 선 그어지더니, 이내 선혈이 흘러내렸다.

" ..네놈이. 감히, 짐의 옥체에.. 하, 어이가 없어라. 네놈 따위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

안개가 심하게 일렁였다. 사이사이로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는데도, 네 위치로 다시 한번 제 발톱 휘둘렀다.

" 이런,아직도 본인 처지를 모르나보군...안타깝게도 말이다. "

네 상처 뚫어져라 처다보다가...제 쪽으로 휘두른 네 손목 텁 잡는다.

" 기회를 주마,지금이라도 네 자존심을 굽히고 도망친다면...네 노력은 인정해 널 죽이진 않으마. 난 무의미한 살상은 썩 좋아하지 않거든...허나, 내가 자비를 베풀었음에도 네가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면... "

가만 네 심장쪽 툭툭 쳐본다.

" ..네 심장을 저울에 올려야겠다. 뭐,분명 네 심장은 깃털보다 무겁겠지만서도. "

" ..당장 그 더러운 손 짐의 옥체에서 치우거라. "

네게 손목 잡힌 채, 숨 골라 가다듬는다. 잡힌 제 손 보다가는, 당신 노려보며 빠득, 이빨 갈았다. 그렇게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안개가 요동치다 바닥으로 낮게 깔렸다.

" ..하. 지금 네놈 따위가 짐에게, 뭐, 기회를 준다는 것이더냐? 자비를? 어이가 없군. "

쳇, 하며 혀를 차고는 제 수륜 옆으로 굴렸다. 그냥 여기서 콱 죽어버려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테다. 그런데, 그러면 제가 보냈던 천 년의 세월은 허송세월이 되어버리는 격이다. 아직 신조차 되지도 못한 주제에, 아쉬운 듯 쩝 하며 제 입 다셨다.

" ...네놈 할 대로 하거라. "

안개가 잦아들었다. 저는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음을 보인 것이리라.

" ... "

네 자존심을 완전히 꺾지는 못한 듯 싶지만...그래도 이게 어디야.

" 만일 내 변덕이 없었더라면 너는 필시 죽었으리라. 그러니...앞으론 제 목숨 소중히 여기고, 조금 더 수련해서 덤비거라. "

네 손목 놔주더니만...다시 협탁에 걸터앉는다.

" 그래도 살려준 목숨 값이 있으니 다음에 올 땐 빈 손으로 오지 말고 공물이라도 가지고 오도록, 기왕이면 질 좋은 술으로 부탁하마. "

바닥에 낫 두어번 치자 낫의 형체가 일렁거리더니...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벌러덩 위에 누워버리나.

" ..허. "

네 말에 기가 차다는 듯 제 숨 내뱉으나 그것뿐이었다. 다른 행동은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네가 제 손목 놔주면 뻐근하다는 듯 제 손목 빙글 돌린다. 가슴팍에서 흐르는 제 선혈 빤히 보다가 털썩, 하고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 ...네놈이 감히 짐이 수련을 했네 마네, 그런 걸 따지지 말거라. 짐은, 네놈이 말한 그 하찮은..미물 상태로, 천 년을 넘게 지냈었다. 그럼에도 이 꼴이지. "

제 수륜 굴려 아직도 비늘 덮인 제 어깨 쪽 아니꼽다는 듯 쳐다본다. 지금은 돌아갈 때조차 되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이곳에 당도한 것은 아니라지만, 또 난리가 나겠지.

" ..짐이 술 따위를 마실 것 같더냐. 군주란 술 따위에 해이해지지 않아야 한다. "

"...미물에서 시작한것 치고는 꽤나 강하구나. "

협탁 위에 반쯤 거꾸로 매달린 채 너 바라보다가...훌쩍 몸 일으킨다.

" 자랑스러워 하거라, 0에서 이정도까지 가꾼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우리 나라에선 그런 선례가 없었지... "

조금 건방진 것만 빼면 참 휼륭한 사례인데...입맛 쩝 다시다가 다시 네 쪽 본다.

" 그래도 괜찮다. 애당초 너와 나누어 마실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지. 내가 마실 것이니 걱정말고 가져오기만 하거라. "

" ..강하면 뭐하나. 짐이 아무리 강해도 쓸모가 없는데. 짐은...하아. 네놈같은 신들. 그놈들은 짐을 싫어하니까 말이야. 오만방자한 것들이, 미물에게서 왔다고 조롱하는 꼴이란. "

물론 필시 그것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그런 것이, 제가 그리도 싫어하는 신들은 아무도 본인을 임금이라 칭하지도, 강을 더럽혀 피해를 입히지도 않았으니까. 오직 제 독단으로 그리 행한 일들 때문에 벌어진 나비효과리라. 하지만, 저는 그런 일 다 수행쯤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 ..하. 어이가 없군. 짐이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데, 어찌 구한단 말이더냐? "

후, 하고 짧은 숨 내뱉었다. 저는 반쪽짜리 신이다. 아니, 신이긴 했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일 뿐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너와는 다르게, 그리고 다른 신들과도 다르게 붉디붉은 피가 흐르고.. 제 스스로 그것을 치료할 수 조차 없다. 적어도 치유의 능력이 있으면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저는 그 정반대, 독이니까. 즉, 이는.. 네가 만든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는 소리기도 했다.

" ...흥,꽤나 쉬운 부탁이라고 생각했는데... "

턱 가만 괴고 앉아서는...입술 삐죽 내민다. 이국의 술을 한번쯤 맛보고 싶었건만...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움만 남는지 통 구긴 표정을 펼 생각이 없어보인다. 쭉 뾰루퉁한 채로 너 내려다보다가...문득 베인 상처 보고는 눈 번뜩 뜬다.

" ...이런, 맞다. 네게는 스스로를 치유할 능력이 없었지. 이리로 와보거라, 간단한 처치는 해줄테니. 다만 이 몸도 기적적으로 그 큰 상처를 낫게 해줄순 없으니 큰 기대는 말고. "

" ..네놈의 백성들에게나 시키게나. 짐은 술꾼들과는 연관이 없어서야. 아는 주점도 없고. 짐의 백성들 중에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은.. 짐이 네놈이 그저 마시고 싶다는 이유로 수고해야겠느냐? "

비늘 돋아있는 쪽의 제 발톱 빤히 보다, 이쪽으로 대고 있으면 오히려 상처가 날 것이라 생각했는지 반대쪽 손으로 제 가슴팍의 상처 꾹 누르기 시작했다. 제 미간 될대로 구기면서. 그러다, 네 말에 제 수륜 굴려댔다.

" ..그걸 지금에서야 알아챘느냐. "

그러면서는 일어나 제 두루마기 훌훌 털고는 네 쪽으로 다가갔다.

" ...난 인간들과는 연이 없어서 말이다. 말을 듣자하니 너는 꽤나 인간과 친밀한 것 같기에... "


끙,하고 앓는 소리 내다가 협탁에 올려진 머리뼈 들어 네게 보여준다.

" 그리고 이걸 보고도 인간들이 내게 술을 바칠 것 같으냐? 죽음의 신이라고 동물 머리나 바치는 놈들한테 내가 뭘 바라겠어... "

한숨 푹 쉬다가,이내 너 보고는 눈 끔뻑인다...

" 나 참,네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 이제라도 알아챘으니 된 것 아니냐? "

네 상처위에 손 올리더니...살며시 눈 감는다. 그러니 상처부위 검게 변색하더니만,점점 아물어간다...

" 조금 아플게다,이정도는 참을수 있겠지... "

" ..짐이 짐의 백성들과 친한 것 같더냐? 하하...네놈도 꽤나 순진한 구석이 있구나. "

그러다, 제 어깨 으쓱하고는 이어 말했다.

" 그리 믿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

제가 그리 숨겨대던 진실이라면, 저는 제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존재, 즉 그놈의 청룡을 골리려 강에 독을 풀었었고, 그것이 제 백성들을 해쳤다는 것이겠지. 뭐, 저는 죄의식 따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인간은 그저 소모품이거나, 공물을 바치는 대상일 뿐이리라.

" ..하. 역시 죽음이라는 건가. 그러니 짐이 말하지 않았느냐. 네놈은 이미 죽음과 묶일 대로 묶여 버렸다고. "

당신의 말에 조소 섞인 한숨 내뱉고 답하다, 제 상처 위에 올리는 네 손에 미간 살짝 찌푸린다.

" 뭐... 죽기야 하겠나. "

" 뭐,죽을수도 있고. 지금 네 다친 피부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거든. 이래뵈도 죽음의 신인데,이 내가 남 치료하는 재주가 있을리가... "

어깨 살짝 으쓱이다가...반댓손으로 제 이마 짚어보인다. 그 순간 손에서 빛 번쩍이더니...네 상처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한다.

" ...하하하,사실 농이다. 내 생명을 조금 쪼개어 네 죽은 피부에 다시 불어넣으면 그만인 일이거든. 겁 좀 줘봤다. "

" ...허어. "

네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듯 한숨 내쉬었다. 치료해주려면 군말 없이 해줄 것이지, 저리하면 감사 인사조차 못 받을 텐데. 쯧, 하며 제 혀 찼다.

" 농은 칠 만한 때 쳐야지. 네놈이 그리하니 뼉다구 따위나 제물로 오는 것이겠구나. 네놈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야 되는 판에 되도 않는 농으로 초를 치지 않더냐. "

그래도 제 상처 아무는 것 보다 허, 하고는 숨 내쉰다.

" 쳇, 장난 좀 친거 가지고 정색하기는...꽤나 아파보여 도와줬건만...이 배은망덕한 놈이 벌써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잊느냐? 제 목숨 귀한줄 알아야지...흥,이제 세 번은 없다. 한 번만 더 건방지게 굴면 네 놈 심장을 통째로 뽑아버릴줄 알아···. "

작게 으르렁대다가...손 휘휘 저어 이만 물러나라는 듯 한 눈치 준다. 다시 턱 괴고선...

“ 장난을 때를 가리지 않고 하니 말이야. 짐은 그래도 영물이란 모양이라 보통 인간보다는 빨리 나으니 이리 답하는 거라지만, 인간에게 네놈의 은총을 주면서 그리 되도 않는 농을 치면 감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터. 짐이 네놈에게 조언해주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느냐? "

너 빤히..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 있다가, 네 손동작 보고는.

" 어차피 네놈에게 찾아오는 놈들은 없지 않느냐. 짐도 지금 돌아가면 분명 그놈들에게 시린 눈초리 받을 텐데. 잠시 있으면 안 되겠느냐. "

" 허 참,누가 보면 네가 상전인줄 알겠어...그리고,한낱 인간들이 내게 말 한 마디 함부로 꺼낼수 있을 성 싶으냐? 내 이리 거만한 놈은 난생 처음 본다. 그리고 조언은, 네가 해 줄 입장이 아니라 이 내가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 짓다가...네 말에 의아하다는 듯 눈썹 치켜올린다...

" ...? 왜지,여기엔 더이상 볼일도 흥밋거리도 없을텐데. 돌아가는게 더 낫지 않겠느냐. "

" 네놈의 조언은 네놈이 살던 곳처럼 형편없을 거 아니더냐. 뭐, 짐이라도 말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네놈이 해줄 조언이 뭣이 있나? 죽음에게서 살아남는 법? "

너 보면서 핫하, 하고 가벼이 웃었다. 네 협박은 장난 정도로 아나 보다.

" ..그야, 그것들이 짐이 돌아가는 걸 싫어하니 말이야. 딱히 지금 돌아가봤자 좋은 것도 없고. "

" 은근히 본인 잘났다라는 이야기를 무의식 적으로 흘리는군, 그래?... "

순간 짜증이 치밀어 미간 강하게 구기다가...한숨 푹 내쉰다.

" 지금 내 말은 농이 아니다, 지금 이 공간에서 네 발로 나가지 않는다면 분명 험한 꼴을 볼테다. "

" 그야, 짐은 잘난 게 사실이니 말이다. 아닌가? 적어도 다른 놈들보다는 아니겠지만, 인간놈들 보단 낫지. 네놈도 그리 생각하지 않나. 적어도, 인간보단 낫다고. 아니더냐? "

네 말에 하하,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제 타고난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듯이.

" 허어. 이제는 협박까지 하는 것이냐. 권력이 부패했군. "

그러나 네 말 듣는 건지,  일어서서는 제 두루마기 툭툭, 털어낸다.

" 모래가 많군. 지겨워라. "

" 그래서 모래가 없는 곳으로 친히 옮겨주겠다는데, 불만이라도 있느냐? "

한숨 푹 내쉬더니,이내 자리 박차고 일어난다. 곧 네 몸 근처에 검은 안개 드리우더니...네 몸 강하게 옥죈다.

" 우리 대단하신 반인반수 왕께서 이렇게 누추하신 곳에 있으시면 곤란하지. 각자 휴식시간을 즐기자고. "

손짓 휙하고 저 멀리로 향하자....네 몸 신전 밖으로 나가 떨어진다.

" 모래는 저 밖이 더 많지 않나. 쪄죽을 사막보다야 네놈 신전 안이 쾌적하구나. "

그렇게 이어 말하다 네 손짓에 신전 밖으로 내쳐지자 눈 도륵 굴리고는 허, 어이없다는 듯 숨 내쉬었다. 문전은 아니었지만, 박대당했군.

" ..이놈이? 겁을 상실했나, 아니면 신들은 저 오만한 머리통이 비워졌는가. "

신전 쪽 흘긋 보며 제 두루마기에서 다시 모래 털어내며 일어선다. 분명 문은 잠겼을 테고. 그러면 어쩌나, 저도 지금 돌아가면 분명히 그놈들이 싫은 눈치 줄 텐데. 아니, 눈치만이겠는가?

" ..시비를 건 것이 아닌데도. 한 군데라도 내줄 수 없는 저 쪼잔한 마음이란.. “


쯧, 혀를 차곤 네 신전 앞 계단식 입구로 가서는 그대로 거기 펄썩 앉아버린다. 네놈이 안 나오고 배기나 보자, 라는 생각인가?

점점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해가 까무룩 자취를 감춰갈 때 쯤, 신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

" 하암, 오늘은 꽤나 곤폐한 하루였... "

느긋하게 기지개를 펴며 문 밖을 나서던 남자의 표정이 곧 황당으로 가득 찼다. 분명 저가 내쫒은 이가 계단 앞에 쭉 죽치고 있었으니...이를 황당하다라고 밖에 칭할수 없는 노릇이였다.

" ...뭐....하나? "

신전 문 여는 소리 들리자마자 제 머리 돌려서는 네 쪽 가만히 바라보았다.

" 이리 늦게도 나오는가. 그 답답한 곳에서 무어 할 일이 있다고? 방문하는 네놈의 백성들도 없는 듯 하더만. "

황당해 보이는 네 표정에 피식, 하고는 웃으며 대꾸하다가 슬 일어섰다. 꽤나 당황하신 모양이로군? 무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 뭐 하긴? 느리작대는 네놈 기다렸건만. "

농조로 네 말에 제 말 덧대었다.

너 어이없다는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다, 이내 침착히 네 말에 대꾸한다.

" ...죽음을 우상화하는 미친놈은 이 세상에 몇 안 되니 말이다. 죽음은 선망보다는 두려움, 신전에 기도를 하러 오는 자들도 전부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욕심을, 자신의 죄를 사하고 두아트로 가려는 욕망을 품은 자들이다. 신전이 텅 빈 이유는 오늘은 그런 우매한 것들이 발을 들이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

...대체 뭔 목적으로 이러는 거야? 심기 불편한지 눈썹 꿈틀... 움직인다. 설마 진짜로 여기서 쉬려고 이러는 건 아닐테고...

" ...그러니까, 날 왜 기다리느냐? 얼른 너희 나라로 꺼지지 못해? 훠이훠이. "

네 어이없단 표정 빤히 쳐다보다 하핫, 하고 소리내어 웃는다. 제가 보기에도 제 꼬라지 말이 아닐 테나, 제가 널 이리 기다렸다고 황당해하는 꼴이라니. 그럼, 아무데도 갈 데 없는 이가 어디로 가겠는가? 그나마 말이라도 통하는 놈 쪽에 붙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오호라. 달리 말하자면 네놈은 그 미친놈들의 신이라 말이지. 어허, 농이다. 또 발끈하지 말란 말이야. 그렇게 자꾸 화내면 아무리 신이라도 명줄 줄어들겠군. "

제 어깨 으쓱이고는 너 바라보았다. 네 기분이 점점 나빠보이는데, 그야 제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않나? 어차피 네 생각따위 신경쓰지 않을 터였다.

" 뭘 계속 쫒아내려 하느냐. 짐이 네놈 신전에서도 나가주지 않았더냐? 허, 왜 기다리냐고? 그걸 짐이 네놈에게 알려줄 이유라도 있느냐. "

" ...웃기는 놈,누가보면 이곳이 네 놈 집인줄 알겠어. 본인이 꼬리말아야 할 상황에 이리 당돌하니 내 어찌 당황하지 않고 배기겠느냐. "

수륜 데록 굴려 주변 이리저리 둘러보다 너 내려다본다. 그리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 옴싹거리더니만...이내 꾹 다물어버리고.

" ...하, 그리고 네가 제 발로 나간게 아니라,내가 쫒아낸거지. 자기가 제발로 나가준 것마냥 말하지 말거라. "

어쩌다가 이런게 붙어서는...완전히 재수 옴붙었군. ···골치 아픈 놈.

" ...내가 계속 봐주니 만만하게 보이기라도 하나? "

" 짐이 네놈 신전에 다시 들어간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네놈이 '쫒아낸' 대로 움직여줬건만. 차라리 당당히 들어가고 나서 그 소릴 들을 걸 그랬지 않느냐. "

네 말에 저도 어이없다는 듯 제 수륜 위쪽으로 한 바퀴 도륵, 굴렸다. 그러다 너 보며 예의 그 비릿한 미소와 함께 제 말 이어갔으리라.

" ..네놈은 만만하지 않더냐? 왜, 죽음 그 자체도 아니고 죽음의 하수인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

물론 신도 되지 못한 제가 할 말은 아니었다만, 별 수 있는가? 제 오만함 주체할 수 없었으니.

" 워, 또 욱하지 말고. 날씨가 이리도 서늘한데 안 맞게 화내서야 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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