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영영인] 일방향 데이트

darling by 달링

무간도 양금영×진영인

비가 온다더니 구름은 눈치라도 살피는 듯 싹 사라지고 화창하기만 하다.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어제의 일기예보 대신 민망해질 지경이다. 구름이 별 모양이든 강아지 모양이든 양금영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서, 어느 영화에 나온 것처럼 반듯한 옷차림에 머리도 한 번 더 단정하게 다듬는다. 인물도 좋고 키도 훤칠하고 이 동네 사는 거면 수상하고 흉악한 인물은 아니니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어디 좋은 일 있으신가, 중요한 약속이 있나 보다 짐작한다. 거울 속에서 마주 보고 있는 그의 입술은 곧은 일자를 그리고 눈빛은 또랑또랑하다. 편면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웃들의 몽글몽글한 추측은 어느 정도 정답이었다.

그의 차가 몇 분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어느 병원의 주차장이다. 많은 의료진과 많은 환자와 많은 차와 나무와 아스팔트 틈새의 잡초와 화단에서 햇살을 폭식 중인 화초와 먼지와 공기와 벌레와 소음과 울음과 웃음이 있는 만큼 주차 공간도 아주 넓다. 금영이 차에서 내린 순간 주차장은 넓은 모래 운동장에 박아둔 쇠 말뚝 같다.

너무 넓어서 여기에 몇 번 온 적 있는 사람도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 헤맬 것 같지만, 금영은 0.000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진한 선을 그린다. 얼굴이 익은 간호사 몇 명이 눈 인사를 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바쁜 공기 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금붕어들은 서로 건조하게 스쳐 지나간다. 구두 소리가 멈춘 곳은 병원 입구에서 안쪽으로 몇 분 걸어가야 나오는 1인 병실이다. 문 옆에는 진영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기쁘게 직면할 사실이고 진실이 있다.

“나 왔어요. 당신은 잘 있었나요?”

산소마스크를 쓴 얼굴에는 혈색이 돌지만 여전히 매마르다. 이곳에 오기까지 단 하나의 망설임도 없던 금영은 그의 심장 박동을 알려주는 기계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 오래전 내부에 기어들어온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 그는 불신과 배신과 탄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 탓이다. 몇 발의 탄환과 함께 의식을 잃은 영인은 그 뒤로 쭉 누워서 지내야 했다. 까끌한 뺨에 닿는 손끝은 통나무가 아닌 실 하나로 만들어진 다리 위를 걷는 이의 다리보다 더 심하게 떨린다. 겨우 닿고서야 안정을 찾는다. 당신은 오늘도 살아있군요. 여기가 카페였으면 도장 찍는 쿠폰을 한 박스는 채웠을 것이다. 그만큼 금영은 아주 자주 방문했다. 그는 현직 경찰이었기에 바쁜 날들이 대부분이고, 오늘처럼 앞머리까지 신경 써서 단장하는 날은 드물었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평범한 날이고, 양금영은 진영인을 보러 왔을 뿐이다.

원래부터 말수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키가 커지고 목소리가 굵어지고 시간이 흐르며 그의 입은 침묵을 더 두껍게 둘렀다. 호스와 기계에 둘러싸인 진영인의 침대 옆에 접이식 의자를 끌고 와서 앉는다. 시선을 맞추고 싶어서 허리를 숙이고 등을 구부린다. 영인의 눈꺼풀은 열리지 않았다. 어서 당신이 깨어나서 나에게 아무 트집이라도 잡아줬으면 좋겠다.

“혹시 내가 너무 자주 온다고 싫은 건 아니죠?”

있지도 않은 시계 초침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나는 언제고 올 거예요. 당신도 나를 기다려준다면…굉장히 기쁠 것 같아요.”

시계는 쿵 쿵 바닥을 울리고 천장을 울리고 금영의 맥박도 두드린다. 둘만의 시간은 한참 동안 세상에 흘렀다. 정기적인 진찰을 위해 의료진 몇 명이 들어오고 나서야 아무것도 아닌 날의 데이트는 종료된다. 가볍고 딱딱한 목례를 주고받은 금영은 쓸쓸히 병실을 나서고 복도를 건너 주차장으로 돌아간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