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멜 AU
LOH 2차 창작 / 2024년 작
지인 선물, 로드오브히어로즈 조슈아 드림, 개인 AU 오마카세
낡은 기차가 황량한 대지를 가로질러 덜컹거리며 달렸다. 멜시샤 프리스카는 손에 든 신문을 펼쳤다. 10월 2일자 뉴욕 타임즈였다. 국무부에서 발간한 책자에 대한 거창한 기사를 눈으로 빠르게 훑고 다음 기사로 넘어갔다.
<패튼 장군의 전쟁 회고록 ‘내가 알던 전쟁’ 출간>
조지 S. 패튼 장군의 유고다. 멜시샤는 어린 시절 프리스카 소령의 서재에서 두 사람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 전략, 전술, 그리고 전쟁에 대한 패튼의 우렁찬 주장과 아버지의 질문이 뒤섞여 밤늦도록 이어지곤 했다. 엿들었던 대화는 전부 잊었어도 패튼의 괄괄한 목소리와 거리낌없는 표현만큼은 기억에 남았다. 그는 부하의 조그만 딸 앞에서도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굳이 그 밤들의 소곤거림을 기억해내지 않더라도 패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온갖 어록들은 신문으로, 라디오로, 선전 용지로 떠다녔으니. 상관에 대한 충의는 흔히들 말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부하에 대한 충의라는 그 자신의 주장처럼 그는 프리스카 소령을 꽤 아꼈다. 평화보다 전쟁이 좋다던 패튼이 무어라 떠들고 사라지면 프리스카 소령은 제법 심란해 보였다. 멜, 나는 전쟁이 치를 비용이 여전히 두렵단다.
멜시샤는 신문을 접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앙상한 나무들과 버려진 농가들이 지평선에 점점이 박힌 채 창백한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멜시샤 프리스카는 모든 색채가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그 광경을 멀거니 보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는 동안, 그녀는 지금 전쟁의 또 다른 유산과 함께 이 기차에 타고 있다. 패튼과 아버지가 그토록 진지하게 논의했던 ‘비용’의 실체와 함께.
이쪽은 색채가 너무 선명하다. 화려하기 그지없다. 낡은 가죽 시트 위에 힘없이 얹힌 머리, 창백한 얼굴을 감싸며 흘러내리는 분홍빛 머리카락. 그 사이로 반짝이는 귀걸이, 길게 깜빡이는 속눈썹, 그 안의 보라색 눈동자.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해서 눈을 어지럽혔다.
레비턴스가 마을 몇 개를 날렸다 했지.
남자는 황갈색 코트를 꼭꼭 불편하게 여민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안색과 나른한 태도를 보자면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데 몸을 편히 할 생각도 않은 채 반듯이. 어쩌면, 편해지려고 애쓰는 것조차, 그 동작 하나하나조차 전부 품이 들어서, 그저 그대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는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보이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무례하거나 건방진 꼴은 아니었지만, 기력을 반쯤 어디 빼놓은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까딱여 무성의하게 인사하고 이후로는 별 말이 없었다. 사실, 멜시샤는 조금 더 강한 적대를 기대했다. 조금 더 맹렬하고 분노에 차 있기를. 줄줄이 나열된 파괴의 기록에 걸맞은 사람일거라, 그렇게 무심코 생각했다. 레비턴스는 잠깐의 손짓만으로도 이 기차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초능력자였고, 두꺼운 파일 몇 권을 가득 채운 자료들과 빼곡히 적힌 정보가 그 사실을 뒷받침했으니까.
지금의 그가 어떻게 보이든, 눈앞의 무기력한 남자는 독일이 V-2 로켓보다 애용하던 최고의 무기다.
V-2는 전쟁 막바지에 나치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늘을 날아와 순식간에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무기. 하지만 그것조차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듣기로, 조슈아 레비턴스는 V-2보다 더 위험했다. 더 예측할 수 없었고, 더 강력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폭발하기보다는 그냥 녹아 사라져버릴 것 같은 지금의 모습을 보아서는 믿기 어렵지만.
좋은 시절이다. 멜시샤는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종전 2년, 초자연 사건 조사국의 멜시샤 프리스카, 독일이 가장 아끼던 실험용 쥐의 보호자가 되다.
몇 분 전부터 이번 역의 하차를 알리던 기차가 드디어 멈췄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객차 전체가 흔들렸다. 조슈아 레비턴스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가, 곧 이완되는 것이 보였다. 잠깐 보랏빛 눈동자가 멜시샤를 향했다가 본래의 허공으로 돌아갔다. 지치고 체념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굴더니 결국 전혀 아니었다는 걸 이렇게 알게 된다. 손끝 하나하나 전부 예민하게 곤두서 있었으면서.
객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조슈아 레비턴스와 멜시샤 프리스카의 시선이 동시에 복도로 밀려오는 사람들을 향했다. 낡은 가방을 든 노인, 울먹이는 아이를 달래는 젊은 어머니, 군복을 입은 청년들, 그리고 초라한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
“레비턴스 씨.”
그는 자세를 고치지 않은 채 이쪽을 본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분명 이번 역에서 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목적지는 알고 계시나요?”
“아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타셨단 말인가요?”
조슈아 레비턴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 들었을지도 모르죠. 잊어버렸는지도.”
그럴 리가 없잖아.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일말의 걱정이나 의심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시 말해 ‘보호자’라는 말은 너무 점잖은 표현이다. 멜시샤는 간수였고, 감시자였고, 어쩌면 그의 처형자일지도 모른다. 정작 처형자라는 별칭은 상대에게 붙어 있었음에도.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