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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시리우스 드림 / 2020년 작

소마 by 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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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검은 털이 비바람에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블럭이 깔린 골목 길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고인 빗물과 섞이며 흐려졌다. 녹슨 하수구 쇠살대를 건너뛰어 움직이지 않는 뒷발을 질질 끌며 폐건물의 1층으로 기어들어갔다. 열린 문 앞에는 흠뻑 젖은 쓰레기가 쌓여 있었고 천장에서 더러운 물이 몇 초마다 낙하했다. 바닥이 끈적였다. 발을 디딜 때마다 철벅이는 소리가 났다. 견갑골 부근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더즐리 가에 협박 비슷한 것을 동반한 편지를 놔두고 오는 길에 성격 더러운 인간(아마도 개 혐오자)에게 잘못 걸려 다리 쪽을 빗겨맞았다. 추적 마법을 피하기 위해 마법사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녹턴 앨리에 왔지만 어느 가난한 마법사를 현상금으로 횡재시켜 줄 생각이 아닌 이상 아무데서나 애니마구스를 해제할 수는 없었다. 도망자 신세도 몇 달째다. 이제는 숨어드는 것도 일상의 일부였다. 

발달한 개의 코로 곰팡이 냄새를 맡다가, 미묘한 향이 섞인 것을 깨달았다. 이질적인 냄새를 쫓아 저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오염된 물이 닿아 상처가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복도 끝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아무렴 바깥보다는 나았다. 언젠가는 제법 널찍한 가게가 있었음이 분명한 구역에서 사람 냄새가 났다. 남자 목소리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시리우스는 문턱에 앞발을 걸치고 앉은 채 목을 빼서 들여다보았다. 사람 냄새도, 마법약의 냄새도, 출처는 바로 여기다. 깨져서 뻥 뚫린 통유리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는데 그 앞에서 옅은 머리색의 누군가가 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해진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욕설을 뇌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큰 소리로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말려 있던 이불은 당연히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무언가를 찾듯 가게 안을 서성거리고 돌아다녔다. 이불을 떨쳐낸 실루엣은 길고 호리호리했다. 키에 비해 체구가 조금 마른 듯 작았다. 

 

“씨, 발, 씨발, 젠장!”

 

단조로운 욕을 몇 번 반복하더니 왼손으로 벽을 쾅 내리치다 이내 밀착해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눈에도 제대로 된 사고가 가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던 한편 온몸을 긁어대다가 꽝 소리를 내며 졸도하듯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낯이 드러났다. 

목소리에서 짐작했던 바와 같이 젊은 청년이었다. 소년기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뼈가 도드라져 갸름한 얼굴에서도 어린 티가 났다. 금발로 추정되는 머리카락과 온몸이 얼룩덜룩한 자국으로 더러웠고 며칠 씻지 못한 것처럼 고약한 냄새가 체취에 섞여서 풍겼다. 한참 동안 바닥에 뻗은 채 파득파득 몸을 몇 번이나 들썩이다 안정을 되찾은 듯 기둥에 기대어 멍하니 고개를 젖히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리우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녹턴 앨리에는 저런 마법사가 한둘이 아니다. 여기서 구경이나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어서 안전한 장소로 숨어들어 다리를 치료해야 했다. 어차피 청년은 이곳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 폐건물 안에서 여기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만 가면 괜찮을 테다. 슬쩍 몸을 뒤로 물리는데 건물 밖으로 통하는 가게 반대쪽 출입문에서 딸랑, 종소리가 났다. 청년이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듯 일어섰다. 

폐건물, 폐점한 가게의 문에 여전히 환영을 위한 종은 남아 울리고 있다니. 어색함을 느끼기도 전에 출입문으로 불쑥 들어온 고동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청년을 불렀다. 그도 행색은 청년과 별다를 바 없이 허름했지만 청년보다는 몇 살이 많아 보였고, 키가 조금 작았다. 

 

“넷.”

 

아이를 어르듯 다정한 투였으나 청년에게는 달가운 상대가 아닌 듯했다. 짜증스럽게 머리를 흔들자 부스스한 금발이 가닥가닥 흔들렸다. 경계하듯 방문자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선 청년이 말했다.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튀었다. 

 

“나 끊는, 다고 했잖아. 진짜 며칠간 안 했어.”

“끊기는.”

“안 끊어도 너랑은 안 해, 이제.”

“니가 나 아니면 어디서 구해? 엔. 돈도 없는 게. 빌리위그 독침이나 쏘이려고?”

 

좆같은 새끼가. 넷이라고 불린 금발의 청년이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고 씹어뱉었지만 상대는 개의치 않았다. 역시나 불법 약물을 일삼는 무리였다. 남자가 입고 있던 펑퍼짐한 쥐색 로브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청년이 마지못해 묻는다는 듯 툭 뱉었다. 

 

“그건 뭐야.”

“맨티코어 독.”

“씨발, 조셉이 그거 하다가 한 방에 뒤진 걸, 아는데 헛소리야. 너 나 죽이고, 싶냐? 이 씹새끼 그럴 줄 알았어.”

“그 멍청한 자식은 아무거나 처맞은 거고. 이건 제대로 정제하고 희석한 거야, 어쨌든 강요할 생각까지는 없어.”

 

할 수만 있다면 강요할 생각이 만반인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거나 남자 역시 한 발 물러났다.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 청년은 옅은 미소가 밴 침착한 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바트.”

“해 보려고?”

“꺼져, 그냥.”

 

남자―바트를 조롱하듯 단번에 태도가 돌변한 청년은 파리 쫓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바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못 본 체하며 N은 휘적휘적 창문가로 걸어가 홑겹 이불을 집어들었다. 드디어 바트에게서도 거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발소리를 크게 내며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걷어찼다. 종이 요란하게 땡그랑거렸다. 바트가 불쾌한 소리를 내며 침을 그러모아 가게 안에 탁 내뱉고 빠져나가는 동안 그는 바트의 뒤통수에 가운뎃손가락을 길게 뻗어 내밀었다. 

흐흐, 흐, 하는 청년의 웃음소리가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이윽고 가게 통유리로도 뒤돌아 뛰어가는 바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팔을 내렸다. 왼손에 쥔 이불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누에고치처럼 몸에 두르고 부르르 떨었다. 씨발, 존나 추워……

멍하니 서 있던 청년이 가게 안쪽으로 걸어와 늘어진 현수막 천을 들추고 서랍을 열었다. 끼익거리는 소리 끝에 술병을 끄집어내 입에 들이붓자 투명한 액체가 입술을 적시고 입가로 줄줄 흘러 목을 타고 떨어졌다. 이불과 비바람 치는 날 입기에는 얇아 뵈는 옷이 금세 술에 젖어들었다. 아예 서랍 옆에 퍼질러 앉은 그가 새 병을 향해 손을 뻗다가, 불현듯 고개 방향을 틀었다. 시선은 가게 뒷문을 향해 있었다. 시리우스와 눈이 마주친 청년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뭐야.”

 

취광에게 잘못 걸리면 된통 당한다. 이번에는 약쟁이이기까지 했다. 시리우스가 앞다리를 펴고 물러나려는 듯한 동작을 취하자 청년은 별안간 표정을 대단히 슬픈 양 일그러뜨리더니, 뒷문으로 휘청거리며 접근하다 거하게 고꾸라졌다. 풀썩, 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청년이 이마를 바닥에 아프도록 처박고서도 고개를 번쩍 들며 외쳤다. 

 

“야 어디가아! 야! 멍멍! 왈왈!”

 

개는 이쪽인데 사람 꼴을 한 자가 개소리를 낸다.

 

“야아. 그 꼬라지를 해서어. 어딜 간다고오. 어? 너, 다쳤지. 빼빼 마른 게. 너 며칠, 며칠 굶었어? 이리 오라고. 착, 착하지. 치료해 줄게.”

 

혀가 점점 더 꼬여간다. 손등으로 이마를 문지르던 청년이 시리우스를 향해 애써 무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개 한 마리도 못 챙겨줄, 것 같냐? 이리 오라, 니까. 먹을 것도 있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진다. …… 못 챙겨줄 것 같은데. 

 

“아아, 씨팔…… 어따 놔뒀지.”

 홀로 계속 궁시렁댄다. 시리우스에게 거기 가만히 있으라는 듯 손짓한 청년은 그를 등지고 술병을 꺼냈던 서랍을 다시 뒤졌다. 서랍에서 꺼낸 잡동사니를 휙휙 바닥으로 던져 가며 찾던 그는 다이아몬드라도 캐낸 것처럼 기뻐하며 한 손에는 길다란 막대기를 들고, 다른 손에는 비스킷 봉지를 들고 돌아섰다. 짜잔! 청년이 신명나게 외쳤다. 실실 흘리는 웃음이 욕설만큼이나 헤프다. 

이리 오세요. 재차 부르는 목소리에도 시리우스는 미동하지 않았다. 이윽고 신경질을 낸 청년이 비척비척 다가와 시리우스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제야 그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눈매는 날카로웠으나 반쯤 감겨 있었고 입가에는 허옇게 말라붙은 자국이 있다. 제법 곱상한 이목구비였지만 눈동자에는 초점이 잡혔다 풀렸다 했다. 희멀건하게 뜬 얼굴에, 피부는 질리다 못해 푸르렀다. 옷으로 덮이지 않아 드러난 부분은 온통 멍이 든 듯 곳곳이 물들었고 팔뚝에도 이상하게 생긴 자국들이 있다. …… 주사자국 같은 것.

먼저 과자로 주의를 끌려는 듯 비스킷 봉지를 벗겨 시리우스의 앞에 내려놓고 헛기침을 몇 번 한 청년은 시리우스의 뒷발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지팡이를 들이대고 주문을 중얼중얼 왼다. 용도에 맞는 주문이며 발음이 꽤나 정확해서, 시리우스는 내심 놀랐다. 상처가 치료되는 고통이 선명해 목 안쪽을 울리며 그르렁대자 청년이 등허리에 손을 올려놓고 털을 쓸어내렸다. 페룰라로 마무리해 붕대까지 꼼꼼히 감싼 청년은 그대로 시리우스의 옆에 드러누웠다. 

 

“생긴 게 딱 명견 같이, 주인 있게 생겼는데. 버림 받았냐? 니 인생도 차암 기구하다.”

 

시리우스는 비스킷만 깨물었다. 와삭, 하는 소리가 턱뼈를 타고 들렸다. 

 

“내일 내가 약 구해볼게. 아아아, 내가 하는 거 말고. 너 나으라고 먹일 거.”

 

뒹굴, 그는 반 바퀴 돌아 시리우스를 들여다보았다. 

 

“개는 뭐 좋아하냐?”

“너도 추위 타냐? 털 있으니까 괜찮지?”

“그런데 너 발바닥이 왜 이렇게 포동포동하냐? 유난히? 젤리……”

 

끊임없이 중얼중얼, 시끌시끌, 떠들어대던 목소리가 딱 끊겼다. 비스킷 섭취를 멈추고 쳐다보자 그새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는 N이 보였다. 다행히 숨은 제대로 쉬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가게 중앙에 떨어져 있는 이불을 물고 와 N의 배 위로 떨어뜨렸다. 이불 끄트머리를 물고 똑바로 펼쳐두자 N이 잠결에 이불을 끌어당겨 안았다. 다시 비스킷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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