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커뮤 성장 로그 23.01.16.
소복이 쌓인 눈이 지붕의 틈새를 타고 집 안까지 쏟아졌을까 싶었다. 이곳은 너무나 춥고 외로워, 본디부터 아주 차갑고 고독할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남겨져 있을 리가 없다는 감상이 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눈더미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눈발 사이에 파묻혀 있던 불티가 선명히 빛을 발한다. 눈동자 너머로 반짝이는 빛무리가 가득해 꼭 유리병 속에 담긴 별들이 넘실대듯 보였다. 몇 겹이나 덧대어져 작은 몸을 감싸고 있던 담요가 걷히니 더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차가울 것도 고독할 것도 아닌, 어린 아이였다. 일고여덟 즈음 되었을까.
높은 설산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오두막과 어린 아이 하나라니. 도통 맞물리지 않는 조합에 얼마간 말문이 막힌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아이가 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마른 책장을 몇 번이나 넘긴 탓인지 끝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선다. 놀라지도, 겁먹지도 않은 시선. 눈 앞을 가린 어떠한 광막한 경계를 걷어내는 행동.
"혹시 할머니신가요?"
할머니? 그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제 등 뒤에서 휘몰아치는 눈바람을 깨달았다. 당혹감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손길을 뻗어 제가 열고 들어왔던 오두막의 문을 닫으면, 아이는 어느새 뒤편의 찬장에 다가가 까치발을 하곤 무언가를 찾고 있다. 변명이라도 하듯 숨마저 잊고선 다가간다. 그 짧은 거리를 채우는 사이에도 아이는 제가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엄마가 할머니께서 오시면 전해 드리라 하셨어요."
아이의 손에 버거울 만치 크던 편지는 제 손에는 꼭 알맞았다. 겉에는 언제나의 필체로 제 이름이 적혀 있었고, 미처 산화되지 못한 감정을 필사적으로 걷어냈을 내용은 다가오는 걸음 없이 사실만을 고했다.
저는 이제 생을 떠났으니, 당신께 남겨진 아이를 부탁드립니다.
*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본디는 들리지 않을 그것을, 자신은 이제 들어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새벽이 가까워 아주 깊을 밤에 헤루트는 가만 숨을 골랐다. 처음으로 숨을 쉬는 법을 배우듯 마지막의 숨을 내뱉는 방법을 찾고 있으면 제 눈언저리와 미간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서늘한 기운에도 어째서인지 누군가의 온기를 되짚게 된다.
"할머니."
눈을 뜨면 잘게 흐드러지는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되짚던 온기를 말하면서도 정작 지니지 못한 이의 얼굴이 어둑한 밤하늘에 별처럼 스며들어 시야를 비춘다. 자신은 누워 있었고, 몸을 감싼 침구에서는 겨울의 향이 난다. 어느새 겨울이 되었느냐 묻자 아이는 다른 이들에게는 여름이나 당신에겐 겨울이란 대답을 했다. 머리맡에서 흩날리는 하얀 자락에 헤루트는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지금도 기록 중이냐?"
"네. 마지막이니까요."
"그래. 이제 마지막이니 딸이 아닌 손자를 만나고 싶구나."
검푸른 하늘 아래 켜켜이 쌓여가는 바람에 아이는 순간 입을 다문다. 마지막이잖니. 침묵 위에 희미한 바람이 하나 더 얹어진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결말은 남겨질 사람들의 애를 타게 만든다. 결국 아이는 채 느껴지지도 않을 아주 얇은 숨을 내뱉고는, 나지막히 눈을 내리 감는다. 이어 투명하게까지 비칠 온기와 함께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할머니."
여즉 같은 자세로 앉아, 여즉 같은 목소리로 부른다. 그럼에도 헤루트는 제 곁에 앉은 이가 제 딸아이가 아닌 갓 열 일곱을 넘긴 제 손자임을 알아챘다. 되짚어 보니 예전 저에게 배우가 되는 길을 말해주던 아이를 만났었다 했던가. 본인은 영 흥미가 없어 보였지만, 막상 제가 상상해 보자 제법 어울린다 싶어 현재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저 숨을 달리 내쉬고 살아가는 길을 달리 보는 것만으로도 타인을 완벽히 현상한다니, 천직이 따로 없지 않은가. 그러나 헤루트는 말하지 않았다. 덧씌우지 않는다 한들 애초에 무엇도 적혀 있지 않던 아이라면 적힌 문장을 지워내도 흔적이 남는 법이다. 그렇다면 기어코 찢어지는 것도 당연할 테지.
그러면 또 다시, 불현듯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적어야만 하는 아이에게 제가 적으라 한 문장들은, 어쩌면 아이의 손이 아닌 제 손으로 엎질러버린 활자들이 아닐까. 가만히 제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넘겨주는 손길이 선득하다. 헤루트는 그 다정한 손길이 어느 순간 제 목을 졸라온다 하더라도 신음조차 허락되지 않으리란 두려움에 휩싸였다. 의사가 없었다 한들 결국 어떤 의미도 되짚지 못할 활자 사이로 증오와 원망이란 감정이 새겨졌지 않을까. 기실 계속해 그런 불사름에 뛰어들어 있었다 깨닫는다.
새하얀 머리칼은 소복이 쌓이는 눈을 닮았다. 붉은 눈동자는 검푸른 하늘에서도 붉게 빛나는 차가운 별과 같다. 고작해야 제 허리께까지 오던 키는 이제 저를 넘어섰고, 작아도 곧은 선을 가졌던 손과 발은 이제 곧음에 어울리는 선명함을 말한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심장을 말할 숨은 너무나 얇다. 당근을 자르기 전 흙을 털어낸다는 순서를 더는 깜빡하지 않으니 이제는 혼자서도 스튜를 만드는 법을 배웠을 텐데, 아이는 마지막까지 제 지시에 따라 재료를 준비했다. 감자, 양파, 당근, 양고기. 간 토마토 조금.
제가 빼앗은 호흡을 거두지조차 못하고 있으면 아이는 여즉 다정한 손길로 어깨를 다독였다. 움직이지 못하기에 떨구지 못한 고개를, 아이는 움직이지 않고 살며시 끌어안는다. 흐트러진 제 머리칼에 뺨을 묻고 그렇지 않다 위로한다. 그럼에도 감자를 서툴게 썰던 다정함이 제 몸에 손톱을 세운 듯 느껴졌다.
그렇다면 네 어미를 기록함으로써 마법사로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아니었다. 나의 가르침은 핑계였다. 너의 배움을 허울로써 내가 만나지 못한 딸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남겨진 이에게 남겨두고 간 이를 말하게 했다. 난 너를 사랑한다 말했어야 했다. 네가 기록하는 것들이 아닌 너를 사랑한다 말해야 했다. 나의 딸이 아닌 나의 손자인 너를 바라보며 사랑한다 말해야 했어.
배우도록 했을 뿐 정작 곁에 있어주질 못했다. 너는 이해할 만큼 영리하니 좋다는 말에 그저 그렇구나 대답을 해주기만 했어도 알아챘을 터인데. 알아갈 만큼 사람을 좋아하니 고작해야 손을 잡아주기만 했어도 만족했을 터인데.
나는 또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빌어먹을 마법사, 평생을 말해 온 마법들은 죄 쓸모가 없었다. 손을 뻗을 수조차 없었다.
"아니에요."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추악한 구제와 비천한 구원을 말하던 헤루트 세라핀은 입을 다물듯 눈을 떴다. 허울 뿐인 자율이 끌어올리는 마취와 재조립의 분노에 대해 말해야 했을 아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말씀 드렸잖아요. 저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깊은 것을 느낀다고요."
당신이 알아주었듯, 나는 인간이며 마법사이면서도 끝내 기록자이니.
당신은 생의 마지막을 말하는 겨울에 있으나 저는 삶의 시작을 말하던 겨울에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겨울을 말함으로써 결말을 맺을 것이다.
*
작고 낡은 문을 열고 흩날리는 눈보라에 스며드려는 등을 바라보며, 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는지를 물을 필요는 없다. 돌아오지 않을 것을 깨달았으니. 가지 말라 붙잡을 필요는 없다. 붙잡는다 한들 결국 떠날 것을 깨달았으니. 다만 제게 유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면 퍽 외로우리란 감상이 들었다. 그렇게 가만히 사라질 등을 바라보고만 있으면, 그는 등을 돌려 돌아왔다.
돌아온다는 답은 불가능한데, 어째서 돌아왔지. 제 앞으로 걸어온 이를 가만 올려다보면 제 어미 또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째서 무엇도 말하지 않니?
말해도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 대답에 어미는 추모하듯 웃는다. …넌 역시 날 닮았구나. 그 말을 듣자 이상하게도 그토록 선명하던 말간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왜 갑자기 흐려졌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달라. 덧붙여진 말은 저는 모를 시간들을 되짚는다.
넬. 나는 돌아오지 못할 거야. 넌 여기 남겨질 테고. 하지만 넌 나처럼 끝을 맺진 않아.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이해하지 못할 위로가 뺨에 닿는다. 양손으로 제 뺨을 감싼 이의 시선에 넬은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이곳은 아주 고요하고 잔잔해서 아주 사소한 것에도 긴 시간을 들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침잠해서는 안 된다 몇 번이나 고하던 목소리도 떠올랐다.
뒤편 찬장에 편지를 하나 써 두었단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누군가 이곳에 찾아올 거야. 그 사람이 네 할머니야. 내가 널 부탁한다 말해 두었으니 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이곳을 떠나렴. 언제고 돌아와도 좋지만 돌아오려면 한 번은 떠나야하지 않겠니.
등불을 건네듯 희끗한 손길이 따스하게 달아올랐다. 의문은 없다. 결코 자신을 해칠 리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심장께 어딘가에서 있을 리 없는 감각이 쿵쿵쿵 울려대고 있었다. 숨은 흩날릴 것만 같이 옅고 가벼운데 시선은 추를 매단 것처럼 묵직해 어두운 무언가가 목을 조르듯 답답하다. 서서히 기울어지는 무언가에 눈을 질끈 감으면 쉬이, 가벼운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간신히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것들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아. 전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어. 그러니 모른다면 묻고, 안다면 대답하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처럼 웃는다. 그렇지, 잘했어. 너는 아직 그것을 말하는 방법을 모르니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해. 아주 많은 것들이 헤아리기도 전에 매듭을 짓는다. 이번 역시 그렇다고, 넬은 누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깨달았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응.
떠나지 않고 얌전히 있을 수 있지?
응.
외로워 하지 않을 수 있지?
…응.
이리트는 맑은 유리잔을 어루만지듯 제 아이의 뺨을 문지르고는, 손을 움직여 이마를 가린 머리칼을 걷어내고 입을 맞췄다. 그 사람은 그저 전하는 것에 서투를 뿐 그럼에도 알아주는 이니 너라면 잘 들을 수 있겠지.
착하다, 우리 아들. 널 만나서 좋았단다.
응, 나도 당신을 만나서 좋았어요.
아이는 이별을 말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어미는 이별을 들은 사람처럼 그리움과 상실을 전하는 대답으로 미소지었다. 말하지도 전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배웠기에 알게 된 질문을 건네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대답은 돌아왔다. 너는 내 자식이고, 나는 네 어미니까.
그리고 남은 것은 기다림 뿐이었다. 돌아오는 이는 없어도 찾아올 이는 있었고,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말해야만 한다면 나를 알아야만 하겠지. 기이하게도 지금껏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사실에 다소의 당혹을 느끼며 누군가의 말을 적어두었을 책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없었다. 책장에 꽂혀 있던 수십의 책을 모조리 헤집어도 자신을 말하는 문장은 도저히 보이질 않았다. 고작해야 일부만을 말할 뿐, 자신을 말하는 단어는 지워진 마냥 보이질 않았다. 고양이, 생쥐, 왕자, 공주, 기사, 병사, 시종, 군주, 선생, 제자, 생존자, 희생자, 가해자, 피해자, 원죄자, 신자, 그리고 머글과 마법사….
후둑후둑 쏟아지는 책들이 저변에 쌓여만 가고 책장에서 새어나온 활자들이 질척하게 발치를 붙잡고 늘어져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쌓여가는 순간마다 지워지는 것 같았다. 일부만을 말한다면 일부를 기워 전체를 만들고자 해도 도저히 맞물리는 것이 없었다. 차갑게 식은 손 끝이 침묵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무엇도 없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고 그 누구도 없었다.
단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 줘.
그리고, 문이 열렸다.
*
닫혀있던 문을 열고 닫았으며 다시 열어 함께 손을 잡고 눈이 가득한 산을 내려갔던 헤루트 세라핀의 손은 자신이 어설프게 엮어둔 문장들을 쥔 채 바라보고 있다. 고작해야 손톱만한 두께의, 보잘것 없는 종이뭉치. 사과의 표시라 건네 받은 크림 치즈가 듬뿍 들어간 사과 샌드위치를 베어먹으면서도 그게 제 위장으로 들어가는지 심장께의 어딘가로 흘러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헤루트 세라핀은 말했다. 꼬박 한 달이 지난 후였다.
늦었지만 이제야 다 읽었다. 네 말대로 너는 인간이며 마법사이면서도 끝내 기록자구나. 그때는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구나.
그 순간에야 넬은 자신의 심장께 어딘가를 정의할 수 있었다. 제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두렵지 않다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제 겉을 덧칠하듯 지워내면 정말로 그리 되는 줄 아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그 모든 것에 실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성공하지 못할 소망이었다는 사실마저도.
한참이 지난 후 우연찮게 그 종이뭉치를 발견한 넬은 제가 어머니의 삶을 궤적으로 삼아 생을 걷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그렇게 크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전에 너무 선명해진 숨에 호흡이 곤란해졌다. 기록자가 웃다가 죽다니 우습지도 않아. 지금껏 아무도 말하지 않던 것을 읽어야만 했기에 그리 시간을 들였다 어림짐작하고 있었더니, 맙소사. 그냥 문장을 지지리도 못썼잖아! 헤루트가 양털을 파는 남자와의 거래로 집을 비우지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뒷목을 붙잡혀 두 언덕 너머 약초사 할머니의 붕어를 닷새는 끓인 듯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약을 끼니마다 마실 뻔 했다.
그러니 넬 아스트라 세라핀은 말해야만 했다. 당신은 이미 계속해 나를 사랑한다 전하고 있었음을.
*
빈 램프에 담긴 유리 구슬 하나가 잘그락대며 빛을 반사했다. 밤하늘 아래의 정적 속에는 많은 말들이 남겨진다. 누군가를 그리는 기원, 바라던 것을 성취하길 기대하는 소망, 상실을 한탄하는 가늘은 울음, 신을 원망하면서도 차마 놓지 못하는 신음까지. 이제는 그 모두가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읽어주는 자들이 존재함을 자신은 안다. 그렇게 배웠고, 알려주었으니.
"만약 그 순간, 당신이 나의 언어를 부정했다면 저는 평생을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한 채 살아갔겠죠."
읽히지 않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당신이 읽어 주었기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 그 언어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으므로 더 많은 언어를 만들어 전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변화를 마주하는 어른의 손에 떠나기 위해 필요할 기원을 건네주며 덧붙였다.
"헤루트 세라핀. 나를 말하는 첫 문장은 당신이 기록했어요. 저는 그저 그것을 이어 썼을 뿐입니다."
그러니 괜찮아요. 어머니의 지팡이가 당신이 알아갈 길을 가리킬 것이며 저의 시선이 당신이 나아갈 길을 밝힐 것입니다. 기록으로써 제가 살아갈 방법을 알아가며 두 분이 만나실 길을 찾을 방법도 알려 드렸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인간이며 마법사이면서도 끝내 기록자이므로, 세지 못할 만치 흐드러질 목소리에도 결코 파묻힘으로써 자신을 잃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알려주셨으니까요.
수많은 목소리에도 기록자의 목소리는 묻히지 않는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기록됨으로써 전해지기에 끝내 잃지도 않을 것이다. 헤루트 세라핀은 별조차 보이지 않는 어둑한 하늘 아래에서도 결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법을 읽었다. 자신을 불태우지 않아도 나아갈 길을 배웠다. 램프의 불꽃은 타오르지 않고 투명한 유리 구슬은 스스로 빛을 발한다.
그러니 나는 이 길을 걸어간다. 아주 많은 것을 듣는 아이가 가르쳐 주었으므로, 이제 너의 이야기를 들었음을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너에게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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