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Hogwart alone, maybe not alone

2023 크리스마스 캐롤 합작

365g by 혜윰

BGM: John Williams - Somewhere in My Memory (From "Home Alone")

넬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훌쩍 다가온 덕에 기숙사 침실 바닥에는 어느새 알록달록한 러그가 깔려있다. N.E.W.T.를 준비 중인 모 7년생의 '끔찍하게 괴상하고 아름다울 정도로 정신 나간 마법 수험생 공예 토너먼트' 출품작이라던 이름 모를 러그는 특정한 시간이 될 때마다 번쩍번쩍한 광선을 내뿜었고, 종종 그르렁거리는 울음 소리를 냈으며, 심지어는 슬금슬금 어딘가로 이동해 있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그보다 덜 괴상하기만 하다면 기척을 숨기는 데에는 최적의 장소라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풀숲에 몸을 파묻고 최적의 순간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정확히는 그렇게 되고자 했던 넬은 냅다 장식장 아래로 팔을 뻗었다.

"이리 나와, 난 그 잉크가 필요하단 말이야."

채 성장하지 못해 짤막한 팔을 휘적휘적 흔든다. 그러자 어둑한 그늘 속에서 하얀 털뭉치가 화다닥 반응했다. 지금 나 부르는 거였어? 잉크의 반질반질한 빛깔이 마음에 들어 제 소굴에 집어넣던 페럿이 눈을 깜빡인다. 오후 1시 17분. 예정된 시각에서 한참이나 지났다. 나는 3분이나 전에 할머니께 보내 드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해야 했어! 바짝 달아오른 뺨을 한번 문지른 넬이 기어코 러그 위를 기어 장식장 아래로 비집어 들어갔다. 견고한 인내심을 발휘하던 러그는 급기야 캐롤과 유사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와다닥, 덜컹덜컹, 쿵, 타다닥, 메리 크리스마스, 꾸꾸꾸, 아얏, 바스락바스락, 위 위시 어 엑시드 익스펙테이션, 콰당, 와르르…. 환장하겠군. 소파 위에서 그 꼴을 지켜보던 고양이가 애옹,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서 뭘 하는 거야?"

끼익, 경첩이 닳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침낭에서 목을 빼듯 장식장 아래에서 새빨간 시선을 빼꼼 내민 넬이 잉크병과 페럿의 허리를 양손에 하나씩 쥔 채 인사를 건넸다. 앨피어스는 '진짜' 풀숲을 한참 헤집고 다녔는지 머리 위에는 나뭇가지를 하나 얹고 있었고, 품에는 도서관에서 빌렸을 붉은 양장의 책과 함께 짙은 녹빛의 약초가 한아름 안겨 있다. 꼭 크리스마스 같다. 그래서 넬도 다시 인사를 건넸다.

"해피 크리스마스, 앨피어스. 잉크병을 되찾았어요."

"해피 크리스마스, 넬. 다른 것도 찾은 것 같은데."

그런데 아직 크리스마스 당일은 아닐 텐데. 그 목소리에 뒤늦게야 제 반려인간을 맞이한 고양이가 재차 애옹, 끝이 높은 울음 소리를 낸다. 한참을 괴롭혀진 러그는 잠잠하다. 넬은 포복하듯 천천히 장식장 아래에서 기어나와, 제 침대 위에 페럿과 잉크병을 올려두고는, 먼지가 가득한 꼴로 앨피어스의 망토 이곳저곳에 묻은 나뭇잎과 씨앗을 털어주기 시작했다. 앨피어스는 제 룸메이트의 정신 나간 꼴에도 당황하지 않고, 제 책상 위에 책과 약초를 올려두고는, 풀내음이 가득한 꼴로 넬의 망토 이곳저곳에 묻은 먼지와 털을 털어주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에는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저는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었어요. 앨피어스는요? 얼마 전부터 짐을 정리하고 있지 않았나요? 한아름 준비하길래 저는 아주 일찍 돌아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돌아간다는 단어를 사용해도 적절한 상황일까요? 앨피어스는―"

"호그와트에서의 첫 겨울 방학이잖아. 그런데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었어? 언제부터?"

제 룸메이트의 고질적인 증세인 질문 폭탄이 재차 터질 기미가 보여, 앨피어스가 다소 다급하게 말허리를 잘라냈다. 넬은 고개를 왼편으로 살짝 기울이더니 양손을 펼쳐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러다가는 뚝 멈춰버린다. 그리고 대답했다.

"24년 전 부터요."

"24분이나 24일 전이 아니라?"

곧장 대답할 줄 알았더니 넬의 시선은 생뚱맞게도 제 등 뒤의 문을 향했다. 같은 방을 쓰게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금세 넬의 행동 양식을 체득하게 된 앨피어스도 덩달아 뒤를 돌아 문을 바라본다. 아니나 다를까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대답도 하기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해피 크리스마스, 페르디난드."

"해피 크리스마스. 뭐야, 나 오는 거 눈치 채고 있었어?"

"해피 크리스마스…. 그런데 너 래번클로 아니잖아."

"뭐 어때, 네가 떨어트린 약초들 다 모아서 와줬는데."

"아."

그런데 아직 크리스마스 당일은 아닐 텐데? 그리 말한 페르디난드는 아주 제 집인 마냥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와 앨피어스의 책상 위에 약초들을 풀썩풀썩 올려두기 시작했다. 제가 품에 안았던 만큼 쏟아지는 약초들의 양을 바라본 앨피어스가 망연한 시선으로 팔을 들고 어물쩡댔다.

"어, 그, 어떻게 된 거야? 어디에 있었는데?"

"여기까지 오는 길에 발자국처럼 다 떨어져 있던데? 꼭 헨젤과 그레텔 같았어. 이제 난 넬을 벽난로 안에 밀어넣으면 되나?"

"말도 안 돼…."

"방금도 페르디난드가 말로써 발화했는 걸요, 앨피어스."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벽난로 따뜻해요?"

"들어가 볼래?"

"말도 안 돼!"

"방금도 페르디난드가,"

"우리 언제까지 이 대화 계속할 거야?"

침대 시트 위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며 몸에 붙어 있던 먼지들을 떼어낸 페럿이 만족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쿠션 위에서 식빵을 굽고 있던 고양이가 풀썩 날아오른 먼지에 코를 움찔거리더니 앩, 기침을 한다. 그리고 솜뭉치 같은 주먹을 들어 옆까지 기어들어온 페럿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크리스마스가 훌쩍 다가온 덕에 호그와트는 제법 한산하다. 이미 정규 수업은 종료된지 오래였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여즉 호그와트에 남은 아이들은 짐이 어딘가로 도망쳐 버렸거나, 부모님께서 방 정리를 미처 끝마치지 못했으니 며칠만 더 묵고 오라는 연락을 부엉이로 보내왔거나, 돌아갈 집이 없거나, 그만 날짜를 잘못 세버렸거나….

"겨우살이 열매 수급처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했어."

그래서 수습하느라 한동안은 부산스러울 테니, 조금 늦게 오라고 하더라. 평소라면 뚱한 표정을 하곤 난 그러기 싫은데, 라고 했을 페르디난드는 예상 외로 상쾌한 표정이다. 연회장 테이블에서 라즈베리 초콜릿을 집어먹는 손길이 경쾌했다. 앨피어스는 눈치를 챘으면서도 눈동자를 한 바퀴 데굴 돌리고는 입을 다물었지만, 넬은 왜 상쾌한 표정인지 냉큼 물어버린다. 앨피어스가 포크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넬은 여상스레 지팡이를 흔들어 포크를 들어올리곤―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구석으로 치운 후, 만들던 마법약이 있다는 페르디난드의 대답에 배라도 부른 듯이 만족스러운 낯으로 진저 쿠키를 한입 베어물었다. 앨피어스는 한층 피로한 낯으로 페르디난드가 재차 챙겨 준 포크를 쥐고 샐러드를 헤집었다.

"그런데 그거 말해도 되는 이야기야…?"

"뭐 어때, 너네 부모님과도 관련된 얘긴데."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심심해. 뭐 재미있는 거 없어? 맡겨놓기라도 한 양 뻔뻔한 모양새지만 앨피어스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다. 넬은 진저 쿠키를 갉아먹고나 있다.

"마법약은?"

"반나절은 그대로 끓여둬야 해."

"독서는 어때? 저번에 추천 받은 책도 있잖아."

"오만이와 편견이가 서로의 뺨을 때리는 얘기를 내가 왜 읽어야 하지?"

"산책…."

"너 얼어 죽으면 어떡해."

"네 일정에 나도 포함이야?"

"그럼, 당연하지."

"맙소사…."

앨피어스가 머리를 부여잡고 테이블 위로 무너졌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남은 일정을 젠가처럼 끼워넣기 시작한다. 투구꽃은 달빛에 말려야하니까 저녁에 다듬으면 되고, 애들 밥은 나올 때 이미 챙겨준 데다 워낙 독립적이니까 괜찮을 테고, 책은 3일 후까지 반납이니까 내일 다 읽으면… 한 권만 빌려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시간표는 어떻게든 맞춰졌지만 휑뎅그레하게 비어버린 반나절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 곁을 바라보자, 막 진저 쿠키를 다 갉아먹은 넬이 손을 탁탁 털고는 우유잔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새빨간 눈동자를 깜빡인다. 앨피어스와는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데굴 굴리고는, 따뜻한 우유를 한 입 홀짝인 후 대답했다.

"슬리데린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상한 그림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앨피어스 라이즈는 11세의 나이에 또 하나의 자명한 진리를 깨달았다. 페르디난드 아스틴 알데리크는 지루했을 반나절을 짜릿하게 채워줄 소재가 생겨 기분이 좋았고, 넬 아스트라 세라핀은 할머니께 보내드릴 보고서에 쓸 거리가 늘어났으니 양피지를 한 장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슬리데린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목―슬리데린 기숙사는 왜 이렇게 침울하고 눅눅한 곳에 있는 거야! 앨피어스가 억울함을 터트렸다―에서 나란히 발을 멈추고 침울하고 눅눅하고 커다란 그림을 올려다 보았다.

"…이거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글쎄."

"그걸 네가 모르면 어떡해…."

"갑자기 생겨났다는 소문이 함께 있어요."

"알고 싶지 않았어…."

정말로 갑자기 생겨난 거야? 간절한 시선으로 오른편의 페르디난드를 바라본다. 정체 모르고 질척하고 새까맣고 기분 나쁘고 아무튼 결론적으로 무서운 것은 질색인 앨피어스는 제멋대로지만 제법 정직한 제 소꿉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았다.

"글쎄?"

정말로 갑자기 생겨난 거야? 이번에는 애절한 시선으로 왼편의 넬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무서운 것은 질색인 앨피어스는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기는 어렵지만 제법 정직한 제 룸메이트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보았다. 넬은 대답하지 않고 멀뚱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이면서 앨피어스를 마주 바라본다.

"뭐라 말이라도 해 줘!"

시끄러워.

"으아악!"

"그림이 말했다."

"호그와트의 그림은 원래 말을 해요, 페르디난드."

"그럼 거북이가 말했다로 할게."

"콘은 말을 못 하니까 이번에는 맞는 말이네요."

"너희는 왜 안 놀라는 거야?"

제 곁의 이들이 지나치게 침착해서인지 오히려 본인도 침착해진 앨피어스가 가만 시선을 들어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림은 아주 커다래서 복도에서부터 천장까지 닿았고, 액자는 얼마나 우울한지 본래의 색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그들은 그림이라기엔 슬리데린 기숙사의 창문처럼 하나의 세계를 가로막은 유리창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주 어두워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짚기가 어려웠다. 페르디난드가 그 어둠을 가리키고 거북이라 부를 만치 확신을 가진 까닭은 오로지 건너편의 세계 속에서 하나의 늙고 거대한 거북만이 의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넬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 거북과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섰다.

이봐, 너무 가깝잖아.

"당신에겐 가까운가요?"

꼭 너에겐 먼 거리인 것처럼 말하는군.

"보이지 않아서요."

이젠 보이나?

"조금은요."

그럼 이젠 만족스럽겠어.

거북은 아주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있었는데, 침울한 수초를 보금자리처럼 모아두고 몸을 눕힌 모습이 꼭 수풀 속에 몸을 숨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는 내 안락한 비밀기지야. 넬은 물론 뒤에 서 있던 페르디난드와 앨피어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눈치 챈 거북이 짐짓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너희는 언질도 없이 찾아온 무례한 방문자들이고. 여전히 상냥한 어투로 엄하게 어깃장을 두는 목소리는 제법 묵직하다.

"여긴 우리 학교야."

자신이 소유하기 전에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 자연히 여기는 행위란 인간의 고질적인 오만이지.

"말 잘하네…."

자신의 자아가 타 존재보다 우월하리라 당연히 여기는 행위는 인간의 고질적인 무지이고.

"내가 때려줄까?"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증명까지 하면 저희가 완패할 것 같아요."

"무의미한 경쟁과 이분법에 대해서도 말할 것 같으니 그냥 우리 말하지 말자."

소통과 이해를 거부하는 것은,

"진짜 말 한 마디를 안 지네."

페르디난드의 샘난 목소리에 거북이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꼭 공기 방울을 하나하나 찔러 터트리는 듯한 소리였는데, 넬은 신기하게도 표정도 잘 보이지 않는 거북이 즐거워 한다고 느꼈다. 페르디난드는 샘이 잔뜩 났지만 대화를 맞받아치는 거북의 태도에 지루해 보이지는 않았고, 앨피어스는 제 등 뒤로 숨었지만 거북의 정돈된 발언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겁이 나 보이지는 않았다. 복도는 어두웠지만 연회장에서부터 들려오는 유령들의 캐롤이 호그와트임을 기억하게 했다. 그러니까, 완벽했다. 완벽이란 것이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페르디난드가 기대한 만큼은 덜하지 않고 앨피어스가 걱정한 만큼은 과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혹 등에 붙은 따개비가 불편한가요?"

아니, 이들은 내 친구야.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미안해요."

괜찮아. 그래서 여기까지는 무슨 목적으로 왔지?

"꼭 목적이 있어야 하나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이번에는 내가 실례를 했군.

"괜찮아요."

손님은 오랜만이야. 무례한 방문자에서 손님이 된 페르디난드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앨피어스가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거북은 세 사람이 자신에게 못된 장난을 치거나 비명을 지르며 경계하지 않으리라 느꼈는지 조금 더 자유로운 몸짓으로 수초 위에서 유영했다. 넬은 거북의 등 너머 어딘가에서 무언가의 시선을 느꼈지만, 거북이 그것을 바라보지 않기를 원했기에 의도적으로 보지 못한 척을 했다. 아무렴 자신은 모르는 척 하는 일에는 이골이 났다.

나는 이곳에 자주 찾아오지는 않아…. 다만 근래에는 기묘한 일들이 많아서 말이야. 어쩌면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희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과해 보여 잠시 머물면서 숨을 쉬러 왔지. 나는 한동안 있다가 사라질 거야. 그러니 내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주었으면 좋겠군. 너희들도 알겠지만, 나이가 들면 귀찮은 일들이 한층 더 귀찮아져…. 긴 잠을 자기 위해 짧은 잠도 종종 모아줘야 하지….

거북은 눈을 감고 잠시 멀리 헤엄치더니 곧 다시 몸을 굽혀 돌아왔다. 그럼 회색 숙녀 같은 존재인가? 앨피어스가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슬쩍 물어보았지만 거북은 딱히 대답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든 변하는 것은 없기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선물이 과하다고 빼앗으러 왔단 뜻이야? 페르디난드의 불퉁한 물음에는 담배 연기를 내뱉듯 입을 우물거리며 공기 방울을 내뱉기만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즐겁고 오싹한 모험을 찾아 왔다면 미안하게 됐어. 나는 늙었고, 너희처럼 새파란 아이들과 놀아줄 만한 체력은 애저녁에 다 잡아먹혀 버렸거든. 선물이라도 챙겨주고 싶다만….

그렇게 말하고는 또 입을 우물거리고만 만다.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도 불러줄까? 토피 사탕을 골라주는 할머니처럼 구슬려보지만 페르디난드는 영 흥미가 없어 보인다. 됐어. 거북은 몸을 한번 뒤집고는 또 공기 방울을 터트리며 웃었다. 애들은 언제나 까다롭지. 요즘 애들이란 말은 안 하네…. 앨피어스는 거북의 발치에 일렁이는 수초의 이름을 묻고 싶어 보인다. 딱히 인간에게 이로울 효능은 없어. 이런, 해로운 효능을 원하는 건가? 그렇다면 가르쳐주기 어려운데….

거북은 노곤해 보인다. 한창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아름다울 크리스마스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어둑하고 침침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은 호그와트였고, 일상적인 일들은 비일상이란 이름으로 다시 일상이 된다. 연회장에 있을 크리스마스 트리를 끌고 오기에 이곳은 그런 크리스마스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무튼, 커다란 트리를 여기까지 끌고 오기엔 세 사람만의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로는 부족하다. 트리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앨피어스가 어떡하느냐며 울어버릴 것이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네 조상이 언제부터 태어나기 시작했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군.

"발치에 있는 수초가 우드푸의 귀열매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달라… 색이 엄청 짙은데 바다 속이라서 그런가? 정말 못 가르쳐 줘…?"

네가 지금 품에 끌어안고 있는 약초의 향만 맡아도 인간의 기준에서는 충분해 보이는 걸. 그 기준에 만족할지는 모르겠다만….

거북은 종종 넬을 바라보며 너는 묻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는지를 물었지만, 넬은 가만 바라보다 고개를 내젓기만 했다. 종종 몇 개의 질문을 했으나 그것은 어머니의 의문일 뿐 제가 가진 것은 아니었다. 아마 거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저에게 물었을 것이다. 앨피어스가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넬을 바라보았지만 넬은 멀뚱히 거북과 거북 너머의 지평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나는 잠들러 가야겠어…. 너희의 기준으로는 아주 오래 잠들 테니 다시 만나려면 꽤 먼 길을 돌아와야 할 거야.

페르디난드가 회중시계를 꺼내 보곤 마법약을 확인할 시간이라 말할 즈음이었다. 그 말대로 거북은 아주, 아주 노곤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눈을 감고 등딱지 속으로 숨어들어갈 것만 같다. 함께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발치의 수초를 조금씩 뜯어먹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복도 너머에서 들려오는 캐롤도 점점 음정이 어긋나고 있다.

"그럼 다음에 오면 여기는 그냥 벽이 되는 건가?"

오기 싫다며 무서워하던 것이 언제라고, 앨피어스는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제법 아쉬운 티를 내며 물었다. 거북은 이제는 되레 볕이 새어나오는 물 속에서 고개를 등딱지 속으로 반쯤 집어넣고는 말했다. 입매 사이로 흐린 거품이 잘게 뭉그러지면서 누군가가 속살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거북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는지 서서히 볕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

그렇겠지. 너희에게는 보이지 않을 거야. 특히 너희는 보지 않는 편이 좋겠군.

'특히'? 앨피어스가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어두운 볕이 점차 밝은 빛으로 물들고 있어서 그럴까. 밝다면 안심되는 것이 당연할 텐데 묘하게도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넬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여태 물어야 한다 생각했으면서도 굳이 묻지는 않던 의문을 꺼내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선물이라도 챙겨주고 싶다만, 이라고 했었잖아요."

그렇지.

거북은 그르렁대는 웃음 소리를 낸다. 페르디난드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온다. 앨피어스는 어, 하고 어딘가 펜촉이라도 빠진 소리를 냈다. 액자 사이로 거무칙칙한 초록빛 이끼와 검붉은 열매가 맺혀들기 시작했다. 거북은 이제 너무나 졸려 보인다. 너무 많이 먹었어, 란 얘기를 중얼거리는 것도 싶었다.

"챙겨주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가 저번 만남에서 이미 선물을 받았기 때문인가요?"

어, 하고 앨피어스는 이제 잉크병까지 떨어뜨린 표정을 했다.

너는 이번에도 그 질문을 하는군.

해피 크리스마스. 그리고 액자는 완전히 이끼에 뒤덮혔다. 거북은 등딱지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세 사람이 눈을 한 번 깜빡이자 그림이 걸려있던 벽은 마치 거짓말처럼 텅 비어버렸다. 그 빈 자리를 채우듯 딸그랑,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둥근 금화가 세 개 떨어진다. 소금 기둥이라도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앨피어스를 등 뒤로 숨긴 페르디난드가 바닥에 떨어진 금화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 우리 이름이 적혀있는데?"

앨피어스가 비명을 질렀다. 넬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미리 귀를 막고 있었다. 페르디난드는 세 사람 몫의 금화를 집고 있었던 탓에 미처 귀를 막지 못했고, 대신 앨피어스가 울기 시작하자 앨피어스의 손에 앨피어스 라이즈라는 이름이 새겨진 금화를 쥐여주었다. 당연하게도, 앨피어스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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