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난무SS

구석몰이

도검난무SS 미이케 도파 위주 논cp 괴담 주제 연성


■ 2019년 10월 20일(일) 도검난무 온리전 [국제시간정부 한국지부 제4회 정기총회]

■ 미이케 중심 괴담 글 & 그림 트윈지 <아흔아홉 초가 꺼질 무렵에>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구석몰이

0.

방 님(お部屋様).

아무것도 없이 사방이 막힌 방에 넷이 향불 하나와 함께 들어간다. 각자 네 구석에 앉는다.

한 사람이 향불을 들고 일어나 바로 다음 구석으로 간다. 그곳에 앉은 이에게 향불을 넘긴다.

향불을 받은 사람은 일어나 다시 다음 구석으로 가고, 건넨 사람은 그 자리에 앉는다.

이것을 반복하면, 원래 네 번째 사람은 다음 구석에 사람이 없어 향불을 건넬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향불을 받는 이가 나타난다. 이 사람이 방 님(お部屋様)이다.

다섯이 있는 방에서 끊임없이 향불이 돈다.

1.

잠이 안 와…….

아츠시가 대장 커피를 훔쳐 마셔서 그래.

그러는 고토 너도 같이 마셨잖아!

야겐, 안 자지? 무서운 이야기 좀 해 봐.

뭐야, 미다레도? 그치만 안 돼, 다들 자니까 조용히 해야 해.

무서운 이야기 싫~어! 대장 품에서 자고 싶다.

아, 그러면 하나만 할까?

너무하잖아, 야겐!

쉿! 이치 형이 깨잖아.

… 그러니까, 이건 닛카리 씨에게 들은 건데 본성에 괴이가 스며들었다나 봐. 알려지면 다들 불안해하니까 신검(神劍)님들도 입단속을 하고 있대.

뭔데? 그 괴이란 건.

그제 밤 순찰 부대 여섯이서 서관 모서리마다 사람을 세워놓고 한 방향으로 돌면서 등불을 전달하는 식으로 순찰했다나 봐. 그런데 그게 어떤 ‘의식’이 되었던 모양이야. 마지막으로 등불을 받은 사람이 아무리 모서리를 꺾어도 다음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그대로 빙빙 돌며 아침을 맞았다나.

불쌍해 ―

그치? 그런데 아침에 물어보니 남은 다른 이들은 전부 등불을 잘 전달받았대. 각자 모서리를 딱 한 번씩만 마주치면서.

어?

이상하지?

이상하네.

아, 이거 알아, 구석 놀이지?

그래, 그거. 방 님(お部屋様).

'하나'가 더 많은 건가?

아니, 우리 복도 막힌 내(乃) 구조잖아. 모서리가 여섯인.

――― '둘'이지.

2.

반짝 눈이 뜨였다. 아마도 냉장고에 딱 하나 남아 있을 가리가리군(*일본 소다맛 아이스크림)이 신경 쓰이기 때문이겠지. 평소에는 맏형이 군것질을 엄금하고 있기에 단 것을 입에 댄 지 벌써 3일이 넘었다.

호쵸 토시로는 아직 어둠에 익지 않은 눈을 이리저리 돌려 방을 살핀다. 같은 방을 쓰는 형제들은 이미 색색 소리까지 내가며 잠이 들었다. 바깥은 은은하게 달빛이 비치고 밤 순찰조의 등불도 멀어지고 없어 부엌으로 숨어들기에는 지금이 적기다.

보통 검들이라면 삐걱대는 목조 마루가 신경 쓰이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뿐히 걸을 수 있는 건 단도(短刀)만의 특기. 그러니까 이대로 방만 나가면 모든 게 순조로운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망설이게 된다.

―― 밤에 본성에서 귀신이 나와.

… 하여간 소하야는 바보 멍청이 너구리.

호쵸는 이불 속에서 부스럭대다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다. 풀을 먹인 빳빳한 이불이 사각대는 소리가 거슬린다. 다행히 완전히 두 발로 딛고 설 때까지 형제들은 깨지 않았다.

… 일단은 성공 ….

마음을 놓는 순간 구석에서 가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랐지만 돌아보니 다행히 고코타이가 기르는 호랑이였다. 동그랗고 까만 눈이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면 혼날 거라고 자기 주인처럼 울먹거리며 말리는 것만 같다. 마음이 약해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 난 갈 거야. 쉿 해야 해!

식구들의 몸을 밟지 않도록 징검다리를 건너는 마냥 조심스레 이불 사이를 딛는다. 흰 천이 서걱서걱 차가운 소리를 낸다. 다행히 장지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깨지 않았다.

오늘 낮에는 다들 원정이다 뭐다 하며 바쁜 사이에 묘하게 한가해 보이는 소하야노츠루기와 함께 놀았다. 서쪽 뜰에 심긴 큰 나무 그늘 밑에서 한참을 놀다가 영검(靈劍) 쪽이 먼저 「그리고 보니」 하고 운을 뗐다.

「밤에 본성에서 귀신이 나와.」

… 또 그런 소리.

「겁주지 마! 그런 게 있으면 얼른 베!」

호쵸는 대답과 함께 잔뜩 노려봐주었다.

소하야노츠루기라는 영검은 영검인 만큼 종종 이런 식으로 겁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어린아이를 훈계하는 의미가 담긴 이야기라는 건 이미 들을 만큼 들어서 안다. 저번에는 뭐였지, 수박을 너무 많이 먹으면 씨가 요괴로 자라나서 배를 가르고 튀어나온다는 이야기였나. 이번에도 분명 오늘처럼 호쵸가 쓸데없이 밤에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한 이야기이리라.

… 하지만 이제 귀신이니 뭐니 안 속으니까.

장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니 어쩐지 평소보다 싸늘해 보이는 풍경이 보였다. 막 가을로 접어들려고 하는 뜰에서 차갑고 습기 먹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방안으로 냉기가 흘러들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닫고 걸음을 옮긴다.

본성은 그 구조가 복잡해 낮에는 길을 찾는 사람도 밤에는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옛 목조 건물이 다 그렇듯이 비슷한 지붕과 복도에 구석으로 치우치거나 튀어나온 곳도 있다. 아와타구치 방이 있는 서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오늘 밤도 복도는 구불구불 복잡한 길을 펼쳐놓고 있었다. 딱 부엌이 가까운 점만이 좋았다.

한 발 뗄 때마다 가벼운 발소리가 공중에 퍼져 나간다. 뜰에 담긴 달빛 덕분에 촛불 없이도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달빛마저도 모퉁이 너머 으슥하게 가라앉은 어둠은 몰아내지 못한다. 저 멀리서 어둠이 까맣게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 저길 몇 번은 더 돌아야 부엌인데.

모퉁이를 도는 순간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 어떡하지.

꽉 쥔 주먹에 유카타 자락이 말려 들어간다. 식은땀으로 천이 조금 축축해지고 풀벌레 우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을 때쯤에서야 간신히 결심이 섰다. 아이스크림은 맛있고, 또 소하야에게는 질 수 없다.

땀이 식어 소름이 돋으려 하는 다리를 조심스레 움직여나간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모퉁이를 돈다.

하나 ….

둘 ….

셋 ….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점점 무서워서 앞만 본 채 발걸음을 빨리했다. 마지막에는 거의 뛰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낯익은 입구가 보여 여태 가느다랗게 뜨고 있던 눈에 힘을 풀었다. 다행히도 고요한 부엌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쓰 ――― .

풀벌레 소리만이 들렸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 다행이다.

호쵸는 성큼성큼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고대하던 가리가리군이 얌전히 놓여 있다. 거리낌 없이 집어 들고 포장을 벗겨 한 입 베어 문다. 푸른색 달콤함이 혀를 물들여 간다. 동시에 안도감도 가슴속에 퍼진다.

… 역시 소하야 자식, 날 겁주려고 일부러 말한 거야. 내일 반드시 따지러 갈 거니까.

아이스크림이 반쯤 매달린 막대를 입에 물고 흥얼거리며 방으로 되돌아간다. 하나, 둘, 셋. 모퉁이를 돈다. 돌아가는 길은 훨씬 쉬웠다.

3.

다음 날 기껏 찾아갔건만 소하야노츠루기는 방에 없었다. 대신 다른 영검 한 자루가 커다란 몸을 구석에 말고 있었다.

「대체 거기서 뭐 해?」

「… 호쵸 토시로인가.」

척 봐도 장신인 남자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구긴 상태에서 고개만 들어 호쵸를 쳐다본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천하오검 오오덴타 미츠요라고는 도무지 생각지도 못할 만큼 볼썽사납다. 어둡다. 바보 같다.

하여간 이 형제는 특이하다니까.

생각하면서 호쵸는 그 앞에 털썩 앉았다. 워낙 자주 들러서 이젠 제 방만큼 편안하다.

「소하야는? 없어?」

「형제라면 줄곧 원정 중이다만 ….」

「에, 진짜? 따질 거 있었는데. 그럼 오오덴타 씨가 대신 들어줘!」

오오덴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茶)를 준비하기 위해 일어났다. 순식간에 방에 꽉 차는 그늘이 생긴다.

호쵸는 방석에 앉아 먼저 내온 만주를 갉작거리며 어젯밤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어제 소하야노츠루기가 얼마나 너무했는지 이르고, 그래도 용감하게 가리가리군을 얻기 위해 방을 나선 이야기와 함께 「이치 형에게는 비밀이야.」 라는 말에 오오덴타는 떨떠름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서 결국 먹었어, 가리가리군. 그거 하나라서 이제 없을걸! 어때! 대단하지?」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는 앞사람은 별 감흥이 없어 보여 호쵸는 「뭐야, 조금 더 칭찬해!」 하고 따졌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그저 잠시 생각이 다른 데 팔린 듯 호쵸를 물끄러미 보더니 갑작스레 물었다.

「…모퉁이가 셋, 인가.」

「응? 응, 셋.」

「…아와타구치 방으로부터 부엌은 건너편 오른쪽 건물이지 않은가.」

「맞는데, 왜?」

「그런가. 잠시 실례하겠다.」

그러더니 불쑥 일어나 찬장에서 만주를 하나 더 꺼내주더니,

「먹으면서 잠시만 기다려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아.」

하고는 앉은뱅이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 나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만주는 앙금이 가득 들어 맛있었다. 알아서 차도 따라 마시면서 흘낏 보니 급한 서신을 적어 내리는 것 같았다. 쳐다보는 눈길을 알아챈 건지 오오덴타가 입을 열었다.

「… 그것으로 단 것은 참고 오늘 밤은 나오지 말아라.」

「그런 잔소리 안 해도 알 거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오덴타는 일을 마무리한 듯 자리로 돌아오더니 불쑥 여태껏 쓰던 서신을 내밀었다.

「어? 나?」

「기껏 와주었는데 미안하나 그것을 신사(神社)에 전달해주었으면 한다 … 지금 급하게 주인에게 가보아야 할 일이 생각나서.」

「에 ―!」

호쵸는 입을 삐죽인다.

「뭐야, 괜히 와서는 심부름만 하게 됐잖아!」 하고 투정을 부렸지만 만주까지 하나 더 건네며 연신 사과하는 사람 앞에서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봐주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부탁하겠다.」

부드러운 축객령과 함께 호쵸는 방을 나와 신사로 향했다.

본성에 마련된 신사에는 이시키리마루며 타로타치, 또는 네네키리마루 같은 신검(神劍)들이 있다. 신장이 다들 크기도 하거니와 신사 특유의 경건한 향냄새를 머금고 있는 검들은 어쩐지 혼을 낼 것만 같아 단도들은 잘 걸음 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신사 입구에 낯익은 검이 있었다.

「― 닛카리 씨다! 야호, 안녕!」

손을 흔드는 호쵸를 눈치채지 못한 듯 닛카리 아오에는 이시키리마루와 마주 보고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숨은 걸까?」

「…분명 숨었는데 알 수가 없어.」

숨바꼭질이라도 하나.

왁 하고 놀라게 해 줄까 생각하며 살금살금 다가갔지만, 그 순간 해가 움직여 그림자가 지는 바람에 들키고야 말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신관이 웃으며 돌아보았다.

「어서 오렴, 호쵸 군.」

「어라? 별일이네, 네가 여기에 오다니.」

「좋은 오후, 신관님, 닛카리 씨. 이거, 오오덴타 씨가!」

호쵸는 가방에 구깃구깃 집어넣었던 서신을 꺼내 신관에게 건네주었다. 어째선지 그것을 꺼낸 순간부터 두 사람이 굉장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기에 호쵸마저 의아해졌다.

「…저기, 둘 다 왜 그래?」

「아니, 조금 전 가 들렀다가 ― 아아, … 아니구나. 미안. 착각했어.」

닛카리가 말 그대로 싱긋 웃으며 갑자기 호쵸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어서 머리 모양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버둥거리며 잔뜩 화가 난 호쵸에게 그새 서신을 읽던 이시키리마루가 부드럽게 웃었다.

「건네줘서 고마워. 그리고 보니 어제 냉장고에 있던 아이스크림은 호쵸 군이 먹었니? 군것질은 적당히.」

그리고는 「그거, 내 것이었거든.」 하고 덧붙인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렇지만 오늘 밤은 나오지 말렴.」

곧장 사과한 덕분인지 다행히 상냥하게 타일러지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옆에서 닛카리가 이렇게 놀려 왔다.

「오늘은 내가 너희 방에서 백물어(百物語)를 할 테니까 어차피 못 나갈 거야. 호쵸 군에게는 무서울 테니 일찍 자는 건 어떨까?」

그러니까 귀신 따위 안 무섭다니까…!

혀를 내밀며 호쵸는 신사를 달려 나왔다. 힐끗 돌아본 뒤에서 두 사람은 아까 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찾은 것 같네.」

「…여전히 숨었지만.」

바람에 희미하게 그런 소리가 실려 오고 있었다.

4.

달이 이지러진 밤이다.

막 순찰을 할 시간에 대문으로 여섯이 들어왔다.

그것을 정복을 차려입은 오오덴타 미츠요가 조용히 맞이한다.

「제4부대 대장 소하야노츠루기. 이하 다섯 자루, 코우세츠 사몬지, 소우자 사몬지, 사요 사몬지, 부젠 고우, 코테기리 고우. 귀환했다.」

일주일 만이다. 긴 원정이었다.

소하야노츠루기는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오늘은 형제가 마중 역할?」

「그렇게 되었다.」

「부적이 필요한 일이 생긴 모양이네.」

「…그 또한 그렇게 되었다.」

오래전, 괴이가 스민 후시미성 센조지키 복도를 걷게 된 마에다 토시이에를 히데요시가 배웅하며 오오덴타 미츠요를 건넨 적이 있다 ――― 소하야노츠루기는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일곱이서 조용히 복도를 걸어간다.

복도에는 드문드문 사방등(四方燈)이 놓여 있다. 섬세한 문양이 붉은빛으로 마루를 물들이고 있다. 그 빛이 이리저리 흔들려 황천을 건너는 무수히 많은 배처럼 보인다.

어둑한 길을 일곱이서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간다.

옅은 구름이 달을 가려 순식간에 더욱 어두워진다.

곧 자시(子時) ――― .

일행들이 입을 뗀 것은 완전히 본관으로 접어든 후다.

「다행히 평화로운 원정이었습니다.」

「저는 조금 피곤하지만요. 고우(江)의 분들은 어떠셨나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꽤 좋았지.」

저마다 돌아온 안도감에 한 마디씩 말을 올리는 사이 ―――

하나 ――― .

둘 ――― .

셋 ――― .

모퉁이를 돌아간다.

끊임없이 꺾어 들어간다.

복도는 어둠 속에서 거미실처럼 이어져 있다.

서관으로 접어들자 오오덴타는 주명(主命)을 전했다.

「자시(子時)부터 서쪽 복도 통행을 금한다. 오늘 밤 순찰은 미이케의 두 자루다.」

본래라면 밤 순찰은 사몬지 검들의 차례가 된다.

그 말에 사요 사몬지가 「무언가 나오는 건가요?」 하고 묻자 오오덴타는 말없이 형제하고만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것을 보고 사몬지의 검들이 수긍하고는 「좋은 밤 되시지요.」 하고 자신들의 방으로 멀어져 갔다.

가면서 사요 사몬지가 「죄송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어, 오오덴타 미츠요는 「되레 이쪽이 더 미안하다.」 하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들의 말은 모두 주(呪)가 된다 ――― 둘 모두 천하에 손꼽히는 영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즉, 둘이 '그렇다'고 하는 순간 나오지 않는 것조차 나오게 되고야 만다. 그렇기에 둘은 이런 일에는 더욱 말을 아낀다.

고우의 검들까지 제 방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미이케의 두 자루는 입을 뗐다.

「이거야 원 … 돌아오자마자.」

「미안하다. 하지만 한시가 급한 일이니까.」

「형제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야.」

소하야노츠루기는 어깨를 으쓱한다.

「걸으면서 들을까.」

둘은 신을 꿰어 신고 뜰로 걸음을 옮긴다.

잘그락 ―― .

허리에 찬 칼이 가볍게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오오덴타 미츠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쪽 복도에 괴이가 스몄다.」

「어떤?」

「모퉁이 을 돌 것을 을 돈다.」

「음, 헤매게 만드는 녀석인가.」

「결국은.」

「구석놀이라도 한 건가?」

「저번 주 밤 순찰조라는 모양이다만.」

「과연. 수는?」

「둘.」

「베는 건가?」

「베어야지.」

「몰아서 잡을까.」

「몰아서 잡지.」

 

――― 구석 몰이를 하자.

오오덴타 미츠요는 고개를 끄덕인다.

5.

 

자시(子時)가 되었다.

소하야노츠루기가 들고 있던 등불을 끈다.

이것이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모서리가 여섯 .

막힌 내(乃) 모양을 한 복도가 이승에서 떨어져 나간다.

쓰 ――― … .

풀벌레 우는 소리만이 난다.

남쪽 모서리에서 소하야노츠루기가 속삭인다.

「형제.」

「무엇인가.」

「행여나 다른 이들이 나오진 않아?」

오오덴타가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미리 낮에 신사를 통해 뒤처리를 부탁해두었다.」

「그런가. 그럼 거리낄 것 없지.」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베자.」

「베자.」

 …

뜰을 끼고 남쪽에서 왼 모서리.

등을 맞대고 시작한다.

그대로 걷는다.

모퉁이를 돈다.

하나 ――― .

둘 ――― .

그리고,

셋 ――― 에서 기다리면 서로를 마주 보게 된다.

보통이라면 그렇다.

 

「만약 세 번째 모퉁이를 지날 때까지 마주치지 못하면?」

「열을 세지.」

「그리고?」

「먼저 보이는 것을 벤다.」

「과연.」

「그럼 갈까.」

「가자.」

 

등을 맞대고 시작한다.

발소리는 둘.

달빛은 투명하고 차갑다. 어느덧 풀벌레 소리는 멈추었다.

지나가는 방마다 불을 밝히고 있는데도 복도는 으슥한 어둠이 내려있다.

장지 너머 불빛이 아련히 바닥을 물들이고 흔들린다.

――― 삐걱,

하고 마루가 울음을 내었다.

둘은 걷는다. 엷은 어둠 속에서 본디 곧게 뻗은 마루가 구부러지고 꺾이는 착각마저 든다.

모퉁이를 돈다.

하나 ――― .

동시에 어둠 너머로 형제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하나 ――― .

나아간다.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속살거리며 밤을 깨운다.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은 길인데도 ―――

둘 ――― .

걷다 보면 접어들 곳이 나온다.

둘 ――― .

츠바(鍔)에 엄지를 얹는다.

셋 ――― .

셋에 서로의 형체를 마주친다.

「형제.」

부르는 소리와 함께 둘은 발도(拔刀)하여 그대로 휘두른다.

횡(橫)으로.

목을 떨군다.

―――― 마주 본 형제는 차고 있어야 할 칼이 없었다.

고기를 썰어내는 묵직한 감각이 먼저 나고 뒤이어 서로의 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 괴이.」

「베었다.」

발치에는 양단된 두 구(具)가 바닥을 구르고 있다.

단면에서 피가 흘러 웅덩이를 만드는 듯하다가 이내 목재에 스미듯 사라진다. 실타래가 풀리듯 덩어리를 이루던 형체가 줄어든다.

동시에 맞대고 있던 날을 풀자 챙 하는 높고 맑은소리가 울렸다. 그것을 신호로 동쪽에서 신관 차림을 한 둘이 달려왔다. 이시키리마루와 타로타치가 말없이 바닥에 죽은 것을 주워 흰 천으로 염(殮)하고 품에 담은 다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져 갔다.

축시(丑時)가 되었다.

6.

 

수를 헤아리는 것은 본디 예부터 괴이를 눈치채고 쫓는 방법이다.

원래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원래 없어야 할 것이 있다.

하나 … .

둘 … .

셋 … .

세어가면서 이치에 맞는지 헤아린다.

하나가 적지 않은가.

하나가 많지 않은가.

틀린 셈을 눈치챘을 때 괴이는 없어진다.

지옥으로 이어진다는 계단이 있다.

원래는 열 단 ―

하나 … .

둘 … .

셋 … .

… 아흔아홉 … .

걷다 보면 어느새 끊임없이 내려가 지옥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를 쫓기 위해서는 괴이를 몰아가야 한다.

하나는 위에, 하나는 아래에 선다.

마주 보고 한 칸씩 밟아 나간다.

하나 … .

둘 … .

셋 … .

넷 … .

동시에 발을 디디어 ‘다섯’ 을 말했을 때 이치에 맞아 비로소 괴이가 사라진다.

닛카리 아오에는 촛불을 불어 껐다. 줄곧 협차(脇差) 곁에 앉았던 귀신이 미소 짓고는 훈연(熏煙)에 녹아 사라진다.

백물어(百物語)가 이루어지는 곳은 아와타구치 도파의 방이다. 넓은 방에 촛불을 켜놓고 아와타구치 전원이 모여 저마다 괴담을 듣거나 하거나 하고 있었다. 평범한 여름날 풍경이지만 이날만은 규칙이 특이했다.

절대로 이야기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곧바로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찰나의 쉼 없이 흘러야 한다.

마치 경(經)을 읊듯이.

이러한 규칙을 정한 것은 닛카리 아오에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지금도 쉼 없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딱 둘을 뺀 모두가 그 주변에서 무릎을 세워 끌어안은 채로 깨어 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그렇게 닛카리를 부르고 간식까지 가져온 이치고히토후리는 정작 자신은 이야기에서 빠져 장지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무릎을 호쵸 토시로가 베고 새근새근 자고 있다.

―― 여럿이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주(呪)야.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람을 단단히 서로에게 묶어 보호하는 결계(結界)가 된다지.

닛카리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미다레 토시로는 곁에서 촛불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형제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젯밤처럼 조용히 이야기가 오고 간다.

있잖아, 아츠시. 오늘 사몬지와 고우 씨네 방에서도 백물어 한대.

그쪽은 쥬즈마루 츠네츠구 씨가 갔을걸. 괴담 소굴이네.

그, 정말로 … 끝나면 뭔가 … 나오는 걸까요 ….

그럴걸?

무섭게 하지 마, 야겐. 고코타이가 울잖아.

그런 고토도 무서워하고 있지?

시끄러워, 시나노.

그 순간 이야기하는 소리 사이에 섞여 문 바깥을 누군가 가볍게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하나 ――― .

수 세는 소리와 함께 모퉁이를 꺾어 사라진다.

그 소리에 일제히 이야기가 끊겼다.

다시 그것을 뒤따르듯이 누군가가 복도를 걸어간다. 모퉁이를 꺾는다.

하나 ――― .

발소리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져 간다.

「――― 닛카리 씨. 이야기를.」

이치고히토후리가 재촉하는 소리에 닛카리는 다시 입을 연다.

「그러면 ――― 」

다시금 방안을 기묘한 열기가 채워간다. 잡담을 나누었던 아이들도 어느새 괴담에 빠져 있다. 이치고히토후리가 무심결에 이야기를 나누는 쪽으로 몸을 기울여 호쵸는 어렴풋이 잠을 깨었다.

… 발소리가 넷 .

밤 순찰일까.

… 저 멀리서 칼 부딪치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방 중앙에서 모두가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기에 잘 들리지 않았다.

곧 호쵸는 다시 잠이 들었다. 꿈결에 발소리가 들린다.

… 어라, 이네.

그새 창호에 어스름한 새벽빛이 찾아와 스민다.

( 完 )

2024.06.24. 다시 기록하다.

w by. 김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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