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문학인

문, 한 사람, 두 사람.

부제 : 귀소본능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

우리가 해온 것들이 언젠가 파도에 휩쓸려 물거품이 된다면 그때는 놓아주는게 맞을 것이다. 정답일 것이고. 하워드는 인생에서 스스로 결정해본 것들이 많았고, 그것은 모든 사람의 선택이 그러하듯 좋을 때와 나쁠 때로 분류됐다. 구슬이라 친다면 색이 다른 것들이 한바탕인 셈이다. 그것을 모아다가 유리병에 담으면 오색찬란하고, 빛 아래에 두면 반짝임이 산란하겠지. 그러니 유리병이 깨질 정도의 격변이 찾아오기 전에 닫아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뒷걸음질 치던 발 끝. 어설프게 신은 구두. 닫히는 문과 그 틈 사이로 뱉은 이별. 문을 닫으면 끝이라고 말을 한 장본인인 주제에 돌아올 것을 기대했다. 그러자니 눈 감은 채로 만남을 기대하는 꼴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갔고,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A long trip - Time to time.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내게서, 우리가 되찾을 수 없는 미래의 나에게로.

덜컹거리는 기찻길과 헤진 부분을 천으로 덧댄 방석, 종이의 끝을 엄지 사이에 끼우는 버릇으로 인해 읽는 것에 긴 시간이 걸린 장에는 구김이 남은 책. 도서 산업과 잡지, 신문을 즐기는 활자 매체 산업의 전망이 자신의 은퇴 전 까지는 무탈하게 상승선을 탈 것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취미에 범주에 들어가는 시간들. 하워드는 자신의 이름에 활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니 이런 것들을 잡다하게 여겨 자기 머리 안에서 핑퐁 주고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스스로에게 독백했다. 특정 사람을 노골적이게 피하려고 한 것도 간만이거니와, 마음 한 번 먹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오만가지 일이 들이닥치더니 외근, 저 멀리 다른 나라도 가보고 여러 사람 틈에서 이리저리 뒤섞이고. 하워드는 자신이 샐러드가 된다면 토마토 샐러드의 치커리 정도의 역할이 좋을 줄 알았는데, 그건 사치고. 모짜렐라와 토마토가 겹쳐진 곳 위에 뿌려진 발사믹 식초가 되어서는. 이리저리 뒤섞이고 씹혔다가 맛이 변하고...지친 기색이 남은 자신의 낯을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송장보단 핏색 돌지만 피곤은 피곤이다, 이거지. 간만에 들이닥친 집에 들어서자마자 환기는 커녕 조르르. 작은 방의 문을 열고 삐걱이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눕는다. 우선 큰 일이 하나 끝났으니 쉬자는 심보가 금방 잠에 먹힌다.

오, 친애하는 루크씨에게. 당신을 존경하며 살아온 것이 이제는 16년을 채운 참입니다. ...(중략.) 그러나 제가 왜 이 지역을 떠나려고 했는지- 물론 설명해준 적도 없거니와 티도 내지 않았지만-그 시작점 인 사람에게 인터뷰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득 따지고 싶을 따름입니다. 귀하의 친애하는 제 3 편집장 포스턴 하워드 올림. 마음 속의 자그마한 사표와 권총은 품 속으로 나오지 않고 상상에서만 그친다. 물론 권총은 평소의 생각 '버릇' 같은 것이므로 상시 대기중이다. 실제의 품 속에서도 말이다. 생각과 독백 다 잘라먹고 앞으로 돌아오자면, 그래. 하워드는 단 한 번도 재회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지 몰랐다. 그리핀 호텔의 '그' 비서 힐 씨와 만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가장 깔끔한 코트와 왁스칠까지 한 구두를 챙겼다. 향수는? 오- 친애하는 로-제-딕, ⋯ ⋯. 그래, 인정하자. 포스턴 하워드는 다시 속이 울렁거리다 못해 끔찍한 생각까지 머리를 적셨다. 얼마나 눅눅하게 만들었는지 샤워를 하지 않고 나서도 괜찮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샴프, 린스, 트리트먼트와 바디 워시 및 로션은 별도 서비스. 대강 합쳐서 단 돈 30달러 정도. 팁 문화까지 첨가하면 38달러. 음, 그 정도라면 다른 식료품을 사고도 남을텐데. 정돈이 잘 된 인조 바닥을 따각따각 소리로 딛어가며 길을 건너간다. 직원이 안내를 하고 예정된 장소로 향한다. 깔끔하단 느낌을 주는 카펫은 미끄러짐을 줄이고자 약간 거친 감이 있었다. 보기와는 다르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 실례. 문을 열어주기까지는 직원의 정돈된 동작에 고개를 한 번 까딱 숙이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무실에 들어간다. 문이 닫힌다. 장면 클로즈.

형식적인 질문과 주고 받음. 이번에 대거 성공을 이루게 된 건에 대해서는, 블라블라.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소감은, 블라블라. 돌아오는 답이 매끄럽기라도 했다면 이 메슥거리는 속이 확 눌렸을텐데! 그러긴 커녕 초짜의 형태로 따박따박 대답이나 하는 꼴이 얼마나 우습던지. 이러는 와중에도 포스턴 하워드 이 작자는 저 소파 건너에 앉은 사람에게 닿고 싶어 안달이 난 꼴이어서는. 수첩을 닫지 않은 채로도 질문 던지니 또 얼떨결에 답이 오고. 일어설 즈음에야 고작, 고작 꺼내는 말이. 시력이 많이 나빠졌어? 라니. 내가 그 질문에 뭐라 답을 하면 도대체 좋은지. 그래도 착실히 역할은 수행해야지. 코 박고 책만 읽으니까. 오, 하워드. 비꼬는 솜씨도 죽었어. 그런 맥 없는 답이라니. 눈가를 문지른다. 괜히 더듬기까지. 그래야만 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보단 나이가 들어서. 뻐근해져서겠지. 그래도 말을 더듬거나 문장을 끌진 않았다. 스스로에게 10 정도의 가산점 추가. 늦게까지 불을 킨 채로 책이나 읽으니까 그렇지⋯ 아, 이건 상대에게 마이너스 10 스코어.

구두 밑면으로 바닥을 눌러 일어서고는, 코트를 정돈하고자 잠깐 잡아당긴다. 허, 하는 기가 차다는 숨은 무의식에서 퍼져 튀어나왔다. 모호한 말을 듣는 것엔 질렸다는 신경질적인 말을 뱉은 뒤 어디 한 번 낯짝이나 보자 고개 돌렸는데, 새하얗고 퍼석한 피부가 아니라 새까맣고 정돈된 정수리나 보이고 앉아있기는. 끈과 가죽의 재질, 나아가 엮이는 매듭의 방향조차 다른데 스스로의 구두 코만 봐봤자 도대체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지. 하워드는 걸어가서 그 앞에 한 쪽 무릎을 꿇는다. 애샬 힐. 이름을 혀 끝에서 튕기기도 전에 볼품없는 말이 나온다.

"인터뷰 끝났으니 저녁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

"괜찮, ⋯혹시, 하워드 기자의 시간이 조금 있는, 괜찮은지⋯⋯."

불쌍한 여자. 사람 하나 못 잊어서 이렇게 말라빠진 몸 가지고 일을 해왔다는 건가? 기가 차다. 이런 인간을 꾀어내려고 하는 스스로는 역겹고. 허벅지 위에 느리게 손을 올리고 느릿-하게 살갗을 문지른다. 스토브에 올려둔 김이 찬 냄비가 소리를 미처 내지 못하고 달그닥거리는 음이 사람의 성대에서 구현될 줄은 몰랐는데, 애샬 힐의 목소리는 그랬다. 이 멍청한-힐은 그런 말 밖에 내뱉지 못한다는 것 마냥 단어를 뱉고 제 눈치를 보고 앉았다. ⋯싫어? 오, 애샬 힐.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이었는데. 한 5년도 전에.

그러니 모든 건 홧김이라고 변명한다. 허벅지를 받침대 삼아 밀어내며 일어난다. 손이라도 닿는다면 로맨스 씬이니 입만 닿게- 입가에 입술을 눌렀다 떼어낸다. 목소리가 겨울 바다에 버려진 새끼 같은 음에 가깝군⋯ 반대 편에도 마찬가지로. 솔로몬이 공평하게 하라고 한 것엔 이유가 있기 마련이므로 고대 적의 규율을 착실히 수행한다. 악질적인 버릇은 그 뒤의 일이다. 손가락 한 쪽이 상대의 꽉 막힌 셔츠 단추를 톡톡 건드린다. 목 사이의 틈에 집어넣어 약간 당기고, 그렇게 벌려진 단추와 천 사이의 홈에 엄지를 붙여 하나를 풀어낸다. 꿀꺽. 울렁거리는 목의 울대. 왜 우리가 침 삼키는 것을 '꿀꺽'이라고 표현하는지 알 수 있는 거리에서 소리를 듣자니, 참, 기분 하나는 깔끔하다. 스치듯이 마주하는 시선에서 긴장과 불안-당신이?- 스쳐지나감을 확인하자마자 괘씸해지기까지 한다. 허벅지를 잡아 그대로 뒤로 당기고, 부딪히지 않도록 애샬의 허리 밑부분을 잡아 제 굽힌 무릎 위에 올려둔다. 복부에서 가슴 아래의 선 까지 밀듯이 손을 움직이면 정장 위가 우글거리기까지 한다. 신문이 밀려 접히는 것과 다르게 천은 질이 좋으면 좋을수록 접히는 면이 깔끔하다. 어지간히도 돈을 부어넣고 신경을 쓴 모양이지. 외피가 이렇게 번드르르하면 뭣하지, 속은 영⋯⋯.

"⋯나 파혼했어. ⋯그, 입에 올리기엔 좀 지난 건인 것 같지만⋯."

이 말을 변명에 가깝게 하는 것 부터가 나약한 속의 심지가 더 꺾였음을 확인하게끔 돕는다. 너는 참 어렵사리도 꺼낸 말이라서 단박에 뭐라 할 수도 없거니와. 본인, 그러니 하워드 조차 괜히 분위기가 옮아 나약해빠진 말이나 구현한다.

"날 사랑하나, 힐?"

"미카엘, ⋯."

"이깟 저열한 성희롱을 뿌리치지 않을 정도로⋯⋯. "

하워드, 그러니 미카엘은 코트를 구기지도 못하게 자신을 잡은 손에 이끌린다. 무릇 새라는 것은 계절이 변함에 따라 먹이가 풍부하고 저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며, 아주 먼 곳에 떨어져도 원하는 길과 방향에 맞춰 날아 돌아갔다가 오기를 반복한단 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귀소본능이라고 명명했다. 연어가 강 하류에서 상류로 꼬리를 마구 쳐대며 올라가는 장면도 이에 속한다. 이마를 어거지로 맞대고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다. 목 뒷편에서 긁혀 나오는 신음은 '애샬'이라는 이름을 모방한다. 그러자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는 손. 훅 하고 풍기는 서류와 잉크의 향기. 자신에게서도 나는 것. 그러니 직장인들의 고질병에 가까운 체향이지만 너와 나의 공통점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맡을 적이면- 야박하게도! 기뻤던 내음. 그걸 다시 맡을 수만 있다니.

"고작 저녁 약속 하나만⋯"

"그것 만이라도, ⋯⋯. 미카엘. 그것 만이라도⋯"

"아침에 널 마중해주는 약속도⋯ 허락해줘. 점심때 잠깐 마주치면 다가가, 남들이 못 보는 곳에서 기대던 알량한 짓들도. 밤을 지나, 아침이 하늘을 갈라 오는 시간대에 곁에 있어 달라는 기가 찬 약속들까지⋯⋯."

"내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을래? 아니, 그래주면⋯ 좋, 좋겠어. 어. 하고 싶, ⋯싶어."

"밤마다 나는 귀찮은 요구를 할 거야. 네가 그걸 다 들어줄 때 까지 누워서 시위까지 할 거야. 그런데도,"

"뭐든⋯ 무엇이 됐든, 네가 내 곁에⋯⋯."

"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원한다고 말을 해."

말을 하다 보면 눈물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온다. 이것이 도통 40을 훌쩍 넘은 사람들의 대화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오, 그러니 사회에서 추구하는 '40대 시티 맨의 모습'이라곤 도저히 볼 수가 없는- 단어엔 알량함과 투박한 묘사들이 줄줄이 이어져 기차를 만든다. 그리고 이 기차는 자신만 아니라 상대도 만들어내는 것에 동참하고 있는 관계로, 기차는 열차 노선이 한참 길게 이어질 곳으로 방향을 틀어 안전 운행을 해야 할 것이다.

"너를, 원, ⋯원해. 너도 그렇다면, ⋯⋯그, 그렇다면⋯ 너도, ⋯그래?"

물론 운전사끼리의 안전 방침은 아직 제대로 정해둔 것이 없는지라, 편히 쉬고 있는 승객들과 달리 앞의 갑판에서는 좌충우돌 말이 오가야 할 것이다. 양 손은 허리를 받치는 것이란 목적과 함께 자신의 품에 한껏 닿도록 하는 목표를 달성하게끔 소파와 애샬의 정장 사이에 집어넣는다. 고작 한 사람 분 만큼의 감정이다. 고작 한 사람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애샬 힐이란 이름의, 자기 하나 못 잊었단 이유 하나 만으로 그 사회적인 역할 한 꺼풀. 한꺼풀을 벗겨내 자신을 기다려온 사람이다. 그런 너를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무엇보다 큰 죄가 될텐데. 이 여자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그러나 다행인 점 하나.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너는 나를 미카엘이라 부르고, 나는 너를 애샬이라고 칭한다. 자신의 마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너무나도 의심한 나머지 '원한다'라는 기초적인 단어조차 쉽게 뱉지 못하는 유약한 심장. 물을 오래 삼키지 못할 갈라진 목청. 달달 떨리는 입 끝. 그리고 오롯이 저만을 바라보는, 저 동그랗고, 쉬이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끔 하는 시선⋯

"너는 여전히 나에 대해 잘 모르는군. 누가 질 낮은 사람인지 걸러내지도 못하고, 누가 네게 해가 되는 존재인지 분별하지도 못하고⋯"

"넌⋯ 너는, 그런.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미카엘, ⋯나, 나를 이렇게 만드는 사람도 너 뿐이고⋯"

"너를 사랑하지."

"⋯날, 나를 사, 그런 일을 겪고도 너는⋯ 사, ⋯사랑을, ⋯⋯."

"애샬 힐. ⋯그래, 애샬. 너를 사랑해서 돌아왔어.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젠틀맨과 젠틀레이디 투성이인 도시로. 수출과 수입의 사람 항구인 지역으로⋯ 그러니 이제 한 번만 더 그 허튼 소리를 했다간 나 혼자 혀 깨무는게 아니라 네 것 조차 물어버릴 거야. 목숨 간수는 잘 하셔야지, 그리핀의 힐."

"⋯힐, 힐은 싫어."

"내 애샬."

"그건⋯"

"마음에 들어?"

"어⋯⋯. 무척이나, ⋯내, 나의, ⋯나만의 미카엘."

이제야 맞는 소릴 하는군. 입맞춤 한 번. 인터뷰 할 적엔 어리버리처럼 굴었으면서. 말을 실컷 하니 혀가 풀린 모양이야. 눈물 범벅이 된 낯들 위로 목소리와 숨소리가 교차한다. 한 번 더 천을 그러쥐는 소리. 그리고 여전히, 그리핀 호텔의 안내자가 닫아둔 형태 그대로 닫혀있는 비서실의 문. 그렇게 한 사람이 들어갔고,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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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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