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츠카 자매] 약점

[짧막한 연성 주제] http://me2.do/FxZxHgl5 진단 시리즈 - 아마츠카 자매 편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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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도 가문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으니 더더욱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원로들에게 안건을 올릴 때에는 거듭 생각하여 신중하게 말을 올리고."

"네, 압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네 약점을 보이지 마라."

현 가주이자 아비인 이의 말을 담담하게 듣고 있던 미치루가 눈을 떴다. 이제 막 성년을 넘긴 앳된 얼굴에는 단정한 기품이 어려 있었고, 눈빛은 초목처럼 단단했다.

이내 고운 입술이 열리며 정해진 대답을 읊었다.

"여부가 있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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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연상하는 색채는 어미에게서 물려받았고, 세세한 이목구비며 성격은 아비를 빼닮았으니.

그는 누가 보아도 아마츠카家의 장자이며, 머지 않은 미래 가문을 짊어질 적임자였다.

길면 5년이 넘어가고 짧으면 5년 내에 준비가 끝나리니.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가문의 이름에 걸맞은 몸가짐을 익히고, 마음을 수양하며, 배움을 받았다. 지금껏 간간이 정계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얼굴을 비추긴 했으나 이제부터는 전처럼 그 무게가 가볍지 않을 터였다.

미치루는 밖에서 대기 중이던 고용인이 열어준 쇼지를 통해 밖으로 나오며 한숨을 삼켰다. 그의 뒤로 조용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날 때부터 자신의 것으로 내정되어 있던 자리요, 책임이었다. 미치루가 자라며 가문의, 원로들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방계에게 빼앗겼을 수도 있지만.

미치루는 자신이 그 자리의 적임자임을 증명해냈고, 그것에 앉을 날을 바로 앞에 두었다. 원로들은 미치루를 끊임없이 시험하면서도 만족해했고, 고용인들은 이미 미치루를 주인처럼 여기고 모셨다.

답답하다. 이 길이 내가 걸을 길이거늘 어찌 이리 답답한 겐지.

따라붙으려는 사용인들을 물리고 미치루는 그저 걸었다. 그리 다다른 곳은 저택 사람들은 잘 가지 않는 부지 외곽에 있는 작은 연못. 사람의 손을 잘 타지 않아 돌에는 이끼가 끼고 잡초가 성큼 자라난 그곳을 미치루는 가만 내려보았다.

기껏해야 성인 너덧 명의 팔 길이를 합친 둘레를 가진 이 소박한 연못에도 물고기가 살았다. 가끔 어리석게도 물에 빠져버린 벌레를 먹는 것인지, 아니면 따로 먹이를 주는 이가 있는 건지.

이럴 시간이 없음을 앎에도 미치루는 잠시 그 작은 생태계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나마 마음을 내준 동년배의 혈육은 이국의 땅으로 떠나갔고, 이 거대한 저택에서 의무를 수행할 이는 그 자신뿐.

약한 면을 만들어선 안 된다. 나약함을 내비쳐선 안 된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물 위에 여린 파문을 그을 때마다 미치루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가 고개를 든 것은 그의 뒤편으로 투둑, 하고 작은 돌이 굴러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언니."

"아게하. 날 찾은 것이니?"

아게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를 닮은 황금색 눈동자가 제 언니를 올곧이 담았다.

이제 곧 중학교에 입학할 어린 동생이 저와 무리없이 눈을 맞출 키가 된 것이 새삼 놀랍고도 대견하여, 미치루는 희미하게 웃었다가 이내 미소를 지웠다.

"아무도 너의 곁에 없는데. 누가 네게 내 위치를 알려줬으며, 너를 이곳에 혼자 오게 한 거니."

"내가 혼자 가겠다고 했어. 알려준 사람은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네가 혼자 오겠다 말했어도 열 걸음 뒤에서 따라왔어야지. 누군지 정말... ... ...되었다. 머리만 아플 일이지."

미치루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등으로 이마를 짚는 모습을 아게하는 가만 바라보았다. 언니에게서 자주 보는 표정이었다. 자신을 한껏 사랑스럽다는 듯 온화한 눈길로 바라보다가도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처럼 차갑게 변하는.

봄은 찰나요, 여름의 뜨거움만이 이어지나니. 아게하는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그 안에 맴돌던 말들은 지는 낙엽처럼 부스러져 싸래기 눈처럼 넘어가 버렸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저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여름의 열기가 제게 오롯이 향한다면 녹아 없어질 게 두려운지. 혹은, 봄날이 먼저 알아주길 바라는지.

"날도 다 풀리지 않았는데. 기다려도 될 것을 그리 하지 않고.."

미치루는 동생의 손을 잡았다. 커가고 있다지만, 저에 비하면 훨씬 작은 손이었다.

처음 아게하를 보았을 때부터 미치루에게 아게하는 연약하디 연약한, 지켜주어야 할 아이였다.

소중한 동생에게 가슴 안에 담긴 애정을 모두 퍼서 부어줄 수 없다는 것에 또 한 번 속이 답답해진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마음껏 사랑한다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미치루는 이번에도 선을 그었다. 넘을 수 없는 선으로 스스로를 고정하고, 마음 안쪽에서 열리려는 문을 단단히 닫았다. 그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 정당한 후계자가 되도록. 그의 아비가 그러했듯.

"이만 돌아가자꾸나."

미치루는 아게하가 눈을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날 때부터 말수가 적은 아이라, 제 의지를 표현하는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타박, 타박. 키 차이는 그리 크게 나지 않지만 몸짓이며 걸음이 느린 동생의 보폭에 맞춰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며, 미치루는 생각했다.

이 아이가 굳세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을 하기를. 모든 것에서 자유롭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애정을 주지 않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일지도 몰랐다.

그리하면 그의 동생은 가문 사람들의 시선에서, 압박에서, 주변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또한, 그 누구도 아게하의 존재가 미치루의 약점이라 여기지 않으리라. 정은 있되 데면데면한 자매 사이. 그래, 이 정도가 나았다.

자신은 약점이 없어야 할 사람이며, 아이는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고 훨훨 날아가야 할 이이니.

미치루는 제 선택이 옳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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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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