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W 사자나미 미우] 바다,

【사자나미 미우】 RW 캠페인 1부 PC5로 가는 중 / 히어로명을 짓게 된 계기에 관한 사건 (2023.09.26 작성 퇴고 없음)

(*쓰면서 들은 브금)


악몽과도 같은 시기였다.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다.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숨을 죽였다.

희망마저 불살라진 채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이들의 꿈은 현실인가 환몽인가. 희망을 놓지 않고 끈을 붙잡아 쥔 이들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는가.

사자나미 미우는 고요한 눈으로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잿빛 구름이 낀 어두운 하늘 아래의 바다가 불길하게 요동쳤다. 지평선에서부터 소금기를 실어온 미적지근한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옷에 달라붙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빛은 존재한다. 단지 눈이 가려져 느끼지 못했을 뿐.

이 악몽을 깨트리기 위해 모인 이들이 있다. 망막에 달라붙어 있던 절망을 걷어내고 그 눈 속에 불씨를 틔워주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자들.

사자나미 미우 또한 그런 자들 중 하나였다.

그는 지금 검 한 자루만을 쥔 채 바닷가에 자리한 작은 마을들을 등지고 서 있었다.

이미 다른 곳에 위치한 – 바다와 가까운 향보며 어촌들이 피해를 입고 얼어붙은 상태였다. 레니게이드를 품은 거대한 해일이 마을을 덮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방관하다 그대로 얼린다. 그저 누군가의 하잘 것 없는 욕망으로, 재미와 심심풀이로 이루어지는 재난.

그 재앙(災殃)을 막기 위해 이곳에 왔다. 상대적으로 도움을 구하기 힘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홀로 이 자리에 섰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해하는 이가 있다면,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지키는 이 또한 있음이 옳지 않은가.

미우는 흐름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불온할지언정 그저 흐를 뿐이던 바닷물이 들썩거렸다. 그 요동이 반복될 때마다 일어서는 물결이 커져갔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중앙에서부터 양옆으로. 이내 하늘을 덮으려 하듯이.

“호운. 네가 진정 하늘을 베어넘긴 검이라면,”

몸집을 불려가는 해일에 잔잔한 시선을 던지며 미우는 허리춤에 찬 검집을 쥐었다. 바다와 하늘은 꼭 맞닿아 있는 것처럼 그 색도, 빛도 닮아 있으니.

“저 물결을 베지 못할 리 없다.”

천참도(天斬刀). 까마득하게 먼 옛날, 사악한 존재들에 의해 신들의 눈이 가려져 지상에 고통이 내려앉았을 적. 하늘을 베어 갈라 시야를 틔우고 구름을 피워내었다는 도검.

“너를 믿는다. 그러니 너도─”

그 전설이 진실이라면 지금 이 순간 힘을 발휘하리니.

“네가 선택한 주인인 나를 믿어라.”

낡아빠진 검집 너머로 웅웅, 공명이 울렸다. 의지에 화답하는 듯한 그 진동에 미우는 엷게 웃었다. 검을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빼어내자 드러난 검신은─ 이가 빠져 볼품없는 몰골이 아닌, 구름을 벼려낸 듯 희게 빛나는 날카로운 모습.

그 검날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어느새 하늘은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고 어둑하고도 장대한 파도가 모든 것을 씹어삼킬 괴물의 아가리처럼 벌려졌다.

미우는 한 발을 뒤로 뺀 채 자세를 낮추며 검파(劍杷)를 쥐었다. 두려움 같은 것은, 없다.

‘지킨다. 그것이 나의 사명.’

힘이 있는 이에게는 그만큼의 책무가 따름을 배워왔다. 권력을 가졌다면 더 좋은 사회를 일굴 수 있도록, 지력을 지녔다면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도록.

무력이 있다면, 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힘을 휘두를 때의 책임. 가진 자의 의무.

그의 뒤편에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대피시키기에는 주변에 마땅한 장소도, 충분한 시간도 없었다. 그렇기에 도리어 한 데 모았다. 아직 수많은 것을 구하기엔 한없이 미력한 그가 온힘을 다해 온전히 수호해내기 위하여. 그것이 그의 한계, 그러나 한계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일어서던 해일이 마침내 기울어졌다.

그저 떨어지는 것만으로 생명도, 터전도 무사하지 못하게 될 거대한 물결.

그가 할 일은 단 하나였다.

‘베어가른다.’

 ── 拔刀. 

허공을 스친 바람 한 점을 지표 삼아 공간을 접었다. 희게 빛나는 검신이 파도 끄트머리에 걸린 잔물결처럼,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처럼 길게, 길게 늘어졌다.

모종의 힘으로 뭉쳐져 있던 바다의 일부가 단단한 금속을 불에 달군 쇠로 부수듯 거칠게 갈려져간다. 물보라가 피처럼 튀고, 물거품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물을 가르고 그 속에 내재된 레니게이드를 도륙하여 빈자리에 제 인자를 채운다. 그것의 반복, 지속, 연속.

‘적이 무고한 이들의 터전을 갉아먹으려는 재앙이라면,’

등 뒤로, 마을로부터, 이 일대를 채운 그의 인자를 통해 사람들의 고동이 전해져온다.

‘나는 어떤 재해에도 무너지지 않는 성벽이 되리.’

두려움, 무력감, 절망, 간절함, 기대감, 희망.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어둠에도 잡아먹히지 않은 불씨를 온전히 피워낼 수 있도록 할 때였다.

두 갈래로 갈라진 해일이 힘없이 엎어진다. 마을을, 사람들을 피해 쓰러진 파도가 주변의 나무와 바위를 우그러뜨리고 사면으로 흘러내렸다.

미처 가라앉지 않은 잔물방울이 비처럼 지상을 두드렸다. 지상에 앞서 공중에서 그 잔물결을 맞던 미우는 발이 땅에 닿기 전,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끝도 없이 깊은 바다를 향해, 그 밑바닥을 드러내고자.

그리고 그 아래에 추악함을 감추고 있던 악한을 끌어내기 위하여.

“악()은 끝났소.”

양옆으로 갈라진 물의 벽 사이로 드러난 고운 모래 위, 당혹과 공포로 일그러진 재(災)를 향해 하늘의 철퇴(羽)가 내려졌다.


“히어로명…… 인가.”

“그래, 히어로라면 당연히 히어로명이 있어야지. 참고로 나는 “디아볼로스”다!”

“당신은 그 이름을 참 좋아하는군. 흠. 사자나미 미우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역시 조금…… 문제가 있을 것 같소?”

“뭐…… 그러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잘 생각해보라고. 좀 더 좋은 이름들이 많이 있을 거 아니냐!”

빌런즈 이어 시기에 과거의 앙금과 오해를 풀고 친우가 된 “디아볼로스” 카스가 쿄지의 말을 들으며 미우는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함에 있어 이런 부분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퍽 새롭게 느껴졌다. 어차피 치러야 할 절차라면 반발할 마음은 없지만…….

“코드네임……, 히어로명은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는 또다른 이름! 정 고민된다면 네가 이제까지 쌓은 공적 중에서 따오지?”

흠…… 하고 떠올려보던 미우는 이내 제 허리춤에 자리한 낡은 검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하늘을 베어 넘겼다는 검. 또한 바다를 갈라낸 도검.

미우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의 일이 일부 사람들에게 알려져 퍼져나갔으며, 그중에서도 어떤 이들이 그를 특정한 칭호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도 알았다. 그에게는 과분하다 생각되는 이름인 것 또한. 그 부분에 있어 방금 제가 떠올린 것은 제게 더 들어맞으리라.

“정하였소.”

미우는 펜을 들어 히어로명을 적어내렸다. 붓글씨를 쓰던 습관이 배어 있어 글씨에 필기체의 느낌이 묻어났다.

“오, 뭐로 했나?”

서류를 보기 위해 기웃거리는 카스가 쿄지에게 미우는 잔잔한 미소를 띤 얼굴로 답했다.

                         

“앞으로는 나를 《바다를 가른 자》로 부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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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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