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케이크

최비연(@ paranoiri) 글 커미션 작업물

“마약이 들어 있는 것 같네.”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던 의뢰인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런 그를 보는 탐정-야닝 도노반-은 단서를 잡아 기쁘다는 말도, 착잡하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파이프 연기를 뻑뻑 내뱉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사랑하는 상대의 결혼식 케이크 안에, 10킬로그램의 마약이 들어 있다는 소식은 썩 유쾌하지 않았으니까.

이번에 낯선 여자와 결혼식을 치른다는 그는 소위 말하는 뒷세계와 깊게 연관된 가문의 사내. 그렇다 한들 가문의 일에 동조할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야닝이 가장 잘 아는 사실이다. 악에 일말의 동정심도 없으나 결국은 그 악을 위해 처음 보는 이의 입술에 입을 맞추어야 하는, 그 처연한 눈의 남자는 그런 사람이다.


야닝 도노반이 덴 제임스 바벤베르크를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이었다. 명문가라 이름이 자자하던 그 썩어빠진 가문에서 핀 덴은 꺾이지 않기 위해 야닝을 찾아왔고, 그와 함께 보낸 한 해는 퍽 사랑스러웠다.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정의하는 일에 도가 튼 자신이 덴을 어리고 귀여운 강아지쯤으로 잘못 정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야닝은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를 해고한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 덴이 결혼한다는 말을 처음 전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의뢰인이었다. 덴의 결혼식은 사랑하는 남녀가 영원을 약속하는 행위 따위가 전혀 아니었다. 가문 간의 마약 거래.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공교롭게도 바벤베르크 가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고, 곧 야닝에게 몰락을 의뢰해 왔다.

야닝은 옛정에 사로잡혀 있기에 너무나도 영리했다. 그는 냉정함을 발휘해 거래되는 마약의 양을 빠르게 파악했다. 무려 10킬로그램. 이런 어마어마한 양을 설마 당당하게 주고받지는 않을 테다. 하객 모두를 들뜨게 만든 3단 케이크의 소문이 들려왔을 때부터 얼추 예상은 했지만, 탐정에게는 언제나 물증이 필요하다. 주방에 잠입한 뒤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이 안에 마약을 넣어 조달할 작정이구나.

“3단으로 된 거대한 케이크를 만들기에는 재료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어. 자를 부분만 진짜 케이크로 만들려는 듯하더군. 결혼식에서 화제의 중심에 오른 케이크를 커팅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간 누군가는 의심할 테니 말이네.”

소문을 사전에 들었더라면 하루 정도는 사색에 잠겼을 야닝이 덧붙였다.

“나 같은 누군가는.”

“허, 이 여우 같은 자식들. 먹이를 잘도 숨겼군.”

의뢰인이 손을 비비며 킬킬거렸다.

“상관없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케이크를 잘라주쇼. 빵부터 마약까지 싸악.”

“이보게.”

야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문의 몰락을 원한다면 경찰에게 밀고하는 방법도 있네. 마약이 일반 대중에게 노출되었다가는 뜻하지 않은 피해자가 생길 수도…”

그 말에 의뢰인은 눈을 치켜떴다.

“탐정 나으리.”

아, 어쩔 수 없는 건가.

“지금 내가 뭘 원하는 건지 감이 안 잡힙니까?”

마약으로 들어찬 너의 결혼식을.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있든 간에, 이번 결혼식은 두 가문의 합일이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행사 속에서 커팅을 진행할 사람은 오직 둘.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케이크가 산산이 바스러지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그중에 한 명은 구워삶아야 했다.

일면식 한번 없는 범죄자 가문의 여자, 혹은.

“결혼 축하하네, 바벤베르크.”

그 여자의 남편 될 사람.

적막만이 감도는 신랑 대기실에서 덴은 표정을 숨기려 애를 써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그의 특기였다. 그 앞에서 야닝은 녹색 머리칼을 한 번 쓸어 넘겼다. 덴이 선물했던 흰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채였다. 옷을 알아본 순간 덴의 특기는 빛을 잃었다.

“…축하라고요.”

덴이 떨리는 눈으로 내뱉었다.

“여기 오신 이유가 뭡니까, 도노반 님.”

“나는 자네의 결혼식을 축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겐가?”

야닝의 선명한 황색 눈이 덴을 향했다. 덴의 다음 말을 예상해 보려는 듯했다. 그 예상을 깨고서 덴은 침묵했다. 이런, 한 치도 예상할 수가 없구나, 바벤베르크.

“…결혼식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더군. 아름다운 식장, 성대한 규모. 특히…”

야닝은 고개를 돌렸다. 목덜미를 쓸어 넘기며 시선만으로 덴을 보았다.

“웨딩 케이크에 대한 소문이 들어줄 만했네.”

“…케이크요.”

아무리 가문을 사랑하지 않는다 한들 덴은 바벤베르크 가의 사람이다. 자신의 가문에서 무슨 거래가 오가고 있는지 모를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번 거래의 주역이 아닌가. 그래, 나를 찾아온 건 단지 의뢰 때문이었구나. 그보다 덜할 수도, 더할 수도 없었지만 내심 더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므로, 덴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의뢰 때문에 오셨다는 거죠.”

작은 침묵.

“5년 전과 전혀 변함이 없으시군요.”

안다. 5년 동안 한 번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었으니 아주 선명하게 안다. 덴을 보내고도 야닝은 끼니 하나 거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야닝이 미웠다. 그런 야닝을 마주하고도 첫인상에는 안도감부터 들었던 자신이 더욱 미웠다. 아, 내가 없다고 밥을 굶지는 않았구나.

“의뢰가 아니라면 내가 무슨 이유로 자네를 찾아오겠나.”

야닝이 눈을 피했다. 늘 날카롭던 그의 시선이 다소 무뎌져 있었다.

“조금은 다른 이유일 줄 알았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암묵적으로 두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 덴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야닝을 좇아, 말하지 않는 진실을 말해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기다림에 보답하지 않는 침묵이 그 짧은 수명을 다해갈 적에, 덴이 입을 떼었다.

“도노반 님.”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저를 사랑하셨습니까?”

갈 곳 없는 마음이었다. 머무르게 내어주리라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곁에 앉지 못하고 그친 마음, 그뿐이었다. 들어갈 수 없게 닫아버린 빈방의 앞에서 대뜸 던진 질문에, 야닝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인가.”

“저는 도노반 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묻는 거예요.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저를 해고했고 어떤 심정으로 이곳에 있는 거냐고요. 당신은…”

서운함, 일종의 원망, 날이 설 대로 선 말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당신은 제게 뭘 원하시는 거죠? 단순히 제 손으로 제 결혼식의 케이크를 부수는 것, 그뿐인가요? 도노반 님, 저는 마약으로 채워진 케이크 앞에서 거짓된 서약을 할 마음 따위 없었습니다. 저를 꿰뚫어 보고 계시잖아요, 정말로 모르셨던 거예요?”

야닝은 말이 없었다. 다시 침묵, 그것을 견디지 못한 덴이 읊조렸다.

“이번이 마지막인 것쯤 알고 계시죠. 당신 말을 들어주면 전 제 가문 사람들과 함께 구속될 거고, 그러지 않는대도 다시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시간이, 없다.

“저는 묻고 싶어요. 저를 사랑하셨다면, 저와 같은 마음이었다면 왜 그날 저를 해고하신 것인지.”

정말로.

“저를…”

정말로 없는데.

“정말로 저를 싫어하셨다면… 왜 그날 제게 웃어주셨나요…”

덴이 눈물을 보인다. 케이크를 부수도록 설득해야 한다. 설득을 해야 이번 의뢰가 성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머리로는 안다.

“…그래. 그렇다면 책임지겠네.”

하지만 다른 곳에 물어보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 한다.

“자네가 아직도 나를 믿고… 사랑한다면.”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야닝이 덴에게 다가간다.

“이제 와서 그런… 그렇게까지 이 사건이 중요하신 건가요? 제 마음을 가지고 장난-”

순간이었다. 야닝의 메마르고 작은 입술이 덴을 덮친 것은. 사랑하는 이의 입술을 감히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조수의 연마저 끊긴 탐정의 주변인으로서는 당신의 속내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언제나처럼 덴은 그저 야닝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었다.

이게 마지막일까, 두 번 다시는 없는 기회일까. 잘게 몸을 떨며 잠깐의 시간 동안 수많은 희비가 교차한다. 덴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근원이 너무나도 확실한 맑은 물을 눈시울에 머금고 버거운 듯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야닝을 받아낸다. 길게 늘어지는 타액과 함께, 두 사람은 흐릿하게 눈을 뜬다.

아, 처음 보는 표정이다.

시간이 없었다. 그 찰나마저 전부 써버렸다. 야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미련도 없는 사람처럼 방을 뛰쳐나간다. 덴은 그저 힘없이 벽에 기대어 주룩 하고 미끄러질 뿐이다. 쓰러진 그가 멀어지는 그를 바라본다. 품에서 은은한 장미 향이 감돈다. 귓가에서 맴돌던 환청이 윙윙 울려대며 커진다.

익숙한 종소리다. 이제 식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X발.”

야닝은 거칠게 욕지거리를 읊조리며 식장을 나왔다.

“더 볼 것도 없어. 실패다.”

결국에는 그를 설득하지 못했다. 결혼식장을 등진 야닝의 손아귀에 남은 것은 충동적인 행동뿐이었다. 주황빛이 스쳐 간 입술은 씁쓸하고 발걸음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짙게 묻어난다.

“마차나 잡게.”

야닝은 의뢰인이 기다리는 마차로 신경질적인 걸음을 재촉했다. 같은 마음이었던 상대를 그렇게 보낸 것에 대한 후유증일까. 귓가에서 환청이 울린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만 같다. 입을 모아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만 같다.

환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잠시 후의 일이었다.

야닝은 식장으로 달렸다.


말라붙은 눈물 자국과 붉어진 눈시울,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하던 셔츠는 간데없고, 구김만 가득한 예복을 넝마처럼 걸친 채 그가 나타났다. 신랑은 무슨, 하객으로서도 최악의 몰골이다. 덴은 크게 술렁이는 하객들 사이로 여유로이 버진 로드를 걸었다. 다시금 케이크의 앞에 서서 옅게 웃는다. 달콤한 겉껍데기 안은 마약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조금 전의 키스처럼.

멀어지는 야닝의 뒷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지금 하려는 일이 옳은 것인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아, 당신 앞에서는 무언가를 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니까요. 항상 당신만을 좇았기에 알 수 있어요. 아무 말도 필요 없어요. 전부 느끼고 있으니.

대답이야 뻔했다.

참, 이렇게나 훤하게 대놓고 오가는 거래를 아무도 망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건가, 오만하긴.


그 뒤는 야닝이 들어와서 본 그대로다. 대기실에서의 그 잠깐 사이에 미쳐 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신부는 뒤로 한 채, 엉망인 몰골로 케이크를 잔뜩 짓밟고 있는 신랑.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기행이었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듯 높고 단단하던 3단 케이크는 신랑의 발길질 몇 번에 크게 휘청이다 쓰러졌다. 생크림이 후드득 주변으로 퍼져 신랑의 바짓단을 붙들었으나, 상관없었다. 그 얄팍한 층이 퍽이나 제 안의 것들을 잘 가려 주겠다.

종이로 덧대어진 수많은 상자가 모두의 눈에 훤히 들어왔다.

마약이었다.

잔뜩 뭉쳐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눈앞의 군중들은 감히 막지 못하리라는 듯, 야닝은 여유롭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마약과 뒤섞여 바닥에 낭자한 크림, 널브러진 케이크, 엉망이 되어버린 신랑의 눈. 소란의 한가운데에서 그 눈을 발견한 야닝의 날카로운 눈매가, 초승달처럼 크게 휘었다.

“…큭, 하하하!”

덴은 단박에 야닝을 찾아냈을 것이다. 비단 야닝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려 주변의 시선을 끌어모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한 사람밖에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것. 그것이 사랑이니까. 정말이지 한 치도 예상할 수가 없구나, 덴 제임스 바벤베르크!

“자, 어서 그곳에서 빠져나오게.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그렇지, 덴?”

야닝이 손을 뻗는다. 시간이 없다, 정말로.

덴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내민 야닝의 손을 겹쳐 잡았다. 이전의 그와는 다르다. 그래, 5년 전 덴의 웃음이 이렇게 밝았을 것이다. 다른 것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듯, 오직 눈앞의 야닝만을 올곧게 바라보는 그 웃음이.

“네, 도노반 님!”

아니.

“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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