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바 시 태극 페어] 기억

자캐가 기억을 잃었을 때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으면 님캐 대답 (2023-03-08)

@자캐가 기억을 잃었을 때 난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으면 님캐가 머라고 대답하는지 궁금하다

이시바시 호타루 → 기억을 잃은 츠카사 유이토


◈ 

UGN 아이바 시의 지부장, 츠카사 유이토가 기억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아이바 시 지부는 크게 술렁였다.

저번에 다른 지부의 지부장님들과 같이 어려진 적이 있는 만큼 이번 일 또한 그것의 연장선인 듯싶어 연락을 넣어봤으나…… 다른 지부의 지부장은 멀쩡하거나, 지부장이 아니라 에이전트 혹은 칠드런이 기억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쪽에서도 이상현상의 발생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하나, 일이 해결되는 데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는 모를 일이다.

연락이 끝난 후 에이전트들은 지부장을 돌아보았다.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잘 만들어진 밀랍 인형 같았다. 그들이 쳐다보자 고개를 가볍게 기웃거리는 지부장은 결코 평소의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부담스러울 만큼 화사하게 웃으면서 사랑에 관한 지론을 펼쳐대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제 어떡하면 좋지?

침묵 속에서 여러 시선이 오고 갔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엄청나게 위급하거나 긴급한 일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평소 지부장의 잦은 탈주-지부장은 외출이라고 했고, 어느 에이전트는 외근이라고도 했다-와 더불어 기가 막힐 만큼의 서류 분류 능력 덕분에 이 지부의 에이전트들은 기본 이상의 업무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지부장의 인가가 필요한 일이나 시 전체가 흔들릴 거대한 사안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한 달 정도는 지부장이 없어도 무리없이 유지될 체계였다.

그래요, 지부장님… 이것이 당신이 그린 큰 그림인가요…… 어떤 에이전트는 쓰고 있던 보라색 비니를 반만 내려쓰며 눈물 없이 웃고 울었다. 평소 슬쩍 지부장실로 올렸던 잡무 서류-에이전트 선에서 해결 가능한-를 마법처럼 그대로 돌려받았던 에이전트였다.

일단은…… 평소의 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지부장님이 부재중 상태가 되는 것 외에는 별달리 조치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어느 서류 업무 직원의 말에 모여 있던 에이전트들은 제각기 동의하며 저마다의 자리로 해산했다.

순식간에 한가해진 복도에 남은 것은 두 사람뿐이었다. 각각 푸르고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이들.

이시바시 호타루는 복잡한 표정으로 지부장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잃었다니. 원인도 현상도 알 수가 없어 솔직히 믿기지 않았지만,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츠카사 유이토의 모습은 연기로 보이진 않았다. 무엇보다 연기를 할 이유가 없으니. 만우절에도 도를 넘은 장난과 거짓말은 하지 않도록 지부 전체에 단단히 주의를 주는 인간인데, 이렇게 지부가 술렁일 일을 벌일 것 같진 않았다.

“이시바시 호타루, 라고 하셨던가요.”

“네? 아, 네.”

지부장 몰래 한숨을 쉬던 호타루는 갑작스럽게 말이 걸리자 조금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유이토는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제 옆에 선 호타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상대를 향한 다정함으로 차 있던 눈동자가 어딘지 건조해보였다.

“저는 츠카사 유이토라고 불리는 사람이고요. 맞습니까?"

“지부장님 이름은 츠카사 유이토가 맞죠.”

왜 물어보는 거지? 호타루가 미심쩍음 반, 의아함 반이 섞인 눈으로 보고 있는 중에도 유이토는 그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고는 눈을 감는 것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했는데, 이런 평소의 습관이 잠깐씩 드러날 때마다 호타루의 의심도 불쑥 피어올랐다. 몸에 밴 행동 패턴이라는 건 기억을 잃어도 유의미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눈앞에 있는 자가…… 무언가와 바꿔치기 된 외관만 그럴듯한 지부장인 것인지

이런 쪽으로 너무 자주 데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었다.

그런 호타루의 마음을 모른 채,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듯 눈을 뜬 유이토가 호타루를 바로 바라보았다.

“이시바시 씨.”

“…….”

“……? 무슨 문제라도,”

“아뇨, 그냥. 평소에는 이름에다가 ~군을 붙여서 불렀어서요.”

“그랬습니까? 저는 당신과 많이 친밀했나 보군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그랬어요.”

“저는……”

“?”

“저는 인기인이었습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그런 결과가 나오죠?”

어처구니없음이 그대로 드러난 목소리에 유이토가 볼을 긁적였다. 그 모습이 퍽 머쓱해 보였다. 전혀 웃질 않길래 감정이 없는 건가 했는데, 이런 면을 보면 또 그런 건 아닌 듯싶었다.

“제가 기억하기로 이름을 부르는 건… 주로 친하거나 가까운 사이일 때인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보통은 그렇죠? 그런데 지부장님은 초면이든 구면이든 상관 않고 그냥 마음대로 부르셨어요.”

“그렇습니까…….”

“…….”

“…….”

정적이 흘렀다. 주변 분위기가 아주 고요하다 못해 먼지 내려앉는 소리조차 안 들릴 지경이었다.

평소에는 이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지부장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불나불, 질리도록 들은 사랑 타령을 하고 하고 또 해댔는데.

침묵이 답답했다. 이 조용함이 석연치 않았다.

분위기 환기를 위해서라도 입을 열려던 호타루는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붉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지부장의 귀끝이 아주 살짝 붉어져 있었다.

‘부끄럽나?’

평소 수치의 ‘ㅅ’ 자도 모르는 것처럼 열렬히 사랑 전파를 해대던 인간이라 이런 면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고작 자기가 인기인이냐 물어본 거 하나로 저런 반응이라니. …아니, 충분히 부끄러울 만했나. 어쨌거나, 기억을 잃은 지부장은 창피를 아는 인간이었다.

호타루는 짓궂은 성격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딱히 지부장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아까 마음먹은 대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방금 ‘기억하기로’라고 했죠. 정확히 기억이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음. 설명하기 조금 어렵군요. 말씀드리자면… ‘츠카사 유이토’라는 개인의 기억과 사상 같은 것은 머릿속에 없으나 이제껏 쌓아온 상식이나 지식 등은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그럼 ‘오버드’나 ‘UGN’, ‘FH’에 대해서도 기억은 해요?”

“기본적인 개념 정도는.”

“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법한 편의적인 기억상실이네요.”

“모든 것이 백지 상태라면 말하거나 읽는 법도 잊었을 수 있으니, 다행인 일이죠.”

“그건 그렇지만, 한 사람이 쌓아온 인생에 대한 기억만 골라서 사라졌다니. 오버드 때문이라고 해도 가능한 일인가.”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을 드리기 어렵겠군요.”

딱히 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에요- 호타루는 그렇게 덧붙이며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이런 큰 피해는 없는데 적당히 성가시고 거슬리는 일을 벌였는지.

아니, 큰 피해가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이쪽 지부가 특이한 것일 뿐 다른 지부에선 없으면 큰일 나는 사람의 기억을 잃게 만들어 업무 체계를 마비시켰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이쪽 지부장이 평소와 같지 않으니 일하는 에이전트들도 어딘가 어색해 보이고, 칠드런들은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일이 잘 굴러가는 것과 기존의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으니까.

“저기, 혹시…….”

“예?”

범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죽여버린다, 라고 다짐하고 있던 호타루가 유이토를 돌아보았다. 유이토는 호타루를 봤다가 눈을 내리까는 것을 몇 번 반복하다가, 이내 저어하는 기색을 걷어내고 말했다.

“제가 기억을 잃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이전의 자신에 대해 들어봤자 별 도움은 안 될 수 있음에도. 어느 부분에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알 수 없었다. 호타루는 잠시 고민했다. 메말랐던 청록색 눈동자에서 희미한 의지가 느껴졌다. ‘알고 싶다’, 혹은 ‘알아야 한다’는 의지. 그것은 여전히 무미건조한 얼굴을 한 그에게서 절박한 비슷한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호타루는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가 이내 표정을 폈다.

“……정말 기억 안 나는 거죠?”

“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모습에서 거짓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호타루는 잠깐 동안 자신이 아는 지부장에 대해 떠올렸다. 지금 눈앞에 가지런히 앉아 있는 이와는 달리 툭 하면 지부장실을 박차고 나가 아이바 시 곳곳을 돌아다니던 인간이었다. 열도 많이 받게 하고, 가끔은 가차 없이 번개를 날리게 하는 인간이었지만.

“당신은 사랑 타령을 꽤 많이 하고 다니던 사람이었어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묻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었죠.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친절하기도 했고… 신경도 많이 써주는, 그런 당신은… UGN 아이바 시 지부의 지부장이에요.”

그런 당신을 UGN 아이바 시 지부의 에이전트로서 믿고 의지했어요.

……이 말은 굳이 꺼내지 않기로 했다. 호타루는 입을 꾹 다물었다.

유이토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제 입가를 매만지다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그렇… 습니까.”

“…….”

“저는… 그런 사람이었군요.”

청록색 눈을 깜빡일 때마다 꼭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조금씩 빛이 일렁였다. 그 모습이 꼭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의 모습이 와닿지 않는 것 같기도, 혹은 본래의 자신의 파편을 본능적으로 붙잡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이바 시 지부의 지부장으로서… 지부원들에게 이 이상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저’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츠카사 유이토는 가볍게 웃었다. 평소보다 옅고 흐린, 미미한 웃음이었다.

호타루는 그 미미함 속에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상대는 바꿔치기 당한 것도, 어딘가에 세뇌당한 것도 아닌, 그저 기억에 좀 문제가 있는 아는 그대로의 지부장이었다. 은연중에 의심하고 경계한 것이 무색할 만큼 깔끔하게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UGN 아이바 시 소속으로서 몇 번이고 임무를 함께하며 등을 맞대고 신뢰를 나눈 동료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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