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끓이기
희망편
이 이야기는 한 여자가 찬장에서 라면을 꺼내며 시작된다.
여자의 직업은 흔한 회사원이었다. 그는 막 야근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원래 야근이 끝난 배고픈 직장인은 예민하기 마련이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여자는 오늘 끝내주게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을 작정이었다.
여자는 의자를 가져와 의자 위에 올라섰다. 찬장은 너무 높아 여자의 키로는 닿을 수 없었다. 의자의 도움을 받아 라면을 꺼낸 여자는 라면 봉지의 뒷면을 보았다. 앞서 말했듯, 오늘 최고로 맛난 라면을 끓여 먹기 위해서였다.
봉지의 뒷면에는 석박사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라면 레시피가 적혀있었다. 여자는 레시피를 찬찬히 정독하기 시작했다. 으레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모든 설명을 빠짐없이 읽은 여자는 성질을 내며 라면 봉지를 죽 뜯었다. 라면 하나 맛있게 먹기가 뭐 이리 힘든지. 배가 고픈 인간은 사소한 글자 하나에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손에 집히는 아무 냄비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냄비에 물을 부었다. 쓸데없는 비커 따위는 사용하지 않았다. 비커의 작은 눈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여자의 눈은 멀쩡하지 못했다. 피곤에 찌든 눈은 감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음으로 여자는 찬 물이 담긴 냄비에 면과 스프 모두를 털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여자가 닫은 뚜껑은 냄비의 짝이 아니라 덜그럭대며 합을 맞추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배고픈 여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냄비를 불에 올렸다. 불의 세기를 선택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하는 것마저도 귀찮아진 여자는 인덕션의 전원을 켜고 불을 가장 세게 올려버렸다.
여자는 지금 아마도 자신이 미친 게 틀림없었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라면을 먹기 위한 과정으로 이따위 짓을 하고 있다니. 그래도 여자는 오늘만큼은 결과물이 아닌 목적에 초점을 두고자 했다. 어쨌거나 자신은 오늘 배를 채우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설령 기분 나쁘게 맛없는 라면을 먹게 될지라도.
물은 보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했다. 그 박자에 맞춰 뚜껑도 날아갈 듯 덜컹거렸다. 냄비를 빠져나가는 다량의 수증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자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자는 더는 참지 못하고 식탁에 냄비 받침을 깔았다. 그리고 수저통에서 손에 집히는 아무 젓가락 두 개를 집었다. 인덕션 전원을 끄고 냄비를 두 손으로 들었다. 뜨거운 냄비를 냄비 받침 위에 올려두고 거추장스러운 뚜껑은 열어 싱크대에 던져버렸다.
자, 이제 여자에게는 라면을 먹는 일만 남았다. 여자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듬뿍 집어 입에 욱여넣었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라면의 맛은 형편없었다. 물은 계량을 잘못해 라면의 맛이 아주 짰으며, 끓이는 온도와 시간도 잘 맞추지 못해 면이 익지 않아 아삭거렸다.
여자는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자의 손에는 짝을 잃은 각각의 젓가락 두 개가 들려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라면을 계속 먹었다. 서서히 배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그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라면을 먹던 여자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자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먹고 있으며,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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