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 리스 -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한양물 독서모임에서 5월의 책으로 ‘제인 에어’의 패러디 소설(이라고 처음 접했더니 이 표현이 제일 익숙하다)인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기로 했다. 5월의 책인데 감상문을 7월에 올리게 됐는데, 그냥… 그렇게 됐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사실 5월 중순 즈음에 한 번 완독을 했다가, 감상문을 쓰려고 보니 머리에 남은 내용이 얼마 없어서 곧장 감상문을 쓸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쓰려던 게 밀리고 밀려 7월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처음 나를 난감하게 했던 건 바로 서문이였는데, ‘제인 에어’를 읽은지가 꽤 오래 되었고 당시에 딱히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감상도 없었기 때문에 로체스터라는 이름을 바로 알아보지 못한 탓에 서문의 내용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서문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문을 읽는데에 영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이해 못한 내용을 넘기고 독서를 해야한다는 게 영 찜찜해서 본문 초반 내용에 집중이 안됐던 것도 같다.

내가 기억하는 ’제인 에어‘는 머릿속 이미지 상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앤과, 영화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의 연애 소설이였다. 왜 그런 이미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귀엽고 휴 잭맨은 핫가이지만 머릿속 설정으로는 평범녀와 추남 커플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을 때도 그렇고, 감상문을 쓰는 지금도 그렇고 ‘제인 에어’의 줄거리는 대부분 까먹은 상태라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들이 제대로 된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로체스터의 집에 미친 여자가 있었고, 제인 에어가 어디선가 가정교사 생활을 했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 그마저도 이 책의 후반 내용을 읽으면서 떠오르긴 했다.

개인적으로는 ’제인 에어‘를 좀… 로맨스 소설이라기엔 엄숙한 분위기로 느껴서 지루하게 읽었던 경험이 있어서 처음 ’제인 에어 패러디 소설‘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에는 ’제인 에어‘ 같은 소설이면 별로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폭풍의 언덕‘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순간 ’폭풍의 언덕‘을 ’오만과 편견‘으로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그럼 읽어보겠다고 했다. (ㅋㅋ)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내가 기억하는 ‘제인 에어’와 비교하면 훨씬 현대적이고(당연함 실제로 20세기 작품임), 뭐랄까… 도발적이라 해야하나? ‘제인 에어’가 금욕을 미덕으로 삼았다면 이 소설은 금욕과는 거리가 멀고 훨씬 공격적인 느낌이였다. 이유는 당장 생각이 안 나니까 나중에 생각날 때 쓰겠다. 어쨌든 대체로 두 작품은 그다지 닮지 않았다고 느꼈다.

“아듀(안녕).” 크리스토핀은 아듀의 첫 음절에 강한 악센트를 주었기에, 꼭 ‘아 디우(주님께)’처럼 들렸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게 훨씬 더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는 고독하고, 여자는 배반당했으며, 떠난 아이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구나. 아듀.”

처음 읽을 때에는 뭘 위한 문장인지 몰랐고, 그걸 고민할 생각도 못하고 넘겼지만 다시 읽으면서 보니 앙투아네트의 어린 시절 부분에서는 여러 번 그녀의 삶을 스포일러 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핀이 파투아로 부르던 노래는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의 삶을 예고하는 듯 했고, 어머니와 메이슨 씨의 결혼식에서는 대놓고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의 팔자를 그대로 닮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저택의 화재와 앵무새 코코가 죽는 장면은 앙투아네트의 최후와 꼭 닮았다.

어떻게 보면 이미 ‘제인 에어’에서 앙투아네트의 최후는 정해져 있었고, 이런 묘사는 과장 조금 보태서 ‘제인 에어’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유일한 연결점인 앙투아네트의 마지막을 여러번 상기시키는 장치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제인 에어’를 대부분 까먹은 나는 그런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지만…

이어서 나는 (…) 메이슨 씨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영국인임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얼굴. 다시 눈을 돌리자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영국인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얼굴. 그러나 결코 흰 검둥이는 아니고, 흰 검둥이가 될 수도 없는 어머니의 얼굴이다.

앙투아네트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렇게 표현했지만, 나는 그 자체가 아네트의 정체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쿨리브리의 사람들을 검둥이, 흑인이라고도 하지 마라. 원주민이나 아프리카계 사람이라 하라고 말하다가도 그들에게 좋은 점이 있으며 그와 정반대의 기질도 있다고 한다. 영국인도 검둥이도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에 노예계급의 사람들을 그저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였던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적대감도 예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더 나아가서 그런 예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불타는 저택에 두고 온 앵무새를 데려오겠다며 악을 쓴 건 아닌지… 과대해석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인 에어‘를 읽을 때 내가 받아들이기로 로체스터는 성깔 최악의 중년 추남인데 심지어 조신하고 어린 여자애를 신부로 맞이하려고 하는데, 심지어 그 여자애는 그걸 뭔가… 큰 위업이라는 듯 받아들여서, 또 작품에서도 그게 아주 바람직하다는 뉘앙스로 그려져서 굉장히 불만이였다. 그런데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서는 로체스터를 대놓고 완전 최저, 최악으로 묘사하고 앙투아네트의 태도 역시 제인 에어와는 전혀 달라서 일종의 쾌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은 책을 짧은 기간 동안 두 번 읽는 게 내 인생에서 흔한 경험은 아니였는데, 이 소설 자체가 내가 익숙하게 접하던 작품들보다 복잡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어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파투아니, 오베아니 하는 것들도 엄청 낯설고 노예해방 후 기존 주인-노예 계급의 대립이라던지 하는 소재들을 찰떡같이 받아들이기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전체 내용에 대한 감상을 쓰기는 쉽지 않았다. 언젠가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읽은 뒤에는 내게 낯선 경험을 다루는 책들을 읽고도 지금보다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