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5년 3월 30일
날씨 - 맑음
별 일이랄게 전혀 없었던 나른한 하루.
아침, 아니 이젠 오전이라고 명명하는 편이 낫지 않으려나. 스트레칭, 조깅, 그리고 단련실. 똑같은 순서였으나, 오늘만큼은 단련실에서 좀 농땡이를 피웠다. 이틀만에 다 때려치웠냐고?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조금, 멍 때리고 있었을 뿐이지. 어제 좀 늦게 잠든 탓도 있겠지만.
결국 단련실에서 조금 몸을 풀고, 씻고 난 뒤에는 그냥 자버렸다. 너무 푹 자버려서 밤에 제대로 잘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하는데…뭐, 누워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저녁 시간에 비척비척 일어나서 기어나와 봤는데, 저녁을 거하게 차려 먹긴 귀찮아서 감자튀김이나 먹고 끝내려고 하던 중에 마르시아 씨가 토스트를 만들어…아니, 토스트로 예술 활동? 을 하고 계셨다. 본인은 데코 토스트라고 하시더만….
신기해서 기웃거렸더니 내 얼굴도 생겼더랬지…. 아니, 너무 귀엽게 그려주셔서 사실 나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좀 민망한 마음에 빨리 먹어서 치워버리자는 마음으로 먹었는데, 의외로 맛도 나쁘지는 않았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 얼굴을 내가 먹고 있었네. 그건 좀 그로테스크하지 않나?
뭐 케챱인데 아무렴 어떻겠냐만은.
이제 3월도 내일이면 끝이네. 뭐 딱히 달이 지나간다고 해도 별로 큰 감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평화롭게 날짜를 세고 있는 건 좀 새롭긴 하다.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다는 감상까지 낳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4월에는 과연 어떨지. 이 일지인지 일기인지 모를 걸 4월에도 내내 쓰고 있을지 궁금하긴 하네.
그러고보니 누마는 언제까지 돌보는 거였더라……. 아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나중에 많이 못 놀아줬다고 후회하지 말고 많이 놀아줘야지. 아이라는 존재와 이렇게까지 가까이 지내본 건, 내가 머리 좀 크고 난 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나름대로 정이 든 것 같기도 해서 스스로가 조금 어색한 느낌이다. 누마가 붙임성이 좋은 탓이려나.
…누마를 보고 있으면, 아니, 누마의 외로움을 보고 있으면 가끔 동생 생각이 난다.
내가 크게 다친 동안 부모님의 관심에서 거의 완벽하게 밀려났던 녀석. 내가 엇나가는 동안 알게모르게 나에게 신경을 더 쓰시느라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자라게 된 녀석. 내가 방황하는 동안에도 혼자 묵묵히 정도를 걷던 녀석. 그리고 이제는…내가 부모님과 마찰을 일으키니 중간에서 중재하느라 바쁜 녀석.
내가 항상 미안함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녀석.
그냥 나는 없는 셈 치고 셋이서 단란하게 살았으면 평화로웠을텐데. 나는 항상 집안의 돌연변이였으니, 그냥 좀 일찍 죽은 자식인 셈 쳐도 됐을텐데. 나 때문에 온갖 외로움은 다 겪었을테니 대놓고 원망하더라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텐데, 어떻게 그런 내색 한 번 안 할 수가 있는지.
…여기에 적고 있자니 간만에 목소리, 듣고 싶네.
아직 잠들진 않았을테니 연락이라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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