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발 붙일 곳 없다면 너와 바다로 가지 中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BGM : https://youtu.be/468KNrmsq0s?si=1-xpy0lkvCSuMT2j
어린 시절에는 바다가 좋았다. 깊은 바다 어딘가에는 인어도 있고, 아주 오래 전에 침몰한 거대한 배도 있고, 화산재에 덮여 마지막을 맞이한 아름다운 섬과, 오래된 전설, 아틀란티스도 있고…….
그런 것을 상상하는 것이 기뻐서, 아주 잠시라도 그런 공상에 빠져있으면 저를 없는 취급하는 동급생이나 늘상 다투곤 하는 부모님이나 잘 풀리지 않는 시험 문제 따위는 별 것도 아닌 것이 되곤 해서. 아주 어릴 적에는 자주 바다에 찾아갔다. 학교가 끝나는 이른 오후부터 해가 뉘엿하게 져가는 저녁까지. 카오루코는 물가에 앉아 철썩이는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그러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더라?
눈 앞이 흐렸다. 꿈을 꾸는 걸까? 언젠가 봤었던 광경이 펼쳐진다. 푸른 덩어리가 다가와 손을 뻗는다. 푸른 색, 쳐진 눈, 연체동물의 빨판을 닮은 머리카락, 작은 인어, 작은 아이, 그리고…….
「그건 무슨…… 뜻이야?」
「나? 들어오라고? 싫어. 거긴 물이잖아.」
「뭐?」
인어의 입이 벙긋거렸다. 조그마한 입과 손발. 작지만 선명한 눈동자. 지금보다도, 훨씬 더.
바다를,
『바다를 좋아해.』
『너는.』
톡, 하고 코 끝에 물이 와닿았다. 카오루코는 놀라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청명한 하늘과…….
“너……!”
인어가…….
카오루코는 벌떡 몸을 일으키다가 그녀와 거하게 부딪혔다. 퍽,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아, 아야야……. 각자 부딪힌 곳을 붙잡고 끙끙대는 꼴이 꽤 우스웠다. 카오루코는 인어를 흘겨보다가 주위를 살폈다. 정오의 하늘에 해가 둥그렇게 떠 있었다. 온 몸이 물에 푹 젖어있었다. 어째서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상한 꿈을 꿨고,
마지막 기억을 더듬으면…….
“너…….”
인어가 고개를 갸웃하며 카오루코를 바라보았다. 카오루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경을 주워 썼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인어를 향했다. 흔들리는 동공은 두렵다는 감정과 퍽 닮았다. 그녀가 멍한 눈초리로 카오루코를 바라보더니, 바닷속에 몸을 담군 채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카오루코는,
“저리 가.”
하고 한 발 물러섰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피처럼 붉은 적색의 눈동자. 그 안에 담긴 것은 명백한 경멸이었기 때문에…….
인어는 뻗었던 손을 거뒀다.
“다신 여기 오지 마.”
“…….”
“다른 사람들한테도 같은 짓을…….”
할 거라면. 카오루코는 말을 맺고 해변가에 널부러졌던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대로 해변을 벗어난다. 망설임이 없다면 거짓말이었지만, 그는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인어는 좋은 사람에게 찾아 와.
- 왜?
- 물고기도 맛있는 미끼가 걸린 낚싯바늘에만 다가오곤 하니까.
생각해보면, 그 말을 해 줬던 건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이웃집의 열 네 살 많은 형이었다. 알고 한 말이든 모르고 한 말이든, 제대로 된 말일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맛있는 미끼.
가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 그 말을 더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저건, ‘저것’ 은.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니다. 길들일 수 없고, 가까워질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어를 보고 가까이 마주한 것이 자신 뿐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가까운데, 닿을 수 있는데. 불쑥 고개를 내밀고, 무방비하게 손을 뻗고.
기꺼운 눈으로 나를…….
문득, 카오루코는 고개를 돌려 해변을 바라보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무슨 미련 때문인지, 인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
“가라니까, 왜…….”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는지.
인어는 여전히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오루코는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해변을 완전히 벗어났다. 텅 빈 도롯가를 걸었다. 물에 흠뻑 젖은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크게 재채기하고, 콧잔등을 문지르며, 문득.
아, 생각났다.
인어의 눈은…… 그 색채는,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지났던 도롯가에 핀 꽃을 닮았다. 곁에 있던 누군가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시바자쿠라(芝桜)’ 라고 대답해주었다. 봄에 자라 여름에 피는 꽃, 조금 늦된 것은 가을에……. 그렇구나.
세상에 없는 색이 아니었다, 그건.
카오루코는 입술을 꾹 깨물고 손차양을 만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는 아직 중천이었는데,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꾸무럭하게 어둑해졌다. 태풍이 오지는 않겠지. 그러면 진작에 불려나갔을테니 아니려나……. 태풍이 오는 시기에는 누구든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하고 마을 사람 전체를 동원해 배를 묶어둔다. 배는 굵은 밧줄에 묶여 이리저리 떠돌면서도, 결코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배는 중요한 거니까. 인간으로 치자면 심장. 심장을 앗아가면 더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심장을 앗아가면…….
어느 순간, 눈가가 축축해졌다. 카오루코는 손차양을 만들었던 손을 거둬 눈가를 벅벅 닦았다.
친구, 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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