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발 붙일 곳 없다면 너와 바다로 가지 上

그것도 꽤 낭만적인 여행일 거야.


BGM : https://youtu.be/PuFM8sG8HDY?si=M_1O1rCPjldo0mKG

그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여름 방학의 과제, 해변의 쓰레기를 쓰레기봉투에 가득 담아올 것. 고지식한 이는 반항할 줄 몰랐으므로 직접 봉투를 들고 해변을 돌았다. 변명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운명이라 할까. 카오루코는 그 때 그것과 마주쳤다. 걷은 바지와 셔츠, 맨 발, 쓰레기를 줍기 위해 손에 든 봉투.

 

그런 자신을 바라보던 바다 끄트머리의 인어는, 머리를 쑥 내밀고 땅 위에 팔을 걸친 채.

 

지루하다는 듯한 낯을 하고 있었다.

 

뻐끔, 하고.

 

인어의 입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카오루코는 여섯 살이 되는 해에 이 마을에 왔다. 오키나와의 해안선에 위치한 시골 마을. 젊은 법조인 부부였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리로 이주하고, 갑작스럽게 뱃일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이 마을은 카오루코의 고향 비슷한 것이 되었다. 태어난 곳만을 고향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그 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수경을 벗고 카오루코, 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정겨웠다. 밥상에는 잦게 생선이 올라왔다. 구운 고등어도 해변도 수평선의 끄트머리에서 가물대는 해도 썩 좋아했으므로,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 같은 이름이야.

 

시골 마을은 작다. 또래 친구도 그리 많지 않다. 고지식한데다가 오만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만 변명할 줄 아는 아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카오루코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카오루코 또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반대였는지도. 선후관계는 불분명했다.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와중, 인어는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밝고 짙은 보랏빛 눈동자가 선연했다.

 

“저기. 너…….”

 

그녀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알아듣는걸까?

 

- 인어는 좋은 사람에게 찾아 와.

- 왜?

- 물고기도 맛있는 미끼가 걸린 낚싯바늘에만 다가오곤 하니까.

 

미끼가 낚시바늘에 능숙한 손놀림으로 끼워진다. 예리한 바늘에 끼워진 미끼는 이미 죽은 것이라, 미동 하나 없었다.

 

-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거야.

 

마치 주마등처럼, 수십 번은 들었던 인어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카오루코는 들었던 비닐을 내려놓았다.

 

- 살면서 그런 존재를 만날 일이 몇 번이나 있겠니?

- 그러니 만나면 소원을 빌어 봐. 들어줄지도 모르니까.

 

“소원…… 빌어도 돼?”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다. 카오루코는 인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시선의 높이를 맞췄다. 인어는 약간 붉은 진보랏빛, 어쩌면 자홍색처럼 보이는 색채의 눈을 가졌는데, 머리 위에서 둥글게 타오르는 해에도 바다 깊은 곳에 핀 산호에도 그런 색은 없을 터였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를테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어가 고개를 다시 한 번 갸웃하고는.

 

찰박, 하고 손끝으로 물을 튀겼다. 눈에 소금물이 들어갔다. 아얏! 카오루코는 눈을 찡그리고 뒤로 물러섰다. 인어는 그런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두어 번 더 물을 튀겼다. 카오루코는 바닥에 내려두었던 비닐로 물을 막으며 중얼거렸다. 그만, 그만하라니까…….

 

흰 색 봉투 너머로 인어가 웃었다. 눈꼬리가 슬며시 접히며 눈동자가 줄어들었다. 카오루코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식은 땀이 났다. 해안의 흰 물보라가 인어의 손 끝에 정신없이 튈 때, 카오루코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인어는…….

 

인어는 아름답다고…….

 

해가 머리 위에 둥그렇게 떠 있다. 더운 볕이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이를테면 환상 속 이야기였다.

 

카오루코에게 인어가 말이다.

 

“난 덥다니까. 이제 혼자서 놀아.”

 

인어가 이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곧 빤히 이 쪽을 바라보는 것이 카오루코가 돌아올 때까지 그럴 참인 것 같았다. 카오루코는 얕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어가 몸을 담근 물가로 다가갔다. 인어의 표정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카오루코는 바닷물에 발만 담근 채 인어의 머리카락을 땋아주었다. 참방, 인어가 물을 튀기면 안경알에 물이 묻었다. 이제는 그다지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물기에 젖은 푸른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축 늘어졌다. 늘 물에 젖은 상태면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어머니가 그랬는데. 인어는 그런 것도 없나. 머리카락은 풍성하고 결이 좋았다. 다 땋은 머리카락 끝을 마무리해 내려놓자, 인어는 눈동자를 굴려 제 뒷머리를 살피더니, 물에 풍덩 들어갔다. 땋은 머리카락이 다시 흐트러졌다. 인어는 카오루코가 앉은 물가로 다가오더니, 다시 등을 보이고 뒤돌아섰다. 또 땋아달라는 얘긴가. 카오루코는 그대로 모래 위에 눕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너 말이야……. 물에 들어가면 다 풀리는 게 당연하잖아. 땋은 머리가 좋으면 가만히 있던가.

 

그러고보니 인어는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죽던가? 그러면 머리를 땋아주자마자 물로 들어가는 건 생존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인어의 입장으로는 인간이 무언가를 꼼지락대며 머리를 만져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으나, 카오루코는 인어의 행동을 그렇게 해석했다.

 

머리카락을 세 갈래로 나눠, 한 부분씩 겹쌓는다. 머리를 땋는 것은 사촌 여동생이 집에 올 때 해본 적이 있으므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면.

 

“……귀찮다니까, 진짜.”

 

푸르고 긴 머리카락을 걷어내면 드러나는 희고 얇은 목. 둥글게 이어지는 어깨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햇볕을 타지 않고 희게 남은 등. 그 위로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날개뼈.

 

환상 속 이야기일 뿐인 인어에게 성별이 있다고 치부해도 될는지, 인어 본인에게 그런 자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카오루코로서는 그것이 신경쓰였던 탓에, 머리카락을 만져줄 때면 늘 목덜미나 등에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곤 했다. 조심스럽고 느릿한 손길. 파도가 철썩, 하고 와닿는 소리가 감각을 예민하게 했으므로, 어쩌다 손이 닿기라도 하면 닿은 자리가 홧홧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 다 됐어.”

 

잘 어울려. 봐. 인어에게 그렇게 알려주자, 인어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물가에 제 모습을 비쳐보다가 하더니, 물의 표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출렁이는 바다. 인어의 꼬리가 흐릿하게 보이는 푸르고 검은 물가…….

 

……뭐야? 카오루코가 정적을 이기지 못해 그렇게 묻자, 인어가 손을 내밀었다.

 

“잡으라고?”

“…….”

“왜…….”

 

문득 자신을 올려다보는 인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카오루코는 무언가를 직감한다. 아, 이건…….

 

- 그러니 만나면 소원을 빌어 봐. 들어줄지도 모르니까.

 

‘그런’ 거야.

 

인어의 구미가 ‘지금’ 당긴 거라고.

 

카오루코는 홀린 듯 인어의 손을 잡았다. 손은 축축했고, 미지근했고, 또…….

 

또?

 

첨벙, 하고 물이 크게 튀었다. 인어가 그의 손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정신을 차렸을 때 몸은 뭍을 벗어나 있었다.

 

“너.”

 

너, 지금…….

 

인어가 웃었다. 카오루코는 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인어가 그 손을 덥썩 붙잡더니 제 손가락을 파고들어 깍지를 끼웠다. 다른 손으로는 카오루코를 감싸안듯 하고…….

 

“잠깐…….”

 

인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

 

뒷말은 물에 삼켜졌다. 수면 위에 큰 파문이 일었다. 파동처럼 일렁이는 물결은 곧 잠잠해진다.

 

두 사람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머리 위의 빛이 사라질 때까지 침몰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것’ 은 미소짓고 있었다.

 

인어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보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색이었다.

 

곧, 의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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