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강독 3일차
1장 차이 그 자체를 계속합니다~
‘차이 그 자체’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1장.
[무차별성]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존재들에는 ‘차이’라는 것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1장이 시작된다. 우리는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 왔다. 하지만 차이는 사라지지 않고 항존하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것이 들뢰즈의 과제.
비지성적, 비가시적인 차이의 존재를 증명한다!
차이를 소멸시키는 우리의 방식 ─ 동일성, 부정성, 유비, 대립의 방식으로의 재현.
S is P 에서 동일성의 문제는 S에 귀속된다. (ex.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S의 동일성이 차이를 사유할 수 없게 만든다. 주어 자리에 오는 것들의 동일성을 우리는 가정한다. 다양한 P(술어)를 찾아낼 수는 있지만, S의 동일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S를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술어를 찾을 수 있을까? 인간, 신, 사자 등… 이러한 개념적인 동일성이 소멸되지 않는 진정한 차이에 대한 사유를 막는다.
S를 설명하기 위해 술어를 붙일때 언제나 유비가 따라온다. 신의 선성과 인간의 선성은 위계를 가지고 있다. 유비적 사유란 항상 위계질서를 가정할 수밖에 없다. ‘일의성’은 이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일의성은 차이를 가리킨다.
대립에 있어서 가장 비판하고자 한 인물은 헤겔. 대립이란… S is P 라는 명제가 이미 S is -P를 항상 품고 있다. 따라서 전자가 참이면 후자가 거짓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하고 있어서 진정한 차이를 사유할 수 없게 만든다. P다 와 -P다 는 들뢰즈가 보기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서술인데, 항상 대립을 전제시키고 한쌍으로 사유하면 진정한 비관계에 대해 사유하지 못하게 된다. (부자-거지, 백인-흑인) 이런 한쌍의 전제는, 정립과 반정립의 대립은 누가 만들었는가? 따라서 정립과 반정립을 통해서 전체로 나아가는 헤겔의 변증법도 재현적 사고로서 비판받는다.
니체의 거짓의 역량. 거짓이란 어떠한 힘이 있다는 개념. 판단체계를 완전히 와해시키는 역량. 예술의 역량과 동일시되기도. 참이다, 거짓이다 같은 것들은 와해되어야 하는 것.
2절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서, 중요하고 좋은 사람.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라며 인간과 다른 동물의 유類와 종차를 나눔.
물론 들뢰즈는 비판한다. 생물은 유類나 종으로 규정될 수 없다. 차이라는 것 자체는 종차에 포섭될 수 없는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념적인 차이에만 머물렀고, 우리는 무관계 차이를 사유하기 위해서 비개념적 차이로 나아가야 한다.
3절에서는 일의성 개념이 다루어진다.
"존재는 일의적이다.“ 이것은 곧 차이다. 일의성 개념의 계보를 그려내고 있다.
둔스 스투코스, 스피노자, 니체,
4절에서는 헤겔과 라이프니츠 두 사람을 차이의 철학에서 최대의 차이를 발견한 사람으로 묘사함. 그리고 뚝 떨어트린다~
5절 : 차이, 긍정, 부정
차이를 추상화해서 사유하게 되면 그것이 부정(헤겔식)이 되어버린다. 차이는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제목.
미분적 요소 =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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