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레파르시아 엔딩로그
처음 입대할 때 했던 질문을 기억하나요? 어떤 군인이 되고 싶냐고 물었죠.
나는 대답했어요. 사람을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다고.
결국 되지 못했어요. 나는 사람을 지키는 군인이 아니라, 괴물을 죽이는 군인이 되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어요. 당신들이 내게 그것만을 가르쳤으니까.
한때는 착각했어요.
내가 정말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그 오랜 시간동안, 나는 사람이 아닌 괴물들만을 마주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을 지키는 것과 괴물을 죽이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어요.
......
그 어느 옛날, 나는 생각했어요. 인류의 존속을 위하여 싸우자고.
옆구리가 잡아 뜯겼을 때도, 팔뚝의 피부가 전부 녹아 우그러졌을 때도, 나의 능력이 나 자신을 찢어발겼을 때도 견뎠어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으니까. 그것이 옳고, 올바른 일이니까.
나는,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졌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아니었죠.
언제나 생각했어요. 괴물을 상대할 힘을 가진 것이 어째서 고작 30명 남짓의 사람들뿐이었는지.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내 심정을 상상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동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아니. 함께 싸울 수는 없으나 우리와 같은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만 알았어도, 적어도 우리뿐이라는 고독감에 휩싸이지는 않았겠죠.
그럼에도 버티고자 했어요.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어요.
......
당신들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는 걸 알기 전까지의 찰나에는요.
죽이려 한다, 이 정도면 부드러운 말이겠죠. 무려 처분이라 했던가요.
우리를 인간으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위험을 지닌 샘플로 보던 그 시선이 담긴 문장을 나는 똑똑히 읽어내렸어요.
......
우리가,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나요?
이능력자가 된 거? 그건 단지 우연이었을 뿐이잖아요.
그 단 하나의 우연만으로 원치 않던 싸움에 동원되어 능력에 의한 부작용으로 자신을 좀먹어 죽어갈 때까지 이용당하다가, 결국엔 믿었던 사람들에게 처분당했어야 하나요?
결국 살아남았으니 된 거 아니냐고 하려면 집어치워요.
그렇다면 결국 죽어버린 나의 친구들은 대체 뭐가 되는 건가요?
나는 끊임없이 빌었어요.
제발 우리를 살려달라고.
이제 그만 행복하게 해달라고.
더 이상 아무도 잃지 않게 해달라고.
아무도! 누구도 내 바람을 이루어주지 않았어!
나는 더 이상 푸른 불꽃만큼 뜨거운 사랑을 알지 못할 거예요.
모두와 함께 하고자 했던 어느 작은 약속이 무엇이었는지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고,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해도 여전히 상냥하려 했던 이의 손길을 느낄 수 없겠죠.
...
내가 아는 건 이제 얼마 되지 않아요.
아주 비싸게 배운 것이죠.
이 세상은 내게 너무나도 잔혹하고, 끔찍하다는 사실이요.
여전히 사람을 지키는 건 옳고, 올바른 일이지만 난 더 이상 올바르고 싶지 않아요.
특별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조차 버리고 싶었지만, 이 목숨은 내가 지켜낸 게 아니니까. 그 몫을 다하기 위해 여태 남아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 이외엔 다 그만둘래요.
난 이제 나의 친구들만을 믿고, 그들만을 지킬 거예요.
이제 이 정도면 됐잖아요. 그렇죠?
그러니 이제 그만 놓아줘요.
난 이제 두 번 다시, '사람'을 온전히 믿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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