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AU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긴다는 세상의 당연한 이치처럼, 이제는 곧 자동차도 날아다닐 거라 떠들어대는 찬란히 발달된 문명시대라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무심코 버리고 간 쓰레기가 그득히 썩어가고 피우다 남은 담배꽁초가 백골처럼 쌓인 골목. 부서진 콘크리트에서는 채 마르지 못한 페인트가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걸음을 멈추어 잠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운이 좋지 않은 날에는 끔찍한 단말마가 울려퍼지는, 케놀랜드에서도 가장 까맣고 깊은 오점.
그곳에는 그 오점의 검정보다 더 짙은 사람들이 있다. 언제부터 까만 정장이 그들, 마피아의 상징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딱히 역사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저 그러려니- 하는 편이었지만. 씹다 뱉은 껌이 눌어붙은 길바닥을 말끔히 광택 낸 구두를 신고 뚜벅뚜벅 걸어가자면 홀로 이질적인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아서 일부러 차려입는 건가 싶기도 했다.
"이게 다 청소를 안해서 그런거야."
그런 자신의 홈그라운드와 직업을 평가하는 레파르시아의 목소리는 신랄하기 짝이 없었다. 의자 앞다리를 세운 채 주변에 손대는 일 없이 오로지 균형감만으로 몸을 지탱하는 묘기를 선보이던 레파르시아가 한숨을 푹 내쉰다.
"구석구석 쓰레기들 깨끗이 밀어버리고, 깨진 도로 좀 다듬고, 안쓰는 폐가들 치워서 문화센터라도 만들든지. 원래 환경이 사람을 만든댔어."
레파르시아가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일장연설을 펼치려는 그때, 옆에서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도시가 더러워서 사람들이 이 꼬라지인거야. 사람들이 이 꼬라지라 도시가 더러운거야."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꼼꼼히 말아올려 비녀로 고정시키느라 바쁜 인티즈다. 얼굴을 비춰 볼 거울이나 유리 하나 없건만 매만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인티즈가 별 생각없이 흘리듯 던진 말에 입을 다문 레파르시아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렇게까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가- 싶었지만 조용해진다면 그걸로 목적은 달성된 것이니 인티즈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더럽다, 어쩐다 해도 결국 이곳에 남아있는 레파르시아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 투덜거려도 그저 그런 시답지 않은 잡설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그럴싸해보이는 말을 늘어놓아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퀸은 불러놓고 오지도 않아..."
소파 한 구석에서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도 조용했던 탓에 있는 것도 까먹을 뻔했다. 침대에나 놓여있을 법한 긴 바디필로우를 품 한가득 안은 채 늘어져있던 아나톨리는 눈 앞 탁자에 올려 둔 양주병을 찾아 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몇 시간 후에 나가야 한대서 참자던 것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마지막 하나의 비녀를 남긴 인티즈가 탁자 위의 먼지를 모두 쓸어버릴 듯한 아나톨리의 손을 보다못해 병을 가져다 놓아주었다. 일어날 생각 없이 모로 누운 채 병을 기울여 술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아나톨리의 눈이 그제야 조금 떠졌다.
"고마워, 엑셀러레... 음... 역시 길어..."
만사가 귀찮은 아나톨리에게 6글자의 코드네임은 길 법도 하다. 사실 아나톨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귀찮음이 아니다뿐이지 불편해하는 건 사실이라 대체로 '엑셀'이라 줄여 부르곤 했다.
"나처럼 엑셀이라 부르라니까."
"그냥 코드네임을 바꿔버리면 안돼...?"
아나톨리가 눈을 끔뻑이다가 바디필로우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린다.
"노빠꾸라던지..."
"아학...! 으하학!"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말이 어느 나라에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인티즈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대차게 웃어대는 레파르시아에게 비녀를 날렸다. 비녀는 정확히 미간을 노리며 날아갔고, 레파르시아는 아슬아슬하게 기울인 의자 다리를 제 발목으로 휘감아 붙든 뒤 무게중심을 뒤로 쏟아 몸을 기울였다. 넘어지기 전에 곧바로 두 팔을 들어 어깨 너머로 넘겼고, 바로 뒤에 있던 철제 사물함 위를 짚어 몸을 지탱하자 텅- 하고 무겁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목표를 잃은 비녀가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늦어서 미안. 전달 사항이 많아서... 는 뭐하는 거야?"
때마침 바쁜 걸음으로 도착하여 문을 열던 비비안이 기묘한 자세를 취한 레파르시아를 발견하고 문턱에서 멈칫거렸다. 안을 한 번 죽 훑는 시선에 못마땅함이 가득하다. 웃느랴 버티랴 배에 힘이 잔뜩 들어간 탓에 끙, 앓는 소리를 낸 레파르시아가 말했다.
"퀸. 웃다가 죽으면 순직이야?"
"뭐라는 거야. 얼른 일어나!"
의자를 잡아 세워 레파르시아를 제대로 앉힌 비비안이 태블릿을 탁자에("또 누가 술마셨어." / "...나 아냐...") 올렸다. 비비안은 탁자 위에 두 손을 짚고는 슬금슬금 모여드는 세 사람을 보며 씨익 웃었다.
"정신 차려. 큰 건 하나 해야지."
일제히 내려다 본 태블릿 액정에는 한 남자의 얼굴이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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