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FT
내 안에 스며든 낯선 어떤 언어
지겹지도 않나. 저 루틴은 아직도 반복된다는 게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는데, 끈질기기도 하지. 어차피 나와 만나기 전까지 저 아이는 없는 것이라 치부해도 되는 것에 가깝다. 루프를 반복할 때마다 나는 잊어버리게 되니까. 그러다 불쑥 내 머릿속에 침입해 들어오는 질문 하나, '지금보다 샤밍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나도 조금은 덜 까칠하게 될까. 믿어 본답시고 그에게 기댈 수 있게 될까.'
정말이지, 이런 밤이 찾아오면 도망칠 곳이 없다는 기분에 질식되어 선내의 환한 곳 아래서도 불안에 떠는 주제인데도, 어째서 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낮은 휘파람은 이어진다. 어둠에는 의심의 여지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그 아이를, 샤밍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다고 해야 할까. 변태 고글이라 부르는 것도, 사실 정이 없으면 부를 수 없는 애칭인 것이었다. 매번 루프를 하지 않아 나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도 질척이는 그에 가끔은 실소가 터질 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함이 덮쳐 오기도 한다. 가련한 동물들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 잘 보이는 탓일까, 그조차도 가련한 강아지로 보여 안아 주고플 때가 있어서.
오늘도 오락실에서 마주친 그였다. 볼을 꼬집어 회의실로 끌고 가려고 했으나, 눈망울을 데굴거리며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마냥 구는 것은 어디서 배워 온 스킬인 건지, 하는 수 없이 그가 하는 게임을 곁에서 조금 지켜봤다. 역시 액션 게임이었다. 강자를 때려눕히는 철권 같은 게임. 그 아이는 언제나 그런 것에 승부를 두는 승부사였다. 평소의 그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던 차였다. 여려 보일 때는 비에 젖은 강아지보다 더 가련해 보이지만 말이다.
심우주로 내다 버리기 전에 이것부터 해결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부인?
하여튼, 저 변태 고글 능글맞은 것 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픽 웃어 버렸다.
멀리 떠나야겠다. 내게서 최대한 멀리. 그리고 너는 네게서 멀리. 그럼 난 네게, 넌 내게로 오게 되겠네. D.Q.O 안에서 몇 번의 계절이 흐르고, 몇 겁의 광년과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서로가 서로에게 제대로 닿지 못한 채 끝을 맺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너를 기억하는데, 너는 나를 그릴까. 기억은 할까. 아니, 나를 생각할 틈은 있을까. 네가 다른 이들에게, 아니, 나를 너, 라고 호명하며 부를 때마다 씁쓸해하며 숨죽이는 내 마음을 너는 알까. 매일 밤 바보가 되는 내 꿈속을 너는 알까.
나는 종일 선내 유실물이 된 것마냥 우울해했다. 이런 성격이 아닌데. 그래도 하루쯤, 하루쯤 이래도 되잖아. 내가 저 변태 고글 때문에 이래야 하나 싶었지만, 매일이 평탄할 수는 없었기에. 서로가 날이 되어 서로를 찌르는 모양새가 제법 좋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SQ는 시도때도 없이 레이더망에 잡혔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누그러지는 둘 사이에 남는 것은 정적. 물론 먼저 풀어 주러 꼬리 치는 것은 샤밍이었지만 말이다.
나, 정말 많이 애쓰고 있다. 그러자 SQ가 그러더라.
한번 애써보는 건 어떠냐. 나름 괜찮아 보이는데. 인간들 중에서 괜찮은 인간은 뭐든간에 애써보려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그 아이는 날 수작이나 걸어 보려는 상대로만 인식할 텐데.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
그래서 그거, 하고 있다. 너를 이해하려 애쓰는 것, 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도 잘 못하는 걸 내가 쓰면서 내 자신을 알아가는 일, 나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조심스러운 걸음 마디마디를 내딛으면서, 멀리 가 보고 싶다.
너와 함께. 갓 태어난 나의 세계로, 너의 세계로.
내 안에 스며든 낯선 너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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