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근데진짜] [썰풀이] 캐릭터 빌딩
[241126] [3,000] 기존 설정에 추가로 캐빌딩
#여유로운 #제멋대로 #가벼운 #의뭉스러운 #의외로_자낮 #소시민적인 #조형된 #깨진_유리창
그가 지금과 같은 성격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어디까지나 ‘말 잘 듣는 아이’였고,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그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정을 타고났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잔흔으로 남을 만큼 그가 좋아하는 것은 독서와 티타임, 산책과 같이 정적이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었다. 또한 평화를 추구하는 성격까지 더해져, 그의 성향은 일견 유약하고 소극적으로 비쳤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자신이 마피아 가문의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싶은, 소시민적인 희망만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의 모든 부분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자신의 후계자에게 바라는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가부장적인 대가족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탈리아 마피아 가문에서 자란 그에게 ‘아버지’란 가족 질서 안의 최고 권력자이자 동시에 그가 속한 ‘패밀리’의 ‘보스’이기도 했다. 그의 말은 다른 조직원들에게 그러했듯, 아들인 그에게도 명령이었고, 법이었으며, 규율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후계자에게 전통적인 마피아로서의 덕목들을 요구했다. 때로 ‘거침없는 담대함’과 ‘결단력과 용기’라는 말로 포장되는 이것의 실상은 ‘가차 없는 폭력성’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자신과 같은 성향을 갖기를 원했고, 매사에 감시받으며 이루어진 엄격한 가르침 안에서 그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그는 매사에 여유롭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통제안에서 가장할 수 있었던 최선의 모습에 불과하다. 그를 망나니라 불리게 만든 그의 폭력성, 다시 말해 제 입맛에 맞지 않은 상대에게 가차 없는 성정 역시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해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기 위해 애쓴 결과물이었다. 그러니 이런 행동들은 그의 본성과는 지극히 거리가 있었고, 이는 자연스러운 자기혐오로 이어졌다.
그가 매사에 아버지가 원하는 모습으로 조형되어 움직여야만 하는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끼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종류의 폭력’을 행하는, 심지어 그 행위에 익숙해지는 자기 모습을 좋아할 수 없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의 무력감은 모종의 사건을 기점으로 극에 달했는데, 이 사건을 그의 아버지는 단순히 집안의 일개 사용인 하나를 ‘그들의 방식대로’ 처리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억조차 못하리라는 점에서 ‘아무 의미도 없었던 일’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가 망나니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주위 사람들은, 해 봤자 저택의 사용인과 조직원들에 불과했지만, 점차 그의 어릴 적 모습을 잊어갔다. 마치 그가 이렇게 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며, 이것이 그가 핏줄로부터 타고난 본성이라고 믿는 것처럼. 그러니 그의 유년기는 어느샌가 ‘잃어버린 것’이 되어 있었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소년’을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나이대가 비슷한 이 남자는 저택의 정원사였다. 그는 어린 시절 정원을 거닐며 꽃향기를 맡고, 정원에서도 유독 인적이 드문 곳에서 홀로 독서에 열중하던 아이를 기억했다. 남자는 그가 응당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망가진 것에 불과함을 알았다. 그래서 더는 꽃향기조차 누리지 못하게 된 소년을 안타까워하며, 때로 정원에 만개한 꽃을 한 송이씩 정성스럽게 손질해 그의 책상 위에 두었다.
그 꽃을 바로 쓰레기통에 처박는 모습을 보여야 했을지언정 그것이 선물이라는 사실은 남자도, 그도 알았다. 그리고 그가 아는 사실을 그의 아버지가 모를 수는 없었다. 어느날 그는 부름에 따라 아버지의 집무실을 방문했고, 아버지 앞에 꿇어앉은 정원사와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는 그가 외부에 조직의 비밀을 누설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이지, 침묵의 규율조차 비껴갈, 일개 정원사였다. 식물이 잘 자라는 토양을 고를 줄 알고, 씨앗을 싹 틔우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할 줄 알지언정 다른 조직과는, 특히 정부 기관과는 조금의 연관도 없는. 그 사실을 그는 잘 알았고, 그의 아버지 역시 당연히,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저 아들의 진정성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를 준비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쥔 채로, 그가 헛웃음과 빈정거림을 담아 고작해야 지렁이나 골라낼 줄 아는 치가 무엇을 알겠냐고, 입을 떼려고 했을 때였다. 그의 아버지는 긴말 없이 책상 위에 준비해 두었던 총 한 정을 그를 향해 밀었다. 그 뜻은 재차 곱씹을 것도 없이 명백했다. 그를 위한 항변은 허락되지 않으며,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그에게 할당된 역할은 입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무기가 되는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명하는 살인이라면 언제나 충실히 이행하는 아들이었다. ‘가족(Family)에 대한 충성심’. 그것 역시 아버지가 그에게 끝없이 요구해 온 덕목 중 하나였으므로. 그는 망설임 없이 총을 들어 정원사의 머리를 겨눴다. 눈물로 얼룩진 눈에서 고통과 공포, 좌절, 괴로움을 마주하는 것도 잠깐. 길어봤자 삼 초. 그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사방에 튄 피에서는 이제 구역질조차 나지 않는 익숙한 비린내 대신 꽃이 죽어 썩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렇게 그는 제 손으로, 자신의 유년기를 진실로 없애버렸다. 마비된 줄 알았던 모든 통각이 비명을 질렀다. 그건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감각을 실감할 시간조차 없이 태연히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내고,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미소로 제 아버지를 돌아보아야 했다. 지금까지 그는 아버지의 눈을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눈이 진실로 ‘영혼의 창’이라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저 헛된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하지만 더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산산조각난 유리창의 파편은 그저 빛을 난반사하며 반짝일 뿐, 더는 아무것도 비추지 못할 것을 알았으므로.
그는 똑바로, 자신과 같은 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이제는 그것이 거울처럼 똑 닮아 보였다. 아, 어쩌면 그가 아버지의 눈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을, 그의 아버지 역시 똑같이 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건, ‘비인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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