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대만] 비인도적 운명 01

暴浪 by 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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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도적 운명 01

“이…… 이게 뭐냐…?”

대만이 당혹스러운 기색을 지워내지 못했다. 그의 왼쪽 무릎에 당혹의 원인이 있었다. 보호대를 차고 있는 시간이 길어 묘하게 더 하얗게 보이는 왼쪽 무릎의 위쪽 말이다. 이불을 들춘 상태로, 무릎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웅웅 울려대는 생각은 오직 한 문장뿐이다.

이게 대체 뭔데.

어이없음에 벌어진 입술을 뻐끔거렸다. 도드라진 무릎뼈의 위, 묘하게 하얀 살갗의 위에 낙서라도 한 것처럼 날카롭고 선명한 필체가 눈에 들어온다.

길쭉하고 시원한 선. 그것이 새겨놓은 새까만 색의 글씨. 누군가의 이름 석 자. 서태웅. 대만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세 글자를 눈에 담아내다가 황급히 하얗게 드러난 무릎을 손으로 가렸다.

보면 안 될 것을 목격한 기분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무슨 일이지? 누군가의 장난인가? 당황으로 굳은 머리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누군가가 장난으로 써 놓은 것은 아닐 것이었다.

첫째, 어제 귀가한 뒤 샤워할 때는 무릎에 이상이 없었다. 둘째,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서태웅의 필체였다. 그러나 글씨의 주인은 고층에 있는 자신의 방까지 몰래 침입할 방법이 없었다. 셋째, 무엇보다…. 대만이 무릎을 가린 손가락을 꿈질거렸다.

글씨는 문대는 손가락을 따라 지워지거나 글자가 뭉개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잘 지워지지 않는 유성펜으로 쓴 것도 아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살갗의 위에 진하게 스며들어 새겨져 있었다.

그래. 마치 문신처럼. 꼭꼭 감춰놓고 숨겨놨던 무릎이 헐벗겨진 듯한 감각에 대만이 이를 딱딱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이상증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손으로 문질러서 지워지지 않는데, 이건 어떻게 지워야 하지? 아니. 애초에 왜 서태웅의 이름이? 대체 어떻게 새긴 거야? 뜬금없고 맥락 없는 상황의 속에서 대만이 할 수 있는 건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침대에서 번쩍 일어난 대만이 욕실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방에서 욕실은 멀지 않았고, 조금 경직된 걸음걸이로 욕실에 들어가는 대만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가 됐든. 지워야 한다. 아니 애초에 내보이면 안 된다. 본능적인 움직임을 따라 대만이 샤워기를 들었다.

 

* * *

 

흐르는 물에 문질러 보기. 때수건으로 박박 밀어보기. 비누칠해 보기. 더운물에 불려보기.

“……뭐예요. 다쳤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 욕실에 틀어박혀 무릎이 벌겋게 되도록 벅벅 문질러대던 대만은 지각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급하게 이름을 가릴 방도를 찾아야 했다.

집과 학교에서는 긴 바지를 입으면 된다고 하더라도. 대만이 슬그머니 침을 삼켰다. 연습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없어 급하게 보건실에서 반창고를 받아와 붙인 참이었다.

“어? 어어? 아니? 안 다쳤는데?”

아무것도 아닌 척 구는 게 이다지도 힘들 줄이야.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만 같았다. 과장되게 부정하는 대만의 모습은 매우 수상해 보였다. 태섭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훤히 드러난 그의 무릎을 보았다. 붉은색의 보호대가 아직 채워지지 않아 하얗게 드러난 무릎 위에는 짙은 살구색의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안 다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럼 이건 뭔지 설명해 보라는 듯이 태섭이 대만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대만이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하필이면 이 녀석 옆 락커여서는. 무릎에 크게 붙여진 반창고를 발견하면 이렇게 나올 것을 알고 연습도 일부러 빨리 온 것이건만. 이 더럽게 성실한 후배는 저보다 더 빨리 락커룸에 도착한 상태였다. 슬그머니 락커 안에 놓인 붉은색의 무릎보호대를 챙겨 들었다. 몸을 긴장시킨다. 태섭이 녀석에게 조금의 틈만 드러나도 당장 자신의 왼쪽 보호대에 밀어 넣을 생각이 만반이었다.

“뭐 하세요?”

기이하게도 대만을 구한 건 이 모든 일의 원인이었던 태웅의 물음이었다. 두 선배가 아웅다웅하는 게 이상해 보였는지 친히 이쪽으로 오기와 기웃거리는 서태웅.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릎에 새겨진 이름이 무엇보다 선명했기에 대만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서태웅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름을 쓴다는 행위는 보통 물건의 소유를 주장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이름을 씀으로써 물건에 주인이 있음을 표시하며 그 주인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니 대만은 솔직히 꺼림칙했다. 이 꺼림칙한 감정은 눈앞의 서태웅에게까지 번졌다. 이런 이유로 대만은 멀뚱거리며 서 있는 서태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슬그머니 손이 왼쪽의 다리를 더듬거린다.

“별일은 아니고…. 대만 선배가.”

태섭의 말에 태웅의 시선이 대만에게로 옮겨갔다. 대만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구명줄처럼 붙잡고 있던 무릎보호대에 왼 다리를 밀어 넣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태섭이 당황했지만, 이미 살구색의 반창고는 짙은 붉은색의 보호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의아하다는 듯한 물음을 태웅이 내뱉었다.

“대만 선배가 왜요?”

“난 다 갈아입었으니까 먼저 나간다. 그리고 송태섭. 별거 아니니까 진짜 신경 쓰지 말고.”

“뭐? 진짜죠?!”

저걸 벗겨볼 수도 없고! 등 뒤에서 높아진 송태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손을 휘적거린 대만이 락커룸을 빠져나가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끌어당겼던 입꼬리를 짐짓, 일그러트렸다. 아무 일이 아니기는 했다. 현재 자신의 무릎에 서태웅의 이름이 새겨진 것 그리고 자신이 태웅을 꺼림칙하게 느껴버린 것 빼고는 평소와 달라진 게 없었으니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죄책감에 대만이 입가를 문질렀다. 등 뒤로 달라붙는 시선을 무시하려 애를 쓰며 체육관으로 돌아갈 때였다.

“선배.”

덤덤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자신을 부른다. 묵직하고 낮은 음성은 얼핏 듣는다면 무심해 보이지만, 그와 알아 온 시간이 어느 정도 찬 대만은 그 안에 스민 걱정을 읽어냈다.

그런 태웅의 태도가 대만의 죄책감에 불을 지폈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를 것임을 앎에도 아침부터 시작된 긴장이 진득한 짜증으로 변질하여 고개를 들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은 기어코 당황을 이렇게 추악한 형태로 뭉쳐내어 버린다. 서태웅. 문득, 무릎 위에 새겨진 석 자가 욱씬거리는 것도 같았다.

“어? 왜. 태섭이 녀석처럼 잔소리라도 하려고?”

입술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정면이나 바라보던 고개를 틀어 그를 향해 눈을 두었다. 한참 자라나는 청소년의 얼굴은 생각보다 빨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

그리고 대만은 그 시선을 목격한다. 진득하면서도, 집요한 눈이었다. 새까만 눈동자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모습에 대만이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 시선은 맹목을 닮았다.

“……뭔데.”

“괜찮은 거 맞아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 대만이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태웅의 새카만 시선 아래, 모든 게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만 같다. 그 정도로 태웅은 대만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잘못 대답하면 그 큰 손아귀로 자신의 손목을 붙잡아 채 추궁이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느끼는 건 예민하게 버려진 신경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서태웅이 그런 태도를 비치고 있는 것인가. 굳기라도 한 듯이 태웅을 응시하던 대만이 고개를 돌렸다.

“괜찮다니까?”

최대한 태연하게 가다듬은 말은 다행히 떨리지 않았다. 의심스럽게 그를 바라보던 시선이 걷혔다. 적어도 대만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태웅이 다른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뭐, 뭐하냐?”

서태웅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방금까지 자신을 살짝이나마 내려다보던 놈이 바닥에서 자신을 올려다본다. 미묘하게 뒤집힌 시선의 구도가 이상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경직된 시선이 태웅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가 손을 뻗었다.

워낙 선도 곧고 예쁘게 생긴 놈이라 그런지 손가락도 농구선수 답지 않게 길고 하얗다. 대만이 긴장으로 숨을 삼켰다. 그 긴 손가락이 느릿하게, 붉은 보호대로 가려진 무를 위를 더듬는다. 단조롭고 아무렇지 않게 느껴야 할 더듬거림이 이상하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게 느껴졌다.

“괜찮은 거 같네요.”

무릎의 도드라진 형태를 손가락으로 한참이나 눌러보던 태웅이 고개를 들었다. 그 새카만 눈동자에 민망할 정도로 새빨개진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자신의 그런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대만이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너는 체육관도 아니고 여기서 왜 이래!”

당황으로 내뱉은 말은 커다란 모순을 품고 있었다. 달아오른 대만의 얼굴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던 태웅이 반문한다.

“체육관에서는 이래도 괜찮아요?”

아니! 그럴 리가 있겠냐고! 답이 목 끝까지 치밀었지만 뱉어낼 수 없다. 울화처럼 치민 민망함을 그대로 뱉어 놓는다면 두 말을 하게 되는 셈이고, 그렇다고 그의 말에 긍정하기에는 자신의 언행에 거대한 어폐가 있었던 탓이다. 여전히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대만이 당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태웅의 눈가가 묘하게 발갛게 느껴진다.

“될, 될 거라고 생각했냐?”

위험하다. 결국 생존 본능처럼 목소리를 빽 높인 대만이 답 같지 않은 답을 내뱉고는 척척 걸음을 옮겼다. 아침에 글씨를 발견하고 욕실로 갈 때 보다 더 경직되고 뚝딱거리는 걸음이었다. 자신을 두고 사라진 선배 때문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태웅이 눈을 끔벅였다. 여전히 서태웅의 시선은 저만치 멀어진 대만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넌 또 여기서 뭐 하냐?”

마침 락커룸에서 나온 태섭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태웅을 발견했다. 평소와 같이 무덤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이나 끔벅거리는 서태웅이라니.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가. 그제야 태섭에게로 눈을 돌린 태웅이 엉덩이를 털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별거 안 했어요.”

태섭이 눈썹을 스윽 올렸다. 잠시간 태섭에게 닿았던 태웅의 시선이 대만이 사라진 복도를 향해 옮겨갔다.

“뭔데.”

“그냥……. 어. 잠깐 생각…?”

반사적으로 변명한 태웅의 시선이 복도의 끄트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바닥에 주저앉아 가면서 하냐. 아무 데나 주저앉지 말라고. 태섭의 잔소리에 대꾸하면서도, 태웅의 시선은 여전히 대만이 사라진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 * *

 

 

이름이 나타난 이후 제일 기묘하게 느껴지는 것이라면 바로 서태웅이었다. 그러니까 무언가에 이끌린 듯 주위를 빙빙 맴도는 서태웅. 대만이 소란스러움에 이마를 짚었다.

태웅이 녀석만 그랬다면 차라리 신경을 껐을 것이었다. 본래 여기저기 호기심을 보이던 놈이었으니까. 그런데. 대만이 힐끗 태웅과 대치하는 놈에게 시선을 두었다.

서태웅이 하면 나도 한다. 그런 생각일 게 분명한 강백호가 거기에 있었다. 태웅이 자신의 주위를 빙빙 맴돌기 시작하자 백호 또한 제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더니 결국 저 상태다. 대만이 피곤함으로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닫았다. 이 기묘한 흐름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노려보는 치수의 시선을 외면하는 것뿐이었다.

“여우 녀석! 왜 따라 해!”

“네가 따라 하는 거잖아, 멍청아.”

두 놈이 자신의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면 그래도…. 조금 양보해서 그래도 견딜만하겠는데…. 서로 앙숙 아니랄까 봐 대만의 주위를 빙빙 맴돌던 둘에게서 튄 불씨가 순식간에 화르르 옮겨붙었다. 이렇게 시작된 싸움의 원인은 딱히 누군가에게 특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강백호가 서태웅에게 시비를 걸고, 강백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던 서태웅이 그 시비를 받아치면서 험악해진 게 지금의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정대만.”

“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거든?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라.”

기어코 대만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강백호는 원래 서태웅 자체를 아니꼽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반발로 서태웅을 경계하는 것이지만, 서태웅이 시비에 이렇게 노골적인 언짢음으로 대응하는 건 처음이었다.

대만이 보기에도 태웅의 행동은 확실히 문제점이 있어 보였다. 치수의 시선을 견디다 못한 대만이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말을 더 듣기 전에 일단 해결부터 하는 게 먼저다. 그러지 않으면 저도 저 둘과 싸잡혀서 혼이 날 테니까!

삼 학년 체면에 이게 무슨 일 인가, 싶지만. 저질러 놓았던 일들이 있었으니 대만은 순순히 치수의 눈짓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성큼성큼, 당장이라도 서로의 머리털을 쥐어뜯을 듯이 대치하는 야생아들에게 다가간 대만이 서태웅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야. 서태웅. 나랑 얘기 좀 하자.”

대만의 힘에 의해 태웅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진다. 덩치도 산만한 게 끌리는 대로 순순히 이끌리는 꼴이 우스꽝스럽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우습다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서태웅을 체육관의 바깥까지 질질 끌어온 대만이 그를 구석에 세웠다. 강백호와 그렇게 이를 세워가며 대치할 때는 언제고, 순순히 벽에 붙어 선 채 눈을 끔벅거리는 태웅은 순박하고 무해해 보였다. 그 잘생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대만이 고개를 저었다.

“선배?”

저 덩치 산만한 놈이 무해해 보인다니. 물론 서태웅이 아는 사람 앞에서는 순한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대만은 그의 만만치 않은 면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문득 그때 잡혔던 머리가 울리는 기분에 이마를 짚는다. 서태웅을 끌어내다시피 불러낸 지금은 머리가 짧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튼 태웅은 오늘 유독 기묘했다. 평소라면 바보 취급하고 말 놈이 오늘따라 더 과민반응 하는 게, 증거라면 증거였다. 태웅을 지그시 바라보던 대만이 팔짱을 꼈다.

“너, 무슨 일 있냐?”

서태웅과 떨어진 이상 씩씩거리던 강백호의 짜증도 잦아들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저쪽은 채치수가 맡을 것이니 괜찮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해치워야 할 임무는 지금 눈앞에 있는 서태웅을 진정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서태웅이.

대만은 여전히 태웅이 꺼림칙했다. 그 꺼림칙함을 어떻게든 억누르기는 하고 있지만…. 묘하게 변질된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건 어려웠다. 태웅을 가만히 응시하던 대만이 눈을 돌렸다. 태웅이 예의 그 ‘이상행동’을 보인 건 그 이후의 일이었다.

“뭐, 뭔데.”

태웅의 큰 손이 조심스럽게 대만의 고개를 붙잡아 제게로 돌렸다. 마치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 붙잡아 두려는 것처럼 낯간지럽기 짝이 없다. 대만은 문득 체육관으로 들어가기 전, 락커룸 바깥 복도에서 태웅이 보였던 행동이 떠올랐다. 무릎을 매만지던 그 손가락의 움직임을. 무릎보호대가 분명히 이름을 가리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이름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듯이 긴 손가락이 직접 살갗의 위를 더듬거리는 것만 같던. 그때의.

묘한 감각이 떠오르자 대만의 귀 끝이 순식간에 화르륵 불타올랐다. 뺨을 누르는 손가락의 감촉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다. 말 그대로, 무릎에 서태웅의 이름이 나타난 이후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당황한 듯이 입술을 뻐끔거리던 대만이 이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선배. 오늘 이상해요.”

그건 내가 할 말인뎁쇼. 대만이 속으로 불만스러움을 삼킨다. 제일 이상해진 건 본인이면서 자신에게 이상함을 운운하다니. 그러나 태웅의 앞에서 바락바락 뻗대기에는, 확실히, 정대만 자신 또한 오늘은 정상이 아니었다.

“뭐가 임마. 그나저나 오늘 강백호랑 너랑 쌍으로 왜 그러냐. 선배 피곤하다.”

얼굴이 텁하고 붙잡혔기에 눈을 다른 곳에 둘 수도 없었다. 대만은 그 대신 부루퉁하게 말하며 태웅을 쏘아봤다. 심술궂은 시선이었음에도 태웅은 여전히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이상할 정도로 부담스럽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과하게 서태웅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대만이 다른 곳을 향해 굴러가려던 눈을 억지로 태웅에게 잡아둔다.

서태웅은 원래 다른 사람을 관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대를 빤히 응시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만의 ‘과하게 의식’이라는 감상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고집스럽게 입술을 다문 대만이 말 대신 그를 가만히 노려봤다.

“왜요?”

왜요? 그건 내가 할 말이라니까? 대만의 시선이 더 날카로워졌다. 계속해서 대만이 계속해서 자신을 노려보자 태웅은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싫었어요?”

얼굴을 붙잡은 손을 떼지도 않는 주제에 웅얼거리는 듯이 그렇게 묻는다. 선배가 말하면 그냥 알겠다고, 할 것이지. 왜 저렇게 또 눈치를 본단 말인가. 대만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태웅을 괴롭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저 덩치 산만한 남고생을 대상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대만은 정에 약한 인물이었다.

“뭐가 싫었냐고 묻는 건데?”

“그……. 따라다니는 거요.”

“말 나온 김에 묻자. 너 나 따라다니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그러고 나서야 대만은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태웅을 떠올렸다. 애초에 체육관에서 강백호와 시비가 붙은 게 이것 때문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갑자기 따라다닌 거지? 시선이 물끄러미 태웅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가 뭔데?”

무릎 때문인가? 짐작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었다. 락커룸에서 나온 이후 태웅은 이상해졌으니까. 여전히 턱이 붙잡힌 채로 그를 빤히 응시하던 대만이 태웅의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게….”

“일단 이것부터 놓고.”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왜 자신의 앞에서만 쩔쩔매는 건지 모르겠다. 괜히 속이 찝찝했다. 대만이 손등을 두드리자 태웅이 그제야 손을 놓았다. 내숭이라도 부리는 건가? 그런데 자신에게 서태웅이 내숭을 부려서 좋을 건 뭐가 있지? 눌렸던 뺨이 자유로워진 대만이 팔짱을 꼈다.

“너 혹시….”

짐작 가는 게 있었다. 태웅이 슬그머니 시선을 틀었다. 진짜 설마 그거 때문인가? 대만의 입술이 삐딱해졌다. 사실 이유라고 꼽을 것도 하나밖에 없기는 했다.

“1대1 때문이냐?”

“……네?”

자신도 농구에 미쳤지만, 서태웅 또한 농구에 제대로 미친 놈이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저번, 능남과의 시합 이후 서태웅은 달라졌고, 그 이후 매일 같이 1대1 시합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으니까. 서태웅과의 연습은 자신의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니, 그를 상대 해주는 것이야 무리는 아니었다. 야, 그런데 말이다…….

“맞아요. 1대1 때문에.”

“이렇게 굴지 않아도 ……충분히 해주고 있지 않아?”

태웅은 여전히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을 비쭉거리면서. 뭔가 수상쩍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를 더 의심할 근거도 없다.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대만은 그냥 그렇게 납득하기로 했다.

“그렇게 안 쫓아다녀도 해줄 테니까. 너무 졸졸 쫓아다니지 마.”

대만은 몰랐다. 자신의 이 말이 태웅에게 어떤 면죄부를 쥐여줬는지. 그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대만이 찝찝함을 뒤로한 채 다시 체육관으로 향했다.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태웅이 느껴진다. 왁왁거림으로 시끄러웠던 체육관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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