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

가챠 타입 11

1차

현에게는 소소한 취미가 있다.

바로 집 근처나 동네 한바퀴를 돌아보는 것. 처음에는 시간 때우기 겸 시작했었는데 예상외로 재밌었다. 같은 길을 가는 것도 지루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아직까진 지루하지 않았다.

좌우로 나눠진 골목 앞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오른쪽은 주택가인지 낮은 빌라가 여러 채 모여있다. 딱 보기만 해도 조용할 거 같았다. 오늘은 살짝 생활 소음이 있는 게 좋은데. 왼쪽을 보니 완만하게 휘어진 내리막길이 보였다. 현이 있는 위치에서는 그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 있을까. 현은 망설이지 않고 왼쪽으로 향했다.

길 끝에는 편의점과 아담한 카페가 있었다. 카페라. 나쁘지 않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 한 명 존재하지 않았다. 달콤한 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라도 마실까. 커피 한잔 하는 것 정도야 괜찮았다. 그 정도로 지갑 사정이 궁핍한 것도 아니었으니. 바 안쪽에서 점원이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한 박자 늦게 현의 존재를 깨달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

“네.”

점원은 계산하자마자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여긴 기계로 안 하고 손수 하는 건가? 향긋한 커피 향이 코를 간질인다.

“맞다. 포장 해줘요.”

“아, 네.”

그러고 보니 포장한다는 말을 까맣게 잊었다. 뒤늦게 말하니 점원은 떨떠름하게 현을 바라보았다. 아직 원액을 추출하고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진작 말해주지, 점원이 그렇게 작게 중얼거렸다. 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른 척 넘겼다. 헷갈리게 말해서 미안, 그렇게 속으로 사과했다.

“맛있겠네.”

그건 그렇고 향이 너무 좋았다.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입에 담았다. 혼자 말하는 건 종종 고쳐지지 않는 버릇 중 하나였다. 적어도 저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점원은 고개를 들어 현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했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 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손사레를 하니 점원은 뚱한 표정으로 마저 커피를 내렸다.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커피가 맛있을 거 같아서.”

“아, 네….”

납득할 수 있는 범위였던 걸까. 점원은 더 이상 현을 바라보지 않았다. 갑자기 혼잣말하는 손님이 있으면 당황스럽겠지. 현은 제 혼잣말하는 버릇을 고쳐야 하나 고민해보았다. 아니, 고치지 않아도 되겠지. 어차피 한두 번 보고 말 사이니까.

커피를 받고 카페를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현의 볼을 어루만졌다.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오후 세 시였다. 슬슬 겨울이 현을 맞이해주기 시작했다. 내일은 나설 때 따뜻하게 입어야겠네. 현은 한 손에 든 커피를 홀짝였다. 수제로 원두를 갈아서 만든 것치곤 그리 맛있지 않았다. 어느 프랜차이점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맛. 가격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카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공원이 보였다. 공원 내부는 사람 한 명 없이 한적했다. 간단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구와 벤치, 미끄럼틀과 시소. 어린애들이 자주 오지 않나? 시소와 미끄럼틀은 딱 보아도 오래 돼 보였다. 어쩐지 보기만해도 쓸쓸해지는 풍경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돌아갈 길을 되짚어 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약 한 시간이 걸렸다. 한 시간 내내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가볍게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이렇게 됐던 걸까. 덕분에 모르는 동네까지 오게 됐다.

“어떻게 가냐.”

차라리 버스라도 타야 하나? 그런데 몇 번을 타야 집으로 갈 수 있는지 모른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서 가면 되겠지. 정 안되면 택시를 타고. 그러고 보니 몇 주 전에 모르는 동네에 갔다가 택시를 탄 적 있었다. 몇 시간 내내 걸었던 탓에 아주 멀리 온 줄 알았는데, 바로 옆 동네였다는 비하인드가 있었다. 덕분에 주소를 말하자마자 택시 기사가 이상한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았지.

어느새 커피를 다 마셨다. 어느새 커피가 동났다.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빈 커피잔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린 채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제 가야지, 저녁은 뭘 먹으면 되려나.”

내일은 또 어디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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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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