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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챠 타입 12

림버스 컴퍼니 - 이상

본리 죽음이란 한 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 삶의 마침표다.

그렇다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어떨까. 마침표를 여러 번 찍을 수 있다면. 한 번밖에 없다는 희귀성이 사라지고, 죽어도 돌이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생명을 경시하지 않을까. 어차피 다시 살아날 수 있는데, 같은.

설은 하늘을 보았다.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구름이 켜켜이 쌓여있을 뿐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 하늘이 제 상태를 나타내는 거 같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 아깝다. 오늘은 꼭 별을 보고 싶었는데. 설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제 곁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이상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은 마치 세상의 어둠을 품어낸 것처럼 보였다. 설은 제가 헛된 생각을 했다는 걸 자각했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이상은 설이 제 존재를 자각했음에도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때때로 설은 잠을 자지 않은 채 밤하늘을 보았다. 이상은 그런 설을 찾으러 왔고.

“이번에는 여기서 별을 보고 있었구료.”

“네.”

설은 검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제야 이상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설이 보았던 하늘과 비교했을 때 미세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조금 전보다 구름이 더 쌓여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거 같다거나. 어느 쪽이든 별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어쩐지 제가 평범한 사람에서 벗어나는 거 같았다. 아니, 평범한 사람은 무슨. 이 세상에서 평범해서는 살아갈 수 없다. 제 몸 하나 정도는 지킬 만한 힘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소리 없이 죽었다.

이상은 밖에 있었던 탓에 차게 식은 설을 조심스럽게 보담아주었다. 특별하게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가볍게 그의 볼을 매만지고 온도를 재는 게 전부였다. 설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이런 때도 있어야지. 설은 이상을 제가 있는 쪽으로 끌어당겼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탓에 이상은 무게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주위는 풀에 뒤덮여 있었던 탓에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 이오.”

“재밌잖아요.”

어디까지나 가볍게 부린 장난이었다. 이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장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기왕 넘어진 거 이상은 일어나는 것보다 설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은 것마냥 옆에 앉았다. 설은 이상이 보다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움직였다. 하지만 딱히 변한 건 없었다. 그래도 이상은 편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어렸을 적 일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불꽃놀이도 하고 그랬죠. 그때도 하늘에 별이 없었는데.”

“그땐 웬 처자가 한밤중에 있어서 꽤나 놀랐소. 이렇게 위험한 날에 있다니.”

대화 흐름은 자연스럽게 어렸을 적 일이 됐다. 대화 주제가 많았지만, 이렇게 어둑한 밤하늘을 볼 때마다 불꽃놀이를 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별도 없는 하늘. 유일하게 지상에 밝힐 수 있는 불빛. 설은 동백과 함께 만나 빛나던 불꽃을 떠올라보았다. 동백이 보이지 않았을 때 크게 낙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상을 만나게 됐으니 다행인 걸까? 낯선 처자에게 말을 거는 남성이라니. 당시에 설은 이상을 꺼려했다. 가족이나 딱 필요해서 만났던 사람이 아니니까. 무섭기도 했다.

이상은 아무 흑심을 품지 않았다. 그저 더 아름다운 불꽃을 보여주었을 뿐이니까. 그때를 계기로 설은 이상과 친하게 지냈다. 동백이 종종 친한 두 사람을 질투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무엇보다 기뻤으니까.

세 명이서 놀 때는 무척이나 좋았다. 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고, 세상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깊이 소망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 소망을 버린 지 오래였다. 설은 작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옅은 미소였다. 이상은 설의 미소에 반응했다.

“즐거운 생각을 한 모양인데 어떤 생각을 한 건지 알려줄 수 있소?”

“그냥 불꽃놀이 했을 때요.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도 즐거웠잖아요. 안 그래요, 이상 씨?”

“그 무렵에는 나도를 포함한 모두가 아무것도 몰랐을 시기니. 나도 꽤 즐거웠다구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기에는… 이상이 알려준 사실은 무척이나 유익했다. 설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굳이 이 분위기를 깰 만한 발언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옛 추억은 그저 즐거운 일로 기억하면 그만이다. 설은 그대로 이상의 어깨에 기댔다. 묵직한 남성의 체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상은 설이 불편하지 않도록, 조금 더 편히 기댈 수 있도록 몸을 움직였다. 별 하나 빛나지 않은 밤이었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선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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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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