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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챠 타입 13

프로 메어 - 리오 포티아

버니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파티는 늘 리오의 곁에 있었다. 당연히 지긋지긋할 정도로 그의 말을 들었다. 외우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외우게 됐다.

언제부터 자신이 버니시였더라. 애초에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었다. 파티는 조금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릴 때의 철없는 생각이었을 뿐이다. 자신은 평범한 사람과 섞일 수 없는 버니시다. 버니시의 운명은 잔혹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버니시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고작 불꽃을 다룰 수 있다는 이유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파티는 그게 싫었다. 한때 버니시였던 자신을 영영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신에게 빌었다.

그런 파티를 구해준 건 리오였다. 리오는 망설이지 않고 파티에게 손을 뻗었다. 같은 버니시끼리 잘 지내자고 말했었다. 파티는 망설이지 않고 리오의 손을 잡았다. 어쩐지 리오의 곁에 있으면 자신도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구출된 이후로 무엇을 했더라. 리오는 참 부지런했다. 도시에 화재를 일으키면서도 시민이 대피할 수 있는 길을 확보했다.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화재가 일어나면 다치는 사람이 생길 텐데. 파티는 그 모순을 지적하지 않았다. 고작 이런 짓을 한다고 해서 버니시의 대우가 달라질 수 있을까? 오히려 더 위험한 놈들이라며 배척하지 않을까. 파티는 이 생각을 리오에게 말하지 않았다. 파티가 걱정하는 부분은 전부 고려했을 테니까. 리오는 머리 좋은 사내였다. 그러나 세상 모두가 리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망할 놈들.

파티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슬슬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파티는 익숙하게 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한 개비만 덩그러니 들어있다. 어쩔 수 없네, 나중에 사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담배를 입에 물 무렵이었다.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 리오.”

이번에는 어디에 다녀온 걸까? 리오의 몰골은 다소 엉망이었다. 파티는 입에 담배를 문 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물고 있어서 발음이 조금 이상했지만, 리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리오는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표정만으로 알 수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고 했었지만, 그만두었다.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입에 발린 말을 해봤자 어떤 이득이 있을까. 파티는 제 생각을 숨겼다. 모두를 위해 움직이는 리오에게 쓴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담배를 많이 핀다는 생각이 들었어.”

“담배만큼은 봐줘. 없으면 안 되니까.”

“피지 말라고 하려는 건 아니었어. 아, 맞아.”

이거.

리오는 주머니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담배를 건넸다. 담배는 평소에 파티가 곧잘 피우던 제품이었다. 이걸 어디에서 구한 걸까. 파티가 피우는 담배는 다소 희귀했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구하기 힘들었다. 파티도 종종 다른 담배로 바꿀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리오는 담배를 파티에게 던지듯이 건넸다. 파티는 어렵지 않게 받아냈다. 다시 확인해봐도 제 입에 물고 있는 담배랑 같은 제품이다.

“고마워. 마침 다 떨어졌거든.”

“많이 피우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지? 하루에 하나만 피워. 구하는 것도 힘드니까.”

“노력은 해볼게.”

그대로 받은 담배를 주머니에 넣었다. 파티는 입에 문 담배의 끝에 불을 피우려고 했었지만, 리오가 먼저 움직였다. 리오는 능숙하게 파티의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담배 끝에서 잿빛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잘해주네.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오, 정말 버니시는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저쪽이, 우리를 먼저 죽인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우린 정말 범죄자가 될 뿐이야. 그건 최대한 사양하고 싶어. 우린 범죄자가 아니라 어엿한 평범한 인간이니까.”

리오는 주먹을 쥔 채 파티에게 말했다. 이런 대화를 몇 번이나 했었더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매번 리오는 같은 대답을 했다. 버니시는 괴물이나, 범죄자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임을 강조했다. 착한 리오, 부디 사람들이 널 이용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파티는 고개를 들었다.

“곧 겨울이네.”

“그러게.”

“슬슬 겨울 대비 해야겠다. 작년에는 무척 고생했으니까.”

파티는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후우, 숨을 토해내자 하얀 입김이 모락 피어올랐다. 리오는 금방이라도 파티에게 무어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그러나 그 말은 소리로 빚어지지 않았다. 그저 파티처럼 하늘을 바라본 채.

“응, 올해 겨울은 단단히 준비해야겠네.”

그리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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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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