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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디 23주차

글터디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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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어벤츄린은 완·매의 창조물을 세 마리 키운다. 한동안 개척자가 헤르타 우주정거장에서 그들을 연구하다가 어벤츄린을 포함한 몇몇 이들에게 입양하지 않겠느냐 물었는데, 겸사겸사 레이시오에게 “정 마음의 허전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마음을 기울여 돌볼 것을 입양하는 것도 좋아. 반려 식물이나 동물 같은 거.”라는 조언을 받았던 것이 떠올라 냉큼 세 마리나 입양해버린 것이다. 이후 레이시오가 한 마리면 될 것을 굳이 세 마리나 입양한 이유가 뭐냐며 묻자, 어벤츄린은 한 마리씩 품에 안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야, …세 마리씩이나 되면 외로울 일이 적을 거 아냐.”

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아무튼 무언가를 돌보는 것에는 무조건 돈이 든다. 그리고 어벤츄린은 공교롭게도 돈이나 자본이 무한하다시피 한 남자였다. 스타피스 컴퍼니의 투자전략부 간부로서 출장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창조물들은 나름대로 지능이 있어 큰 돌봄을 필요하지 않았고, 도우미 로봇만 하나 있다면 부하나 지인에게 잠시 집에 들러 그들을 잠시 봐달라고 하는 것으로 족했다. 정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키퍼를 부르는 방법도 있었다. 요즘 시대에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고, 앞에서 언급했듯 어벤츄린은 타인에 비해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은 편이었으므로.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잔뜩 움츠러들어있던 창조물들도 금방 어벤츄린의 집에 적응해 이곳저곳 기어다니며 탐험하거나, 저희끼리 조잘대거나, 간혹 기분이 좋을 때면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이 세 마리의 창조물들은 지금에 이르러선 어벤츄린의 새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즉, 레이시오와 어벤츄린이 연인으로서 교제를 시작했을 때, 다시 한 번 어벤츄린이 레이시오에게 그들을 소개해야 했다는 뜻이었다.

“초면은 아니지? 애초에 얘네랑 같이 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레이시오이기도 하니까.”

“그래, 오랜만에 보는 군…. 생각보다 잘 돌보고 있어 다행이야.”

어딘가 낯익은 인물이 자신의 주인과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세 마리의 창조물들은 흥분 상태로 동공을 크게 키운 채 길게 울었다. 전병처럼 생겨 단단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고양이처럼 유연한 그들은 몸을 꿀렁꿀렁 흔들어대며 본인들의 주인 옆에 앉아있는 레이시오에게 만져달라며 아우성쳤다. 셋 중 평소에도 가장 참을성이 없던 녀석은 레이시오의 무릎 위에 올라가려고 발버둥치기까지 했다.

“…키우는 동물이 주인을 닮는다는 말은 진짜였나. 너처럼 사람 손을 잘 타.”

 

웃음을 섞으며 창조물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지던 레이시오가 작게 탄식하자, 어벤츄린의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분명 낯선 사람일 텐데도, 다른 이들이 방문했을 때보다 더 반갑게 우는 걸 보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금 부끄러워진 어벤츄린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일부러 말을 돌렸다.

 

“레이시오가 이렇게 고양이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

“굳이 호불호를 따지자면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선호하는 사람은 아냐.”

“그래? 그런 거 치고는 꽤 익숙하게 만져주고 있는 거 같은데. 레이시오, 아까부터 계속 웃고 있잖아.”

“음, 그건…….”

 

잠시 창조물을 쓰다듬는 레이시오의 손이 멈추더니, 그대로 레이시오가 잠시 입을 닫았다. 갑자기 멈춘 손길에 레이시오의 무릎 위에 올라와있던 창조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전병 밖으로 길게 빼 레이시오의 손을 찾을 때쯤이 되어서야, 레이시오가 다시 조심스럽게 창조물의 턱을 간질여주며 덧붙였다.

 

“아니,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

“고양이 좋아하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거든, 교수 양반?”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내뱉은 어벤츄린이 레이시오의 발밑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창조물 하나를 들어 올려 안았다. 레이시오의 쓰다듬을 받지 못해 울상이 된 창조물이 그제서야 어벤츄린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몸을 기대며 길게 울었다.

 

“게다가 우리 애들이 귀여운 편이기도 하지. 토파즈도 인정했다고.”

“확실히, 내가 본 다른 창조물들에 비해 예의 바르긴 하군. 어리광은 심하지만.”

“레이시오한테만 그러는 거야, 진짜. 다른 사람들한테 이렇게까지 애교를 보여주는 건 처음 본다니까? 똑똑한 애들이니까 누구한테 예쁨을 받아야하는지 벌써 눈치 챈 게 틀림없어.”

 

제 주인과 주인의 연인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세 마리의 창조물들은 좋은 냄새가 나는 새로운 사람과 간만에 기분이 좋아 보이는 주인의 모습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게 그들에게 머리를 비비며 잔뜩 울음소리를 냈다.

 

02.

 

“시오다, 시오.”

“시오가 왔어.”

 

교수의 차량이 건물에 들어왔다는 알람이 인터폰에 뜨자마자 창조물들이 부산스러워졌다. 키가 작아 메시지는 보이지도 않을 텐데, 어벤츄린이 평소와 다르게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점이나, 저번에 레이시오가 가르쳐준 시계를 보는 방법을 통해 시간을 짐작하고 방문자가 레이시오라고 확신하고 있는 투였다. 날이 갈수록 머리가 영특해지는 것 같은 자신의 창조물들에, 어벤츄린이 샐러드볼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레이시오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창조물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우르르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창조물들은 이상할 정도로 레이시오를 반겼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 어벤츄린이 언제는 한 번 그들과 놀아주다가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창조물들은 크게 동공을 키우고 신이 나 저들끼리 순서도 없이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시오한테 안기면 좋은 냄새가 나.”

“우리한테 언제나 재밌고 신기한 걸 진지하게 가르쳐 줘.”“저번에는 주인 몰래 그림책도 읽어줬어.”

“혼내는 척 하지만 사실 우릴 엄청 좋아해 줘.”

“누워있는 시오 위에 올라가면 가슴이 말랑말랑해.”

“이유 없이, 그냥 좋아!”

 

황당하지만 전부 납득이 가는 이유였기 때문에, 어벤츄린은 흔들어주고 있었던 고양이 장난감용 깃털을 마저 흔들어주며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가슴이 말랑말랑하다고 말한 창조물은 누구야? 언제 레이시오 가슴 위에 올라가서 그런 못된 장난을 쳤지?”

“앗!”

“들켰다!”

“도망가자!!”

 

어벤츄린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뛰어 도망가는 세 마리를 쫓아가자, 갑자기 시작된 술래잡기에 신이 난 창조물들의 못뇽거리는 울음소리가 아주 오랫동안 집안을 채웠다. 덕분에 세 마리와 한 명의 저녁 시간이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짧은 회상에서 돌아와, 드디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창조물들이 제 자리에서 방방 뛰는 기척, 그리고 레이시오의 당혹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시오!”

“시오, 기다렸어.”

“주인도 같이 기다렸어.”

“……고양이들은 마중은 잘 안 나오다던데, 너흰 이럴 때 보면 고양이보단 강아지 같군.”

 

보지 않아도 뻔했다. 레이시오의 다리에 매달려 안아달라고 조르고 있을 창조물들을 쉽게 머릿속에 그린 어벤츄린이, 마지막으로 후라이팬에서 그릇으로 파스타를 옮겨 담았다. 그리고 역시나 양 팔을 창조물들에게 빼앗겨 한 아름 그들을 안아 들어오는 레이시오를 본 어벤츄린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시오, 누가 고양이들을 그렇게 물건 옮기듯 안아 줘?”

“…시끄러워. 한 번에 안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얘들아, 이제 교수 곤란하게 하지 말고 내려 와.”

 

꼭 이런 때에만 어벤츄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척, 길게 울음소리를 내던 창조물들은 어벤츄린이 팔짱을 끼고 아무 말 없이 씩 웃자 조용히 하나 둘 씩 레이시오의 품에서 내려왔다.

 

“애들을 협박하기나 하고, 잘하는 짓이군.”

“누구 애긴 누구 애야?”

“…네 애지, 굳이 따지자면.”

“굳이 따지자면, ‘우리’ 애겠지?”

“또 이상한 소리.”

 

레이시오가 가볍게 말을 넘기며 음식이 차려져있는 식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샐러드에, 파스타에, 립 스테이크까지, 가득한 한상 차림이었다.

 

“네가 했나?”

“음…. 조금은 내가 했고, 조금은 사왔지.”

“평소에도 이렇게 먹고?”“교수가 따로 걱정하지 않을 만큼은 꼭 먹어.”

“약은.”

“잊어버리지 말라고 내 폰에 알람까지 설정하게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원하는 답을 들은 레이시오가 만족스럽다는 듯 옅게 웃음을 보이며 식탁에 앉았다. 비즈니스 파트너로 시작해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지나 연인에까지 도달한 버릇을 버리지 못한 레이시오는 이렇게 종종 어벤츄린의 식생활과 약 복용을 특히나 신경썼다. 몇 번이나 들어 귀에 못 박힐 정도가 된 레이시오의 지론은, 어벤츄린의 불면증이나 신경과민증, 그리고 생활 전반에 걸친 우울함은 올바른 식습관과 수면습관, 적당한 운동과 약 복용으로 충분히 자연스럽게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조곤조곤 늘어놓던 레이시오의 앞에서, 어벤츄린은 제 앞에 놓인 찻잔을 손가락으로 문질거리며 생각했다. 그냥, 레이시오가 옆에만 있어주면 뭐든 해결될 것 같은데. 잠도, 우울함도.

 

사실 어벤츄린은 굳이 따지자면 입도 짧고 식욕도 없는 편이었다. 레이시오가 진료를 내리며 자신의 식습관을 지적하기 전까지는 단백질 바나 간편식으로 몇 끼를 떼우는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로. 요리는 살아 생전 해 본적이 없으며, 외식은 출장이나 일을 할 때에만 해 볼만 하지, 매일같이 혼자 하기에는 퍽 귀찮은 일이었다.

 

그런 어벤츄린에게도 레이시오와의 식사는 부담을 주지 않는다. 어벤츄린이 그게 참 좋았다. 무리해서 음식을 다 먹을 필요도 없고, 예의를 차릴 필요도, 서로 속내에 숨긴 것을 파악하느라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앞뒤를 잴 필요도 없다. 하다못해 꼭 먹고 싶다며 시킨 것을 먹다 남겨도 레이시오가 아무 말도 없이 제 그릇으로 가져가 남은 걸 먹어주는 때도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찾으라며 숙제를 내준다던가, 혹은 직접 앞치마를 매고 어벤츄린의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주는 사람. 죽지 못해 하는 식사에 재미를 붙이게 된 건 이 사람의 영향이 크다는 걸, 어벤츄린은 인정해야만 했다.

 

오늘도 평소의 일상과 건너들은 반가운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속도로 식사를 마쳤을 무렵에는, 사료 배식대에 가서 자신들의 저녁을 잔뜩 먹은 배부른 창조물들이 두 사람의 발밑에 늘어져있었다.

 

함께 식탁을 치우자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 레이시오는 음식은 네가 했으니, 뒷정리 정도는 자신이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같이 해도 되는데….”

“어차피 식기세척기가 다 하니까. 넌 오랜만에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겠군.”

“난 그것도 같이 해도 되는데.”

“하…. 반신욕이 네 그 멍청한 생각도 같이 씻어내려 주겠지.”

 

전혀 연인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차가운 매도로 내쫓긴 어벤츄린은 결국 레이시오의 말대로 오랜만에 반신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이 집을 매입할 때부터 포함되어 있었던 큰 욕조는 요 근래 그 어느 때보다도 자주 사용되고 있었다. …진짜 집주인보다는 방문객이 더 많이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김이 피어오를 만큼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근 어벤츄린이 몸이 나른해짐에 따라 잠시 눈을 감았다. 레이시오가 목욕에 꼭 필요하다며 두고 간 고무 오리 하나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어벤츄린의 무릎에 자꾸 부딪혔다. 수도꼭지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더해 문 밖에서 들려오는 창조물들의 기척과 레이시오의 인기척에, 어벤츄린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 어느 곳보다도 안락했다.

 

목욕을 마무리하고 파자마로 갈아입은 어벤츄린이 푹 젖은 머리를 털며 거실로 막 나오려고 할 때에, 레이시오의 나지막하고 조곤조곤한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장난기가 돈 어벤츄린이 슬쩍 벽 뒤에 숨어 레이시오를 몰래 훔쳐보자, 레이시오가 창조물들을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 애 아니라더니, 누구보다도 ‘우리’ 애처럼 굴고 있는 건 레이시오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어벤츄린은 마찬가지로 레이시오의 낭독에 귀를 기울였다.

 

레이시오의 무릎 위에서, 혹은 책 근처에서 창조물들도 보기 드물게 조용히 레이시오의 낭독에 집중하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책장이 넘어가고, 레이시오가 책을 덮자 그제서야 창조물들이 꿀렁거리며 냐아, 하고 길게 울었다.

 

“이번 책도 재미있었어!”

“시오 목소리, 좋아해.”

“호기심을 가지고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으려는 자세는 칭찬해줄만 한 일이지. 근절해야 할 우둔함으로부터 멀어지는 데 크나큰 도움을 주니까. 너희 셋, 모두 플러스 10점.”

“10점!”

 

레이시오의 마지막 말을 따라하던 창조물들이 꾸물꾸물 레이시오에게 다가왔다. 그런 창조물들의 턱을 레이시오가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익숙한 폼으로 긁어주자, 갸르릉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너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시오, 궁금한 거 있어?”

“우리가 대답해줄 수 있어?”

“그래, 너희가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야.”

 

부드러운 표정으로 손을 멈추지 않으며 레이시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창조물들의 머리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어벤츄린 말이야, 최근에도 악몽을 꾸나?”

“주인?”

“악몽?”

“음…….”

“최근엔, 잘 잤지.”

“응, 뒤척이지도 않았어.”

 

세 마리가 연달아 내놓은 답에 작게 숨을 내쉰 레이시오가 나머지 작게 더 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먹는 건?”

“매일 우리랑 비슷한 때에 주인도 먹어.”

“주인, 시오랑 같이 없을 땐 조금 귀찮아하긴 해도, 알림이 울리면 꼭 약도 먹어.”

 

제 말을 믿지 않고 기어코 제 반려동물들에게까지 교차 질문을 하는 레이시오의 모습을 보고 어벤츄린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연인인 자신보다 반려동물을 더 신뢰하고 있다니. 기가 찬 이야기였지만 일과 시간 중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레이시오의 문자에 가끔 거짓말을 하던 과거가 생각 나, 어벤츄린은 크흠, 하고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래, 앞으로도 너희가 너희 주인을 잘 돌봐줬으면 좋겠군.”“우리가 돌보는 거야?”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혼란스러운 눈망울로 레이시오를 바라보던 창조물들이 되묻자, 레이시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들고 있던 책을 책장에 꽂으며 대답했다.

 

“네 주인은 너희보다도 손이 많이 가니까. 잠시라도 눈을 떼면 다시 제 몸을 망치는 버릇이나 들이고 있지.”

“……냐아?”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 다행인 일이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적어도 옆에서 내가 도움을 줄 수는 있으니까.”

 

레이시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창조물들을 내려다보던 레이시오가 세 마리를 안아들며 그들에게 속삭였다.

 

“그러니 너희가 힘 써줘야 해. 그가 훌훌 떠나지 못하도록 즐거운 시간을 많이 만들어서, 소중한 존재가 되어서 미련을 잔뜩 만들어 줘.”

 

그러고는 레이시오는 어벤츄린이 숨어있던 벽을 단숨에 돌아, 안방으로 향했다. 자신도 모르는 채 레이시오가 하는 말을 들으며 멍 때리고 있던 어벤츄린이 그제서야 버벅거리는 몸을 겨우 추슬러 그의 뒤를 쫓았다. 반신욕 후의 열기가 이제야 도는지, 귓가가 다 후끈했다.

 

“…잠깐, 내가 듣고 있는 거 알고 있었어?”

“딱히 기척을 숨기지도 않던데.”

“알면서도 그런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했다고?”

“들으라고 한 거야. 반성한 게 있었으면 좋겠군.”

“반성은 무슨…….”

 

괜스레 투덜거리는 어벤츄린을 뒤로 하고 어벤츄린의 안방에 있는 고양이용 쿠션에 창조물들을 내려놓은 레이시오가 자연스럽게 옷장을 열었다. 어벤츄린의 집에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게 된 레이시오의 물건들은 어느새 어벤츄린의 안방에까지 침입한지 오래였다. 문가에 삐딱하게 서 팔짱을 끼고 있는, 불만 가득한 어벤츄린을 본 척도 하지 않고 속옷과 로브를 챙긴 레이시오가 그제서야 웃음기를 섞으며 말했다.

 

“이제 알겠지? 얘네들은 내 믿음직스러운 정보원이니까, 앞으로 나한테 거짓말 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럼 난 씻고 오지.”

03.

 

이른 아침, 알람 없이도 기상하는 것은 몸에 배인 습관이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면 옆자리에는 어젯밤 같이 함께 잠이 들었던 어벤츄린이 아직도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곤히 자고 있다. 어벤츄린이 이렇게 편하게 잠에 들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는 차차하더라도, 그 어떤 누구도 그처럼 살다간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없었으리라.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시오가 창문을 덮은 커텐을 조금 걷어내자, 겹겹이 쌓여 자던 창조물 중 하나가 눈을 간신히 떴다. 더 자도 될 텐데, 뻑뻑한 눈을 몇 번 비비던 창조물은 꾸물꾸물 레이시오의 발치로 기어와 작게 야옹거렸다.

 

그와 함께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향한 레이시오는 습관처럼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작게 물이 끓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레이시오는 잠시 아직까지도 곤히 자고 있을 그의 연인에 대해 생각한다.

 

레이시오가 생각하기에 어벤츄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생의 닻을 내려줄 무언가다. 그 모든 것에도 미련이 없는 삶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미래를 그리는 것은 무척이나 막막하고 두려운 것이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범인凡人들이 그러하듯 우리는 꾸역꾸역 살아내고야 만다. 잃는 것이 두려우니까, 가지고 있고 소중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니까.

 

어벤츄린에게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 죽는 것보다 잃는 것이 두려운 것.

 

레이시오는 이를 위해서 어벤츄린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물론이고, 가능했다면 아이까지도.

 

“…….”

 

머그컵에서 따뜻한 김과 함께 며칠 전 향긋한 차의 향이 올라왔다. 눈을 감고 향을 음미한 레이시오가 조용히 오늘의 일정을 정리한다.

 

집 주인이 다른 창조물들과 함께 까치집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나온 것은 그로부터 약 15분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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