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계 인권유린캐비닛 오남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터디 13주차
“…젠장, 하필 비번인 날!”
이로만 잘근잘근 담배를 씹던 셀마가 크게 한숨을 내쉬듯 욕을 내뱉었다. 오늘 아침부터 재수가 참으로 끝내줬다. 괜히 또 욱했나 싶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이 팽팽히 제 의견만을 고수하는 싸움은 셀마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기분 좋게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는데 또 그 이야기를 시작할 건 또 뭐람. 셀마가 대충 걸치고 나온 후드 집업 주머니에 손을 깊이 넣으며 작게 신음을 앓았다. 싸움이라는 게 무릇 그렇듯이, 상대가 한 번 밉게 보이기 시작하니 별 것을 다 탓하게 된다.
최근 셀마가 근무하는 관할 경찰서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작은 런던에 있는 한 클럽에서 약물오남용으로 20대 남성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조사에 착수해보니 그 클럽에서는 불법 약물이 대량으로 유통된 것으로 밝혀졌고, 이후 마약 복용자들과 클럽 직원, 그리고 딜러들의 진술로 정황을 보았을 때 그 약물의 제조와 유통에 공통된 한 조직이 깊게 엮여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조직이 철저한 점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규모가 꽤 크다는 점을 고려하여, 런던 경찰본부는 주변의 경찰서와 파출소에 협력을 요청해 특별 팀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많은 런던 경찰관의 업무가 조정되면서, 셀마의 업무 역시도 꽤 과중되고 있었다. 자신의 플랫에 돌아가지 못하고 경찰서 휴게실에서 대충 새우잠이나 잤던 일도 꽤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생하고 고생하며 결국 꿈에 그리던 비번 날인데, 결국 아침부터 다다와 말싸움이나 하고 이렇게 런던 길거리나 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새였다.
다다는… 여전히 셀마를 마법사의 세계에 데려다놓고 싶어했다. 셀마가 그의 눈 앞에서 부러뜨려 마법사가 되기를 포기하리라 강경히 주장해도, 이를 위선이라 생각했다. 마법사라는 낙인은 태어났을 때부터 영원하며, 당신이 아무리 양의 탈을 쓰리라 다짐해도 늑대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똑같은 논리를 오늘 아침, 마주본 식탁 앞에서 토스트와 베이컨을 앞에 두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다시 들었을 때, 결국 셀마는 쌓인 피곤과 권태감에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서로 전혀 양보할 생각 없는 언쟁이 오고 갔다. 점점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라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자신의 룸메이트에게 던지고 싶어졌을 때 쯤, 셀마는 결국 제가 먼저 집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 곳에 있으면 정말로 다다를 한 대 패는 걸론 참을 수 없을까 그랬다.
“생각해보면 내 집인데. 걔보고 나가라고 할 걸.”
괜한 말만 중얼거리며 셀마가 근처 쓰레기통에 불도 붙이지 않고 씹고 있던 담배를 넣었을 때, 괜스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근처를 살피니, 아직 점심도 되지 않은 한산한 오전이라 눈에 띄는 이들이 많이 없었다. 개중 한 명만 빼고. 창백한 인상의 한 남자가 필요 이상으로 사방을 경계하며 일부로 으슥한 건물 틈새로 결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셀마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최근 셀마의 경찰서에서 거리 순찰을 도는 경찰관들에게 배포하는 몽타주 속 그 남자였다. 그 많은 딜러들이 자신에게 약을 전달했던 운반책이라고 지목했던 그 남자. 셀마는 주변을 쓱 훑고는 요령 좋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골목길로 자취를 감춘 그 남자의 뒤를 쫓았다. 비록 지금은 공무 수행 중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수상한 사람을 그냥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셀마는 텁텁한 혀로 볼 안쪽 살을 훑으며 해야할 일을 정리했다. 복잡한 일도 아니었다. 잠시 바지 주머니 안에 있는 경찰 신분증을 보여준 후에,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신분증만 요구하면 끝인 일이었으니까.
다만, 그 남자가 보인 돌발 행동이 문제였다.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셀마를 몇 번 힐긋거리던 남자가, 결국 욕을 내뱉으며 전력으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대놓고 경찰 정복 차림도 아닌 셀마를 단 번에 자신을 쫓는 사람이라 규정하고 도망가는 모습에, 셀마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그 새끼다. 철저하게 점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던 약물 유통 담당과 수뇌부를 잇는 그 연결고리.
“거기 멈춰!”
셀마가 크게 외친 소리와 함께, 좁고 어두운 런던의 뒷골목에서 두 사람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 분의 거친 숨소리와 바닥을 힘차게 내딛는 소리, 그리고 몸에 빗겨 맞거나 일부로 추적을 늦추기 위해 집어던진 쓰레기통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자들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장기전으로 가는 것은 불리했다. 비교적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대로변과는 달리, 뒷골목은 여러 좁고 작은 길들이 여러 번 교차해 무척이나 복잡했다. 만일 남자가 순간적으로 몸을 숨기거나 자취를 감춘다면, 다시 추적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다.
갑자기 무리한 운동에 심장 박동이 더없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셀마는 크게 숨을 골랐다. 지금 서에 지원을 보내달라고 연락하면 몇 분 후 쯤에야 증원 받을 수 있을까. 느지막한 오전, 뒷골목은 두 사람이 내는 소음을 제외하고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가 귀에서 자꾸만 웅웅 울렸다. 힘껏 바닥을 차는 발바닥이 아리고, 온 몸이 더웠다. 힘껏 달리던 녀석의 힘이 서서히 빠지는지 두 사람 간의 간격이 좁혀든다. 일단은 저 놈을 멈춰 세우는 게 먼저다. 다리부터 무력화시키자. 그런 생각으로 가득한 채 지금보다 더 다리에 힘을 주며 앞으로 튀어나가려 할 때.
거센 바람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높게 묶은 머리카락을 통과한다. 콰삭, 하는 소리와 함께 벽돌 벽에 박히는 것은 권총의 탄환이다.
“젠장, 똑바로 조준 못해?!”
과도한 흥분으로 뻣뻣한 사지를 겨우 움직여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찾자, 벽면 쪽 건물의 2층 발코니에서 권총으로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남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젠장, 상대가 무장 상태의 동료들과 합류한다면 전세는 금방 역전되고 만다. 순찰 중이었다면 경찰봉이라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그것조차 없다. 완전히 비무장 상태. 애초에 신분증 검사나 하러 쫓았던 상대였기에 이 이상의 대치는 무리다.
신속하게 판단을 내린 셀마는 오기 부리지 않고 빠르게 퇴각을 결정했다. 아직까지도 터질 것 같은 심장과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재촉해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다시금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셀마가 서있던 곳에 총알이 박힌다. 한 순간의 선택 하나하나가 생사를 결정하는 때다.
“절대 놓치면 안 돼! 내 얼굴 완전히 노출됐다고!”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셀마가 이를 악무면서 최대한 권총의 조준을 방해할 방해물들을 어지럽히며 전력질주한다. 최대한 빨리 대로변으로 나가 증원을 구하는 게 최선이다. 계속해서 뒤에서 나는 발포 소리에 잠시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헤쳐 나갔다. 이성을 겨우 붙들어 발소리를 확인해보니, 뒤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저들끼리 합류하는 걸 저지하면서 골목길에서 나가기. 할 수 있을까? 가능과 불가능을 따지다보니 다시 신경줄이 바짝 닳는다. 동시에 급하게 꺾이는 왼쪽 길, 누군가와 퍽하고 부딪혔다. 깜짝 놀란 셀마가 습관적으로 다리와 팔을 구속해 무력화하려던 순간, 시야에 드는 익숙한 실루엣에 팔에 힘이 탁 하고 풀리고 말았다.
“……다다? 네가 왜 여기있어?”
“제가 할 말입니다. 갑자기 왜 이런 골목길에 뜬금없이….”
“뭐하러 여기까지 들어왔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다의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짜증이 난 셀마가 버럭 역정을 낸다. 혼자서도 위험한데, 다다까지 데리고 이곳을 나갈 수 있을까. 아아, 젠장. 오늘은 역시 뭘 해도 안 되는 날이구나.
갑작스럽게 셀마의 다그침을 받고 멀뚱멀뚱 서있는 다다의 손목을 잡고 셀마가 다시금 달음박질을 시작한다.
“셀마, 설명이 필요한,”
“입 다물어, 죽기 싫으면 달려!”
셀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말을 증명하듯 뒤에서 몇 차례 발포 소리가 들린다. 처음 자신을 조준하고 있던 그 남자는 총에 소음기라도 끼고 있었지, 저들은 소음기마저 없는 권총을 난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친 놈들…! 아무리 뒷골목이라고 해도 여긴 런던 한복판이라고!”
바득 이를 갈며 셀마가 중얼거리는 동안, 어느새 둘의 앞에도 아른거리는 인영이 앞을 가로 막았다. 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셀마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얌전히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다다의 손목을 잡고 급하게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막다른 길이다. 뛰어넘을 수 있는 철조망조차 없고, 높은 건물 벽만이 완벽한 사지死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다의 손목을 쥔 셀마의 손에 땀이 찼다. 생각을 해, 생각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이윽고 셀마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버려진 철제 캐비닛이었다. 간신히 두 사람이 몸을 접고 겹치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비록 이 곳에 놓이게 된지 꽤 되어 이곳저곳이 녹슬어 있지만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캐비닛 문을 열어 젖힌 셀마는 손목을 쥐고 있던 다다를 한쪽 팔로 감아 거칠게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다. 한 순간 두 사람의 무게를 견디게 된 캐비닛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됐다! 셀마가 남은 손으로 캐비닛 문을 안 쪽에서부터 당기자 말끔히 문이 닫혔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철제 캐비닛 안에 가득 찼다. 꽤나 장신의 두 사람이 이 캐비닛에 들어오려면, 어쩔 수 없이 팔 다리를 완전히 엮은 채 서로에게 최대한 붙어있어야만 했다. 눅눅한 공기가 캐비닛 안에 완전히 갇힌 것 같이 답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꽤 긴 시간을 전력질주한 두 사람의 체온 덕에 안이 무척이나 더웠다. 그럼에도 셀마는 최대한 숨을 죽였다. 어떻게든 두 사람이 이 곳에 없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셀마가 몸을 숙여 조금씩 빛이 들어오는 문 사이로 밖을 살폈다. 아직 둘을 쫓아오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끝까지 속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한 눈에 보기에도 이곳은 막다른 길이라, 어쩌면 그들이 이 골목에는 아예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을 품고 셀마가 계속해서 동태를 살필 때에, 다다의 숨이 좀 더 거칠어졌다. 좁은 공간에 어떻게든 몸을 우겨넣었으나 팔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만한 공간은 나오지 않아서, 손으로 입을 막지 못한 다다가 아까보다 긴 호흡을 천천히 내뱉었다.
“…야, 조용히 해. 들키겠어. 아직 다들 완전히 지나간 게 아니란 말이야.”
얽히고 섥혀 다다의 귓가에서 그리 속삭인 셀마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마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셀마를 내려다본 다다가 되물었다.
“셀마… 아직도 아침의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는 거지요.”
“…넌 이 상황에서도 아직도 그 소리야?”
“네. 저에게는 지금 그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니까요.”
“하.”
기가 찬 셀마가 공격적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 네가 몇 백번 물어도 나는 생각 안 바꿔. 나한테 애원을 하든, 사정을 하든, 화를 내든 똑같아. 내가 남을 곳은 여기야. 마법사 사회에는 죽어도 안 돌아가.”
“…그렇군요.”
다다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계속해서 밖의 동태가 신경 쓰여 곁눈질을 하던 셀마가, 평소 같았으면 자신을 끈질기게 설득하려는 다다의 말이 이어지지 않는 것에 시선을 다다에게로 옮겼다.
“이번에는 물고 안 늘어질 거야? 이제야 입을 다물어주려고?”
“…모르겠어요, 이젠.”
아주 작은 캐비닛의 문틈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빛으로 간신히 보이는 다다의 금빛 눈이 굉장히 탁했다. 달달 떨리는 동공에 초점이 맺혔다가 자꾸만 금방 사라졌다. 그제서야 이상을 눈치챈 다다의 미간이 좁혀졌다. 문득 다다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셀마의 손에 끈적한 무언가가 맺히는 게 느껴졌다.
“어쨌든 당신과 나는 양보할 수 없는 것을 두고 끝없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당신이 포기하든, 내가 포기하든, 언젠가는 끝이 올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제나, 저번 주나, 저번 달 같았던 생활도 다 끝이겠죠.”
“야, 너….”
“당신을 정말 설득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마법사 사회에 당신을 끌고 들어가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저는 그냥 당신이랑 이렇게 사는 생활이 좋았던 걸지도 몰라요.”
“…….”
“머리가 멍청한가…. 그래서 그 시절이랑 닮았다고 생각했나 봐. 아주 어렸을 적에, 내가 아주 행복했을 때. 그래서 무너지지 않았으면 했나 봐요, 무의식적으로.”
“야, 야…. 너 이제 그만 말해.”
“불안함에 오늘 아침에도 무작정 당신을 쫓아 나왔어요. 그런데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씨발, 너 이제 말하지 마.”
어느새 혈향이 캐비닛 안에 가득했다. 손 끝에만 맺히는 것 같던 질척한 피가 어느새 셀마의 손바닥을 다 적셨다. 식은땀에 푹 젖은 몸이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는데, 정작 다다의 손이 닿는 곳은 더 없이 차게 느껴졌다. 다다의 허리춤에 있던 손을 올려 등을 조심스럽게 더듬거렸다. 피가 새어나오는 근원지가 셀마의 손끝에 닿자 다다의 몸이 고통에 잘게 튀었다. 아직 체내에 탄환이 남아있는 총상이었다. 횡설수설 이야기를 이어가던 다다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이윽고 다시 입을 연다.
“…셀마, 방금 죽어도 마법사 사회에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죠.”
“말하지 말라고! 출혈 더 심해진다니까, 응?!”
그럼, 셀마가 아니고, 제가 죽으면요? 그래도 돌아가지 않나요?
이어진 말은 거친 호흡과 풀린 혀로 발음이 아주 부정확했다. 그럼에도 셀마가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웃기지 마, 네가… 네가 왜 죽어?”
아주 약간의 적막 후에, 셀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셀마가 캐비닛 안의 부족한 산소로 간신히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우선순위를 도출해냈다. 지금은 다다가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해. 어느새 무척이나 거칠었던 숨소리가 끊어질 듯 얇아짐과 동시에, 다다의 몸무게가 셀마 쪽으로 크게 쏠렸다. 좁은 캐비닛 안에서는 다리에 힘이 풀려도 강제로 서있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오히려 움직임이 불편해진 모양새로 셀마가 캐비닛의 문을 다리로 찼다.
열리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쾅, 쾅, 쾅! 하는 철제가 세차게 부딪히는 소리만 캐비닛 안에서 마구 울렸다. 감각과 인지가 어긋나는 기분으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낡은 캐비닛이 비틀려 문이 끼었을 수도, 혹은 자신 역시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문을 차지 못했을 지도 몰랐다. 숨이 너무 더웠고, 자신이 간신히 부축하고 있는 다다가 너무 무거웠으며, 산소가 부족했다.
“제발, 제발…!”
셀마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다시 한 번 다리에 힘을 주어 캐비닛을 발로 찼다. 두 팔은 다다를 끌어안고 있어 사용할 수 없었다. 좁은 캐비닛 안에 빈틈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라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다다의 가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다가 아주 작은 숨소리를 낼 때마다, 셀마는 안도와 절망을 반복했다. 다행히도 다음 숨을 내쉬었다가도, 금방 다다가 숨을 멈출 것만 같았다.
“열려라, 응? 열리라고!!”
씨발! 쾅, 쾅, 쾅. 여전히 철제문은 열리지 않는다. 아늑했던 방공호가 끔찍한 60cm 가량의 감옥으로 탈바꿈했다. 안심을 위해 중얼거리는 말이 횡설수설했다. 시야가 흐릿헸다. 산소가 부족하거나, 땀이 눈에 들어갔을 수도. 잘 모르겠다.
“누가!! 아무나 누가 살려주세요!!”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셀마가 품에 안은 다다를 추슬렀다. 자각도 없는 사이에 눈물이 한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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