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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4-1)
레드몬드는 연회장의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괬다. 메이들린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역시 생각이 너무 많아. 생각이 너무 많으니 저렇게 신경 쓰는 것도 많은 거겠지. 여러모로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끊는 자신과 달리, 의식적으로 생각의 크기를 불려 간다. 꼭 더 많은 것을 고려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또한 이해할 필요 없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메이들린은 '이해'를 입에 올렸다.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요구나 제안에는 적절한 대응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레드몬드는 답지 않게 생각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이어가는 대신 지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숙사로 올라가는 것 또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레드몬드가 택할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귀찮고, 관여하고 싶지 않은 건 여전하지만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모든 관계의 끈을 끊고 싶지는 않았다. 그야 변화를 결정했었으니. 제 나름대로 내린 결단이 있으니.
“…네가 할 일은 나를 따라 하는 게 아니라, 헛소리를 하는 인간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법을 연습하는 일일 것 같은데.”
그러나 결국 할 수 있는 말을 고작 이따위 말뿐이었다. 책임을 덜어주겠다는 메이들린의 제안은 달콤했고, 되도록 타인과 엮이고 싶지 않은 레드몬드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동시에 레드몬드는 딱 평범한 사람이 가질만한 양심과 염치 또한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유혹적이라 한들, 그런 제안을 냉큼 받아들일 정도로 낯짝이 두꺼운 사람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떻게 내가 아무 책임감도 안 느낄 수 있겠어? 네가 그렇게 말해도….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마음 쓰는 게 싫어서 말은 되도록 삼키고, 내 영역 밖엔 관심을 끄는 거라고. 볼멘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메이들린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았지만, 어리광이나 다름없는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괜한 억울함이 치고 올라올 것 같으니까. 대체 뭐가 부럽다는 건지, 뭘 어떻게 변할 생각이기에 나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질문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너무 많은 속내를 내어주고 또 들은 뒤다. 이 이상의 것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 한다. 네가 조금이라도 오해하게 둘 수는 없었다. 레드몬드는 결국 피곤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불쾌하진 않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너도 알고 있어야 돼.”
내가 너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는 걸,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걸. 너의 별난 특성이 내게 상관할 바가 아니었던 이유가 과거에는 나의 무관심함이었다면, 이제는 너를 오해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의지라는 것을. 메이들린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평소의 흐릿한 시선 대신, 또렷한 눈빛으로 형형한 메이들린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는 메이들린의 주장과 달리, 그의 푸른 눈동자 너머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네 창문은 아주 단단한 모양이지. 나는 잡지 못한 그 실마리를, 너는 과연 잡았을까. 짧은 궁금증이 스쳤다. 결코 네게 직접 물을 일 없는 의문이.
“…긴 시간을 쓰고도 완전히 파악해 낼 수 없는 게 사람의 속내니까. 완전한 해결책….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 그럼 멈추어 설 수 있겠지. 너도, 나도.”
어딘가에 뿌리 내리고, 더는 방황하지 않아도 되겠지. 나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나라는 사람이 어디에 속하는지 확실히 정할 수만 있다면. 메이들린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시선을 앗아가고, 레드몬드는 그걸 멍하게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너의 그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내뱉지 않는 의문이 쌓여간다. 내게 ‘메이들린 라보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네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내가 네 이름을 언젠가 잊으면 어떡하려고 그런 말을 해? 내가 호그와트의 별나던 래번클로 여자애에 대해 잊어버리게 될 확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사람은 유년의 기억을 무엇보다 빠르게 잊기 마련인데, 무슨 생각으로 나를 믿는 것처럼 말하는 거야? 메이들린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끝없이 흘러가던 의식을 현실로 끌어내렸다. 내심 메이들린이 가벼운 농담을 던져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그리 여겼다. 난 이런 대화나 상황에는 면역이 없으니까.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으니까. 결국 한 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약간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괜한 투정과 적당한 농담조를 찾아 받아친다.
“그러게. 너 같은 애가 또 있으면 그날이 진짜 하늘이 두 쪽 나는 날일지도 모르지. 너 때문에 맞잖아. 네가 자꾸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얘기들을 꺼내니까 나까지 생각하게 되고.”
잠시 숨을 고르고, 이번에는 정말로 짧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온갖 머리 아픈 얘기를 다 해놓고는 결국 한다는 말이 케이크가 먹고 싶다는 것 따위라니.
“딸기 생크림 케이크? 안 될 건 없지. 주방 옆에 기숙사가 있는 후플푸프의 특권을 누리게 해줄게. 유령은 당연히 케이크 못 먹을 테니까 그 전에 많이 먹어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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