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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1-1)

“누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가랬나.”

레드몬드는 심드렁히 대꾸하며 메이들린의 머리카락을 마저 쓰다듬었다. ‘얘는 왜 이렇게 중간이 없지. 매번 극과 극으로만 치닫네. 아니, 한 쪽으로만 극단적인 건가….’

완벽에 어느 정도 집착하는 것은 눈치 챈 뒤였다. 단지 자신이 무언가를 알아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내가 말을 얹을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니까.

그런 것보다 머리카락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쓰다듬는 족족 손에 착착 감기는 것이 꽤 중독적이었다. 어쩐지 애쉴린의 배를 문지르는 것 같은데.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이 흘러갔다. 그래도 대답은 해줘야겠지.

“나쁘게 말하면 영악한 거고, 좋게 말하면 영리한 거고. 그런 거 아니겠어? 그리고 네가 좀 영리하게 군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걸.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거겠지. 신경 쓰지 마.”

아, 편하다. 손에 착 감기는 위치에 있는 동그란 머리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쓸데없이 마음에 들었다. 포기를 모른다니, 그건 강박적인 거 아닌가. 그래도 역시 귀찮으니까 굳이 말하고 싶진 않은데.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면 말해주지 못할 것도 없지.

“해본 적 없는데. 애초에 완벽이라는 게 뭔데? 너무 추상적이잖아. 애초에 세상 모든 일은 한계가 있어. 그리고 해보면 보통 알 수 있거든. 아, 이건 내가 달성할 수 있겠다, 아니면 이건 내가 못 하겠다. 후자의 경우에는 빨리 미련을 놓고 다른 걸 하는 게 훨씬 나아. 적어도 내 생각에는.”

옅은 한숨이 나왔다. 정말로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은데, 메이들린은 말이 많았다. 게다가 질문도 많았다. 순전히 레드몬드 자신의 개인적인 기준에 따른 ‘많다’였지만 어쨌든 많은 건 많은 거였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막무가내로 무시하거나 밀어낼 수는 없다. 레드몬드는 결국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을 간신히 숨기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걸 배우는 네가 힘들어 보여서 그래. 그래서 그 인생 난이도는 언제쯤 낮아지고 쉬워지는데? 항상 이렇게 배우는데 그 덕은 언제쯤 볼 생각이야? 적당히 사는 게 싫은 건 네 마음이니까 그렇다고 치는데, 완벽한 너만 기억해 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진 마. 완벽하지 않아도 기억해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수가 많지는 않아도.”

게다가 나는 오히려 너무 완벽한 사람은 좀 껄끄럽고 부담스러워서 굳이 가까이 하고 싶지 않던데. 이런 사람도 있으니까 좀 더 생각해 봐. 명백히 쓸데없는 오지랖이고,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이었지만 잇새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정확히는 막을 필요나 의지를 느끼지 못한 것에 가까웠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정을 붙인다느니, 친하게 지낸다느니 하는 게 싫진 않았다. 성가실 뿐이다. 가까운 사이가 되기까지 내 영역에 자리를 내어주고, 상대의 영역을 파헤쳐야 하는 모든 지지부진한 과정이. 게다가 그렇게 모든 피곤함을 감수한들, 어느 한 순간 끊어지고, 갈라지기 쉽상이다. 그야말로 내 뜻대로, 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분야. 레드몬드가 가장 면역이 없는 분야였다. 그래서 되도록 시작하지 않을 뿐이다.

레드몬드는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익숙해진 연회장, 낡은 테이블, 오래된 돌벽, 바닥 타일, 교복….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 많은 것들이 눈에 익을 정도로, 이곳에 속한 모든 것들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그렇다면 이젠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주 조금은, 상대방에게, 나에게 기회를 주어도 괜찬을지 모른다. 엄마도 항상 얘기하셨으니까. 다른 이에게도, 자신에게도 기회를 허락하라고.

레드몬드는 시선을 바로했다. 눈앞에는 평소와 한 점 다를 것 없는 메이들린이 있었다. 나의 사소하고 별 거 아닌 결심 따위 이 아이에겐 아무 상관 없을 것이다. 아마 알 턱이 없겠지. 메이들린이 알아야 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변화를 위해 어떤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레드몬드는 한숨을 내쉬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그래야 네게 전할 수 있으니까. 설령 네가 알아채지 못할지라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도 상관 없어. 항상 지켜보고, 잘 다뤄주고 하는 것들 말이야. 어렵게 생각 안 해도 돼. 네가 원하는대로 해도 돼. 안 싫으니까. 네가 하는 것들을 좋아해 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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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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