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컾

[론원] 조각글2

론도와 화원이 학창시절에 만나면 어땠을까 하는 if에 맨날 김론도김론도 하다가 입에 붙어버림 김에 K패치 등 보고싶은거 다 끼얹은 마카롱김치찌개

- by Li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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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이 김론도의 실물을 가까이서 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의 여름이 처음이었다.

"어, 아멘이다. 씹새끼야."

힘도 좋지. 한손에는 저보다 덩치가 큰 남자의 멱살을, 한손은 피떡이 된 주먹을 야무지게 쥐고서 멱살잡힌 남자의 얼굴을 신명나게 두들기고 있었다. 꺽꺽대며 무방비하게 맞는 남자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목에 걸린 큼직한 십자가 목걸이, 바닥을 구르는 성경책. 기독교동아리의 회장이었다. 일명 광신도. 하도 요란스럽게 신실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어디 큰 교회의 목사 아들이라는데, 김론도에게 동성애 치료빔을 쏘려다가 실패한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이상하게도 말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말린다고 말려질지도 의문이다.

'쟤도 인생 참 피곤하겠다.'

김론도. 1학년. 고아. 그리고 게이.

학교의 유명인이었다. 학기 초에는 잘생긴 신입생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정도는 아니었는데. 학교 일진이 김론도에게 껄떡대기 시작하며 비극이 시작됐다.(본인에게도 비극인지는 모르겠다) 김론도는 매번 거절했고 김론도에게 작업을 걸던 여학생은 붉어진 얼굴로 길길이 뛰었다. 너 게이야? 내가 왜 싫다는 건데! 설명하기도 귀찮았던건지 김론도는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딱 한마디 내뱉었더란다.

'어.'

그리고 전교적인 아웃팅이 시작되었다. 일진들은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김론도를 헐뜯으며 그가 게이라는 것을 소문내고 다녔다. 그것에 동조한 사람들은 그의 사회적 약점 마저 캐내어 물 위에 올렸다. 시설출신의 고아에 게이라더라. 사춘기 아이들의 입방아는 마른 들에 번지는 불길보다 빨랐다.

선생님들은 마음의 상처받았을 김론도는 걱정했지만 아픈건 김론도가 아니라 그에게 시비를 걸고다니는 학생들이었다. 마음이 아니라 몸이 아팠다. 김론도는 평온한 얼굴로 학교를 돌아다녔다. 게이냐는 질문에 부정도 안했다. 단지 그것을 빌미로 김론도에게 껄떡대거나 시비를 틀면 조금의 예외도 없이 북 처럼 두드려댔다. 학폭위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듯 했지만 김론도는 항상 가벼운 처벌로 지나갔다. 소문으로는 그를 위탁한 시설에서 거절하기엔 너무 큰 금액을 내밀며 합의를 봤더란다. 대체 어떤 돈 많은 자본가가 운영하는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볼 일."

상념에 빠진 원을 허스키하고 새침한 목소리가 현실로 잡아왔다. 날카로운 눈매는 저가 아닌 핸드폰에 붙어있었다. 그냥 구경이야? 뒤에 붙은 말을 듣고 서야 그가 저에게 볼일이 있냐고 물었음을 알았다. 대답없이 오도카니 서있자 소년은 힐끔 그를 보고는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방금 전까지 리드미컬하게 사람을 쥐어패더니 손수 구급차도 불러준다. 119와 통화가 끝나자 또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K입니다. 네. 뭐, 똑같은 일이예요. 안경은 벗기고 팼는데요. 아니, 그걸 씌우고 패면 나도 다치잖아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아마 보호자 신분의 누군가와 통화한것 같은데 소년은 반성하는 태도는 커녕 뻔뻔하게 알아서 처리해요 라고 했다.

"티슈같은거 있으면 줘."

부탁도 아니고, 뻔뻔한 태도였지만 원은 홀린듯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손수건을 받은 소년은 고맙다는 말대신 하나 사줄게 했다. 쟤도 돈이 어지간히 많은가보다. 원은 그보다 뒤에 쓰러진 사람이 걱정되었다. 눈을 굴리자 앞의 소년이 손을 휘저었다. 둬. 어차피 생명에 지장은 없어. 그럼에도 원이 불안한 시선으로  론도의 뒤를 살폈다. 소년은 씩 웃으며 피범벅이 된 손수건을 돌려주었다.

"정 걱정이면 가서 얼굴이나 좀 닦아주던가."

그 말을 끝으로 김론도는 자리를 떴다. 미련도 없이 훌쩍. 뭔가에 홀린듯이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에 웃는 얼굴은 좀...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 후로 졸업까지 김론도를 마주칠 일은 없었다. 제가 쓰던 브랜드의 비슷한 디자인의 손수건을 김론도와 같은 시설 출신이라는 클래스 메이트에게 전해받은게 전부였다. 가끔 멀리서 보는 시설출신 무리들 속의 김론도는 유쾌하고 조금 어리광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게 전부였다. 김론도는 그렇게 원이 기억속에서 녹아내렸다.

'그' 김론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것은 알파벳들과 나누던 학창시절 추억얘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그들은 모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원을 포함해서. 서로가 그것을 이제야 안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 모두가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그때와는 너무 달라져 있었고 둘, 무엇보다 접점이랄게 딱히 없었다. 스쳐지나가던 클래스 메이트를 10년이 넘게 지나서야 알아볼 일이 있겠는가. 술잔과 함께 도는 학창시절 이야기를 풀어내는 알파벳들 사이에서 원은 희미하게 웃었다. 걔가, 너였구나.

각자의 이야기보따리를 끌어안고 헤어진 후 원은 침대에 누워 옆자리에 시커먼 남자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론도가 씩 웃었다. 웃는게 좀... 못생겨졌네.

원은 자신이 손수건을 빌려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삼켰다. 대신 잠겨드는 의식속으로 생각해봤다. 그때 너랑 친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만해도 조금 우스웠다.

원은 눈을 깜빡였다.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김론도가 제 앞에 서있다. 어리고 작은 김론도가.

"하나 사준다고 했잖아."

김론도는 손수건을 손에 든채 웃고있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그렇게 말하려고 했건만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안그래도 되는데."

"그럼 미리 말하던가. 난 안쓰니까 가져가. 다음에 또 빌려주던가."

말투가 좀, 건들건들했다. 커다란 김론도처럼 비아냥거리지 않고, 그냥 양아치같았다. 기억과 다른 상황에 어렴풋이 꿈이구나 느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딱히 깨어나고 싶다거나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눈을 지긋이 감았다 떴다. 장면이 바뀌었다.

김론도는 제 무리들과 매점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저를 알아보고 눈으로 인사한 김론도의 손에는 막대가 두개 달린 아이스크림이 들려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김론도는 제 아이스크림의 반을 뚝 떼어 내밀었다. 멀뚱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왜? 김론도가 어서 받으라는 듯이 아이스크림을 흔들며 웃었다.

"형 엄청 더워보여."

"... 고마워."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자 자연스럽게 무리가 자리를 열어주었다. 그들은 친숙하게 원을 반겨주면서도 김론도를 놀리기 바빴다. 어쩐지 이 모습은 변함이 없어 웃겼다. 제가 웃자 김론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씨익 웃었다. 웃는 모습에서 자꾸 큰 론도가 보인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나니 배경은 급식실이 되었다. 쟤가 먹는걸 좋아해서 그런지 자꾸 먹는게 나오네.

급식실은 시끄러울법도 하건만, 꿈이라 그런지 적당히 조용했다. 눈 앞에 식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왜 여기 혼자 있을까. 또 김론도가 나타나려나. 생각한 순간 앞자리에 식판이 내려졌다. 원의 밥량도 적지 않은 편이건만 그 3배쯤 되는 양이 수북히 담긴 지극히 김론도 다운 식판이었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래도."

그렇구나. 너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작게 고개를 끄덕인 원이 젓가락을 들었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원은 원래 말이 없었고 김론도는 먹느라 바빴다. 커다란 김론도에 비하면 작고 비쩍 말랐건만 식성은 지금보다 이때가 더 좋아보였다. 불룩한 볼이 부지런히 움직일 때마다 식판 가득쌓인 밥의 한구탱이가 폭폭 파여가는 것이 조금... 귀여웠다. 원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흰밥이 가득 얹어진 숟가락 위로 미트볼을 하나 올려주었다. 평소의 론도가 제게 해주던 것이었다. 김론도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보더니 형, 나 좋아해? 왜 고기반찬을 나눠줘. 하며 숟가락을 입에 밀어넣었다. 입은 또 얼마나 큰지 저 수북한 숟가락이 쏙 들어갔다.

"좋아할지도."

원이 작은소리로 툭 뱉었다. 열심히 움직이던 볼따구가 뚝 멈췄다. 미간이 심각하게 구겨졌다가 다시 펴지며 얼른 입안에 든것을 씹어삼킨다. 숟가락을 손에서 내려놓을 생각도 못한채 김론도가 심퉁하게 말했다.

"아니, 누가 고백을 밥먹다가 미트볼 주면서 하냐고..."

남들이 보면 불쾌해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원은 알 수 있었다. 오히려 큰 론도보다 알기 쉬웠다. 쟤 지금 좋아하네.

"그럼 학교 끝나고 카페가서 할까?"

김론도에 미간이 다시 와락 구겨졌다. 그러나 입꼬리가 삐죽삐죽 올라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조금 붉어진 얼굴로 식판에 얼굴을 박았다. 웃겼다. 작은 론도는 큰 론도보다 피부색이 옅어 얼굴이 붉어지는게 고스란히 보였다. 부끄러운가보다. 원은 슬며시 웃으며 묵묵히 밥을 먹는 김론도를 바라봤다 쉼없이 숟가락을 움직이다가도 힐끔 눈을 들어 저를 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방과 후에는 함께 편의점에 갔다. 카페 가자더니... 투덜거리는 론도를 보니 웃음이 났다. 커다란 김론도라면 저를 끌고 카페를 향했을텐데. 작은 김론도는 귀여운 구석이 많았다.

"이것만 먹고 카페가자."

원은 막대가 두개 달린 아이스크림을 계산했다.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반을 뚝 떼어 내밀었다. 전에 김론도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김론도가 환하게 웃었다.

변성기가 막 지난듯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조잘거리는 김론도. 작은 체구에 헐렁한 교복을 입은 김론도. 새침한 김론도. 수줍게 웃으며 제 얼굴을 힐끔대는 김론도. 어릴적 추억속에도 제 집인양 놀러와 덥썩 저를 잡아채는 김론도. 또 놀러와. 원은 그렇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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