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라하/머뎌롸] 그라하티아의 아침은 바쁘다
약 2천자가량의 짧은 글이라 후새터로 올려두었던 걸 펜슬에 옮겨둡니다.
※ 제 연성의 빛의 전사는 트레일러의 중원 휴런 남성, 통칭 메테오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름 및 외형묘사에서 메테오가 뚜렷히 느껴지니 개인 해석 차이에 주의해주세요.
그라하 티아의 아침은 바쁘다.
모든 일이 끝나고 샬레이안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 메테오의 감상은 그랬다.
그라하는 매일 아침 아픈 허리를 붙잡고 일어나 샴푸로 두 번 머리를 헹구고, 린스를 머리와 꼬리에 바른 후에 거품을 잔뜩 낸 샤워 타월로 몸을 문지르고, 그때까지 방치되어 있던 린스를 헹군 다음에 트리트먼트를 꼬리에 바르고서 클렌징폼으로 세수를 했다.
그럼 그때쯤 느지막이 욕실에 들어간 메테오가 칫솔에 치약을 꾹 짜고 있으면, 거품을 다 씻어낸 그라하가 옆에서 칫솔을 받아 물고, 그라하가 수건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며 물기를 짜고 있으면 메테오가 머리 감기와 세수와 샤워를 동시에 하고 나서 그라하가 내미는 수건을 받아 몸을 닦았다.
뭘 저렇게 복잡스럽게 많이 하지?
메테오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휴런보다 털이 많은 미코테니까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나보다 딱 그 정도의 감상뿐.
매일 아침 피곤하겠네 싶다가도, 그라하에게서 느껴지는 린스 향이나 트리트먼트 향이 제법 기분이 좋아서, 덜 마른 머리카락에 대고 킁킁거리다가 차가운 드라이기 바람에 눈을 못 뜨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뜨거운 바람으로 말리면 금방 마를 텐데 오래오래 찬 바람으로 말리는 것도 사실 이해는 잘 안 됐지만… 뜨거운 바람에 털이 타면 안될 테니까……. 이 또한 종족 차이겠지.
메테오는 그라하에게 보이지 않게 고래를 끄덕이며 혼자 이해했다.
오히려 그라하가 메테오의 씻는 방식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고나 할까.
"지금 비누 하나로 머리를 감고, 세수도 하고, 몸도 닦은 거야…?"
"웅."
치카치카, 칫솔을 물고 있던 터라 발음이 부정확한 메테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라하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메테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었다가 무언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했다.
"그러니까 뻣뻣하구나."
"응?"
"네 머리카락 말이야."
뻣뻣한가? 지금껏 딱히 의식해본 적 없었던 곳이라 메테오의 손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지만, 별다른 감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걸 신경 쓸 만한 삶도 아니었고.
비누가 있음에 감지덕지해야 하는 야영을 전전하다 보면 그 누구라도 깔끔함과는 거리가 먼 채로 살게 되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모험가로 살았던 메테오에게는 이쪽이 더 익숙한 편이었다.
"라하 꼬리털이 푹신푹신한 건 세심한 관리 덕분이겠네."
"당연하지! 자칫 잘못하면 털 결도 엉망이 되고, 금방 기름져서 떡진단 말이야."
"미코테는 힘들겠어."
메테오는, 자신을 향해 흔들리는 꼬리를 살짝 잡아 쓰다듬어주고 놓았다.
확실히 그라하의 말을 듣고 나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난 후라서일까. 지금까지 크게 인식해 본 적이 없었던 털이 굉장히 부들부들하게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고, 그런 세심한 관리를 받은 털을 만진 다음에 생각해보니 제 머리카락은 좀 뻣뻣한 거 같기도 했다.
"그야,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 보이고 싶으니까 귀찮아도 하는……."
그라하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다가,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고 귀를 삐쭉 치솟아서 메테오는 눈을 느릿하게 끔뻑거렸다.
그, 에? 아니, 그니까, 어. 삐걱삐걱 고장이 난 그라하가 버벅대다가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서는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며 멀어지기에 메테오가 입술 끝을 둥글게 올리고서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린스 다음이 트리…? 트린트?"
"…제일 안쪽에 파란색 통. 빨간 통에 있는 샴푸 먼저 하고, 그다음에 하얀 통, 그리고 파란 통."
"그래, 내일부터 나도 해 볼게."
"……."
"나도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제게 등을 돌린 채로, 수건으로 덮어진 머리인데도 수건 아래 그의 뾰족한 귀가 축 늘어진 게 보여서 메테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으며 그라하에게 다가가 그를 꽉 끌어안고 입술이 닿는 곳마다 마구 뽀뽀를 했다.
아, 정말 누가 이렇게 귀여운 짓만 하래 아침부터. 일부러 하나하나 신경 써 준거야 나 때문에? 네게서 나는 린스 냄새가 좋아서 나는 한참 비비적댔었는데 말이야.
웃음 섞인 목소리에 담긴 다정한 말에 그라하의 꼬리가 펑 터지고,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메테오의 입술 세례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라하도 메테오의 여기저기에 쪽쪽 입을 맞추며 웃음 지었다.
언제나처럼 바쁜, 두 사람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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