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믿음

-크로노스의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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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고래는 항해사였던 소년을 본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범고래들은 소년에게 사랑이란 이름의 등대를 남겼다. 그렇다면 소년은 범고래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우리는 운명을 항해했다. 푸르르기 그지 없는 바다와 다정하고 따뜻했던 심해를 유영했다. 비록 이제는 바다에서 헤엄칠 수 없지만, 바다만큼 넓은 하늘이 있으니 괜찮다. 우리는 이제 하늘 위의 별이 되어 하늘을 헤엄치고 있으니까. 백조들의 시야가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하늘의 시야는 보이드의 모든 것을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너 또한 우리의 시선 안에 들어왔다.

이제는 당당히 내뱉을 수 있는 그 이름. 트리톤 아틀라스. ‘머리 많이 길었네~’ ‘그러게요, 이제 어른이네.’ ‘응응 잘 컸다.’

더이상 네게 푸르름은 없지만 그럼에도 너의 모든 것이 푸르게 빛나서 우리는 너를 바라만 보았다. 바다를 품은 아이, 바다를 닮은 아이, 빛났던 아이, 그리고 우리의 고동. 바다를 울리는 소리였고 시작을 알리는 부름이었던 너를. 당당히 우리를 이끌어가던 너를. 그러나 눈물 많던 너를. 정이 넘치던 너를. 약하나 강했던 너를. …남겨진 너를.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비린 내음을 간직한 채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몇 동조자가 있음에도 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요.”

‘정말? 우리 벌써 3년이나 지났어?’

‘그래, 그러니까 저만큼 컸지.’

‘시간 참 빨라~ 마냥 아기같던게 엊그제였는데.’

‘…와아 진짜 어르신 발어언’ ‘뭐야?????’

‘쉿. 조용히해! 트리톤 얘기하잖아.!’

‘그래, 우리도 알아. 네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상이 혼자 힘으로는 바뀌기 어렵다는 것도.’

‘하지만 천천히 잘 하고 있으니 됐지.’ ‘그래, 몇년이 지나더라도 해낼 수 있으면 돼.’ ‘네 목표를’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헌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얀 카네이션과 푸른 델피늄이에요. 꽃말이 참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나름대로 여러분께 전달하고픈 뜻을 생각해 조성해봤습니다. 최근에 조금 좋은 일이 생겼거든요.”

‘...예쁘네요.’

‘그러게에~ 색도 따악 맞춰서 들고왔네에~’

‘그러게.. 하얀 카네이션의 꽃말은 존경, 사랑, 추모였던가?’ ‘응 죽은 사람을 향해 외치는 고백이에요.’

‘푸른 델피늄의 꽃말은 은혜,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당신은 나의 영웅. 이에요.’

‘…착한 아이야. 정말로.’ ‘…응.’

“저번에 말씀 드렸던 법안 있잖아요, 그거 통과 시켰어요. 별로 큰 변화는 아니겠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을 차근차근 바꿔 나가다 보면 언젠가 따스한 바닷바람이 불어올 거라 믿어요. 저 잘했죠?”

‘헉 정말? 이야~ 트리톤 고생 했는걸~?’ ‘그게 어떻게 통과가 되는거구나?’ ‘엄청 고생했을 것 같은데?’

‘잘했네 잘했어. 그치 단장?’

‘정말로 착한 아이라니까~’

‘우리 트리톤 장하네. 잘했어. 옆에 있었으면 엄청 쓰다듬어 줬을텐데. 아쉬워!!’

‘어쩔 수 없죠. 속으로만 생각해요. 이 마음이 부단장에게 닿을 수 있도록.’

“지금쯤이면 저 너머 바다에 도착해 물놀이라도 즐기고 계시려나요. 그곳의 바다는 어떤 색인가요? 바라던 대로 푸르게 펼쳐진 곳인가요? 물의 온도는 어때요? 들어가기에 너무 차갑지는 않나요?”

‘아하하 우리가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거 꿈도 못꿀텐데.’

‘착실하게 인사해주는 것도 귀엽지 않아?’

‘그러게.. 아쉽지만 트리톤 우리는 바다가 아닌 하늘에서 헤엄치고 있단다.’

‘하지만 여기도 좋아. 푸른 하늘은 바다를 꿈꾸게 하고, 물놀이도 칠 수 있거든.’

‘물론 저 너머의 바다도 봤다!!!!’

‘그곳의 물은 언제나 따뜻하고, 청명하도록 푸른 색이 감돌더라.’

‘트리톤, 나중에 함께 가자. 네가 오는 날 우리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괜찮지 다들?’ ‘물론~’ ‘당연하지!!!!!’ ‘네, 당연하죠.’

“크로노스의 비정 이전의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또 따뜻했대요. 그런 바다가, 여러분들의 앞에 펼쳐졌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랬어.’ ‘그랬죠.’ ‘응, 그랬지.’ ‘아름다웠어.’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고 햇빛은 따뜻한 너머의 바다. 하지만 트리톤..’

‘우린 너와 함께 있을 때도 그것을 느꼈어. 따스하고, 다정하며, 아름답게 반짝이는 네 안의 바다를.’

‘…’

“......저도 보고 싶거든요.”

‘ …… … … ..우리도 보고싶어.’

‘하지만 안돼. 알지? 육지는 산 자들의 것이야.’ ‘당연히 알지!! 그치만 역시 그리워..’

‘트리톤은 강하잖아. 괜찮아.’

‘우리가 저 아이에게 맡겨두고 온거야. 그러니 믿어도 괜찮아. 트리톤은 믿을 수 있는 아이니까.’

‘그래, 저렇게 벌써 혼자 바다를 이끌고 있잖니!’

소리 없는 눈물을 바라본다. 조금은 소리내어 울어도 될텐데, 바다의 파도가 모든 소리를 감싸줄 것인데 미련하게도 너는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무엇이 무서울까. 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는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린다. ‘저러다 탈수 오겠네.’ ‘그치이~?’ ‘조금은 어리광부려도 될텐데. 혼자 남았다고 어른인 척 하려는거 아니겠지~?’ ‘하하 설마!’ 범고래들은 소년을 보며 재잘거린다. 재잘대는 목소리들은 숨쉬듯 이어나가 휘파람 소리로 변한다. 작은 휘파람 소리가 바람에 섞여들어간다. 그 소리가 네게 들렸을까.

찬란한 빛아. 아름다운 소리야. 단단한 바다야. 여린 아이야.

손을 뻗은 바람이 네게 향한다. 실체로는 닿을 수 없지만 네게 마음이라도 전해지면 좋을텐데. 바람이 네 머리카락 끝을 간질인다. 네게 웃어주고 싶다. 네 모든 것이 자랑스럽다고 알려주고 싶다. 네가 가는 길이 곧 우리의 뱃길이라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

‘부탁해’ ‘응’

바람을 움직인다. 구름을 밀어낸다. 부디 이 소망 하나 네게 닿을 수 있기를. 네게 안도감이라도 줄 수 있기를. 구름이 밀려난 곳에 빛줄기가 내려온다. ‘타이밍 좋네~’ ‘하늘도 우리 편인거지.’ ‘거참, 그 편 좀 일찍이 되어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빛줄기는 아래로 내려가 너의 뺨을 스친다. 네가 흘렸던 슬픔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가져오기 위해 움직인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너를 닮은 고동이 울려퍼진다. 아아- 우리를 부르는 소리다. 너의 소리다. 세상의 울림이다. 이것은 파도가 오고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등대다. 저 멀리서부터 모두를 부르는 소리. 빛의 이정표. 나아가야할 길.

네게 맡겨둔 것은 너무나도 많고, 네가 나아갈 길은 험하기만 하다. 네게 모든 것을 알려주지도 못했고, 네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도 못했다. 허나 너는 다시 일어선다. 우리가 네게 주었다고 믿는 것을 통하여. 실은 네게 원래 존재하던 것을 네가 깨달은 것 뿐인데 과분하게 그 공을 우리에게 넘기며. 그래, ‘용기’ 를 가지고 너는 일어선다. 나아간다.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한 때를 위해. 다시 만나 네가 했던 모든 일을 이야기 해줄 날을 위해. 파란 파도가 네 자리를 타고 넘실거린다. 그리하여 네가 쏟았던 눈물을 전부 가져간다. 아픔도, 슬픔도, 외로움도, 고통도, 고난도, 힘듬과 울분도 전부 휩쓸어간다.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가 모두 가져갈테니 부디 너는 행복한 웃음만 지으렴.

‘또 봅시다. 트리톤. 우리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그거어 제법 무서운 발언인데에.. 아하하~ 분며엉 잘 할거니까아 믿어보자구우~’

‘그래!!! 부단장은 나약하지 않다니까???? ’

‘…그래요. 믿습니다 트리톤. 올때는 가벼이 떠나오세요. 우리가 모두 들고 있으니까.’

‘기다리고 있을게요. 다정한 당신. 나아가는 길이 평안하길.’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가렴 트리톤. 그리고 그 끝에서 외쳐. 해내었다고. 보란듯이.. 그것이 네가 선택한 운명이고 미래일거야. 그 끝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네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을거란다. 네 뜻이니 받아들이고, 또 수고했다고 해줄거야. 너는 우리의 바다니까. 우리의 범고래니까. 우리의 고동이니까. 그치 단장?’

‘그럼! 당연하지 않겠니?’

바다는 따뜻하고도 다정하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범고래들은 소년에게 사랑이란 이름의 등대를 남겼다.

그리고 소년은 우리에게

다정한 믿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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