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썩어가는 모든 것들에게.
무제.
: 그러므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모든 것들에게.
종국의 특이점을 수복한 뒤, 마슈 키리에라이트와 산고노미야 이브는 며칠간 안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쉴 수 있었다. 모래바람과 함께 생명을 위협받는 극단적인 감각들은, 마치 환감과 같았다. 무뎌지기 시작한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모든 것들이 원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애도는 깊었으나, 짧았다. 마슈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는가 싶다가도, 곧 자신을 보며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푸른 하늘을 되찾은 것은 분명 그의 덕분이···었다.
이브는 이제는 쓰지 않는 그의 방으로 향했다. 모두가 잠들었을 시각. 하늘은 새카맣게 물들었고, 역시나 방에는 아무도없었다. 꿈도, 환각도, 환청도 아니었다. 든든한 마스터가 되어주었구나, 이브. 끝까지 미련맞은 그 상냥한 웃음을 잊을 수 없다. 어째서일까. 빈 방에 발을 딛고서 천천히 둘러본다. 별 다를 것 없는 하얀 방. 괜스레 내뱉어지는 한숨의 의미는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그와 보내온 첫만남부터 그가 사라지기 직전까지의 모든 일들이 생경하게 지나간다. 파노라마, 주마등.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다. 아주 먼 곳으로 스스로 발을 옮겼다. 솔로몬이라는 인물 자체를 좌에서 없애버린. …아무리 억지력에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이라도 그의 죽음까지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순 없다. 아무리 괴물 소리를 들어도 그런 일까지는 어렵구나. 의외로 나는 무능한 쪽인걸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닥터? 허공에 묻는 말에 답해줄 사람 따위 있을 리 없다. 정말 죽어버린거구나. 이제야 좀 실감이 나는 것 같네. 나는 또 당신이 어디선가 땡땡이를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이상한 착각을 할 뻔했지 뭐야.
그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고, 아주 많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곧잘 상냥함을 피력했고, 그것으로 생색을 내는 일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지금껏 안전하게 레이시프트를 했던 것도 그의 지분이 컸을 터였다. 마슈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닥터 로마니의 행적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당신은 의외로 엄청난 거짓말쟁이었구나.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그의 침대에 걸터앉은 이브는 빛도 들지 않는 새빨간 눈으로 마치 그가 옆에 있기라도 한 양 그저 멍하니 옆을 바라봤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주치기를 바라는 것처럼. 당신은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 말의 의미를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나는, 무엇을 사랑한걸까……. 그 몽마도, 당신도 내가 나의 여정을, 이야기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한참 먼 기분이야. 넋두리처럼 내뱉는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째선지 마음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도 모르고, 사람의 이야기도 잘 모르고, 그 이야기 속에 내포된 의의 따위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여타 모든 마술사들이 말하는 ‘괴물’ 에 가까운 여자이므로 이해할 수 없음이 당연했다.
그럼에도 그랬다. 마슈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불태워서 작열하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을 즈음에도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녀의 그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빛처럼 산화하는 그 모습이 반딧불이 같기도 했고, 한없는 백야 같기도 했다. 이상할 만치 눈물이 나고, 마음이 뒤숭숭했다. 파괴적인 기분, 앞에 있는 거대한 재앙을 내 손으로 치워버리고프던 그 감각. 그것이 슬픔인가? 비탄인가? 고통인가? …지금은 알 수 없다. 지나버린 감정의 여운을 기억할 정도로 인간적이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끝내 당신이 숨겨온 보구와, 당신의 정체. 그리고 길게 이어질 당신의 부재를 생각하면 심장이 요동쳤다. 아파, 무척 아파. 출처 불분명한 통증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게 되었다. 하다못해 닥터 로마니가 살아있었더라면 그의 가슴팍을 연신 때리며 내 몸에 이상증세를 책임지라 했을텐데. 이젠 그것도 불가능하다니. 내가 느낀 감정이,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걸까? 이야기를 사랑하는 건 아직 뭔지 모르겠지만,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은 알아가고 있는 것일까.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내가 앞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의 가능성이었던걸까. 수많은 의문을 뒤로하고, 이브는 깨긋하고 섬세하게 관리된 첼로를 꺼내들었다. 아직 당신은 장례다운 장례도 치뤄지지 않았다.
…선율이 방을 가득 채운다. 사특한 마력은 깃들지 않았으나 구슬픈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멜로디. 아주 느릿 템포, 잔잔한 울림. 그 방 하나만을 채울 수 있는 정도의. 이브는 눈을 감고 연주에 집중했다. 잠에 들지 못한 평범한 ‘소녀’ 는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신이 아끼고 아끼는 선배의 선율이라는 점 또한 일찍이 자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사람만을 위한 단 한 사람의 애도는 마치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 이어진다. …당신을 위한, 장송곡이야.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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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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