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옷에는 꼬리표를 떼자

“—자신이 도사라는 경각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들어야한다.”

제가 잠에 들기 바로 직전에 들었던 말이다. 봄의 저녁은 겨울의 손길이 채 가시지 않았음에도 겨울의 밤에 비하면 꽤 따스한지라 노곤한게 수마에 잠기기 딱 좋았다. 잠에 들랑 말랑하는 정신으로 듣는 수업은 내용은 듬성듬성, 글씨는 점점 암호문이 되어가는 데다 대차게 지각하는 바람에 출석도 빼먹은 것 같지만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 수업에서 중요한 사흉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거였으니까. 무협지에 꽤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고, 친우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상황극을 하며 그에 맞춰 흉수를 물리치는 도사 놀이 같은 것을 하기도 했었으니 그 이름들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부정한 기에서 태어난 삿된 것들의 왕. 처음 흉수들에 대한 설명을 읽었을 때부터 생각했던 수식어다. 귀신의 그릇이라는 소리가 제게 꼬리표처럼 붙었을 때는 같이 놀았던 친우였던 자들에게서 도사는 무슨, 못난 흉수의 자식이라는 말도 들어봤던만큼 제게는 적어도 악명으로서는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도철의 탐욕을 제외한 다른 흉수들이 대표하는 감정도, 한 번쯤은 아주 격렬하게 느껴본 것들이었으니 부정한 마음이 흉을 만든다면 자신은 도사의 신분으로 자신은 흉수와 퍽 가까이 살았던 것 같다.

이제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자신은 귀신도 흉수도 깃들지 않을 도사의 몸임을 의화관에서 멀쩡하게 사는 것으로 증명했고, 영원을 약속한 친구도 한때 자신을 상처입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울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친구도 생겼다. 여기 있는 아이들이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았다. 알게 모르게 웃음이 늘었다는 증거로 웃음을 잊은 듯 굳었던 얼굴이 저녁 즈음 잠에 들 때는 입꼬리가 아파오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더이상 자신은 흉수들과 같다고 볼 수 없으리라.

사흉수에 대한 감상은, ⌈누구도 용서할 일 없고, 상처 입어도 동정하지 않을 가엾은 존재들.⌋ 이 한 줄의 서술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이것이 한때 그들의 이름으로 된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이가, 앞으로 대적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사람으로서 표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예의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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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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