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요

[레이츄린] 내가 구했어!

. by 마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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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트힐 캐릭터 PV 마지막 장면 보고 썼습니다. 간부진들 함선에서 어떻게 탈출했을까 궁금해지더라구요.

* 레이츄린인데 레이시오의 등장이 적음. 가벼운 마음으로 썼으니 가볍게 읽어주세요✌️

천지가 뒤바뀌는 충돌음 직후 함선에 적색 등이 들어왔다. 총탄에 꿰뚫려 산산조각 난 유리 돔형 사이로 거센 바람이 짓쳐 들었다. 사방이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가득했다. 겁에 질린 울음이 곳곳에 치솟았다. 어벤츄린은 몇 번이나 허공에 솟구쳐올라 바닥에 처박힌 후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머리와 장기가 뒤흔들린 탓에 시야가 분명하지 않았다. 구역질이 치솟았다. 덜컥 밀려오는 공포를 억누르고 냉정하게 주위를 살폈다.

부트힐이 거대한 발포음과 함께 쏘아낸 총탄은 함선의 중심부를 정확히 꿰뚫었다. 몇 초간 간신히 하늘을 부유하던 기계장치는 비명을 토하며 추락했다. 간부들과 수백 명의 하급 직원들을 실은 기체가 동력을 잃고 낙하하는 것이었다.

함선 내부는 기체가 폭발하여 발생한 충격파로 지옥이 되었다. 바닥에 고정한 가구들이 뜯겨나가 제멋대로 사람을 덮쳤다.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이 얼굴에 떨어졌다. 기체의 파편이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팔다리를 찢었다. 곳곳에서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들렸다. 부트힐을 추격하던 일반 직원들은 아무런 방비 없이 거센 폭발에 휘말려야 했다.

추락하는 함선은 탈출구 없는 미로와 마찬가지였다. 혼란에 빠진 생존자들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서 눈 돌린 채 구원을 찾아 헤맸다. 그 폐허 속에서 어벤츄린 만은 멀쩡했다. 유리 조각이 박히지 않았고, 거센 충돌로 내장이 터지거나 뼈가 부러지지도 않았다. 약간의 어지러움은 있었으나 거동에 어려움은 없었다. 다이아몬드가 하사한 초석 덕분이었다. 초석은 언제나 어벤츄린을 지켰다. 주위를 뒤덮은 수많은 죽음에서도 어벤츄린 만은 생채기 없이 멀쩡했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지옥도를 강제로 마주해야 했다.

"어벤츄린!"

익숙한 목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잡념을 끊었다. 어벤츄린은 귓가에 낀 무전기를 누르고 답했다.

"토파즈, 무사해?"

잠깐의 침묵 후 토파즈가 답했다.

"…난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없다. 이쪽과 마찬가지로 토파즈를 보좌하던 직원들 역시 충격에 즉사했을 것이다. 토파즈는 부하직원들에게 뚜렷한 정을 쏟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정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해도 소용 없었다. 가벼운 실수에도 교체될 자리에 위치한 직원들에게 상냥하게 웃었고 진심을 다했다. 그렇기에 모든 걸 잃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롱하지 않았다.

토파즈는 슬픔을 접어둔 채 말했다.

"그것보다 앞을 봐요. 곧 빌딩과 부딪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당신 말고 살아 남을 사람은 없다고요!"

휘몰아치는 돌풍을 뚫고 함선 끝에 다다랐다. 거센 바람에 몸을 세우기 어려웠다. 그러나 시선을 내릴 필요도 없이 눈앞에 높이 솟은 건물이 보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함선은 곧 추락하여 건물과 충돌할 것이다. 거대한 함선 째로 건물과 격돌한다면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테고 컴퍼니의 위상은 바닥으로 추락할 터다. 덩달아 다이아몬드의 신뢰까지 잃게 되겠지.

임무를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죽는 걸까. 이 허무한 죽음으로 지긋지긋한 인생에 막을 내리는 걸까.

"어벤츄린!"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알고 있어. 하하…. 사람을 참 험하게 사용한다니까."

그러나 어벤츄린은 아직 고단한 여정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밤하늘에 떠오른 오로라 아래 서늘한 모래 언덕.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이가 묻힌 자리. 저 역시 그곳에 돌아가고 싶었으므로. 하늘에서 산산이 조각난다면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겠지. 그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온전히 고향을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어벤츄린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품 깊숙이 넣어둔 사금석을 꺼냈다. 깨부술 듯 움켜쥐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이 밀려왔다. 각오했으나 전신이 덜덜 떨렸다. 악다문 잇새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육체가 샅샅이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감각. 드넓은 우주에 떠밀려 자신을 잃는 감각. 어벤츄린은 몰아치는 통증과 외로움에 신음했다. 그러나 나약하게 무너질 수 없었다.

어벤츄린은 십인의 스톤하트 중 유일하게 보존의 힘을 부여받았다. 무력했던 과거와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이다. 구할 수 있는 생명을 눈앞에 두고 포기할 수 없었다. 연명하는 생명을 붙잡는 게 저의 유일한 능력이었으니. 어벤츄린은 기도하듯 손을 끌어모아 초석을 움켜쥐었다.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숙였다.

위대한 앰버로드이시여. 낯선 신을 찾았다. 열띤 기도를 닮은 행위는 살아 있는 생명에게 보존의 가호를 부여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목숨을 필사적으로 움켜잡을 것이다. 막대한 책임감에 손이 떨렸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수 없으니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토파즈는 홀로 막대한 부담감을 짊어져야 하는 사내를 다정히 위로했다.

"어벤츄린. 당신을 믿어요."

믿는다, 라. 거대한 신뢰 앞에 어벤츄린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함선은 끝없이 추락했다. 죽음을 부정하며 날뛰는 직원들의 얼굴에 공포가 적나라했다. 충돌을 알리는 경보음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기도는 계속됐다. 멈출 수 없었다. 건물과 격돌하는 그 순간까지도 필사적으로 구원을 바랐다.

떠오르는 감각과 동시에 바닥으로 처박혔다. 눈 떴을 땐 잔해에 파묻힌 채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말단부위의 감각을 파악하던 어벤츄린은 몸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몸을 뒤덮은 파편을 밀어내고 간신히 일어섰다. 주위를 살폈다. 폐허가 된 도심지에 홀로 서 있었으므로 임무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없었다. 나부끼는 먼지바람을 마시자 기침이 솟구쳤다. 동시에 입과 코에서 피가 솟구쳤다. 힘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내부가 망가진 탓이었다.

고통스러웠으나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어벤츄린은 파편을 쓸고 지나가며 잔해를 파헤쳤다. 높은 건물은 충돌로 인한 충격 때문에 뿌리만 남기고 무너졌다. 두터운 잔해의 벽 아래에 사람들이 깔렸으니 생존율은 급격히 하락했다. 그러나 어벤츄린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저를 응원했던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토파즈……."

답이 없었다.

"대답해. 토파즈!"

무작정 걸음을 옮기던 도중 미약한 신음이 들렸다. 예민한 감각은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어벤츄린은 소리의 행방을 찾아 뛰었다. 무거운 잔해를 발로 밀어 치우자 그 아래에 토파즈가 보였다. 무거운 돌덩어리에 짓눌려 뭉개졌을 거라고 믿었던 그는 무사했다.

어벤츄린은 헛소리하듯 중얼거렸다.

살았다. 살아 있어. 죽지 않았어.

"토파즈, 무사하나?"

"콜록. 예, 덕분에. 어떻게든. 몸은 멀쩡한데 머리가 뒤흔들려서 일어나지 못하겠어요. 좀 도와줘요."

어벤츄린은 그의 목덜미를 받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재빠르게 부상을 살폈다. 그 모습에 지친 얼굴을 하던 토파즈가 가느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도 그런 얼굴을 하는구나."

"무슨 소리야?"

토파즈는 고개를 흔들고는 입 다물었다. 알 수 없었으나 충격으로 인한 가벼운 섬망 증세라고 받아들였다.

토파즈를 구출한 직후 머리 위로 사람을 옮길 만한 커다란 드론이 여러 대 도착했다. 스타피스 컴퍼니의 구조 부대가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잔해에 파묻힌 사람들을 구했다. 두터운 잔해 아래서 사람들이 무사히 구출되는 모습을 확인한 어벤츄린은 안심한 듯 웃었다.

초석의 규격을 벗어난 힘에, 오로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한 자신의 집념에 웃음이 나왔다.

구조 과정을 멍하니 바라보던 어벤츄린은 작게 기침했다. 손바닥에 묽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코와 귀에서 피가 쏟아져 내렸다. 인간의 몸으로 규격을 벗어난 힘을 사용한 대가가 들이닥쳤다. 곧 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겁다는 걸 자각했다. 전신을 뒤덮는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토파즈. 나, 죽을 것 같아. 지금 당장 죽을 것 같다고."

"아, 정말! 그러니까 평소에 단련 좀 하라니까요!"

"지금 사람들을 구하느라 새빠지게 고생한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너무해. 너무하다고. 더 이상 못해. 당장 입원시켜줘."

"이 모든 뒤처리를 나 혼자 하라고요?!"

어마어마한 규모의 피해를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토파즈는 비명을 질렀다. 얄밉다는 듯이 노려보다가 이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장난이에요. 맘 편히 쉬어요.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어요."

"……별말씀을."

눈을 감은 어벤츄린은 곧 정신을 잃었다. 다급히 달려온 구조대원이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이동했다. 뼈마디가 뒤틀리는 통증과 끔찍한 악몽에 헤매던 어벤츄린은 눈을 떴다.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확인했다. 새하얀 천장과 전신에 연결된 기계장치. 손등을 타고 흘러 들어가는 진통제. 병실이었다.

"정신이 들었나?"

어벤츄린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의사 가운을 걸친 레이시오가 어느덧 다가와 의자에 몸을 걸쳤다. 감각이 지나치게 떨어진 탓에 그가 접근하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레이시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이제 막 잠에서 깬 탓에 어눌한 발음이 새어 나왔다. 레이시오는 그런 환자를 많이 봐왔다는 듯이 정확히 알아들었다.

"네가 컴퍼니의 협력 병원으로 실려 왔기 때문이지."

"아하. 그렇구나. 레이시오, 네가 날 돌봐줄 거야? 이번에는 진짜 죽을지도 몰라. 몸이 으슬으슬하고 힘이 하나도 없어. 나 좀 일으켜 세워줘."

"초석을 사용한 대가다.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사용했으니 몸이 멀쩡하겠나? 회복할 때까지 얌전히 잠이나 자."

싫어! 레이시오는 이마를 꾹 누르는 것으로 반항하던 환자를 억눌렀다. 어벤츄린은 얌전히 침상에 누워야 했다. 기력 없이 늘어진 채 간단한 질문에 답하며 미적지근한 시간을 보냈다. 레이시오는 어벤츄린의 컨디션을 확인한 후에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가에 짙게 새긴 다크서클은 요 며칠 그가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알려주었는데도.

레이시오는 오래도록 어벤츄린을 응시하다가 깊은 한숨을 토했다.

"뭐야? 왜 그렇게 심각한데? 나 죽는 거야?"

"그럴 지도 모르겠군. 무리하게 힘을 사용한 덕분에 몸이 엉망이야. 넌 지금 망가진 몸을 간신히 이어 붙여 살아난 상태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테지."

"그런 거야?"

"그래. 그러니까 회복에 전념하도록 해. 안 그러면 퇴원 날짜는 계속해서 미뤄질 테니."

어벤츄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담당 의사의 정확하고 냉정한 진단은 컴퍼니로의 복귀를 늦출 뿐이었다.

"그러지 마. 빨리 퇴원해야 한다고. 내가 이렇게 누워 있는 사이에도 책상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보고서가 쌓일 거라고. 게다가 토파즈가 혼자서 피해를 수습하고 있을 거야. 빨리 가서 도와줘야 해."

"도움은 필요 없으니 전부 다 나을 때까지 느긋이 휴가를 즐기시길. 당사자로부터 전언이다."

토파즈까지 그렇게 말한다면 병원에서 탈출할 수단은 없었다. 어벤츄린은 기력을 잃고 침대에 몸을 늘어뜨렸다. 허공에 손짓하며 침상 앞에 마련된 커다란 패널을 틀었다. 채널을 돌릴 필요 없이 전 방송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무언가를 쏟아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처럼 움직이던 입을 멈추고 영상을 바라보았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현장은 처참했다. 거대한 함선이 건물과 충돌하며 뿌리만을 남기고 모든 게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이 사고에 휘말렸으니 구조에 동원된 구조대원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처참한 재난 속에서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벤츄린의 간절함이 모두를 구한 것이다.

"레이시오. 봐! 내가 구한 거야! 이번에는, 내가 모두를 구했어!"

어벤츄린은 열에 들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즐거워했다. 가만히 옆을 지키던 레이시오가 잔잔히 웃었다.

"그래. 네가 모두를 구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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