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커플 결혼 준비 일기

0. 결혼 결심 하기

하쿨 by 하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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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글을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우리 커플은 결혼을 준비중이다. 그리고 퀴어 커플이다. 이 글은 그냥 일기다.

다만 결혼을 준비하며 아주 많은 서치를 했지만 국내에서 퀴어커플의 결혼 정보를 찾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나는 글을 재미있게 쓰거나 유용한 정보를 선별해서 보기좋게 정리하는 일은 전혀 하지 못하지만 그냥 이 정보의 사막에서 읽어 볼만한 글이 되기를 바라며 공개로 작성한다.

나와 언니는 이제 7주년이 다 되어가는 시스젠더 여여커플이다. 편의상 평소에는 레즈커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두 사람 모두 팬이나 바이에 가깝다. 어린 나이부터 연애를 시작해서 오래 지냈고 결혼까지 결심하였으니 아마 정확한 정체성을 깨달을 기회는 없지 싶다. 그렇다. 우리는 오는 2월이면 7주년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아주 오래 사겼다. 그리고 사귄지 2달만에 동거를 시작했으니 사실혼 7주년과도 크게 다를바가 없다. 이 부분때문에 결혼을 고민하게되었다.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언니와 나눈 대화가 있다.

언니: 그래도 헤테로들 결혼식은 부모님의 비지니스장인데 우린 그건 아니라서 좋다.

나: 뭔 말이야? 우리 결혼식은 시위야.

사실 결혼식을 하는 이유 자체는 당연히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점이 가장 크다. 하지만 나는 만약 우리가 혼인신고가 가능했다면 결혼식을 생략했을 파로서, 우리의 결혼식은 시위이고 퍼포먼스다. 혼인신고를 할수 없는 연인으로서 우리가 단순히 동거 커플이 아닌 부부임을 증명하는 퍼포먼스의 의미가, 우리가 여기있다는 시위의 의미가 포함되어있지 않을수 없다. 나자신만해도 5주년쯤부터는 우리는 부부가 아닌가? 언제까지 연인으로 소개해야하지? 그렇다고 아무 일 없이 당장 내일부터 와이프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하는 혼란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우리의 친구들, 그리고 특히 가족들은 우리를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고 부부보다는 그저 헤어질지도 모르는 연인으로 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호모포빅한 친구들은 곁에 두지 않았고 내 주위에는 퀴어 당사자들도 아주 많지만 나 자신부터 혼란스러운데 타인이 그러지 않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헤테로들은 사실혼과 혼인신고를 선택할수가 있지만 우리는 부부이기 위해서는 결혼식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말하면, 첫번째 이유는 그냥 하고 싶어서이다.

우리의 목표는 사실 최대 1000만원으로 식을 올리기 였는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드레스와 스튜디오를 계약했고,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깨달았다. 우리는 신부가 둘이고 둘다 드레스를 입을거다. 이 시점에서 예산은 상상 이상으로 불어난다. 나름 드레스샵 실장님이 힘을 써줬지만 그럼에도 그렇다. 그래서 목표를 변경했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 1400만원으로 결혼식하기다. 기준은 23년 평균 헤테로 결혼식비용이다. 신혼여행은 제외다. 우리는 불안정한 직장의 최저임금의 가난한 여성 커플이기에 싼티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비용을 아껴보려고 하지만 막상 준비하다보니 점점 욕심이 커진다. 괜히 인생에 한번뿐인데. 라는 말이 유혹적인게 아니다.

말이 나와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보통 매체에 나오는 퀴어들은 찬란하다. 멋지고 예쁘고 경제력도 있는 것 같고 인생의 목표가 명확하고 추진력도 있는것 같고 능력도 출중하고. 퀴어인 점을 제외하면 세상에 불이익 받을것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걸보며 매일 부러워 하고 나는 왜이럴까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많은 헤테로들이 그렇듯이 퀴어중에서도 더 멋지게 사는 사람이 주로 매체에 비춰질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헤테로커플은 결혼식을 안하나? 다들 한다. 그러니까 우리도 거창하지 않더라도 만족할만한 결혼식을 분명 할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결혼 준비하며 이벤트가 있으면 포스트를 추가한다.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텀이 아주 길겠지만 잘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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