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르 에고의 규칙 1화
파란 눈동자의 아이
우웃, 훌쩍. 죄송, 해요…… 저…… 읏.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
울고… 있는 건가…? 괜, 찮아…
파란 눈동자의 아이
하지만, 피가, 잔뜩… 저 때문, 에…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
후후… 당신 탓이, 아니에요. 하지만, 오늘이… 그 날이었을, 뿐…
…………
파란 눈동자의 아이
……! 안 돼, 부탁이야, 일어나! 일어나……!
???
이게 무슨 일이야… 엄청난 상처를…
파란 눈동자의 아이
읏…! 형은… 누구?
보라색 머리의 남자
누구, 라는 질문에는 무한한 답이 있지만… 오늘은 그, 죽어가는 자의 친구다, 라고 대답하는 게 맞겠지.
파란 눈동자의 아이
이 사람의, 친구…? 죄송해요…! 이 사람, 저 때문에, 이런 일이……
저는 어떻게 하면 좋죠?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줘요…
보라색 머리의 남자
아무것도 하지 못해.
파란 눈동자의 아이
에……
보라색 머리의 남자
그는 멀지 않아 죽을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파란 눈동자의 아이
그런…
보라색 머리의 남자
그리고 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주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말 정도는 나눌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죽을 거야.
파란 눈동자의 아이
죽는다……
…그럼, 이 사람이랑은, 더 이상 만날 수 없어…?
보라색 머리의 남자
그래. 그게 이 세상의 진리다.
파란 눈동자의 아이
……읏!
그런… 그런 거, 싫어…… 그야, 아직,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도 못했어……
…부탁이에요, 신님. 저, 뭐든지 다 할 테니까…
부디, 한 번만 더, 이 사람과 만나게 해 줘…
보라색 머리의 남자
……
……그리운 소리가 들린다.
딱딱한 지면을 왕래하는 여러 가지의 발소리.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언젠가, 매일처럼 들었던, 언젠가, 들리지 않게 된 소리……
게다가 뭔가 좋은 냄새가 난다. 달고도 덧없는, 꽃의 향기…? 이건, 분명…
아키라
……어라……?
나, 자고 있었나… …여기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자, 붐비는 소음이 밀어닥쳤다.
무언가를 소곤소곤거리며 대화하는 목소리. 언쟁하는 목소리가, 금세 웃는 목소리로 바뀐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는 양복 차림의 사람과, 날카로운 눈꼬리로 허리를 움츠리고 걷는 사람. 내 옆을 사람들이 발빠르게 지나쳐 간다.
아키라
아…… 죄송합니다…
허둥대며 길 구석에 서자, 시야 한쪽에서 무언가가 팔랑팔랑 떨어지는 기척이 났다.
아키라
(이건… 꽃잎?)
올려다보자, 북적거리는 건물 사이를 누비고 나아가는 것처럼, 분홍색 꽃이 화려하게 피어있었고.
코끝을 간지럽히던 꽃잎을 시선으로 쫓자, 바로 옆에 있던 처마 밑에서 뭔가 늠름한 남자들이 대화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뺨에 상처가 있는 남자
키르슈 페르슈는? 단서는 발견했나?
콧수염이 있는 남자
아니… 아예 틀렸어. 폭주 녀석이 있는 탓에 밤에 돌아다니기 힘들어. 낮일 동안에 꼬리를 잡고 싶은데…
까까머리 남자
오늘 손에 넣은 건, 서쪽의 구시가에서 또 한 명, 묘한 모습으로 사라진 녀석이 있다고 하는 정보 뿐이다.
뺨에 상처가 있는 남자
아아… 최근 유행하는 실종 사건인가. 입고있던 옷과 대량의 낙월화 꽃잎을 남기고 사라진다고 하는.
정말이지, 대체 이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아키라
(폭주 녀석? 사람이 사라져? 뭔가, 엄청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뺨에 상처가 있는 남자
…응? 어이, 거기 너.
아키라
!
뺨에 상처가 있는 남자
이 근처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구만. 어디서 왔냐?
아키라
그러니까……
(…어라…?)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저, 뭐하는 사람일까요…?
콧수염이 있는 남자
웃기고 있네. 그런 속임수가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까까머리 남자
조금 아픈 꼴을 보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지?
아키라
기, 기다려 주세요…! 왓…!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친 탓에, 돌층계의 요철에 발이 걸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사람에게 둘러쌓인 나에게 도망칠 곳은 없다.
아키라
(어, 어쩌지…)
???
드디어 찾았네요.
아키라
에…?
실례, 라며 남자들 사이를 슬쩍 비켜 들어온, 품위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남자가 나타난다.
???
곤란하네요, 손님. 그렇게나 제 가게에서 마음대로 하셨으면서, 값 하나 치루지도 않으시다니.
남자는 요염한 미소를 띄우며 그렇게 말하더니,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가까이에서 본 붉은 눈동자는 어디까지나 깊은 색조를 가지고 있었고,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키라
…저, 말이에요?
???
물론 당신이지요. 정말이지, 나쁜 분.
그는 달콤하게 속삭이며, 담뱃대의 연기를 후우, 하고 내 쪽으로 불었다.
아키라
……!
연기로 눈앞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
이 분은 제 가게의 손님입니다. 유감이지만, 어젯밤 숙취로 기억이 모호한 모양이지요.
제 쪽에서 확실하게 뒷처리를 하기 위해,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까까머리 남자
…어떻게 하게?
뺨에 상처가 있는 남자
그런 거라면 우리들이 말참견할 게 아니군.
콧수염이 있는 남자
기분 좋게 취한 만큼, 열심히 갚아라.
???
…후우, 원만히 해결됐네요.
아키라
앗, 저기…!
저, 당신의 가게에서 엄청난 일을 해버린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
고개를 들어주세요. 이쪽이야말로, 거짓말을 해서 죄송했습니다.
아키라
…헤…? 거짓말…?
???
방금 전의 행동은, 당신을 구하기 위해 뱉은 거짓말. 당신과 저는 첫만남이랍니다.
이 거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순수하고 귀여운 분이 곤란해하고 계셨으니까요. 무심코 손을 내밀어주고 싶어져서.
아키라
그, 그랬던 거군요…!
다행이다, 하고 전신에서 힘이 빠진다.
샤일록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샤일록 베넷. 샤일록이라고 불러주세요.
모처럼의 만남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여쭤봐도?
아키라
저는, 아키라라고 해요. 샤일록,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샤일록
아키라… 멋진 이름이네요.
이 거리에 오신 건 처음인가요?
아키라
그런, 가……
샤일록
……?
아키라
이름 말고,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돌아가면 되는지도.
샤일록
그렇군요. 미아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더니, 정말로 미아였다, 라는 거군요.
샤일록은 오뚝한 턱을 만지며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덮쳐오자, 마음속에서 조금씩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키라
(이제 어쩌지. 돈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어.)
(방금처럼 무서운 사람들한테 둘러쌓이면…)
샤일록
…… 갈 곳이 없다면, 저와 함께 가시겠나요?
아키라
에… 그래도 되나요?
제가 말하기도 뭐하지만, 꽤 수상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샤일록
정말로 수상한 분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게다가, 당신을 좀 더 알고 싶어졌어요.
아키라
그건 기쁘지만, 저는 과거의 기억이 없어서…
샤일록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건, 과거의 당신이 아닙니다. 지금의 당신이에요.
기억이 없어도, 저와 편안한 대화를 해주시는, 그런 당신에게 흥미가 있습니다.
그 말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기억이 없다, 누구인지도 모른다ㅡ 그런 나에게도,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해준 기분이 들어서.
샤일록
그렇다고는 해도, 첫대면인 사람을 따라가는 건 불안하시겠죠.
수상함을 말하자면, 당신보다도 제 쪽이 훨씬 수상한 남자일테고…
아키라
샤일록은 수상하지 않아요. 위험했을 때 도와주신 은인이에요. 게다가…
샤일록
게다가?
아키라
아, 그게…
(왠지 당신은 따라가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라고 말하면 이상하려나.)
샤일록
자세한 이야기는 조용한 곳에서 하기로 할까요. 우선…
콧수염이 있는 남자
ㅡ보스!
무시무시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돌아보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방금 전 남자들이 머리를 낮게 숙이고 있었다.
그들의 인사 앞에, 돌층계의 길을 걷고 있는 건, 동저고리 모습의 흑발을 가진 남자.
인형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당밀 같은 금빛의 눈동자가 빛난다. 만개한 꽃을 등에 지고, 우산을 쓴 모습은 두렵게도 그림이 되어 있었다.
???
……
아키라
…읏.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짤깍, 하고 눈앞에서 불꽃이 흩날린 기분이 들어서 나는 숨을 삼켰다.
샤일록
아키라, 가죠.
샤일록이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며, 내 손을 끌며 앞을 보게 한다.
샤일록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걸어주세요. 절대 뒤돌아 보면 안 됩니다.
아키라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은 대체…?
샤일록
저건 벤티스카 패밀리의 보스, 돈 스노우. 이 거리에서 제일 가는 무력 투쟁파 조직을 다스리는 강자입니다.
목숨이 아깝다면, 열심히 바라보는 건 그만두는 편이 좋아요.
샤일록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이 더 무섭게 느껴져서, 나는 숨을 죽였다.
아키라
(이 거리는, 왠지 엄청나게 위험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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