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난테

Verdious

엔딩로그

수도에 있는 어느 백작저에서는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돈다지요?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폭삭 망해버린 집안이라 이런저런 저주를 받았다는 둥 여러 풍문이 나돌았다는 건 수도로 상경한 지 오래 되지 않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게 다 이십 년 새에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가장 처음의 백작님께서는 조금 은둔하기는 했어도 가문이 건재할 수 있도록 업무를 보셨다는데, 뭐 저야 일개 사용인이니 상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그 덕인지 오래도록 중앙 의회에 자리 하나를 맡고 있을 수 있었대요.

이곳에 오래 있던 집사장께서 말씀하시길, 백작저가 이렇게까지 무너진 건 그 다음 주인님이 들어선 때였다고 합니다. 선대 백작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죽어서 먼 방계에 작위가 통째로 전해졌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망나니였다나요. 온갖 곳에 있는 자산을 현금화 해 도박을 하고, 재산을 날리고, 나중에는 저택의 귀금속을 모조리 뜯어 도망치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때 세 번째 주인이 들어왔습니다. 전 백작님에 대한 소식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다들 쉬쉬하고 계시기에. 그래도 어느 먼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아요.

세 번째 주인님은 제가 처음 모시게 된 분이기도 합니다. 대륙을 구한 영웅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사기꾼이라는 말도 있어서 처음에는 잡음이 꽤 많았대요. 어찌저찌 작위를 이양 받은 뒤에도 저택 상황은 아주 난리도 아니었대고. 사용인들이 대거 쫓겨나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나요. 그래서 새롭게 인원을 모집했다지만, 어디 지원하는 고급 인력이 있었겠어요. 저야 소개장이 없어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에 왔지만요. 결과적으로 뽑힌 인력은 열명 남짓이었답니다. 그 인원 그대로 꼭 사 년째 지금 일을 하고 있네요.

유령이 나온다는 저택에서는 마땅한 일이 없었습니다. 벌써 사 년째 일을 하고 있는데도, 이렇다 할 기이한 일은 겪지 못했어요. 저택에는 손님들이 종종 오갑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영웅들이 방문하기도 하고, 백작님께서 때로는 그분들을 만나러 갈 때도 있어요. 듣자하니 포탈 여는 법을 알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엔 바닷물을 한껏 맞은 채로 돌아오신 적도 있지만요. 아휴, 그때에는 카펫을 청소하느라 정말 애를 많이 먹었었는데…….

손님이 오지 않을 때의 저택은 참 고요합니다. 가끔 백작님이 계신지, 어디로 가셨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있어요. 사용인들은 대부분 저택 내부만을 관리하기에 따로 배정된 전담 시종도 없습니다. 요리사가 일을 하지 않는 날이 더 많다면 믿어지시겠어요? 오히려, 작위가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저희와 친밀하게 어울리는 날도 있지요. 그럴 때에는 아주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가끔, 아주 가끔 아주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이곳이 머물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저택을 자주 비우는 일이 잦은 건 그런 이유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작님께선 말이 아주 많지만 정작 중요한 건 말씀하지 않으시니까요.

하지만, 사용인의 미덕이 있다면 귀를 닫고, 눈을 감고, 무언갈 재단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결국 모든 건 추측일 뿐입니다. 사실, 백작님께서 이곳을 제법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건 이 저택에 방문하는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이거든요. 그와 동시에 어떤 부분을 불편해하는 듯도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모순적인 일면이 있지 않아요. 그러니 제가 알아야 하는 일은 눈에 보이는 것들 뿐입니다.

일전에 떠나고 싶거든 소개장을 친히 적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어딘가로 가고 싶은 순간이 오거든 그때 부탁드릴 생각입니다. 아직까지는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고즈넉하고, 햇볕이 잘 드는, 수도 복판의 저택이.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이제 더는 유령이 나오지 않을 모양입니다.

* * *

로시난테 베르디우스는 꼭 십오 년 동안 백작으로 불렸다. 구국영웅으로 이름을 올린 이래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던 이가 정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이들이 적잖았으나, 결국 그렇게 될 것임을 예견한 이들 역시 없지는 않았다. 사람은 언제나 돌아갈 곳을 마련해두어야 한다지만 그에게 정착은 몹시 먼 개념이었으므로 작위를 받은 뒤에도 백작저가 그의 귀향지가 될지는 불확실했다.

사실 그 역시 기껍게 백작위를 받은 건 아니었다. 로시난테가 막 백작위를 이양받았을 즈음 베르디우스 백작가의 재정상태는 처참했다. 빚이 조금이다 뿐이지 돈이 될 법한 자산들이라곤 모두 팔린 채였다. 각지에 있던 별장이니 토지 따위들도 헐값에 넘어갔다는 사실에 그는 한참 화를 내다가도, 결국 죽어가는 집안을 회생시키기로 결정했다. 화풀이였는지, 정당한 대가였는지 모르겠지만, 쫓겨난 전 백작은 어느 지방에서 평생을 썩으며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도박과 술에 절여져 천수를 누리기는 했다는데, 명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귀족의 짐은 무거웠지만 의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로시난테는, 이 시대에는 제법 드물게도, 꽤 오래 삶을 부지하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인물 중 하나였다. 영웅이 백작위를 취득했다는 소식이 들린 이래 베르디우스 백작가를 다시금 중앙 의회로 복귀시키자는 이야기가 잠시 나오기도 했지만 본인의 완강한 거부로 인해 불발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의무 없는 귀족이 되었다. 그맘때 사교장에서는 새로운 베르디우스 백작의 이야기가 거품처럼 부풀었다가 그보다 쉽게 가라앉았다. 수도에는 늘 수많은 소식들이 들끓었고 늙은 정령사의 이야기는 오랜 관심사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그 사이에 정령이 수명을 다했으므로 이제는 마법사라 부르는 게 맞았겠으나 그런 세세한 점을 신경 쓰는 이들은 없었다.

전장에서도 모든 일이 끝나거든 한량처럼 살겠노라 떠들어댔다만 바쁘게 사는 건 천성인 모양이었다. 백작가의 재정상태를 복구시키는 데에는 꼭 오 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님벌스에 작은 별장 하나를 마련해 가을이면 그곳에서 한 계절을 보내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후대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 붓기도 했다. 다만 마도공학부터 새로운 의학, 마탑에 들어가지 않은 방랑자들을 위한 후원 등 대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에는 애매한 것들이었으므로 베르디우스 백작은 참으로 귀족답지 못한 방면으로 금전을 굴려댔다. ‘공식적으로’ 재정을 복구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이런 탓이다.

그 사이에 재미있는 일도 하나 있었다. 누군가 오래 전에 베르디우스 백작에게 사기를 당했노라 고소를 걸었는데, 이십 년 전 저 사람에게 금화 일곱 주머니 어치의 술을 샀건만 안에 물이 가득 들어있었노라, 당시의 손실을 복구하는 데에만 십 년이 걸렸다는 둥 오래 전의 일을 끌어왔다. 이 사건으로 베일에 싸인 베르디우스 백작의 과거가 밝혀지는 듯 했으나, 이후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는지 고발은 재판장에 오르지 못하고 유야무야 사라졌다. 그와 술자리를 함께한 이들에게는 내막이 전해졌다는데, 딱 술 몇 병과 함께 웃어 넘길 정도의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딱 십오 년이었다. 멸망의 단초를 무너뜨리고 이십 년이 지난 뒤에 그는 돌연 백작저의 자산들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자신의 선에서 백작가의 대를 끊겠다 선언했던 것이 진실인 양 수도의 저택과 본저를 두고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적절한 값에, 필요한 이들에게 팔려나간 것들은 제자리를 찾아간 듯 보였다. 정리가 끝날 즈음에는 로시난테에게도 남은 게 많지 않았다. 백작저와 몇몇 금전들. 말 두 필. 귀금속이 담긴 작은 상자 하나. 수도의 백작저는 머잖아 비워졌고, 비워진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을 시점 화마에 휩싸여 누구도 살지 못하는 장소가 되었다. 화마가 휩싸인 장소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 그보다 먼 훗날의 일이다.

백작의 장례가 치러진 건 화재 이후다. 생전 작성된 유언에 따라 그와 오랜 연을 이어온 영웅이 작위를 이어받았다. 장례를 주관한 것 역시 새로운 백작이었다. 주변인들에게 짧은 부고가 전해졌다. 장례 역시 아주 고요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베르디우스 백작의 죽음을 두고서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없진 않았다. 시신 없는 관이 묻혔다는 건 소수의 인원만이 아는 사실이다. 혹자는 그가 어딘가로 떠났다 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가 정녕 자유를 찾아갔노라 여겼다. 말 한 필과 약간의 금전, 그리고 그가 늘 챙겨 다니던 작은 상자가 함께 사라졌으므로. 그게 화마에 먹혀 사라졌는지, 혹은 누군가가 쥐고 떠났는지는 영영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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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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